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이렇게 사랑스러워도 되는 건가요? ^^ 책을 받았을 때의 그 설렘이란 그리고 읽는 동안의 기쁨이란... 참으로 오랜만에 책을 통해 느껴보는 행복입니다. 이 얇디얇은 그림책이 분명 많은 분들에게 기적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킬 거란 믿음이 생기네요. 특히 곁에 있는 사람과 오랜 시간을 보내 서로에 대해 무덤덤해진 사람들에겐 더더욱 말이에요.

『당신의 이런 점이 좋아요』제목부터 참 사랑스럽죠? 누군가를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없다는 것이 저의 평소 생각이었는데 누군가 그러더군요. 그 생각을 달리 바라보면 누군가를 싫어하는 데도 이유가 필요없다는 것이 된다, 라고... 그건 상대에게는 두 사람의 관계에 있어 불안의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더군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그 이후로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오면 먼저 그 사람의 좋은 점을 찾아보려고 했어요. 의도적으로 말이죠. 처음에는 쉽지 않았어요. 사람의 느낌을 중요시하던 터라 딱 꼬집어 좋아하는 점을 찾기가 저에게 좀 힘든 일이더군요.

처음에는 이런 생각을 자주했어요. 혹시 좋은 점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이 사람은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너무 평범한 사람이 아닐까. 평생 좋은 점이 보이지 않으면 어떡하지... 그때의 저는 모든 원인을 상대방에게서 찾고 있었어요. 내가 원하는 답이 나오지 않는 건 나의 잘못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죠. 그러니 좋은 점이 쉽게 보일 리가 없었지요.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한 사람에게 익숙해지니 편안함이 두 사람을 자연스레 엮어주더군요. 그런데 그 편안함이 지나치니 긴장감이 사라진 지루함과도 일맥상통하더군요. 미치겠더군요. 책도 드라마도 보는 모든 것에서는 시작하는 연인들의 설렘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는데 나를 둘러싸고 있는 공기는 설렘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탁함 그 자체였으니까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곁에 있는 사람과 참 많이 싸웠어요. 싸우고 또 싸우고 헤어지고 만났다 또 헤어지고... 나중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더군요. 그리고는 마음을 닫아버렸던 것 같아요. 평소와는 다름없을지 모르지만 마음은 거의 메말랐다는 걸 저는 알 수 있었어요. 내 마음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이 그림책을 보는 동안 마음이 좀 아니 많이 꿈틀거리더군요. 나도 이 두 사람처럼 연애하던 시절이 있었는데... 함께 걷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고 그 어떤 것도 겁나지 않던 때가 있었는데... 웃고 또 웃으며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던 적이 있었는데...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풍성해지던 그런 때가 있었는데... 그런데 무엇이 이렇게 나를 메마르게 한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게 되더군요. 답은 생각보다 빨리 떠오르더군요. 어느 한쪽 때문이 아닌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두 사람은 그 책임을 서로 상대방에게 떠넘기고 싶어 했다는 것을... 아니 문제 자체를 무시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말이죠.

책에서는 <서로 지켜주어야 할 암묵적 규칙들>이란 글이 나와요. 상대의 비밀을 알려고 하지 말 것. 상대방에게 짐이 될 정도로 기대지는 말 것. 새로운 비밀을 만들지 말 것. 해서는 안 되는 말은 하지 말 것. 이 4가지 규칙을 모두 깨버린 연인들에게 희망이란 것이 있을까 싶어 마음이 무거워지더군요. 이런 특별한 규칙들은 한 번 깨어지면 내내 마음의 족쇄가 되어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니까요. 

몇 번의 고비와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이제 일상이 되어버린 권태기에 무덤덤해진 연인들 그리고 부부들에게 이 책은 특별한 처방이 될듯해요. 당신의 좋은 점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만이 찾아낼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새삼 깨우쳐주는 책이 바로 『당신의 이런 점이 좋아요』란 생각이 드네요. 저의 닫힌 마음이 아주 조금 열린 것 같아요. 누군가의 좋은 점을 찾다보면 나의 마음도 좋아진다는 걸 알게 되었네요. 이 작고 앙증맞은 책을 통해서 말이죠. ^^

   

 

 

사실『베니스의 상인』하면, 아! ‘베니스의 상인’, ‘신체 포기 각서의 origin’ 끝.

이렇게만 한 마디 말로 가리키고 말아도 그만이긴 하다. 애당초 ‘신체 포기 각서’라는 말 자체가 성립될 수 없는 말들을 억지로 붙여 만든 것이니 말이다. ‘신체 포기’를 채무 변제 조건으로 내세우는 비상식적이고 반사회적인 내용이 법률 안에서 ‘각서’로 받아들여져 효력을 갖게 된다면 그 법이 어디 법이겠음; 그런데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현실은 예나 지금이나;  국가도 개입하지 않는 ‘사적자치의 원칙’ 안에서 ‘각서’는 효력을 갖는 것이겠지만 저토록 말도 되지 않는 내용이 버젓이 통용되는 데에는 ‘사적자치’가 힘의 원칙 아래 있다는 것이고 국가/법률은 수수방관하고 앉았단 얘기. 바꿔 말하면 국가고 법률이고 사적 자치고 나발이고 간에 죄다 power앞 도열중이라는 것. 여기서 잠깐! ‘국가’라는 ‘제도’는 본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서의 구약(舊約)-말하자면 적자생존(適者生存) 같은-을 개선하여 다함께 잘 살아보자는 대전제를 중심으로 한 신약(新約)에 함께 동의한다는 데 의거하여 탄생된 것 아니었어? 그런데 그렇게 성립된 국가가 법률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퇴보하는 움직임을 보고도 수수방관한다? 이건 정말 웃기는 일이지. 조금 편하자고 의사결정권을 대리할 놈들에게 넘겼더니 이것들이 저희들 입맛에 맞게 국가, 법률을 재구성하여서는 그 국가니 법률이니 하는 걸 핑계로 제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타인을 부당하게 죽음으로 내몬다? 이건 미친 거지; 이 미친놈의 현실이란 존재감; ‘베니스의 상인’ 시절이나 지금이나 세대에 세대를 걸쳐 잇는 가운데서도 더욱 뚜렷하게만 드러나니 더욱 환장할 노릇;

