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정령]

바냐 아저씨의 전신. 이 희곡을 쓴 후 10년 뒤 크게 개작을 해서 희곡 [바냐 아저씨를 집필했다고 한다. 10년 이 지난 뒤에 쓰인 [바냐 아저씨]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먼저 등장인물이 많다. 단순히 사람 수가 많다는 의미뿐만이 아니라, 몇몇 인물들에게 에너지가 몰아진다는 느낌이 아니라, 여러 인물들로 에너지가 분산 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조금 산만하다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10년 이라는 시간 때문일까? 내가 아는 체홉의 작품들 중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가장 직설적으로 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가 당시의 사회를 바라보았던 시선, 그가 당시 러시아를 지배하고 있던 기득권층들과 스멀거리며 대두되기 시작했던 당시의 사상들을 바라보는 시선들이 잘 보인다.

 

[바냐 아저씨]

희곡 [숲의 정령]을 모태로 해서 10년 뒤 다시 체홉에 의해서 쓰인 희곡. 개인적인 느낌이기는 하지만, [숲의 정령]보다 글이 훨씬 다듬어졌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인물들 또한 함축되고 압축되어져서 이야기의 구조도 단순하고, 인물들 간의 관계도 훨씬 밀도가 있다. 그리고 글이 조금 더 의뭉스럽다고 해야하나. [숲의 정령]과 같이 직설적으로 말을 쏟아내기 보다는 결국 체홉 스스로가 하고 싶었던 말들이 더 깊은 바닥에 깔려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벚나무 동산]

인간이 용기를 갖는 건 어느 순간인가? 이 극에 나오는 사람 모두는 열심히 나름대로 노력하지만, 아무도 용기를 내지 못한다. 지금의 범주에 머물러 있으며, 내가 정한 혹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에게 정해진 울타리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것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일 것이다.

[벚나무 동산]을 읽었다. 로빠힌에게 나를 이입시키게 되고,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노력하지만, 결국 용기가 없어 변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고, 그리고 내가 선택한 로빠힌의 시선으로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러나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내가 선택한 그도 결국 용기가 없어 이루지 못한다.

정말 대단한 작가다. 인물에 대해서 답답하고, 짜증나고, 화가나고. 단지 희곡을 읽으면서 이런 오만가지 감정이 들게 만들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작품이다.

스타니슬라브스키 연극론

 

1800년대 말 러시아에서 태어나 연극을 사랑했고, 연기라는 것에 절대적인 이유와 의미를 부여한 예술가. 스타니슬라브스키 이전의 연극에는 무대 위의 진실이 없었다고 한다. 단지 천재적인 몇몇 배우들만이 그들의 재능을 기반으로 관객에게 진실을 전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스타니슬라브스키는 생각했다, 끊임없이 고민했다. 보통 사람들도 그들 천재만이 해왔던 어떤 진실을 전달할 수 있는 영역까지 도달할 수 있기를. 그러한 노력으로 그는 ‘신체적 행동의 방법론’이라고 불리는 연기의 시스템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1900년대가 지나서야 범상한 배우들도 훈련을 통해서 예술이라는, 진실을 전달하는 영역으로 그들의 연기를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그가 직접 저술한 책이 아니다. 그를 겪은 후대의 사람들이 그의 생각과 삶을 정리한 책이다. 그렇기에 사실 [배우훈련]으로 시작되는 그의 3부작 보다는 훨씬 읽기가 수월하다. 그의 ‘시스템’에 대해서도 간략하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한 설명 또한 적절하다.

 

스타니슬라브스키가 위대하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무에서 유를 창조했기 때문이었다. 천재들의 영역에 속해 있던 것들을 평범한 사람들이 노력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그 이전에는 저 천장까지 도달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사다리를 선사해 주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의 삶에 대해서 조금 알게 된 지금은, 그를 위대하게 만드는 것은 단지 ‘사다리’ 때문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는 말 그대로 위대한 예술가였다. 연극을 사랑했고, 연극을 보러 극장을 찾는 관객들에게 그 책임을 다 하려 노력했고, 자신이 사랑하는 연극에 대해서 무겁디무거운 사회적 책임을 자청해서 어깨에 짊어졌다. 아마 그러했기에 지금 연극을 공부하는 모든 이들은 그의 이름을 한 번씩은 반드시 거쳐 가야만 하게 되었다.

