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가 현재를 습격하는 밤.

지난 기억이 지금을 괴롭혀 쉽게 잠들 수 없는 밤에 당신을 생각합니다.

영원히 사랑한다는 고백이었습니다. 내가 받은 것은.

그대로부터 선물받은 사랑의 증거는 말입니다.

그러나 영원이란 실재하지 않는 존재. 세상에는 결국 없는 단어였습니다.

- p. 77

오늘 문득 당신이 떠오른다. 나도 지금 당신처럼 현재보다 과거를 살아가고 있다. 스스로 바보같다는 생각을 하며 자책하던 때에 너를 만났다. 테오.

여행을 유난히 좋아한다. 그래서 타인의 여행에도 관심이 많고, 여행을 하는 이들과의 대화는 끝없는 즐거움과 설레임을 안겨준다. 그곳에 내가 가지 않아도 간 듯한 간접 경험을 하게 하고, 두려움과 설레임을 느끼게 한다. 여행을 갈 때마다 여행 관련 책을 구입해서 여행에 동행하는 버릇이 있는 나에게 테오는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 되었다.

올해, 누군가를 큰 뜻 없이 보내고서 후회 비슷한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견디고 살아가고 있을 때,불현듯 아무 추억도 없는 곳으로 떠나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계획 없이 무작정 짐을 싸서 홍콩으로 떠났다. 날씨도 몰랐기 때문에 여행 내내 추웠고, 환전도 정신 없이 했었기에 줄곧 배고프고 서러웠다. 마음의 빈곤과 물질의 빈곤의 크기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시점이었다. 그런데 그때, 갑자기 괜찮아졌다. 테오의 말처럼 떠나니 정말 괜찮아졌다.

꽤나 고달팠던 풋내나던 스무 살 때. 처음으로 여행에서 위로를 받았던 때부터 마음이 힘들 때. 현실이 고달플 때. 문득 당신이 생각날 때마다 해왔던 여행은 나에겐 이제 친구의 위로 같은 것. 부모의 보다듬 같은 것이었다. 이 책의 작가 테오가 청하는 바와 같이 힐링이 되는 유일한 것이었다. 이 책을 처음 받았을 때 다른 여행 에세이보다 더 마음에 끌렸던 것은 내가 다녔던 여행지와 중복되는 곳이 많았다는 점과 그곳에서 내가 느꼈던 바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는 것. 그것이 내게는 또 다른 위로를 주었다. '아, 지금 나만 이 시간 속에 있는 것은 아니구나. 비록 내가 지금 있는 곳이 낭떠러지라도 그 곳에 지금 나 혼자 있는 것은 아니구나.'하고 깨닫게 해주었다.

누군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나의 일상에 더는 등장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기억은 일종의 습관과 같습니다. 일상에서 멀어진 사람은 잊혀지는 것이 당연합니다.

습관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

잊혀진 이름을 기억하는 방법.

버스에 올라 당신의 일상 가장자리에 도착한 다음 그가 남긴 낡은 흔적들과 만나세요.

그의 이름은 아직 당신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 P. 123

다시 홍콩으로 떠났던 이야기를 하자면, 그곳에서 나 당신의 이름을 놓고 오려고 했다. 테오의 말처럼 당신이 여전히 내 세계에서 살고 있었기에, 모순적이게도 내가 내 인생을 제대로 살 수 없었다. 매일이 불안하고 어지러웠기 때문에 잊고 싶지 않았지만 내가 살아야 했기에 당신의 이름을 그곳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힐링이 된 것처럼 나 한동안은 아주 괜찮았다.

그런데 지금. 테오의 글을 보며 그의 이름이 다시 떠올랐다. 처음 한두 줄을 읽었을 땐 알 수 없었던 감정이 마지막 글귀를 보고서야 탄식이 나왔다. 나 당신과의 추억이 없던 홍콩에서야 잠시 당신을 잊었었다. 그런데 여행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니, 당신은 여전히 내 인생 곳곳에서 낡은 흔적으로 남겨져 있었다. 그러니 다시 솟아날 수밖에. 당신의 이름은 아직 나의 세계를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난 또 한 번의 여행을 결심하게 됐다. 테오로 인해서.

이 책을 읽게 될 많은 독자들에게. 난 단호하게 충고한다. 누군가를 잠시 잊기 위해. 혹은 감성에 젖기 위해 이 책을 펼칠 예정이라면 조용히 덮었으면 한다. 그의 글은 추억을 고통스럽게 되새기게 하며 나를 힐링시킨다. 힐링이 되어도 고통스럽지 않은 추억이 있는 사람이라면 상관없다. 단, 잊혀지는 것 혹은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고통이 오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첫 페이지도 넘기지 않기를 바란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 되었습니다

 

 

우리 시대의 내로라하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한때 푹 빠져 있었던 김연수, 김경욱 작가부

터 결코 현대 문학에서 빠질 수 없는 김훈, 전경린, 박민규까지. 그 외에도 독특한 소재를 담아

내는 김애란 작가와 하성란, 이혜경 작가의 소설은 나를 위로하고, 채찍질하기도 하는 그런 이야

기를 한다.

