늘 그 자리에 있던 것도 마음이 있을 때 제대로 보인다. - p. 135
태생적으로 감성이 풍부한 편인 반면에, 그 감성을 완벽하게 표현하는 능력이 없어서 항상 목마름이 있었다. 그래서 예술을 하는 이들, 무에서 유를 창조하여 자신의 내면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저 부럽고, 멋지다고 생각해왔다.
사실 오태호 라는 사람을 몰랐다. '내 사랑 내 곁에', '기다린 날도 지워질 날도', 'i miss you'.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만 쏙쏙 만들어 온 사람인데, 어찌 이리도 무심한지.. 이 책을 보면서 내내 낯이 뜨거웠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을 만났다는 생각을 했다.
이 책은 작곡가이자 가수인 오태호가 쓴 책으로, 간략한 메모와 시, 감성적인 사진이 담겨 있다. 몇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노래를 탄생시켰다는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이 그가 적은 메모와 시는 어느 한 구절 놓치기가 아쉬울 만큼 와닿았다.
무언가의 가치를 알고 싶다면 간단해. 1년만이라도 아니 한 달만이라도 그리고 어떤 건 단 하루만이라도, '잃어보면 돼.' - p. 35
요즘 지인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많이 든다. '다들 사는 것이 참으로 팍팍하구나.' 먹고 사는 문제에 어느 누가 당당해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 너무 잘 먹고 잘 사는 문제에만 내 인생을 통째로 투자하고 있지는 않나. 오히려 30~40년 전, 코스피 지수가 생성되지도 않았던 때에 우리는 물질적으로 지금보다 많이 부족했지만, 덜 바빴고, 그랬기에 더 감성적으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낭만만 찾고 있는 게 철 없이 보이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게 이따금씩은 뼈 아프게 다가온다. 언제부턴가 세계문학보다 현대소설보다 여행에세이나 이런 음악, 미술과 관련한 에세이집이 출판계에 많이 보이는 것 또한 일상에서 낭만적인 감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그걸 갈망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보이기도 한다. 헐리우드의 한 영화처럼 우리 삶에서 감성적인 모든 걸 소멸시킨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갈까? 한 번 쯤은 고심해볼 문제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여전하게 이 세상을 촉촉하게 만들어주는 오태호와 같은 사람이 있으니 참으로 감사하다. 표현하는 법에 서툴러서 그저 비 오는 날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창 밖을 넋놓고 바라보는 것만으로 감성을 표현할 길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그는 단비와 같은 존재다. 낭만과 감성에는 음악이 결코 빠질 수 없기 때문에.
척하면 삼천리, 꽤나 위험한 얘기. 언제 그랬다고 오늘도 과연 그럴까? 쉽게 장담하지마. 언제 어디로 불지 모르는 바람 같은 마음과 세상이니까. - p. 62
짧은 한 구절로 자아성찰을 하게 하고, 잊었던 아주 어릴 적의 감성까지 끌어내주는 그의 필력은 정말 훌륭하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이런 깨달음을 너무 짧은 호흡에 느껴야 하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의 글을 읽었을 때 오글거린다고 표현하지 않고 멋지다고 말할 수 있는 감성이 내게 여전히 있다는 것을 깨우쳐줘서 감사했다.
책 한 권에 명언이 가득해서 모든 구절들을 인용문으로 넣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사랑하는 이에게는 내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서 선물하고 싶은 책,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너를 이해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 선물하고 싶은 책이다. 먹고 사느라 바빠서 감성을 잠시 뒤로 미뤄두었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구매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자기반성과 자아성찰이 동시에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어서 끝없는 장마가 시작되길 바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