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참 뻔한 책이었다. 제목 <나는 한번 읽은 책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그대로 책는 읽는 행위에 대한 모든 것을 백과사전 식으로 소개한 책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도 많고 독서를 다룬 다른 자기계발서에서도 여러번 등장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의 도움을 받았다. 뻔한 말인데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인데도 이 책을 읽어내려가다 머리에 번쩍하고 번개가 치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알고 싶은 부분부터 먼저 읽는 ‘순간 이동 독서법’>이라는 파트였는데,
책 읽는 속도가 더딘 사람은 대체로 어떤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 ‘책은 처음부터 한 글자 한 구절씩 꼼꼼히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체 이런 규칙을 누가 정한 것일까?
꽈앙~ ‘맞아, 꼭 이래야 한다는 법은 없잖아?’
독서의 목적은 배움과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따라서 이를 얻기 위한 최적의 방법을 선택하면 그만이다. 가령 실용서적의 경우, 대부분 처음부터 한 글자 한 구절씩 읽을 필요는 없다. 그 책들은 어떤 스킬이나 노하우를 설명하고 있는 책이므로 핵심은 ‘노하우’ 부분이다. 하지만 사실 책에는 근거, 이론, 실례 등이 페이지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렇다면 노하우 부분에 가장 빨리 도달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이 책에서 가장 알고 싶은 부분은 무엇인가’를 생각하자.
그런 다음 알고 싶은 부분을 먼저 읽는다. 먼저 책을 펼치면 목차를 펼쳐 가장 알고 싶은 내용이 몇 장에 있는지 확인한 후 그 ‘결론’이 쓰여 있을 법한 곳으로 재빨리 이동한다. 그 페이지를 읽은 후 더 알고 싶은 곳, 더 깊게 파고들고 싶은 곳, 의문이 느껴지는 곳이 있으면 다시 목차를 확인한 후 그 페이지로 옮겨가서 읽는다.
이와 같이 몇 차례 순간이동을 반복하면 그 책에서 가장 알고 싶은 부분의 요지가 파악된다. 여기까지 5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앞서 말했듯이 최초의 5분은 기억에 잘 남기 때문에 ‘5분, 5분의 법칙’으로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잘 잊히지 않게 된다. 먼저 가슴을 뛰게 만드는 지적 호기심부터 채우자.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하기 때문에 이 역시 기억이 잘 남는다.
전체상을 대강 파악했을 즈음 첫 페이지로 돌아가 거기서부터 다시 읽어나간다. 미처 읽지 못하고 놓친 중요 내용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다. 이미 전체상을 파악했기에 글쓴이의 논지가 잘 보일 것이다. 이때는 처음부터 한 글자 한 구절씩 읽는 데 비해 읽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빨라진다.
어떤 목적지로 향할 때 사전에 지도로 조사해서 대강 어디쯤인지 목표점을 찍은 후 가면 헤매지 않고 빨리 도착할 수 있다. 그와 아울러 처음에 ‘목적지’를 대강 파악해두자. 그러면 몇 배 더 빨리 목표 페이지에 도달할 수 있다.
일반적인 책을 처음부터 차례로, 가령 2시간에 걸쳐 읽어나가며 자신이 가장 알고 싶은 부분에 도달하기까지 1시간 이상은 걸리게 된다. 24시간 중 독서 시간이 별로 안 되는 사람이나 읽는 속도가 더딘 사람은 가자 알고 싶은 곳에 도달하는 데만 하루가 더 걸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책을 읽는 동기부여도, 배움을 흡수하는 힘도 저하된다.
물론 처음부터 한 글자 한 구절씩 차분히 읽어나가지 않으면 내용을 이해하는 데 애먹는 책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라도 목파를 보고 ‘여기 읽고 싶다!’, ‘이 부분이 재미있겠다!’라는 호기심이 자극될 때는 바로 그 페이지로 이동해도 좋다. 혹은 이 책에서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명확한 경우에는 ‘순간이동 독서법’을 적극 추천하다.
