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빨강>으로 기억하고 있는 오르한 파묵이 소설과 소설가라는 주제에 대해서 하버드생들을 대상으로 강연한 강의록이 책으로 묶여졌다. 이 책은 단순히 이론서로서의 소설을 아닌, 오르판 파묵 자신이 소설가로서 살아오면서 그의 삶이 잘 녹아들어 자신의 체험담도 듬뿍 들어간 강의록이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소설을 쓰면서 소설가가 어떻게 소설을 쓰려고 하는지, 또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혔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 내려 가는지 소설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기술적으로도 소설을 쓰는 방법론을 이야기하고, 톨스토이 등 여러 고전을 예로 들어가면서 소설의 이론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편하게 설명을 해 주어서 쉽게 소설의 캐릭터, 플롯, 시간, 그리고 소설을 쓰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은 크게 6개의 단락으로 나누어져 있다. 처음에는 <소박한 문학과 성찰적인 문학>을 주제로 하여 소설가들이 지금까지 어떤 식으로 소설을 써 왔는지 말해주고 있다. 마치 이태백과 두보처럼, 이태백은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가지고 위대하고 기발한 생각을 했던 반면 두보는 자신의 시를 계속 고치며 현실적이고 아주 성찰적인 시를 썼는데, 이태백이 바로 소박한 문학이요 두보다 성찰적인 문학이라 할 수 있겠다. 어느 쪽이 더 좋은지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겠지만, 각자의 좋은 점을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두번째 장에서는 "파묵씨, 당신은 이런 것들을 정말로 경험했나요?"하는 독자의 질문을 인용하면서 자신은 주인공이 겪은 일을 겪지 않았으나 독자에겐 그렇게 겪었다고 믿게 해 주고 싶은 소설가의 마음에 대해서 쓰고 있다. 너무 사실같아서 믿고 싶은 소설을 쓰는 것은 모든 소설가의 꿈이자 바램일 것이다. 3장에서는 소설의 캐릭터와 플로, 시간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어떤 캐릭터의 소유자로 주인공을 설명할 때, 작가가 그 캐릭터와 동일시 되려는 노력이 마치 배우가 배역에 녹아드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4장에서는 단어/그림/사물이라 하여 뚜렷하고 확실한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단어의 마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단어로 그림을 그린다고 오르한 파묵은 말하고 있는데, 그가 참 잘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주제가 되는 중심부를 만드는 소설의 작업도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하버드의 똑똑한 학생들을 상대로 한 강의이니만큼 내용이 쉬운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찬찬히 읽어내려가고 잘 모르는 부분은 곱씹으면서 보다보면 어느새 소설의 구조를 이해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저 소설에 푹 빠져 소설 속으로 들어가 인물의 옆 자리에서 살아 숨쉬듯 감상적이고 직관적으로 읽는 것은 물론 큰 즐거움이지만-이 책엔20대까지 오르한 파묵도 그런 식으로 소설을 좋아했다고 적혀있다- 좀 더 성찰하며 고뇌하면서 소설가가 사용한 문학적 기법을 느끼는 방법을 배워보는 것도 소설을 대하는 좋은 태도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순한 표정으로 노래를 불렀던 가수 이소은을 기억한다. 나도 10대 때의 일인데,그 당시 그녀는 뭔가 독보적인 존재였고 좋은 예술가들로부터 영감을 주는 역할의 소녀였던 것 같다. 하얀 천사같은 복장이 잘 어울렸고 마찬가지로 천사같은 음성을 가지고 있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도 아닌데 (!!) 어떻게 이승환 김동률 등 내노라 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그녀의 밝음과 무한한 도전정신, 그리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보면서 그녀의 목소리 플러스 이러한 긍정의 기운이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일으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도 잘 했던 똑똑한 두뇌 또한 마땅히 예쁨받아 마땅했을 것이고, 똑똑한 두뇌를 가졌으면서도 모든 일에 남다른 노력을 보이는 것 또한 예쁨받아 마땅했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현역 가수 시절의 많은 이들이 그녀를 사랑한 이유이지 않을까.

