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장화 - 에쿠니 가오리
2010.04.17 ~ 2010.04.19
책을 읽기 전부터 제목을 보고선
도대체 빨간 장화와 결혼이 무슨 연관이 있는걸까 하며 궁금해 했었다
하지만 초반에는 빨간 장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다
언제나 묵묵하고 과묵하며 다른 사람의 이야기는 좀처럼 귀기울여 듣지도 않고
질문에 답하기로는 오로지 "응", "아니" 같은 단답형으로 말하며
질문 조차 제대로 답하지 않는 남편 쇼조.
그런 남편의 모습에 답답해 하면서도 행복하고 즐거워 하는 히와코.
밖에선 잘 챙겨주는 쇼조는 집에선 묵묵히 집안을 어질러 놓기 일쑤.
히와코는 그런 쇼조의 뒤를 따라다니며 묵묵히 정리한다.
화낼것 같으면서도 폭발할것 같으면서도
결국 마지막엔 쿡쿡 웃음을 터트리는 히와코.
평소엔 말 없고 조용한 성격인 히와코도 쇼조 앞에서만은 수다쟁이가 되어버린다.
집 안을 치우다가 요리를 하다가, 울다가 웃다가, 이 사람과 있으면 나만 몹시 분주하다.
그런 사실이 행복하게 느껴졌다.
히와코가 생각하기론, 무언가를 느끼지 않는 것보다 느끼는 쪽이 행복하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자신이 쇼조보다 늘 행복하니까 켕기는 것이다.
쇼조의 돌아오지 않는 반응을 기다리며 뒤치닥 거리를 하는것을 힘들어 하면서도
히와코는 쇼조가 곁에 없으면 그리워 하고 쇼조가 옆에 있길 바란다.
홀연히, 정말로 홀연히 히와코는 이해한다.
나는 쇼짱이 있을때보다 없을때 더 그를 좋아하는 것 같다.
그것은 발견이었다.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그리고 털끝만큼도 의심할 여지 없는-.
책의 중반을 넘어서자 드디어 빨간 장화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매년 똑같은 크리스마스 선물을 해주는 쇼조.
처음엔 이쁘다며 맘에 들어했던 히와코지만 매년 반복되다 보니 어느새 지쳐가고 있었다.
이듬해에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 이듬해에도.
그러던 어느날 문득 히와코는 깨달았다.
그것을 보아도 더 이상 흐뭇한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것을. 홀연히-.
그건 슬픈 일이었다. 무언가 되돌릴 수 없는 것을 저지르고 난 후와 같은 기분이었다.
히와코는 빨간 장화 과자가 자신과 쇼조의 결혼생활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서로 어긋나는 상징처럼.
빨간, 고전적인 모양새의, 새것 같고, 반들반들한 쾌활함이 더해진 장화.
내버리기에는 너무나 티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런 것을 정색하고 미워하는 건 어른답지 못할뿐더러 몰인정한 행동이 아닐까.
장화는 쇼조의 선의 자체이자 자신의 어리석음 자체 같다고 히와코는 느낀다.
읽는 내내 히와코는 쇼조를 정말 사랑하는건지 아닌지 긴가민가 했었다
쇼조의 모습에 답답해 하면서도 결국엔 즐거워하고 행복해 하는 모습이 아이러니 했다.
히와코는 쇼조의 어떤 모습을 보고 결혼을 하게 됐을까?
이 부부에게선 대화다운 대화를 찾아 볼 수 없었다.
이런 생활이 행복한걸까?
서로 대화하면서 서로 맞춰가면서 함께 살아 가는 것이 결혼이 아닐까?
내가 봤을땐 아슬아슬한 생활을 하는것 처럼 보이는 그들의 모습이 조용히 흘러가는 것이 신기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치만 그들의 모습 속에서 나의 모습도 간간히 발견 할 수 있었다.
세상과 막을 사이에 두고 생활 하는 것.
남들의 일에 관심이 없고 남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고
남들에게 내 이야기를 쉽게 잘 하지 않고 남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이-
어쩌면 쇼조만큼은 아닐지라도 나도 그렇게 막을 만들어놓고 있는거 같았다.
어쩌면 나도 나중엔 쇼조처럼, 히와코처럼 되는것은 아닌지 살짝 두렵기도 했다.
즐기는 데 서툴러서 그런지도 몰라
아니면 즐겁게 하는 것에 서투르던가.
그래- 서툴러서 그런걸지도 모른다.
세상과 나 사이에 있는 막을 점차 허물어가며 즐기는데 익숙해지도록 노력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