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싼마오 여사의 유쾌한 글을 읽었다.『사하라 이야기』,『흐느끼는 낙타』에 이어 『허수아비 일기』까지. 처음엔 단지 필명이 재미있어 아무 기대없이 책을 잡았건만 그녀의 글을 읽으면 읽을수록 빠져들더란 말이다. 누군가의 일기를 훔쳐보듯 하지만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가슴 찡~~한 감동을 받게 되는 글을 쓰는 사람이 바로 싼마오이다. 이번 책에는 전작에서는 볼 수 없었던 싼마오의 유년시절 이야기와 그녀가 세계인이자 유랑인이 된 과정이 드러나 있다. 그리고 7살 연하 남편인 호세와의 카나리아 제도에서의 신혼생활에 관한 이야기도 함께...

중국의 교육방식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누구나 싼마오처럼 훌쩍 세계를 향해 떠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다행히 싼마오는 외국인과 어울렸던 할아버지들이 계셨고 그녀의 외국생활을 뒷받침해줄 재력 있는 집안의 자식이었기에 서양의 여러 나라에서 공부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고 50개국이 넘는 나라들을 여행할 수 있었다. 이 점에서는 사실 불공평한 세상을 탓하고 싶은 심정이지만 그렇다고 싼마오와 같은 배경을 가진 가족을 두었더라도 싼마오처럼 살 수 있는 사람 역시 그리 많지 않을 거란 걸 알기에 타고난 복을 받은 싼마오를 비아냥거리고 싶진 않다.   

책의 주된 내용인 싼마오의 신혼 일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시댁 식구들과의 관계 특히 시어머니와의 관계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신혼집이 있는 카나리아 제도에서의 소소한 일상에 대한 것이다. 싼마오 자신은 신혼 때의 자신을 허수아비라고 말한다. 결혼을 반대했던 시어머니에게 드는 어쩔 수 없는 미안함과 뭔지 모를 경쟁심을 갖고 있었던 싼마오. 시댁으로 가서도 일만 하고 시댁식구가 집에 놀러왔을 때도 일만 해야 했던 자신을 잘 다독여가며 그렇게 시댁사람들과 가까워져 가려 노력하는 모습. 사실 나 같으면 싼마오처럼은 행동하지 못했을 텐데... 아마도 그만큼 호세에 대한 사랑이 깊기에 가능한 인내가 아닌가 싶다. 호세같은 철없는 남편을 구슬려가며 살아가는 싼마오의 지혜로움. 이런 지혜는 타고난 것일까. 배워 익히는 것일까. 아무튼 싼마오의 결혼 생활 이야기는 핵심은 참으라, 그러면 복이 있나니... ㅋㅋ

싼마오의 카나리아에서의 신혼 생활을 그야말로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신혼이 아닐까 싶다. 창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고 따뜻하고 조용한 그림같은 동네에서의 신혼 생활이라니... 사람 좋아하는 싼마오는 호세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사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이웃들과 친하게 지낸다. 일자리에서 퇴임한 후 조용한 노후를 보내기 위해 따뜻한 곳으로 찾아든 여러 나라의 노인들과 이웃사촌 하면서 싼마오는 쓸모없는 인간들이라고 생각했던 그들의 삶의 방식에 제대로 감동먹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호세의 친구 미카가 결혼과 동시에 그저 한 가정의 가장이자 한 여자의 남편으로 전락해가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워하기도 한다. 입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병든 부모를 지극히 돌보는 열두살짜리 소년의 효심에 부끄러워지는가 하면 지대로 장사꾼인 할망구를 이길 도리가 없어 할머니만 나타나면 숨을 수밖에 없는 꼬리 내린 모습도 보여준다. 복권에 당첨되길 바라며 구체적인 삶을 그려보다 낙담해 끙끙 앓는가 하면 호세를 버리고 중국으로 가버린 후 호세의 꾐에 빠져 다시 남편 품으로 돌아오는 다소 얼빵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이런 싼마오의 매력에 매료되지 않을 사람이 있겠는가.

싼마오의 글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내가 결혼을 한다면 덜도 말고 더도 말고 싼마오처럼 살고 싶다. 때로는 철없게 하지만 때로는 지극히 현실적으로... 그렇게 삶을 진지한 듯 가볍게 살아내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서... 이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가. 왜왜왜 나는 싼마오가 될 수 없는가 말이다. T.T 호세같이 7살 연하 남자는 바라지도 않는다. 카나리아 제도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그저 지금의 삶에서 현실에 굳게 발딛은 채 마음만은 저 높은 하늘을 향한 채 살아가고 싶은데...

