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기억을 더듬어보면 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친가 외가 모두 일찍 돌아가셔서 뵌 적이 없다. 아무래도 남자 수명이 더 짧고 예전에는 더욱 그랬으며 형제가 많았기 때문에 나의 부모님과 다시 그 부모님의 연배 차이가 꽤 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할아버지와 달리 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꽤나 생생한 편이다. 외할머니는 중풍이 있으셔서 거동이 불편하셨는데 케잌을 좋아하셨는지 집에 케이크가 조금 남으면 어머니께서는 그걸 쿠킹호일에 정성껏 싸서 외할머니댁을 방문하셨던 기억이 있다. 어머니 손을 꼭 붙잡고 버스를 타고 외할머니댁에 방문하곤 했다. 몸이 불편하셔서 쓰다듬어주신 적조차 없지만 어머니의 어머니여서 그런지 애틋한 기억을 갖고 있다.

친할머니는 외할머니보다는 뵐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아무래도 어머니 입장에서는 친정어머니가 아닌 시어머니라서 외할머니의 경우처럼 편하게 찾거나 하지는 못하셨을 터이다. 그래도 명절 때면 뵐 수 있었고 할머니께서 두부를 직접 만드셨던 기억이 있다. 순두부 혹은 연두부와 같은 형태로 해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회두부라 불렀었다. 친할머니댁은 메주와 된장 냄새로 기억되기도 한다.

행복편지 이 책을 읽으면서 외할머니 친할머니 양 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떠올랐다. 김초혜시인을 할머니로 둔 조재면 군은 참 행복하겠단 생각도 들었다. 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것은 부모님과 편지를 주고받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친구 한 명이 군대에서 할머니로부터 받은 편지를 SNS에 올린 적이 있는데 나도 모르게 울컥 할 정도로 감동적이더라. 예전엔 문맹도 많고 여자들은 교육을 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할머니와 편지를 주고받는 즐거움은 어쩌면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항상 곁에서 잔소리를 늘어놓으시고 야단만 치시는 부모님들과 달리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관계는 더 애틋하다. 자주 뵙지 못하는 것도 있고 또 아무래도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사람이 유순해지기 때문에 그런 점도 작용해서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는 그야말로 무조건적인 맹목적인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느낌이 든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부분을 꼽기가 어려울 정도로 행복편지 책 곳곳에서 할머니와 손주 간의 다정한 마음이 전달되어 가슴속 깊은 곳까지 따뜻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