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 이렇게 말씀해 주시는 부모님이 과연 몇 분이나 계실까. 자식들이 외로울 새라 그 마음 살피며 외로워할 새도 주고 싶지 않은 것이 부모의 마음일 테니... 하지만 이세상에 태어난 이상 외롭지 않을 수 있을까. 나 아닌 그 누군가와 관계를 맺는다는 것 자체가 외로움의 씨앗이니까. 그 씨앗이 내 나이와 비례하며 무럭무럭 자라 어느 순간 꽃망울 터지듯 터져버리고 한 번 터져버린 외로움은 내친김에 열매까지 맺으려 또 열심히 삶 곳곳에 널려있는 양분을 알게 모르게 공급받고... 지금까지 살아보니 늘 곁에는 외로움이란 존재가 맴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땐 옅게 또 어느 땐 짙게 향기를 내며...

‘지금 생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는 당신에게 주고 싶은 시 90편’이란 부제를 갖고 있는 『딸아, 외로울 때는 시를 읽으렴』는 신현림 시인이 엮은 시집이다. 국내외 시인들의 시는 물론 작가미상의 글까지... 진짜 엄마가 된 뒤 세상의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보내고 있을 딸들을 생각하며 직접 엮은 시집이란다. 참 멋진 엄마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떤 딸들에겐 한편의 시보다 한 뭉치의 돈이 더 간절할 수도 있다는 걸... 이 엄마는 아직 겪어보지 못한 것 같다. 그래도 혹시라도 내가 엄마가 될 수 있다면 나또한 신현림 시인처럼 시를 읽어주는 엄마가 되고 싶다.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퍼진다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란 시다. 실린 시들 중 이 시집의 제목과 가장 어울리는 시가 아닌가싶다. 타인의 아픔이, 슬픔이, 외로움이 나의 아픔과 슬픔과 외로움의 원인을 직접적으로 해결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의 그 누군가도 나처럼 힘들어하고 있다는 그 묘한 동질감이 생각지도 못했던 위로로 다가올 때가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시’는데 하물며 나같이 하찮은 인간이야 매일밤 눈물로 베개를 적신 듯 그게 뭐 그리 대수로운 일이겠는가. 그러니 ‘마음껏 슬퍼하라./ 진정 슬픈 일에서 벗어날 유일한 길이니./ 두려워 말고, 큰 소리로 울부짖고 눈물 흘려라./ 눈물이 그대를 약하게 만들지 않을 것이다.’(<마음껏 울어라> - 메리 캐서린 디바인)

엮은 시들 중에는 사랑과 이별에 관한 것들이 눈에 많이 띈다.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그 누구라도 한 번쯤은 반드시 겪어야 할 것이 사랑과 이별인 것을 알기에 딸들에게 인생의 선배로서 한 번쯤 조언을 해주고 싶은 엄마의 바람이 담긴 시들이다. 이 시들 중 지금 나에게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시는 미셸 쿠오스트의 <사랑의 아픔>이란 시다.

아들아, 사랑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란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 여겨도

때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단다.

그래서 모든 것이 헛것이 되고 끝나고 만단다.

사랑한다는 것은 누군가와 만나는 일이란다.

그것 때문에 내 일을 뒤로 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 사람을 향해 그 사람을 위해 가는 거란다.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이 통하는 일이며

마음이 통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향해 자신을 잊고

그 사람을 위해 자기를 완전히 낮춰야 한단다.

아들아 알겠느냐, 사랑은 아픔이다.

아담과 하와의 원조 이후 - 잘 듣거라,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를 위하여

내 몸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란다.

사랑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은 사랑이 아픔인 줄 모르기에 사랑을 쉽게 시작한다. 하지만 아픔 없는 사랑은 없고 그 아픔을 견뎌내어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지 아니면 아플 때마다 도려낼지는 결국 사랑을 시작한 자의 몫이다. 사랑이 아픔인 걸 알고 시작한 연인들은 좀 더 단단한 마음으로 사랑을 지키려 할 것이다. 하지만 끝내 지킬 수 없는 사랑도 있다는 것을 딸들은, 아들들은 알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나의 길을 갔고, 그녀는 그녀의 길을 갔네./ 지난날 우리의 사랑을 생각할 때면/ 나는 아직도 후회하네.’ (<그때 왜 나는 아무 말도 못했을까> - 구스타보 베케르)

마지막으로 가장 아름답지 않은 시절을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되어 주었던 짧은 시 한편을 옮겨 본다. 인생이 수레바퀴임을 매번 잊고 살기에 땅에 닿은 지금이 영원할 것 같아 불안해하고 슬퍼만하던 나의 마음을 위로 해주던 이 시가 그 누군가에게도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 자신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며

스스로 나를 지탱해 가고 있어요.