싼마오처럼 살고 싶다면 싼마오를 닮아보면 되는 일인데... 좋은 가문과 유학생활 이건 이미 어쩔 수 없는 것이니 패스하고... 그렇다면 나는 싼마오의 어디를 닮아야 되는 걸까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긍정적인 마음!! 바로 이거다. 35년을 부정적으로 살아온 내게 참으로 쉽지 않은 문제이지만 여생을 생각하면 나는 나를 바꿀 필요가 있다. 아니 바꾸어야 한다. 싼마오처럼...

 

 

대본집은 처음 읽어 본다. 16부작 드라마면 대본집도 꽤나 두꺼울 줄 알았는데 600쪽이 조금 넘는 분량이라니... 마음잡고 읽으니 몇 시간이면 다 읽는 분량으로 16시간짜리 드라마가 만들어진다는 것이 그리고 실제로는 그 16시간짜리 드라마가 만들어지기 위해 몇 달이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 잘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한때 드라마에 목매어 살던 때 -물론 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는 많은 드라마들 중에서도 특별했던 걸로 기억한다. 신데렐라식 드라마들 속에서 유독 눈에 띄던 노희경표 드라마. 솔직히 말하면 현실을 벗어나 단 한 시간만이라도 멋진 주인공이 되고 싶은 고단한 사람들에게 노희경표 드라마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왜냐면 노작가의 드라마는 현실과 무척 닮았기 때문에... 보고 있음 자꾸만 가슴이 아리고 답답해지기 때문에...

2006년도 봄에 방영했던 드라마 <굿바이 솔로> 기억에 남는 드라마다. 막 삼십대에 접어들어 굉장히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을 때다. 뭐하나 제대로 이룬 것도 없이 이십대를 보내버리고 허탈해하며 나 자신을 괴롭히던 시절로 기억한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보며 삼십대는 저런 결말조차 가질 수 없는 나이라고 자조 섞인 혼잣말도 했던 것 같다. 사실 이 드라마를 볼 때만 해도 공감 가는 아니 공감하고 싶은 인물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그리 오래 기억에 남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5년이란 시간이 흘러 활자라는 매체로 다시 보니 이건 뭐 모든 등장인물들에 공감이 100% 그 이상으로 가더란 말이다. 예전에 봤던 드라마와 겹쳐지면서...

<굿바이 솔로>에는 백마 탄 왕자 없다. 가난하고 어렵게 살다가 왕자 만나 하루아침에 공주가 된 신데렐라도 없다. 그저 각자의 아픔을 마음에 담고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범인들만이 있을 뿐이다. 사실 어릴 땐 왕자와 신데렐라가 나오는 드라마가 좋았다. 나도 언젠가는 왕자를 만날 것 같고 그래서 공주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으니까. 그런데 나이 들고 보니 아니 철이 들고 보니 왕자는 아무나 만나는 게 아니고 공주 또한 누구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현실을 몸소 겪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현실적인 드라마에 더 마음이 가는 게 사실이다. 그리고 노희경표 드라마가 바로 그런 드라마이다.

<굿바이 솔로>에 나오는 많은 등장인물들 중에서도 가장 공감이 가고 안쓰러웠던 건 바로 최미리(김민희 분)다. 청소부 하는 아버지와 이불가게 하는 엄마 그리고 귀여운 동생과 등질 것을 각오하고 호철이란 깡패 애인을 선택했을 때의 그 심정이란 어땠을까. 나 같으면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선택이다. 날나리와 모범생을 떠나 자신의 인생을 허비할 수도 있는 선택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선택을 하고 그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만큼 사랑하고 표현하고 웃고 울고 싸우고 헤어지고 화해하고... 그리고 결국에는 이해하고 서로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이런 게 정말 사랑인걸까. 이렇게 힘든 과정을 겪어야만 사랑인걸까. 편하게 사랑하는 법은 없을까. 힘들지 않게 그저 좋게만 하는 사랑은 없는 걸까. 어차피 영원하지 않을 사랑이라면 좀 덜 힘들게 좀 덜 아프게 하면 안 되는 걸까. 요즘의 나는 자꾸 이런 생각만 든다. 남들 다 하는 그런 사랑과 결혼이 왜 나는 점점 어렵고 힘들게만 느껴지는지...

우리는 남에게보다 늘 자신에게 더 가혹하다. 당연히 힘든 일인데 자신을 바보 같다고 미쳤다고 미워하고. 남들도 욕한 나를 내가 한 번 더 욕하고, 그것도 모자라 누군가는 가슴에, 누군가는 몸에 문신을 새기기도 한다.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면서 우리가 얻으려 하는 건 대체 뭘까? 사랑? 이해? 아니면 죄책감에서 벗어나는 것?

사람들은 늘 영원한 사랑에 변치 않을 사랑에 목을 매며 산다. 계절이 변하는 게 당연하듯, 우리의 마음이 사랑에서 미움으로 미움에서 증오로 다시 그리움으로 변하는 것 역시 당연한데, 우린 왜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는 걸까?