 

대학 시절.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한 학기에 소설 한 편을 써서 내야 하는 수업을 무턱대고 수강

해놓고, 되든 안 되든 죽어라 무언가를 썼었다. 여자를 쓰고, 남자를 쓰고, 또 아이를 쓰고, 노

인을 썼다. 그때 존경하는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읽는 만큼 써진다고 하셨다. 그 때문이었는지

당시 꽤 많은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다. 적으면 일주일에 2~3편, 많으면 5편까지 읽던 시절이었

다. 그때 김훈, 전경린, 박민규, 김연수, 김경욱 등. 많은 현대 작가들을 알게 되었고, 그들의

문학이 내 인생에 참으로 많은 것을 남길 것이라 생각했다.

 

 

발자크가 소설을 쓸 때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고 한다. 백포도주와 가벼운 저녁식사를 하고 저녁

여덟 시에 잠자리에 든다. 새벽 두 시에 깨어서는 커피를 마시며 여섯 시까지 쓴다. 여섯 시부터

목욕을 하고 수정본을 본다. 아홉 시부터 열두 시까지 다시 쓴다. 그리고 식사. 오후 한 시부터

여섯 시까지 지금까지 쓴 글들을 수정한다. 발자크의 하루 일과를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허리가

곧게 펴진다. 고백하건대, 내가 소설에 투자하는 시간은 발자크의 십분의 일에도 못 미친다. 물

론, 부끄럽다. 그리고 그것이 이 글의 목적이기도 하다. 내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 
                                                                      -p.152

 

 

소설가란 무엇인가? 사전적인 의미로는 '소설 쓰는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란다. 그렇다면

소설이란 무엇인가? '사실 또는 작가의 상상력에 바탕을 두고 허구적으로 이야기를 꾸며 나간 산

문체의 문학 양식으로 일정한 구조 속에서 배경과 등장인물의 행동, 사상, 심리 따위를 통하여

인간의 모습이나 사회상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참으로 구구절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생각하는 소설이란 그저 읽어야 하는 것. 읽고 싶은 것. 읽은 후 나를 소소하게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글쎄, 어떤 누군가에게 소설이란 그저 허구일 뿐 가치 없는 것이라 여길 수

도 있고, 단순히 흥미 거리나 시간 잡아 먹는 쓸데 없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게

소설이란 흥미로 시작해서 간절함으로 끝나는, 혹은 간절함에서 시작해서 위로로 끝나는 그런 것

이다.

 

김훈 작가가 어느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떠오른다. 소설은 그저 하찮은 것이다. 먹고 사는 것이

첫 번째이다. 문학이 인생을 바꾸고,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것은 말도 안되고, 진정 삶을 윤택

하게 하기 위해서는 배고픈 이에게 밥을 먹이고, 집 없는 이에게 집을 지어줘야 한다.
상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이런 내용을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존경하는 작가의 말이기도 했

지만, 그 말 안에 담고 있는 내용이 문학으로 인해 인생이 변한 나에게도 그럴 듯하게 들려 기억

하고 있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나같은 사람에게 이런 말은 모욕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당대의 역사적 구조 전체와 삶의 총체적 중량 전체를 향해 달려드는 '거대한' 작가가 되려는 허

영심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중생의 불완전한 언어로 더듬을 수 있는 작은 것들, 희미한 것들,

온갖 허섭스레기 같은 것들을 겨우겨우 말하는 쪼잔한 글쟁이가 되려 한다. 누구에게나 운명이라

는 것이 있을 터이다. 운명이라기보다는 팔자라는 말이 좋겠다.
                                                                         -p.84

 

 

그들은 웬일인지 너무 겸손하다. 독자의 입장에서, 또한 한때 글을 쓰고 싶다는 열망에 빠져 있

던 사람으로서 그들처럼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들이 참으로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하지만 그들이 바라보는 스스로는 그렇지 않다. 글을 쓰지

못하고, 한 문장을 1인칭으로 쓸 것인지, 3인칭으로 쓸 것인지를 두고 하루 종일 고민하는 그들

이지만 결코 자신들이 쓴 글이 독자들의 삶을 바꿔준다거나 스스로 멋지다고 여기지 않는다.
김훈 작가의 말처럼 운명보다는 팔자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른다. 옛말에 '팔자가 세다', '팔

자가 더럽다'는 말이 있다. 소설가로 살아간다는 것이 참으로 팔자가 세고, 더럽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들이 이것만은 알아줬으면 한다. 그 팔자 덕분에 살아가는 힘을 얻는 사

람이 여기 하나는 있다고. 그것만으로도 그 더럽다는 팔자. 살아 볼 만한 것 아니겠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