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4.30
김영 - <청아출판사> \18,000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행서’를 떠올렸을 것이다. ‘김영 교수의 영국 문화기행’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대학 교수의 여행은 어떨까?’, ‘확실히 일반인인 우리들과는 다르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게 만든다. 거기다 런던의 모습이 예쁘게 그려진 표지는 우리의 상상을 더욱 더 부풀린다.

 하지만 이러한 상상을 가지고 책을 읽어나간 독자라면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실망하고 있을 확률이 크다. <김영 교수의 영국 문화기행>은 ‘여행’에 초점을 두고 있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김영 교수가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어떻게 영국을 여행했다’라는 식의 정보의 나열이 아니다. 그는 낯설기 만한 영국이라는 땅에서 한국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러한 경험들을 독자들과 나누기 위해 책이라는 다리를 이용했다.

 영국에서 ‘한국학’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을 보고 뿌듯해 하고 영국 사회를 보며 우리나라의 여러 사회 문제들을 생각해보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감명 깊었다. 그의 말마따나 ‘조선 선비’ 같은 모습이었다고나 할까. 그리고 그의 여러 가지 경험을 통해서 영국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무척 다른 곳’이라고 생각했던 영국도 ‘그리 다르지 않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같은 ‘인간’이 사는, 만나면 헤어지고 오면 가야 하는 만남들로 이루어진 곳이 아닌가!

 그가 앞서 말했듯이 이 견문기는 영국 전문가나 오랫동안 체류한 분들에 비하면 깊이가 부족하다. 그 역시 ‘타지인’이기에 1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볼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었고 경험 위주의 내용을 분야별로 짤막짤막하게(2~3page 정도) 다룬 구성 때문에 다소 아쉬운 느낌이 많이 들었다. 하지만 왜일까. 나는 이 정도의 아쉬움이 그리 싫지 않다. 책 속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풍경들(의외로 이 책은 볼거리가 풍부하다), 그가 만났던 영국 사람들을 생각하며 ‘나도 영국에서 그런 만남을 하고 싶다’라는 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는 그 곳에 직접 가서 지금 내가 느낀 아쉬움을 채울 수 있는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문득 교양은 음악을 듣고 그림을 감상하는 데서 시작하지만,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방을 배려하는 데서 완성된다고 한 일본 경제대학 서경식 교수의 말이 생각났다.” - p191

 

 

김영, 영국문화기행

10.04.05
스가노 타이조 - <큰나무> \12,000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받은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 선물 덕택에 연약한 인간은 지금까지도 지구를 장악하고 떵떵거리며 살 수 있었다. 생각하기에 존재하는 인간은 언제나 풍요로운 존재로 그려졌다. 하지만 현대에 와서는 사정이 조금 달라진 듯하다.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온 탓일까, 현대인들은 풍요 속에서도 그것을 누리지 못하고 끊임없이 결핍에 좌절하고 있다. 선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이제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

 

 확실히 우린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며 산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시작하는 온갖 결핍에 고뇌한다. 언제나 앞을 향해 달려야 하기에 쉴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스스로가 만든 마음의 감옥 속에서 허덕이며 달릴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하면 우리는 이 감옥 속에서 뛰쳐나와 여유를 누릴 수 있을까?

 

 나는 스가노 타이조의 <마음의 일요일>에서 그 해답을 찾고 싶었다. ‘마음의 일요일’이라는 제목에서부터 달리고 있는 내 두 다리를 멈추게 해 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마음이 편안해지는 표지에 감동하며 책장을 열었는데, 웬걸 기대완 달리 다소 실망스러웠다. 물론 심리 카운슬러의 경험담을 이야기 하면서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 내는 것은 상당히 좋았지만 너무나 단편적이어서 상담 기록을 간단히 옮겨 놓은 수준을 넘지 못했다. 단발 권총으로 마음의 감옥을 무너뜨리기엔 무리가 있지 않을까. 거기다 각 장의 테마와 거기에 속한 이야기들 간의 연관성이 부족해서 전체적으로 어색한 느낌을 주었다.

 

 이 책에서 가장 거슬렸던 부분을 꼽자면 바로 각 이야기마다 나와 있는 Key point다. ‘생각하는 사람의 습관은 이것부터 다르다!’라고 적어놓는 뻔뻔함이라니... 이 책의 목적은 ‘마음의 여유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아니었던가! 왜 여유를 찾기 위해 떠나려는 독자에게 ‘생각하는 사람’이 될 것을 강요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수십 개의 Key point 덕택에 마음의 감옥이 한층 더 두꺼워진 느낌이랄까, 마음의 여유를 줘야할 ‘마음의 일요일’이 또다시 뛰어야할 ‘마음의 월요일’로 전락해 버렸다.