그러니, 오 총명한 사람이여

당신 또한 너무 두려워할 것 없어요.

행복하기만 한 사람, 늘 불행하기만 한 사람 뉘 있겠소.

삶이란 바퀴의 테마냥 위로 아래로

늘 바뀌는 거 아니오?

<바퀴처럼> - 칼리다사의「메가두타」중에서

 

 

음... 책을 보는 순간 표지도 정말 예쁘고 또 제목도 근사하고 게다가 ‘예술가의 travel note를 엿보다’라는 부제에도 살짝 구미가 당기는 것이 나름 기대를 많이 한 책이었다. 그런데 이거 웬걸 ‘1970’s 빈티지 유럽의 모든 것’이라는 거창한 소개글과는 다르게 책을 덮고 머릿속에 남는 건 다 비슷하게 생긴 호텔방 일러스트가 다 이다. 그래도 처음엔 나름 신선한 이야기로 몰입을 시키더니 중반을 넘어서며 어느 순간부터 계속해서 호텔방 스케치가 반복되더니 마무리 역시 호놀룰루에 있는 한 호텔방 스케치와 글이다. 물론 중간 중간 성에 대한 짤막한 글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이 책만의 특징이 있다면 총천연색을 뽐내는 생생한 사진 대신 작가가 직접 스케치한 그림이 실려 있다는 것. 이거 하나는 감탄할 만하다. 어찌나 정교하게 잘 그렸는지 참으로 부러운 재주가 아닐 수 없다. 특히나 성에 대한 스케치는 재주만이 아닌 정성까지 듬뿍 들어간 그런 그림이다. 1970년대의 유럽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 당시의 유행은 무엇이었을까.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살고 있었을까. 뭐 대충 그런 것들을 알 수 있을까 해서 호기심을 갖고 봤는데 70년대 호텔방만 주구장창 볼 줄이야...^^;; 사실 언제 저런 데에서 자볼지 알 수도 없는 나에게는 그저 그림의 떡일 뿐 큰 감흥을 받을 수 없던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초반에 작가는 일본인과 유럽인들의 생각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과 거의 비슷한 정서를 갖고 있어서인지 작가가 지적한 차이점에 고개가 숙여졌다. 또한 작가는 유럽으로 뭉뚱그려 말하는데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민족이나 사는 곳의 위치에 따라 다들 저마다의 개성이 다르다고 말한다. 사실 이건 당연한 사실이긴 한데 막상 여행에서 직접 느끼고 체험하면 와 닿는 것이 남다를 수도 있을 것 같긴 하다.

‘여는 글’에서 작가는 일 년 동안이나 유럽 전역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것도 국비로 말이다. 얼마나 부럽던지... 도대체 어찌하면 국비로 해외여행을 갈 수 있는 것일까. 그저 부럽고 부러울 따름이다. 그건 그렇고 내가 하려던 말은 작가가 일 년 동안이나 유럽을 여행했다고 하면 언어 실력이 엄청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정작 작가는 일본어 외에 할 줄 아는 언어가 없다고 한다. 만국공통어라고 말할 수 있는 영어조차 못한다고 한다. 그런데도 일 년 동안 별 어려움 없이 즐거운 여행을 할 수 있었다니 그 용기와 마음가짐 하나는 본받을 만하다. 작가 본인은 손짓 발짓 온 몸을 사용하여 대화를 했다고 한다. 게다가 자신만의 특기인 그림을 그려서 의사소통을 비교적 쉽게 했다고 하니 그 재주 이래저래 부럽지 않을 수 없다.

인상적으로 남는 글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는 버스에 우체통이 달려 있다는 것과 빈의 공원에서 목격한 일로 오리를 잡으려던 아이를 엄마가 엄격하게 혼냈다는 일화이다. 빈에 10년 넘게 살고 있는 작가의 친구의 말을 빌려보자. “이곳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아주 엄격하게 가르쳐. 일본하고는 좀 달라. 게다가 남의 자식이건 내 자식이건 혼낼 일이 있으면 누구든 팔 걷고 나서서 혼을 내지.” 일본 뿐 아니라 한국 엄마들에게도 꼭 보여주고 싶은 글이다. 뭐든 외국 건 다 닮고 싶어 하면서 정작 중요한 것은 배우지 못하는 일본 그리고 한국 사람들... 여행가서 사진만 찍지 말고 그들의 생활방식이나 가치관도 배우고 오면 오죽이나 좋을까 싶다.