이치에 닿는 말이라고는 두 말의 겨 속에 감추어진 두 알의 밀 정도이지. 이 두 알을 찾아내려면 온종일 찾아야 하는데 그것도 찾고 보면 찾을 가치조차 없던 것들이지.(PP14,15 무의미한 말을 무한정으로 지껄이는 ‘그라쉬아노’를 두고 ‘바싸니오’가 이른 말)

정의타령 대한민국이니 여기서 정의 운운 나도 한번 하고 가세~ 2알도 필요 없네~ 1알이면 만족滿足! 발足!! 발로 뛰라고 부지런히 뛰라고~~ 하도 거지같아 못해먹겠다고 뿌리치고 나선 정의를 발로 뛰어가 잡아다 이 땅에 뿌리내리게 하라고~~~, 이국의 먼 땅에서 무려 4백 몇 십 년 전에 셰익스피어라는 양반이 띄운 편지를 지금 받아보니 감개무량ㅡㅜ

‘베니스의 상인’은 옮긴이의 설명처럼 당시 동네를 떠돌던 얘기를 셰익스피어가 집성한 것. 이익에 미쳐 날뛰는 일부 계급의 횡포에 흉흉해진 민심을 반영한 이야기를 교훈삼아 함께 잘 살아보자 뭐 이런 것도 동기가 되었겠지. 아무튼 그 덕(? 사실 셰익스피어 얘기가 미치는 영향을 생각하면 미약하긴 해;)에 지금 우리나라 동네 곳곳서 미쳐 날뛰는 新자유주의 바이러스의 정체를 가늠할 수 있게 된 것이지. 자, 그러니 시답잖은 소리는 다 물러가시고(아 뭔 헛소리들이 이렇게 많아, 짱나게시리~~;) 총선 임박에 대선도 머지않았는데 어떻게 우리 국가의 재구성을 함 도모해보아야 하지 않을까, 응?! 진심!!

 

 

백발에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 같은 초라한 모습의 노인. 책의 첫 사진이다. 그리고 함께 실린 글의 제목이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제목의 글은 이렇게 끝을 맺고 있다. ‘인간은 부유해지거나 위대해질 의무는 없다. 현명해질 의무도 없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성실한 의무가 있다.’ 마지막 문장을 읽고 왼쪽에 실린 사진을 다시 본다. 한평생 성실하게 살아오셨을 것 같은 한 사람의 노년의 모습이 왜 저래야만 하는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성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알만큼 나도 나이가 들었다. 그렇게 씁쓸한 세상 이치를 하나씩 알아가며 늙어가고 있는 중이다.

사진작가 최민식의 포토 에세이에는 나보다 한참을 먼저 산 사람의 가벼운 듯하면서도 따뜻한 조언이 실려 있다. 그저 그렇게 읽고 넘겨버릴 수도 있겠지만 또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만큼 정석인 조언이 또 없다. 또 어떤 면에서도 이미 그런 삶을 살아가고 있기도 하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나 또한 그만큼 나이들었을 때 내가 살아온 방식을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책에 실린 100여 점의 사진은 동물, 식물, 풍경, 사물, 그림 등 다양한 것들을 주제로 하고 있는데 단연 돋보이는 주제는 바로 사람이다. 아기, 아이, 노인, 남자, 여자, 동양인, 외국인 등 다양한 군상의 사람 사진이 실려 있다. 그런데 사진 속 많은 사람들이 내 눈에는 슬프게만 보인다. 울고 있는 아이가 슬프고 주름진 얼굴의 노인이 슬프다. 최민식의 사진철학을 알고 나서도 나는 그들을 아름답게 볼 수 없다. 아직 내가 한참 모자란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내 사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은 현실의 생활형태 속에, 즉 인간 생활 속에 존재한다. 그렇기에 나는 늘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났고, 그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 속에 직접 뛰어 들어가 그들과 함께 생활하고 느끼면서 그들의 어려움을 알리며, 그 안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발견해내어 그것을 표출하는데 주력해 왔다.’ <진실만 사진이다> 中

최민식의 다양한 에세이 중 좀 의외였던 것은 섹스에 관한 글이었다. 여든이 넘은 분이 섹스에 대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니 싶어 조금 놀랍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하다. 예술인이라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나이 들면 섹스와는 멀어지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던 내게 섹스에 관한 그의 이야기는 좀 특별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조그마한 사각 프레임으로 담아내기에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다양하며 심오하다. 하지만 그런 세상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바로 인간을 담아내는 것이 아닐까 싶다. 온갖 일이 일어나는 세상을 빈 손으로 와서 온 몸으로 겪어내다 다시 빈 손으로 가는 인간이 바로 이 세상 그 자체일 테니... 사람이 무엇으로 가는지 잘은 모르겠지만 이 세상을 등지지 않고 가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위대한 존재라는 걸... 아주 조금은 알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