 

 여유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어야 하는데, <마음의 일요일>은 여유를 생각하는 법에 치중하지 않았나 싶다. 처음부터 주제를 ‘심리 카운슬러’ 쪽으로 잡고 심도 있게 파고들었다면 더 괜찮은 책이 되었을텐데... 이래저래 아쉬움이 많이 남는 책이었다.

 

“아무 목적도 없이 한가하게 있는 건 정말 참기 힘들다. 하지만 일상의 작은 것이라도 좋으니 조금씩 익숙해지도록 길들이는 노력을 하라. 가능하다면 적당히 하는 게 좋다. 지나친 노력은 오히려 방황의 원천이 된다.” - p28

 

“카운슬러의 전문성 중 하나는 대부분 상담이 그 사람의 생각에 ‘그건 이렇고 저렇고’하는 평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있는 그대로 충분히 고민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이다.” - p99

 

“진정한 카운슬러는 꼭 상처의 고통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상처에 딱지가 질 때까지 상처를 지켜주는 사람이다.” - p104

 

“머리로 마음은 ‘생각’할 수 있지만 ‘느낄’ 수는 없다.” - p115

 

“건강이란 병이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병을 이겨내는 힘, 회복의 속도, 균형을 잡는 힘이 크다는 것을 말한다.” - p209

스가노타이조, 마음의일요일

 

10.03.18
E.M.헤밍웨이 - <청목> \5,000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노인 산티아고의 빛나는 두 눈.. 나는 그의 눈 속에서 니체가 말한 ‘초인’을 보았다.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인간의 어리석은 욕망이라는 굴레 속에서 자유를 얻은 강인한 인간의 모습.. 인간에 대한 헤밍웨이의 희망에 새삼스레 가슴이 뭉클해진다.

 

 물론 노인을 바다로 이끈 것은 강력한 욕망(다소 어리석어 보이는)이었다. 큰 고기에 대한 욕망에 눈이 멀어 너무 먼 곳까지 나갔고, 결국 큰 고기를 손에 넣고도 돌아오는 길에 상어들에게 다 빼앗기고 만다. 육지에 도착했을 때 그의 손에 남겨진 것이라고는 앙상한 뼈밖에 없었다. 보통이라면 어리석은 욕망에 의해 모든 것을 잃고 좌절하는 노인의 이야기로 끝나겠지만 <노인과 바다>는 그런 비극적인 이야기가 아니다. 그래, 분명 노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어리석은 욕망에 휩싸여 있었다. 하지만 87일간 고기와 같이 호흡하고 사투를 벌이는 그의 모습을 보고도 그것을 ‘어리석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는 단순히 ‘욕망의 대상’만을 쫓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런 식의 ‘어리석은 욕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는 자신이 바라는 것을 얻기 위해 필요한 과정까지도 욕망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큰 고기를 잡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 하나하나가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행위였기 때문에 자신의 욕망을 열정으로 승화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클리셰가 된 “과정이 없으면 결과도 없다.”라는 말... 나는 자신이 힘써온 과정만큼 결과를 가져간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결코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 아니다. 그가 잡아온 고기의 뼈를 보며 사람들은 그의 손에, 눈에, 가슴에 녹아있는 열정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며 각자의 가슴 속에 커다란 꿈을 키워나갈 것이다. 꿈을 가진 인간은 패배하지 않는다. 욕망을, 열정을 불태우며 새로운 꿈을 키워나갈 뿐이다.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이 순간, 노인의 눈과 우리의 눈이 한없이 밝은 빛을 발한다.

 

“노인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다 늙었지만 그 눈만은 젊고, 바닷빛이며 명랑하고 패배를 몰랐다.” - p8

 

“노인은 어느 누구도 바다에서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 p56

 

“죽인다는 것이 옳은 일은 아니더라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인간이 얼마나 견뎌낼 수 있는지를 고기에게 보여주고 말테다.” - p61

 

“사람은 죽을지언정 지지는 않는다.” - p94

 

“지금은 없는 것을 생각할 때가 아니야, 있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나 생각하자고.” p101

 

“고기가 할아버지한테 이긴 건 아니었어요. 고기는 아니란 말에요... 그렇지, 정말, 진 것은 나중이었다.”- p113

헤밍웨이, 노인과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