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소설을 읽는다. 처음 몇 페이지를 넘기면서부터 왜 소설을 읽어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사실에 대한 기억은 오래 갈지 모른다. 사실은 새롭게 배우게 되는 또 다른 사실들과 겹쳐지면서 확장되고, 변형되고, 결합된다. 그렇기 때문에 사실은 잘 잊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감각은 쉽게 사라진다. 누군가를 사랑했던 감각, 어떤 기막히게 아름다웠던 일들에 대한 감각, 이런 감각들은 그 시절 그 순간 느꼈던 것을 온전히 남겨두지 못한다. 감각은 쉽게 사라지고, 우리는 잃어가는 감각을 붙들어 놓기 위해서 사실로 그것을 대체시켜서 기억하게 된다. 소설은 쉽게 사라지는 감각을 일깨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400페이지에 달하는 책 속에는 두 명의 인물이 나온다. 1980년대라는 내가 겪어보지 못한 시대 속에서 이 둘의 삶은 겹쳐진다. 책을 읽으면서 누가 누구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인지, 누가 겪은 일인지, 이 둘이 정말 다른 인물인지 아니면 한 명의 이야기 인지, 시대를 거쳐간 모든 사람들을 대변하고 있는 인물들인지 난 구분할 수 없었다. 독서의 와중 찾아오는 종종의 혼란스러움 속에서 난 인물의 역사를 하나의 흐름으로 기억하게 된다.
김연수라는 작가를 처음으로 접하게 된다. 글, 소설을 쓴다는 것이 어떤 무엇을 써내려가는 일일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중에 기회가 닿아 그의 다른 글들을 읽어보게 된다면, 나는 김연수라는 작가를 다시 판단하게 될 것인가? 아직은 내 만남의 일천함에 난 그와 책 속의 누군가들을 일치시키고 있다.
폭력이라는 것의 일부분을 맛본 적이 있다. 26개월 동안 나라를 지키면서, 나는 폭력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직접적이고, 너무나 말초적인 감정적인 분출에서 생겨나는 폭력이었다. 나이를 먹어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를 만나고, 난 좀 더 거대한 폭력을 알게 되었고, 폭력에 대한 내 이해는 더 큰 범주로 엮어지게 되었다. 1980년대의 폭력에 대해서 난 먹먹한 두려움을 느낀다.
그리워 할 대상을 가지고 있는 외로움과 그 대상조차 갖지 못한 외로움. 후자 보다는 전자가 더 낫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내 몸으로 받아낸 사실이었으니까. 그 고독 속으로 몸을 던진다. 외로움을 벗어나기를 갈망하면서 살아간다. 답을 찾는 여정이 아닌 지금을 살기 위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이 이후의 구절이 무엇이었을까? 그냥 쓸데없는 궁금증이 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