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다짐했던 몇 가지 계획 중 유일하게 지금까지 지키고 있는 것이 바로 ‘연대기성경’ 읽기다. 성경에 표시된 하루치의 성경을 읽으며 하루를 시작한지 벌써 73일째 스스로도 대견하다 할 만하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글자로써만 성경을 읽고 있다는 것이다. 성경공부를 따로 한 적이 없다 보니 성경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무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지금까지 읽어온 창세기, 출애굽기, 신명기는 지금까지의 나로서는 사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아 읽으면서도 스스로 자꾸만 의문을 갖게 되어 과연 내가 지금 제대로 성경을 읽고 있는 걸까 싶다. 혼자 공부를 해볼까 싶다가도 혹시나 혼자 공부하다 성경을 그 본래 뜻과는 전혀 다르게 받아들이거나 하면 어쩌나 싶어 그것 또한 조심스럽다.

그래서 기회가 되는 대로 어렵지 않게 쓰인 종교 서적을 몇 권 읽게 되었고 이 책 또한 나의 무지한 종교지식을 조금이라도 늘리고자 하여 선택한 몇 권의 책 중 한 권이다. ‘신학(神學)’이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여 선뜻 공부할 엄두가 나지 않는데 이 책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것으로 만화라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나같은 초보 중에서도 생초보인 어른 신자에게도 신학의 대강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좁게는 하나님에 대한 교리를 연구하는 학문인, 넓게는 기독교 교리 전체를 다루는 학문인 신학은 성경을 기초로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신학을 이해하고 소유함으로 바른 신앙과 구원의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신학의 내용으로써 성서, 하나님, 천사, 인간, 죄, 기독관, 구원 그리고 성령에 관해 이해하기 쉬운 예를 들어가며 기본적으로 이해해야 할 것들을 언급하고 있다.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아이들 수준으로 쓰인 것이라 비록 까다로울 수 있는 개념도 비교적 쉽게 이해한 것 같다.

신학의 구체적인 내용들 중 내가 늘 궁금했던 것이 바로 ‘작정(decree)’이다. 사실 나는 이 개념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얄팍한 지식으로 어느 부분에 있어 의문을 계속해서 품어오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내가 의문을 가졌던 부분이 바로 작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책에 따르면 지극히 지혜롭고 거룩한 뜻에 목적하시는 바를 정하신 것이 하나님의 작정이라고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작정은 모든 것을 아시고 지극히 선하신 하나님의 성품을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며 작정의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며 하나님의 작정을 이루어가심에 있어서는 정하신 바를 반드시 생기게 하는 유효적 작정이 있는가 하면 단지 허용하시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러니 인간은 하나님의 허용하심에 따라 말하고 행동하지만 신자들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살아가도록 힘써야 한다는 것이다. 이미 모든 것이 운명처럼 하나님의 뜻에 따라 정해진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던 나는 사실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또는 세계적으로든 좋지 않은 사건이 생겼을 때 왜 하나님은 이런 일을 우리에게 겪게 만드셔야 했을까 하는 원망하는 마음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작정의 개념을 알고 나니 이런 좋지 않은 사건은 결국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용한 것의 결과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비교적 쉽게 이해는 했다 하더라도 여전히 나에게 신학은 어렵고 멀게만 느껴지는 학문이다. 제대로 공부하자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공부를 열심히 하고 신학에 대한 지식을 늘리는 것이 믿음과 비례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저 가장 중요한 핵심만을 알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믿고 생활하는 것이 더 바람직한 종교인의 자세가 아닌가 싶다. 초보 신자가 언제가 되어야 성령 충만할 수 있을까 싶지만 책에 따르면 가장 큰 성령의 은사는 <사랑>이라고 한다. 고린도전서에 실린 사랑에 관한 구절을 읽으며 어쩌면 가장 큰 ‘성령 충만’은 나하기에 달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퇴계, 인간의 도리를 말하다』와『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과 함께 거의 동시에 읽어나간 책. 흥미로운 경험이다. 세권의 책은 모두 제각각 다른 주제를 두고 엮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각기 흐르는 말길이 서로 일맥상통(一脈相通)하는 듯한 느낌이다. 말과 글로 엮은 길(道) 위에 선 불완전한 人間에 불과하지만 사람(聖人은 차라리 成人, 사람을 이루는 사람에 이르는 과정에 최종 목적지와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이 處해 있고 居해야할 理에 이르고자 스스로 등불을 밝혀 행(行)하였던 ‘퇴계’야말로 ‘대장경’ 속의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한 사례라 일러도 좋지 않을까.