 

한동안 보이지 않는다고 그녀가 책을 가지고 나타났다. 짠! 변호사 자격증과 함께 말이다. 그냥 가만히만 있어도 중간은 갔을 명성의 그녀였는데 왜 구태여 법대에 진학했을까. 새로운 일을 깜짝 시작해서 끝내고 돌아왔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 책에는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계기와 그간의 스토리들이 차곡차곡 적혀있다. 그녀 특유의 감수성을 잘 살려 시처럼 아름답게 쓴 에세이이다. 그녀는 <필라델피아>라는 영화를 보면서 가졌던 어린 시절의 꿈을 말하며 결국 가수에서 변호사로 변신하게 된 과정을 이야기한다. 노스웨스턴 로스쿨에서 합격 편지를 받은 순간에서부터 친구들과의 이야기, 교수님들의 이야기,그리고 법에 대한 그녀의 넘치는 애정과 사랑, 또 사회에 대한 변호사로서의 책임감 등을 솔직하고 감동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사진들도 등장하는데 마치 누군가의 사진첩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본인의 이야기를 이렇게 정리해서 출판할 수 있다는 것이 부럽기도 했다.

 

무엇인가 열망을 가진다는 것은 멋진 일이다. 하지만 그 열망, 그 이상을 현실에서 옮기기란 쉽지 않다. 그녀는 어렸을 때 부터 아버지로 부터 이상을 현실로 옮기는 것에 대한 소중함을 배웠다고 말한다. 훌륭한 부모 밑에서 그 생각을 이어받았던 그녀였기에 어려서부터 모델,배우, 가수 등 자신이 원하는 것들에 도전하는 삶을 살았고, 해외유학에 대한 열망과 변호사가 되는 열망을 이루어냈다. 지금 그녀는 돈벌이가 아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책임, 그리고우리 나라가 국제 분쟁에서 차지하는 지위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열망에 불타있다. 한 사람의 열망이 자신의 삶은 물론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녀를 통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녀의 열정이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

 

왜란종결자, 퇴마록을 대표하는 작가 이우혁의 신작 소설, 역사 팩션이다. 나는 판타지를 즐겨보는 편은 아니었지만 중국의 무협영화를 어렸을 때 좋아했다. 아빠가 판관 포청천같은 영화를 보고 있으면 나란히 앉아 보는 것이 주말의 큰 즐거움이기도 했다. 영화에서는 장풍으로 사람이 날아가고 사람이 날아다니고 바람을 일으키는 것 같은 특수효과가 좋지만 그것을 글로 재현하면 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는데, 이 책은 그런 본격 무협 소설보다는 모험소설같은 느낌이 더 많이 들어서 거부감없이 읽을 수 있다. 조선시대 포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극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중원에서 펼쳐지는 무협소설이지만 중원의 무공과 무림의 고수들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조선의 평범한 포졸의 이야기라 더욱 친근감이 간다.

 

포졸 지종희가 사는 곳은 국경을 마주하고 있는 압록강 근처의 위화 고을이다. 그는 태어날 때 부터 비범했더 영웅적인 인물은 아니다. 건달 느낌이 폴폴 풍기는, 평범하고 뻔뻔하고 거짓말도 잘 하는 캐릭터이다. 장난기 많은 소년이 가진 풋풋하고 능글거리는 느낌이랄까? 인물이 이렇게 평범 혹은 그 이하의 비어있는 듯한 캐릭터이기 때문에 그가 벌여가는 소소한 행동들에 인간적인 정이 간다. 그에게 정이 가는 또 다른 이유는 그런 평범함 속에서도 사람에 대한 의를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 의리, 인간미 만큼은 최고이기 때문에 그는 돋보이고, 독자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시대는 1490년, 명나라와 조선이 대치하고 있는 조선 중기이다. 조선과 여진과 명이 대치하고 있는 시대인만큼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시기였다. 세종의 4군 6진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는데,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더욱 사극같으 느낌이 들었다. 이 즈음 왕의 즉위와 함께 명나라에는 기이한 연쇄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그 진위를 밝히기 위해서 명나라의 조정에서는 조선에 밀사를 보내게 된다. 남궁수와 엽고, 금의위조장으로 이루어지 세 명은 조선에 들어가 살인 사건에 대하 배후를 캐내는 임무를 맡고 있다. 복합적인 임무를 띈 이 세사람 역시 영웅적이고 치밀한 인물은 아니다. 뭔가 어수선하기도 하고, 도대체 일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생각되는 걱정스러운 그룹이다. 이들은 조선으로 들어오는 과정에서 지종희와 마주치게 되고 그와 엎치락 뒤치락 하는 사건을 일으키게 되어 절반 정도는 그에게 복수를 할 계획으로 그를 황제의 밀사로 중원으로 데리고 들어갈 것을 요구하게 된다. 얼떨결에 중원으로 가게 된 포졸 지종희. 그에게는 어떤 일들이 펼쳐져 쾌자를 펄렁이며 활동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지는 내용의 쾌자풍1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