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철학하자이 비평가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

 

현대 철학가들의 책들은 대부분 서양 근대 철학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다면, 글의 내용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다. 그것은 이 현대 철학가들의 말이 근대 철학가들의 말을 비판하고 부정함으로써, 그곳에서부터 논의를 확장시켜 나가기 때문이다. 가라타니 고진의 책 <근대문학의 종언>도 사실 마르크스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다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지적 자극을 느끼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래서 나도 못느꼈지만...

 

그래도 좋은 책이라고 느낀 건. 몇 가지 단상과 신선한 사고의 전환점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소비자 운동이 곧 노동운동이라는 지점. 모두가 생산의 지점을 통해서 자본과 노동자의 관계를 이해하려고 할 때, 생산이 아닌 소비의 지점을 통해서 자본과 노동자의 관계를 새롭게 정의내린 것.

 

근대 문학아리 함은 일반적으로 '소설'을 들 수 있는데, 이 소설이 가지고 있던 사회적인 역할이 다른 매체의 등장과 아울러 '소설'을 쓰는 목적의 변질을 통해서 종언(역사의 반복)을 고했다는 것. 글을 쓰는 것이 입신양명의 길이 되는 순간부터 소설의 사회적인 위치는 사라져버렸다는 그의 말.

 

나를 넘어서서 내 주변을 둘러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조직이라는 것에 환멸을 느낀 순간부터 국가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순간 입가에 비웃음을 걸치기 시작했었는데. 그리고 조소하며 한 발 물러서기만 할 뿐이었는데.

뭐랄까... 그럼에도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이상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뭐랄...까... 뭐라해야 할까... 거참...

 

 

이해성 작가님 희곡집

 

[남편을 빌려드립니다.]

[고래] 장편, 단편

[살]

[빨간시]

 

이렇게 다섯 편의 희곡이 들어 있다.

이해성 작가님은 원래 배우 출신. 그러다보니 글이 문어체라기 보다는 구어체에 가깝게 쓰여있어서 일단 읽기가 좋다. 배우가 말하기도 좋다.

 

공연 [고래]를 보면서 배우들의 힘이 참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상적인 이야기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질문을 던지는 대사들도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연 [살]을 보면서 신화와 연결되는, 그래서 명확한 상징을 찾아가는 대사가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대본이 궁금했다.

공연 [빨간시]를 보면서 강애심 배우님의 장독백에 감동을 받아 그 희곡 또한 텍스트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공연을 보고 희곡집을 사게 되었다.

그건 공연이 좋던 나쁘던 어떤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는 이야기이고, 그 공연에서 들려졌던 말들이 텍스트의 희곡에서는 어떻게 풀려져 있는가가 궁금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연과 대본이 너무 흡사했기에 도리어 새로운 것이 없었다는 결론.

말이 하기 쉽고 듣기 쉽게 쓰여졌기 때문에, 장면의 구성과 사건도 넣고 빼고 할 것 없이 명확하기 때문에, 인물의 설정도 정확하기 때문에 공연화 하는데 있어서는 희곡을 넘어서서 새로운 무엇을 만들어 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도리어 아쉬웠다는 느낌.

 

음...

음...

흐음...

조지 오웰 에세이집.

 

생각하고, 고민하고, 그리고 행한다.

조지 오웰이 살았던 삶이다. 여기에는 긴 시간에 걸쳐서 그가 써온 글 중에서 약 서른편 정도가 실려 있다. 사회를 지배하는 국가 권력과 전체주의에 대해서 그가 이야기 하는 경고는 날카롭고 무시무시하다.

 

'어떤 책이든 정치적 편향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없다. 예술은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의견 자체가 정치적 태도인 것이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심각한 작품은 어느 한 줄이든 직간접적으로 전체주의에 '맞서고'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들이다. - 중략 - 내 작업들을 돌이켜보건대 내가 맥없는 책들을 쓰고, 현란한 구절이나 의미 없는 문장이나 장식적인 형용사나 허튼소리에 현혹되었을 때는 어김없이 '정치적' 목적이 결여되어 있던 때였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수필에서 그가 밝힌 자신이 글을 쓰는 이유다.

정치적이라는 것은 나를 통해서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서 내 주변과 주위 사람들을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갖는 것이라 생각한다. 곧 정치적이라는 것은 나와 내 내면이 아니라 나를 둘러싼 '우리'라는 지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글을 썼고, 사회운동에도 참여했고, 노숙자도 되어 보았으며, 전쟁터에 나아가 총도 쏘아보았던 것일 것이다.

 

시간이 많이 지났기에 그가 이야기한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가 미지에의 공포로서가 아닌 현실에의 분노로 느껴지기는 하지만...

 

잘 읽히지는 않는 책이지만,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