한편 ‘대장경, 천년의 지혜를 담은 그릇’이, 여래장(如來藏)이 아난과 가섭을 더해 삼장(三藏)으로 다시 오백 아라한의 성중(聖衆)의 기억과 결집되는 과정에서 몸이라는 법기(法器) 속에 머물러 있던 금구옥설(金口玉說)이 대중 각자의 근기에 따라 열람 가능하도록 말과 글이라는 그릇에 옮겨진(藏) 것이라면,『플루타르코스의 영웅 열전』을 바탕으로 한『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영웅 열전』은 영웅 이야기라는 그릇, 그러니까 어휘와 수사로 얽어진 藏 속에 의미를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인 우리가 제대로 꺼내어 볼 수 있도록(앞서의 표현대로라면 열람 가능하도록) 해장(解藏)한 것이라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해장의 작업이 없다면 사실 영웅 열전도 藏이기보다 그저 영웅들의 서사가 펼쳐지는 영웅들만의 場으로 국한될 우려가 있는 것이다.

이미 사라지고 없는 영웅들일지라도 解藏, 그러니까 적절히 풀어내기만 한다면 이 場은 오늘 우리에게 살아 움직이는 현장으로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신화의 힘, 경전의 힘 곧 이야기의 힘 아닐지. 엉터리 역본이 오도를 조장하고 그것이 다시 오해를 거듭 낳는 속에서 故이윤기 선생의 작업이야말로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의 또 다른 사례 아닐까? 선생이 세세하게 일러주는 내용을 굳이 옮기진 않겠다. 그럴 필요도 없다. 다만 선생 나름의 증일(增一)의 法으로 총지(摠持)하는 그 무엇, 등불이 밝힌 말길 위에서 전에는 어렴풋하게만 느껴지던 그 무엇이 더욱 뚜렷하고 분명하게 다가옴을 느낀다.

 

 

그릇(器) 자체만으로는 무용(無用)하여서 무익(無益)할 수밖에 없다. 그것의 쓸모는 그 안에 무언가가 담길 때에야 비로소 드러나는 것이다. 그릇의 쓸모를 규정짓는 그 무언가는 인간의 감각이 미치는 영역 안쪽에 존재한다. 그 무언가는 자신의 존재조건으로서 굳이 그릇의 수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무슨 말인고 하면, 그릇에 담기지 않아도 그 무언가로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것은 당연하다. 그릇이 없어도 그 무언가는 언제나 항상 그 무언가로 존재한다는 것을 우리는 오감으로 인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 무언가를 담기 위한 한 가지 쓰임새 안에서 그릇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

 

이 다양성은 인지의 영역 안에서 다시 두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즉 인지가 가능한 형태로서의 실체를 갖는 그릇(접시를 비롯한 실제생활의 그것)과 비록 그릇 자체는 오감으로 인지되는 건 아니지만 실재하는 실체로서의 그 무언가를 가리켜 그 대상과 그릇에 담긴 생각(이 ‘그릇에 담긴 생각’ 자체가 하나의 그릇이기도 하다) 사이의 일치를 경험하는 걸 가능케 하는 말/글로써의 그것 말이다. 

 

이는 흥미로운 경험이다. 말과 글이라는 그릇은 실체로서의 그 무언가를 직접 담지 않는다. 담을 수도 없다. 그것은 단지 거기 그 무언가가 있음을, 존재한다는 걸 드러낼 뿐이다. 있다고 하는 사실이 담길 뿐이지 존재 그 자체가 담기는 건 아니다. 말과 글로 담는다는 것, 표현하는 행위는 그 무언가가 거기 존재하는 것으로 여긴다는 걸 의미한다. 언표 행위는 말 그대로 가리킬 뿐이다. 단, 이렇게 가리켜지는 실체를 오감으로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의 말과 글이 그릇으로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가리켜진 실체로서의 그 무언가를 혼동하는 건 극히 드물게 일어나는 것이다(실제 대화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소한 혼선을 제외하면 거의 없다고 보아도 무방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 무언가가 인간의 감각, 오감의 영역 바깥에 존재하는 경우라면 어떨까. 그 무언가가 분명 거기 존재한다하더라도 그것을 담는 그릇, 말과 글에 따라 그 존재는 전혀 다르게 변형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각각의 그릇에 담긴 그 무언가와 일치시킬만한 실체를 모두 함께 감각/경험할 수는 없으므로. 오히려 그 무언가는 제각각의 감각(비단 오감에 국한한 것이 아닌)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경험이기도 한 것이다. 저마다의 경험에 의지한 (것이라 여겨지는) 데에 바탕을 두니 분명 하나를 가리키는 가르침이면서도 서로 달라 마침내는 처음 하나였던 진리(道 혹은 法 심지어 神 무어라 이르든)가 마치 제각각 존재하는 것처럼 오인되고 마는 것이다. 그 무언가를 담기 위한 한 가지 쓰임새 안에서 그릇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 경우에서만큼은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거슬러 올라가보자. 진리(眞理), 도(道) 또는 법(法) 무어라 이르든 붙여진 그 이름이 가리키려는 바를 담아내기 위한 그릇(器)의 역사는 인간이라는 種의 연원만큼이나 오래고 깊다. 오감의 영역 바깥에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그 무언가가 거기 존재하노라고 말과 글로 가리키고 밝혀 전하고자 한 최초의 인간이 출현했던 당시로. 그러니까 그 무언가를 실제로 경험하고 온 이에게서 비롯된 그릇의 기원부터 차분하게 살펴보자는 것이다.

