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리에 엎드려 독서등 하나 켜 놓고 이 책을 읽다가 잠들려면 뭔가 찜찜하다. 책 속이 내용이 꿈속에서 재연될 것 같았기 떄문이다. 전작 <7년의 밤>보다 훨씬 더 처절해졌고 훨씬 더 잔인해졌다. 그래도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화양이란 수도권 도시에 인수공동 전염병이 발병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 병에 걸리면 눈이 빨개지며 며칠안에 죽고 만다. 이 초유의 사태에 맞닥뜨린 다섯 명의 사람과 하나의 늑대 개의 시선으로 사건을 이끌어간다. 재형, 기준, 윤주, 수진, 동해, 그리고 링고.

그들 하나하나의 입장이 모두 설득력 있고 타당했에 더욱 가슴 아팠다. 동해만 빼고.

특히 기준과 링고의 관계가 가장 안타깝다. 서로 원한관계이지만 둘 다 그럴 수 밖에 없는 아픔을 가졌고, 그 아픔을 만든 장본인은 생명에 대해 무신경했으나 스스로 깨닫지도 못하고 살아가는 무수한 평범한 사람들이다.

 

얼마 전에 설날 특집으로 보여 준 <연가시>라는 영화가 겹쳐진 건 나 뿐이었을까. 물론 상황이나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긴 하지만 전염병에 걸린 사람들을 감금해 놓고 무력을 행사하는 것이 비슷해 보였다. 또한 마을을 고립시키고 계엄령을 발동한 것은 광주 민주화 운동도 연상시킨다.

이 소설에는 애완견이란 이름으로 갖은 사랑을 주다가 늙고 힘없어지면 버리고 마는 사람들의 생명 경시 풍조와 재난에 대처하는 정부의 무능함과 잔인함 이라는 두 개의 맥락이 보여진다.

그런데 작가님 이렇게 많은 생명들을 죽여야 했나요? 맘이 아프네요.

심리학으로 보는 조선왕조실록

 

조선왕조실록을 심리학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본 매우 흥미로운 책이다. 파란만장했던 조선왕조의 태조부터 순종까지 왕들에게 심리학이라는 잣대로 그들의 행동에 개연성을 부여했다. 왕이라는 자리보다는 그들을 한 인간으로 보려고 노력한 것 같아 좋았다. 왕이기에 앞서 그들도 유약한 인간이었구나 하는 생각과, 시각을 달리해서 보더라고 왕조의 역사는 피바람이 끊이지 않는 살벌한 세계임엔 틀림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많은 왕 중에서 관심 있게 본 것은 세조와 숙종이었다. 나는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에서 자라며 단종을 내쫒은 세조는 매우 나쁜 사람이었으며 유배지에서 목숨을 잃은 어린 단종은 억울하고 원통한 피해자라는 것을 배우며 자랐다. 그래도 세조가 정치를 잘 했다는 평가는 있었지만 그를 좋게 평가하지는 못했다. 헌데 저자는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 그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며 다만 단종이 정치를 잘 하도록 보좌할 수도 있는 것을 굳이 왕위를 빼앗은 것에 대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그래서 소제목을 ‘아쉽기는 하지만 욕할 정도는 아닌’으로 붙여놓기도 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왕위를 빼앗은 것 까지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꼭 단종을 그렇게 무참히 죽여야만 했을까. 물론 많은 역모들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재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까지 정당화하지는 못할 것 같다. 저자도 이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을 보면 피바람이 남발하던 왕조의 역사에서 그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한 건 아닌지 모르겠다. 저자는 이런 상황을 심리학적으로 ‘현상학적 입장’이라고 했다. 쉽게 말하면 싸움은 양쪽 얘기를 다 들어봐야 아는 것이고, 누구든 자신의 입자에서는 이야기 한다는 것이다. 글쎄.. 나는 너무 단종의 얘기만 들어왔던 것일까..