본인이 이 책의 출판을 왜 그리 꺼려했는지 알 것 같다. 작가의 말대로 이 책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이었다. 정말로... 책을 내볼까 했던 생각을 추호도 하지 않았다는 걸 책의 내용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더 이상의 실망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가 그저 섣부르게 생각하고 선택했던 잘못도 있으니...

 

 

어릴적에는 내가 이렇게 면을 좋아하는줄 몰랐다. 중학교때부터 자취를 하시던 아버지가 밀가루음식에 질린 덕에 우리 가족들은 거의 밀가루 음식을 입에 댈 수 없었다. 자장면이라고 해야 어린이날이나 되어야 먹어볼 수 있었고 라면 또한 아빠가 집에 안 계시는 특별한 날에나 맛볼 수 있었다. 그래도 여름 한 철에는 엄마의 작은 반항으로 냉면이며 열무국수, 비빔국수, 콩국수를 종종 먹곤 했었다. 그때 엄마가 해주신 국수 요리를 잊을 수가 없다. 특히 동치미 국물에 말아주던 국수는 그야말로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먹었던 기억이 난다. 아빠도 이 동치미국수만은 맛나게 드셨던 걸로 기억한다. 엄마의 곁을 떠나온지 15년이 되어가지만 날이 더워지는 여름의 문턱이면 엄마가 만들어주시던 국수요리가 간절하다.

집을 떠나와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바로 면을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는 거다. 한밤중에도 컵라면을 먹을 수 있고 라면도 실컷 먹을 수 있고 자장면도 짬봉도 마음만 먹으면 먹을 수 있다는 것이 내게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서울 생활 초반에는 거의 하루에 한 끼는 면음식을 먹었던 것 같다. 게다가 시골에 있을 때는 먹어보지도 못했던 면요리들을 먹을 수 있어 얼마나 좋던지... 베트남쌀국수, 중국식 냉면 그리고 파스타... 사실 나는 이 세가지 면요리를 20살까지 먹어보지 못했다. 회사에 다니고 나서야 이 세가지 요리를 맛볼 수 있었던 거다. 몇 년 전부터는 일본식 라면에까지 손을 뻗쳐 그야말로 나의 면 사랑은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하고 있는 것이다. ㅎㅎ

사실 지금 이 리뷰를 쓰고 있는 중에도 다운받아 놓은 <누들로드>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다. 몇 년 전 TV에서 방영하는 것을 보고 난 후 아주 재미있어 다운받아 둔 것인데 이 요리책을 보면서 다시 생각이 났다. 책으로는 충족할 수 없는 나의 시각적인 자극을 위해 좀 더 생생한 면의 느낌을 받고 싶어 간만에 이 다큐멘터리를 다시 보고 있다. 정말이지 이 다큐는 명작이 아닐 수 없다. 중간 중간 진행자 켄 홈 씨가 직접 요리하는 면음식은 정말 나의 애간장을 녹일 정도다. ^^;; 저런 특이한 면요리를 한 번 직접 먹어본다면 죽어도 원한이 없을 것 같다.

<맛있는 면요리>에는 다양한 면요리를 소개하고 있다. 한국, 중국, 일본의 면 요리는 물론, 베트남과 태국의 면요리 그리고 파스타까지.. 그야말로 세계의 유명한 면요리를 죄다 모아 놓았다. 요리 레시피만 보면 5~7가지 순서로 되어 그리 복잡해 보이지 않는데 사실 제대로 면요리를 하는 게 늘 조금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인스턴트 면요리로 간단하고도 신속하게 면요리를 즐길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다 인스턴트 요리가 좀 질리면 큰마음 먹고 집 근처 베트남쌀국수 가게를 찾거나 중국음식점을 찾곤 한다. 이 요리책의 도움으로 집에서 직접 만들어 볼까 큰마음을 먹긴 했는데 아직까지 실천을 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육수만들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엄마가 곧 열무김치를 담가 보내주실 때가 되었는데 그 때는 직접 국수를 삶아 열무국수를 만들어 먹어볼 생각이다. 열무국수에는 특별한 육수같은 건 필요 없으니...

책에는 면요리 뿐만 아니라 스프링롤, 월남쌈, 내가 중국집가면 세 그릇쯤은 거뜬하게 비우는 짜사이 무침과 중국식 피클, 스페인 빠에야, 달걀레몬 스프, 문어초무침, 차슈, 백김치, 동치미, 배추겉절이 등 따로 먹어도 좋고 면음식과 곁들어 먹어도 좋은 음식들이 소개되어 있다. 곧 회냉면과 비빔국수, 콩국수를 즐겨 먹을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생각해 보면 어떤 음식보다도 면음식에는 추억이 더 많이 담긴 것 같다. 올 여름에는 고향집에 내려가 엄마가 해주는 국수나 실컷 먹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