말씀들은 부처님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이다. 부처님 안에 담겨 있고 감춰져 있던 것들이다. 그것 또한 그릇이고 창고이고 장(藏)이다. 부처님을 부르는 말 중에 여래(如來)라는 말이 있다. 깨달음을 성취한 채로 중생들에게 잘 오셨다는 뜻이다. 그래서 그것을 ‘여래의 법장(法藏)’이라고 부른다. 여래가 가진 보물창고, 가르침의 창고이다. 부처님이 하는 말씀들이 법이고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그런 가르침은 부처님의 말의 창고, 법의 그릇으로부터 나온다. 그 안에 담겨 있는 법의 총체, 그동안 하고 다녔던 말씀들을 통칭하는 표현이다. 가르침을 편다는 것은 여래의 장, 여래의 창고를 열어젖히는 일이다. 창고를 열고 그 내용을 남김없이, 감춤없이 제자들에게 건네주는 일이다.(P39)

여래(如來)에서 증일(增一)의 법(法)을 방편으로 여래장(如來藏)을 총지(摠持)하던 아난이란 법기(法器)를 중심으로 한 삼장(三藏)의 결집, 여기서 다시 가섭을 비롯한 승단의 중심이 아난의 법기를 깨뜨리며 여래의 은장묘어(隱藏妙語)가 집단으로 옮겨지고.. 따지고 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여래의 법장, 45년간 설했던 숱한 얘기들, 그 얘기들은 대중에게 했던 얘기들이기 때문이다. 아난에게 해 준 얘기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난은 다만 그걸 담고 있었을 뿐이다. 그게 아난의 기능이고 아난의 역할이었다. 여래의 법장은 처음부터 대중을 향해 활짝 열려 있었다. 무소장적(無所藏積), 처음부터 갇혀있었던 말씀, 비밀은 하나도 없었다. 법장의 진짜 주인은 대중이었다는 말이다.(P58)

언어도단(言語道斷) 심행처멸(心行處滅), 언어의 길이 끊기고 마음이 움직이는 자리가 사라진 세계. 그래서 삼장이나 대장경을 ‘부처의 말’이요, 말의 흔적일 뿐이라는 사람들의 기억들은 바람직해 보인다. 하지만 그 또한 역시 그릇의 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진화한다.(P86)  그릇을 흘러넘치는 말들로 말길을 열려는 속에 오히려 眞理와 法이, 道가 끊기고 마는 것이다(P184, 통방지훈通方之訓의 원효의 등장이 무엇 때문이겠나). 말과 글로 엮인 藏은 眞理/道/法의 음각(陰刻)이다. 增一의 法에 마땅한 法器면 足하다. 한 法을 세우고자 한 字가 16萬쪽(P139 고려대장경 관련)으로 미끄러지는 동안 엮인 교망(敎網)은 한편 무너지기도 하였다. 그 그릇 안에 法이 담겨 있다할 수는 있으나 16萬쪽의 장경(藏經)이 곧 法은 아닌 것이다. 의천이 원효의 통방通方과 백가의 장소에 주목하는 까닭은 “스승은 각기 자신의 종습(宗習)만을 북돋우려 하고, 제자들은 또한 보고 들은 것만을 집착”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자기네 얘기만 하고 남의 얘기는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기들이 좋아하는 책만 읽고, 생각이 다르고 그래서 맘에 들지 않는 책은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이다. 의천은 이런 풍속을 경박한 말세의 풍속이라고 한탄했다.

말법에 무너지는 가르침의 그물 그 누가 알리

모두들 구구하게 명리만을 재촉하네.

등(燈)을 전해 도(道)를 돕는 일 참으로 한가한 일

위통(魏統)은 숲 같은데, 재목 없음을 부끄러워하네.(PP184,185)

그물도 그릇도 비유일 뿐이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런 비유가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다. 우리는 말이 지닌 그런 기능들을 가지고 생각하고 상상한다. 우리가 아는 목판대장경, 그 대장경 안에는 그런 생각과 상상이 담겨 있다. 누군가 그런 말, 그런 비유들을 가지고 뭔가를 생각했고 뭔가를 담았다.(P3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