노희경표 드라마엔 이런 문학적인 표현이 많다. 그래서 더욱 그의 드라마에 끌리는 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실제로 독자와의 만남에서 노희경 작가를 만난 적이 있는데 왜소한 몸피와는 다르게 한 마디 한 마디가 무게감 있게 다가왔었다. 그 자신이 범상치 않은 과거를 겪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드라마엔 진정성이 느껴진다. 아파본 사람만이 누군가의 상처를 제대로 어루만지고 위로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람이 노희경이란 작가다.

많은 대사 중에 영숙의 이 한 마디가 잊히지 않는다. “흔들렸다 바로 섰다, 흔들렸다 바로 섰다 하는 게 인생사에요.” 오뚝이처럼 이쪽으로 기울어졌다 다시 한 번 일어서고 일어섰다 싶은 순간에 또다시 저쪽으로 기우는 게 인생이라는 걸 알긴 알겠는데 그게 내 인생이라 생각하면 답답한 마음은 어쩔 수 없다. 그러고 보면 아직 나는 한참 모자란 사람이다. 그게 지금 이 순간 내가 깨달은 사실이고 이런 나도 변할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낸다. 혹시 모르지 않나. 나도 수희와 민호처럼 그리고 호철과 미리처럼 그런 해피한 엔딩을 인생의 막판에 맞게 될지도...   

 

 

마음 상태를 글로든 그림으로든 아니면 음악으로든 춤으로든 그 무엇으로든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복받은 사람이다. 자신을 억누르던 것을 어떤 형태로든 표출해낸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속의 앙금이 줄었다는 것일 테니. 여러 분야 중에서도 특히 제작자의 과거 혹은 무의식을 많이 의식하게 되는 분야가 바로 미술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가 다른 어떤 예술분야보다 감상이나 이해가 쉽지 않은 분야가 미술 특히 그림이다. 수많은 명화들이 일상 속에 넘쳐나는 데도 그 명화가 우리에게 걸고 있는 말이 무엇인지 듣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이와 같은 책을 자꾸만 찾게 되는 것 같다.

이 책은 고갱, 클림트, 샤갈, 로트렉, 뭉크, 고흐, 달리, 마그리트 8명 화가의 개인적 삶과 그리고 그들의 그림을 통해 심리학이란 학문과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 미술치료를 전공한 작가의 글답게 사실 조금 딱딱한 편이다. 그렇다고 이해하기 어려운 학구적인 글은 아니다. 다만 제목처럼 따뜻한 마음여행을 하기에는 조금 건조하다고나 할까. 심리학적 측면에서 접근하려다보니 화가의 삶과 그림을 인위적으로 꿰맞춘 듯한 느낌이 좀 강하게 드는 정도.

책에서 언급한 8명의 화가와 그들의 그림은 무척 유명해서 새삼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작가는 화가들의 삶 특히 과거의 경험이 그림에 어떻게 반영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면서 감상자들이 어디에 포인트를 두고 그림을 감상해야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화가의 진짜 삶을 알고 그림을 감상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채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감상하는 것과는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그만큼 작가는 화가의 개인적 경험이 특히나 유년시절에 겪은 정신적 충격이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되었나에 초점을 맞추어 명화를 소개하고 있다.

8명의 화가 중에서도 지금 내게 조금의 위로라도 되어 준 사람은 바로 로트렉이다. 프랑스 명문귀족의 서자로 태어났으나 유전적인 뼈질환과 불의의 사고로 인해 하반신이 더 이상 자라지 않아 평생 불구로 살아야 했던 남자. 그런 자신의 결함으로 인해 창녀와 술 그리고 그림에 빠져 들었던 화가. 8명의 화가들 중 그 불행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을 삶에도 불구하고 ‘로트렉은 타인의 모습뿐 아니라 자신의 모습도 희극화해서 그리기를 꺼리지 않았다. 그는 고통이나 비애를 진지하게 드러내는 사람이 아니었으며, 그것을 오히려 스스로 선수를 쳐서 희극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실제로도 일상생활에서의 로트렉은 더없이 밝고 천진난만할 정도로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아픔을 웃어넘길 줄 아는 여유와 타인의 아픔을 보듬을 줄 아는 인간애. 한없이 추락하고 있는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작가는 ‘그림을 통해 마음의 치유를 얻는 테라피 노하우’란 코너를 통해 실제 미술치료에서 활용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실상 가장 궁금했던 이 부분이 그닥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 조금 아쉽다. 더불어 자세하게 그림을 소개하고 있는 글과는 다르게 그림 이미지가 너무 작게 삽입되어 있어 작가가 설명하고 있는 것을 그림에서 확인하기 어려웠다는 것도 조금의 아쉬움으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