진짜 뻔한 이야기 아닌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내용이다. 근데 나는 이게 잘 안 된다. 독서에서는 된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했고 워낙 많이 읽고 평상시에도 앉은 자리에서 2~3권 보는 것쯤은 어렵지 않을 정도로 책 읽는 게 재미있으니까. 근데 문제는 ‘공부’다. 지금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있는데 그게 내 수준에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1000페이지가 넘는 전공서를 보고 있으면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범위도 넓고 또 세세한 부분까지 꼼꼼히 알아야 패스할 수 있는 시험이다.
물론 이런 시험에도 교수들이 출제를 선호하는 부분과 어쩌다 나오는 부분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럼 자주 출제되는 부분을 최우선적으로 봐야 정상 아닌가? 그렇게 양도 많고 어려운 내용이라면 ‘시험 합격’이라는 목적에 부합하게 가장 중요한 부분부터 봐야 정상이다. 그런데 나는 처음부터 다 본다. 1000 페이지짜리를. 그렇게 한 권 다 보고, 다음 과목 책 1000페이지 다 보고... 그렇게 몇 개월 지나 다시 첫 과목으로 돌아와 페이지를 넘기면 ‘이건 뭐지?’ 싶다. 기억이 안 나는 거다. 가뜩이나 어려운 내용인데 한번 본 뒤 한참 있다가 다시 보는 거니 기억이 안 날 수밖에. 그럼 앉아서 또 처음부터 끝까지 1000페이지를 다 읽는다, 그러고 또 다른 과목 너댓 권을 섭렵한 뒤 다시 돌아온다. 시간상으로는 몇 주 혹은 몇달이 지나 있다. 그럼 이미 두 번 봤던 책임에도 또 새롭다. 완전 새로운 내용이다. 그 짓을 한 두 번 하다 보면 시험날이 다가온다. 시험장에 가면? 당연히 시험지도 새롭다. 당연히 떨어진다. 다음 해에도 또 같은 패턴 반복...
이 짓을 하다보니 정말... 지금까지 그 시험 말고는 다 잘 살아왔는데도 그런 패턴을 하도 반복하다 보니 내 자신이 모자라게 느껴지더라. 머리로는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아는데 꼼꼼히, 처음부터 보는 게 뿌리깊은 습관이 되다보니 그걸 다른 방법으로 전환시킬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가 “대체 그런 규칙을 누가 정한 건가요?” 하는 묻는 순간 ‘아! 이게 아니지!’하고 탁 하고 뭔가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 동안 머리로만, 글로만 알고 있던 내용을 몸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순간이었으리라.
그래서 이 책이 좋다. 모르겠다. 다른 타이밍에 이 책을 읽었다면 그저 그런 독서강요(?)서 내지는 흔한 자기 계발서라고 치부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가장 필요한 순간에 가장 필요한 부분에 깨달음을 줘서, 나는 이 책이 정말 고맙다. 책 마지막에 보면 작가의 ‘정체’가 등장한다. 정신과 의사다. 정신과 의사인 내가 왜 독서법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느냐... 환자들을 위해서란다. 지금 환자는 물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잠재적(?)인 환자까지. 환자들, 그리고 사람들에게 우울증이 무엇인지, 어떤 조기 증상이 나타나고, 어떻게 해야 치료가 되고, 무엇을 해야 우울한 감정에서 빨리 빠져나오는지 도움이 되는 책자를 나눠주는데 안 본다는 거다. 자기에게 지금 꼭 필요한 정보를 담고 있는데 이걸 보고 스스로 뭔가 하면 금방 나아질 수 있는데 평상시 독서하는 습관이 없고 책하고 워낙 거리를 두다보니 그 꼭 필요한 내용조차도 보지 않아서 계속 병원에 들락날락하고 상태가 심해지고 오랜 시간 고생을 한다는 거다. 그런 환자들을 위해서, 그리고 우울 전조 증상을 보이는 일반인들이 더 심해지기 전에 스스로 자가치료 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 수 있도록 책 읽는 법을 가르쳐 주고 책 읽는 습관을 들이도록 이런 책을 낸다는 것이다.
멋지지 않나?
의사로서 환자의 회복을 위해 또 다른 방법으로 뛰고 있는 거다.
이 사람의 이런 마음 가짐만으로도... 이 책은 일독할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