 

연기는 곧 행동이다. 배우는 몸으로 소리로 표현해야 하는 존재이고, 그것이 관객에게 ‘진실’을 전달하지 못한다면 그의 몸짓은 무의미하다.

 

사람은 자신이 사랑하는 만큼 책임지게 된다. 모든 배우는 무대 위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연극의 양만큼 관객에게 책임을 질 것이다. 그것은 스스로 배우라 칭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인 [오셀로]. 세익스피어가 만들어낸 인물 중 최고의 악역으로 꼽히는 이야고. 처음 이 대본을 읽었을 때, 난해한 말들과 불친절한 지문들로 인해서 상당히 많은 고생을 했다. 왜 이 인물은 결국 이렇게 변해 가는지. 막연하게나마 이것이 스타일 연기의 한 방식인가 정도로만 생각하기도 했었다. 다시 여러 분석의 글들을 읽고 난 후 천천히 대사를 읽어 본다. 인간을 인간의 내면과 그 기저에 깔린 강열한 욕망의 발현을 세익스피어는 그의 극에서 형상화시켜내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프로이트도 융도 있기 수백 년 전에 이미 인간에 대해서, 의식 이전의 인간의 욕망에 대해서, 인간이란 어떤 순간에 어떤 조건 하에서 어떤 에너지를 뿜어낼 수 있는지 이 극은 그것을 너무나 잘 보여준다.

 

세익스피어는 서른이 넘어서야 겨우 이해할 수 있다고 했던 누군가의 술자리 말을 떠올린다. 욕망하는 것과 욕망이 좌절되는 것과 다시 또 욕망하는 것. 이 과정을 통해서 인간을 조금이라도 알게 되지 않은 사람이라면, 공연화 되기 전의 그의 극만으로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쉽지 않다.

 

쉽지 않다. 기록된 2500년의 인류의 시대 동안 천재가 정말 많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나더러 악역이라 말하는 건 누구지,

내가 하는 충고가 너그럽고 정직하고

그럴듯한 생각이며 무어인을 다시 얻는

확실한 길인데? 왜냐하면 정직한 청으로

유순한 데스데모나를 말 잘 듣게 하는 건

너무나 쉬우니까. 또한 그녀의 성품은

자연의 조화처럼 자유롭고 넉넉하다.

그래서 그녀가 무어인의 승낙을 얻는 일은

그가 세례와, 속죄의 확인 및 상징물을

모조리 포기해 버린대도 그의 영혼은

그녀의 사랑에 너무나 사로잡혀 있으므로

그를 죽이든 살리든 그녀 마음대로다,

그녀에 대한 욕망이 그의 약한 본능 위에

마치 신처럼 군림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내가 왜 악당이란 말인가,

카시오에게 자기 이익과 직결되는

내 길을 권하는데? 이건 지옥의 신학이야!

악마들이 가장 검은 죄악을 부추길 땐

그들도 처음에는 지금 내가 하듯이

천국의 모습으로 유혹하는 법이지.

이 정직한 바보가 행운을 되찾아 보려고

데스데모나를 조르고 그녀 또한 무어인에게

강력하게 그를 위해 탄원하는 동안에

난 무어인 귓속으로 독을 부어 넣을 테다,

그녀의 육욕이 그를 다시 부른다고.

그래서 그녀는 그에게 잘해 주려 하는 만큼

무어인의 신뢰를 잃게 될 것이며

난 그녀의 미덕에 먹칠을 할 것이고

그녀 자신의 덕행으로 그들 모두를 얽어맬

그물을 만들 테다.

- 2막 마지막 이야고의 대사 중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