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릿]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맏형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 우리나라의 초등학교 입학 전인 7살짜리 꼬맹이도 [햄릿]과 [로미오와 줄리엣]은 알고 있다는 그 대단한 작품.

 

분명 오래전 언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햄릿을 희곡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대강의 줄거리와 'To be, or not to be'만 기억날 뿐 다른 대사들은 너무나 새로웠다. 아마도 어린 시절 너무 무지했기에 이 작품을 읽고 별 감흥을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영어의 be 동사는 크게 두 가지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있다’ 라는 존재를 규명하는 의미와 ‘이다’ 라는 정의를 규정하는 의미다. 그렇기에 서양의 철학자들은 이 be 동사가 가지는 두 가지의 의미를 통해서 언어에 포함되어 있는 존재와 정의에 대한 긴 철학적인 담론을 나누기도 했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말에는 이 두 가지 의미가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있다’라는 단어를 통해서 ‘존재’를 떠올릴 수 있을 만큼 이 ‘있다’라는 동사가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도 않는다.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겠지만, 그래서 번역된 <햄릿>의 대사들은 수려한 문장만큼이나 담고 있는 의미들의 깊이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

 

단지 아버지의 복수라는 큰 줄거리를 넘어서서 존재에 대해서 고뇌하고, 혈육이라는 것, 사랑이라는 것에 대해서 갈팡질팡하는 햄릿의 모습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번역의 한계일 것이다.

뭐 여튼, 나이를 먹고, 해석을 조금 알게 되고나서 다시 보니 역시나 전혀 새로웠다는 뜻이다. 하이데거가 <존재와 시간>에서 이 be 동사를 다루기 300년 전에 혼자서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게 거참. 정말 그냥 천재였구나 라는 생각뿐이다.

[반성]

뭔가 강렬한 번개가 훅 하고 지나간 느낌. 뭐가 뭔지 알 수 없음에도 뭔지 알 수 없는 힘으로 쓰여진 것 같은 느낌. 음.. 말이 너무 모호하다.

 

가족. 이 가족이라는 의미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특별하다. 사실 내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보지 못했기에 감히 그들과 비교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난 그래도 분명 뭔가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가족과 개인은 언제나 부딪히는 요소다. 우리나라의 근대사, 현대사가 질곡의 역사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가족은 혈연 공동체 이면서, 서로의 가치관이 부딪히는 공동체이면서, 그럼에도 이탈할 수 없는 언젠가 다시 모이게 만드는 그런 공동체다. 그 가족 안에서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는 더욱 유별나다. 요즘에야 조금씩 이 어머니의 이미지가 바뀌고 있기는 하지만, 나만해도 어머니 하면 벌써 가슴이 아려온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결국 반성은 개인의 문제인 것인가? 대상의 문제인 것인가? 음 잘 모르겠다.

 

[Over the Rainbow]

동성애 이야기. 장렬하면서 재밌다. 흥겹다(?). 질척한 관계에 대한 글을 잘 쓰시는 것 같다. 질척하다는 것은 애증이 존재한다는 이야기. 애증이라는 것은 사랑과 증오. 사랑하기 때문에 증오한다는 것. 증오는 사랑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크나큰 미움은 그것과 상응하는 호감이 없다면 가능하지 않다.

내 취향은 아니지만, 극이 수월하게 읽힐 만큼 재미가 있다.

[기호의 제국]

그 이름도 무시무시한 지식인 롤랑 바르트의 저서.

역시나 이 책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무식한 나를 농락했다. 책 내용보다 그 뒤의 해설이 더 난해한 몇 안 되는 책이었다. 롤랑 바르트는 새로운 미학의 관점을 제시한 사람이라고 알고 있다. 라깡이 있었고, 바르트가 있다. 사실 롤랑 바르트가 제시한 기호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없다면, 이 책을 읽기는 매우 힘들다. 내가 그러했으니. 그래도 나름 기호학이 가지는 의미와 내용 정도는 알고 있었음에도 바르트가 이야기하고 있는 일본의 이미지들을 따라가기는 쉽지 않았다.

 

“바르트는 내용물에 신경 쓰지 않고 포장에만 정성을 다하는 일본의 풍습을 찬미한다. 숨겨진 선물 대신 겉포장이 감상되는 것이다. 의식적이고 임의적인 방식으로 의미를 준비하는 것이 서둘러서 진실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흥미진진하고 중요하다. 포장을 즐겨야 한다는 것은 그 안의 내용물이 궁극적으로 텅 비어 있거나 지나치게 넘쳐나는가 하는 문제보다 더 다급한 문제다. <S/Z>에서의 글쓰기는 이렇게 비서구적인 전통을 찬양한다. 그러므로 여러 글과 비평의 하이쿠를 다루는 <S/Z>의 미묘함은 미세화란 섬세한 수공작품을 다루는 것보다 과격하지 않다. 그것은 기록된 꾸러미이며, 숨겨진 진실은 없다. 이는 독서의 의식이며 분재를 키우는 것이다.”

 

해설의 미주에 달려 있는 이 글을 통해서 그나마 이 책의 맥락을 이해한다. 서양 문화가 과학적인 변증법을 통해서 진리에 매달리고, 기표 속에 숨겨진 기의를 찾아내고 밝히는 것을 최선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반면, 바르트가 그리는 일본은 그 내부와 외부를 구분 짓지 않고, 내용물보다 더 극적인 포장지를 통해서 표현되는, 서구에서 이야기하는 본질을 역행하는 모습을 통해서 다르게 기호화된 문화를 이야기 한다.

 

나 또한 서구의 ‘진리’를 찾는 문화에 길들여져 있는 듯하다. 이것은 또한 우리나라의 문화와 너무나 다르다. 우리나라의 문화는 억눌린 혹은 내재된 기표 속에서 ‘한’이라는 정서로 일반화되는 기의를 찾아내는 문화다. 그렇기에 일본처럼 기표가 극도로 발달하지는 못했다. 서구와 일본의 중간단계 정도(?).

제반 지식이 부족하면, 사실 읽기에 엄두가 나지 않는 책이기는 하지만, 나름 예쁜 사진들과 프랑스 석학의 말발 덕분에 책 자체는 읽기가 수월한 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