그리고 숙종에 대한 오해는 내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탓일까. 나는 숙종이 장희빈에게 휘둘리는 왕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숙종은 카리스마를 지닌 절대군주였다고 한다. 그리고 늘 공부하는 왕이었다고 한다. 왕을 좌지우지했다고 생각했던 장희빈과 희생자인 인현왕후, 그리고 최수의 승자였던 숙빈 최씨와의 인연도 알고 보니 숙종의 철저한 정치적 계산이었다고 한다. 드라마로 역사공부를 한 폐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

숙종은 드물지 않게 원자로 태어나 왕으로 키워진 인물이다. 원래 이런 것이 왕의 당연한 수순이어야겠지만 아쉽게도 이렇게 왕이 된 인물은 드물다. 그렇기 때문이 숙종은 어려서부터 왕재로 대접을 받고 자란 탓에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던 왕이라고 한다. 반면 세자라는 특별한 자리에 있음으로 인해 누구에게도 맘을 의지하고 털어놓을 수 없었던 마음이 공허했던 왕이기도 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사람에게 쉽게 빠지는데 아마도 숙종의 마음을 얻었던 장희빈과 숙빈 최씨가 그러지 않았을까. 자신의 뜻에 따르지 않으면 가차없이 응징하는 절대군주. 그래도 숙종은 늘 공부하는 왕이었으며 정치능력이 있었기때문에 반란이나 역모따위가 일어나지 않았던 모양이다. 지금도 이런 절대군주가 있다며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미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된 것일까.

심리학이라는 기준으로 들여다보니 왕들도 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구나. 그들도 외롭고 흔들리는 약한 존재들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욕심으로 자식을 죽이고 형제를 죽이는 일이 예사인 살벌한 왕조. 권력이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맹렬하게 추구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싫다. 이렇게 소시민으로 행복하게 알콩달콩 사는게 좋다.

 

<후회하지 않는 삶은 가능한가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자유롭고 싶은가? 그렇다면 니체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만 한다. "지금 인생을 다시 한 번 안전히 똑같이 살아도 좋다는 마음으로 살아라!"

<자유인의 당당한 삶 임제, 임제어록 >

이미 일어난 생각은 이어지지 않도록 하고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생각은 일어나지 않도록 하면 그대들이 10년 동안 행각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나의 생각에는 불법에는 복잡한 것이 없다. 단지 평상시에 옷 입고 밥 먹으며 일 없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임제어록-

임제는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에 대한 염려를 모두 제거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과거에 대한 집착이나 미래에 대한 염려는 '지금 그리고 여기'펼쳐지는 현재의 삶을 보지 못하게 만들고, 당연히 현재의 행복을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언어 너머의 맥락 비트겐슈타인, 철학적 탐구 >
욕쟁이 할머니의 식당에서 느끼기 쉬운 불쾌감이나 거부감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는 자신과 대화하는 사람이 어떤 삶의 문맥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섬세하게 읽어내야 한다. 자신의 문맥에 따라 상대방의 이야기를 재단하는 순간, 오해와 갈등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 에피쿠로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

가장 두려운 악인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존재하는 한 죽음은 우리와 함께 있지 않으며, 죽음이 오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죽음은 산 사람이나 죽은 사람 모두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산 사람에게 아직 죽음이 오지 않았고, 죽은 사람은 이미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노이케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타인에 대한 배려 공자, 논어 >

공자가 태묘에 들어갔을 때 일일이 물어보았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누가 저런 추인의 아들이 예를 안다고 했는가? 테묘에 들어가서 일일이 묻고 있다니!" 공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로 예다" -<논어> 팔일-

태묘에 들어왔으면 태묘 관리인에게 일일이 물어보는 것이 바로 예라는 것이다.

<여가를 빼앗긴 불행한 삶 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 >

스펙터클 사회는 인간으로부터 상품에 대한 시각적 감각을 제외한 일체의 현실감각을 박탈해버린 거대한 매트릭스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바로 여기에서 역설적으로 스펙터클 사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볼 수 있다. 촉각으로 접할 수 있는, 즉 자신이 직접 몸으로 부딪혀 느낄 수 있는 구체적인 현실 세계에 지속적으로 개입하여 현실 감각을 키워야 한다. 단지 이것만이 권력과 자본이 내건 집어등의 유혹으로보터 해방되는 유일한 길일 것이다.

<운명은 존재하는가 왕충, 논형 >

낚싯줄을 호수에 드리우지 않으면 물고기를 잡을 수 없다. 물론 낚싯줄을 드리웠다고 해서, 항상 자신이 원하는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터덜터덜 빈손으로 집으로 갈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절망하지는 말자. 낚싯줄을 던지지 않는다면, 물고기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마저도 사라질 테니까 말이다. 불확실한 결과가 충분히 예견될지라도 과감하게 낚싯줄을 던질 수 있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기 때문이다. 잡으려고 했던 물고기를 잡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오만할 일도 아니고, 잡지 못했다고 해서 지나치게 비관적일 필요도 없는 일이다. 지금 왕충은 해묵은 동양의 인생관을 반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인사대천명! 자신이 할수 있는 모든 일을 하고서 조용히 결과를 기다려라!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일희일비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