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에서부터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는 이 책은 팟캐스트 씨네타운 나인틴의 세명의 피디가 지금의 그들을 만들었다고 하는 책들을 엮은 것이다. 책은 총 3부로 1부 언제쯤 어른이 될까, 2부 그렇게 우리는 자란다, 3부 소년은 더 이상 울지 않는다 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목록을 죽 보면 사실 권장도서라고 불릴 만한 책은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황홀한 사춘기>와 같은 야설도 있다. 저자들이 책에 관한 추억담을 하나 둘씩 꺼내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단순히 목록에 있는 책들 뿐만 아니라 이야기가 확장되면서 다른 책들까지 소개받는 것 같았다. 예를 들어 <조선왕조 500년>에서는 <정조어찰첩>과 <뜻으로 본 한국사>,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서는 <입 속의 검은 잎>, <인간은 모두 죽는다>에서의 <제 2의 성> 등 재밌는 입담으로 책들을 이야기해서인지 모두 다 읽어보고 싶고, 궁금해졌다. 특히 요즘 관심을 갖고 있던 실비아 플라스를 다룬 부분을 읽고 나서는 단순히 작품을 읽어 보고 싶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녀의 굴곡진 인생사와 풍부한 감성을 좀 더 제대로 느껴보고 싶어지기도 했다.

 

돌아보니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책 중에서 권장도서는 한 권도 없었다. 모두 어느 지점에서 지나치게 튀어나온 책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사실 지금이야 책을 좋아하고 즐겨 읽으려고 노력하지만 어렸을 때는 그다지 '책 잘 읽는 아이'는 아니었다. 전집이다 뭐다 엄마가 뭘 들여놓으면 제일 먼저 돈 아깝다는 생각부터 했을 만큼. 그렇게 보면 지금의 나를 만든 것도 권장도서는 아닌 셈이다. 학창 시절 내가 그나마 즐겨 읽었던 책은 만화책, 장르 소설 등이었고 19금도 꽤 있었다. 하지만 테레자가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악인일 수 없다고 생각한 것처럼 (비록 어떤 책을 읽느냐의 문제는 있지만) 책을 안 읽어서 후회할 순 있어도 많이 읽어서 후회하는 경우는 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꼭 권장도서만이 아니라 불온서적일지라도 나에게 갖는 의미가 특별하다면 그 책은 그 자체만으로도 내 인생의 책이 될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세 사람의 재미있는 추억담과 함께 책이 갖는 의미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카뮈의 책은 페스트로 처음 만났다. 그의 대표적 작품인 <이방인>을 오래 전부터 책장에 꽂아두고서는 말이다.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는 대부분의 평들을 보면서 지레 겁을 집어 먹은 탓이지만 최근 온 나라에 퍼진 메르스 때문에 페스트라는 전염병을 다룬 이 책에는 생각보다 선뜻 손이 갔다.

이 책은 오랑이라는 조용한 도시에 페스트가 발병하면서 도시 전체가 폐쇄되고 고립되며 일어나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책은 서술자가 자신이 단지 서술자일 뿐이라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건을 직접 겪으면서도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보건대를 말하는 부분이 특히나 인상깊었다.

 

그렇지만 서술자의 의도는 이 보건대에 실제로 그들이 가졌던 것보다 더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술자는 훌륭한 활동에 중요성을 지나치게 부여하는 것은 결국 악에 대해서 강력하면서도 간적접인 찬사를 표하는 셈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런 훌륭한 행동들이 그렇게도 큰 가치를 갖는다면 그런 행동들 자체가 드문 데다가 사악함과 무관심이 인간들의 행동에 있어 훨씬 더 빈번한 원동력이기 때문이라는 점만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페스트가 발병해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하는 리유, 이방인이라고 자처하며 현실에서 벗어나려는 랑베르, 신의 징벌을 받아들이고 반성하라는 파늘루, 보건대를 조직해 페스트와 싸우고자 하는 타루, 모두의 고통을 기꺼워하며 전보다 더 활기를 찾는 코타르 등, 페스트로 인한 사람들의 여러 모습들을 보며 나는 누구라고 말할 수 있을지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 책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재앙의 상징으로 페스트가 나타나지만 한편으론 타루의 말처럼 어떠한 형태의 페스트든 그것을 누구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언하건데 내가 확실히 아는 것은 각자 자신 안에 페스트를 가지고 있다는 건데, 왜냐하면 실제로 아무도, 이 세상 어느 누구도 그것으로부터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유배와 다름없는 삶 속에서 죽음과 마주하며 절망하고 처절한 비극에 빠지게 되면 인간의 본성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오랑에 사는 사람들이 그랬듯 메르스로 인해 공포에 떨었던 우리도 그렇다. 메르스 왕따가 나타나고, 사람들은 불안에 떨며 가까운 사람조차 믿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페스트가 물러난 것처럼 메르스 역시 어느 정도 진정세를 보이며 더이상의 확진자는 나오지 않는 상태이다. 축제를 벌이며 행복해하는 오랑 시민들처럼 우리도 그러할까?...

시작은 목을 매달고 싶을만큼 세상 모든 것을 부정할 지라도 희망이 있기에 삶은 긍정적으로 변화한다. 희망은 사랑일 수 있고 사람들이 원하는 그 무엇이든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랑을 위해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랑베르만이 행복을 맞이한 것처럼 나는 시종 우울하고 무력감만이 팽배했던 이 책에서 인간의 존엄이 위협받는 공포 속에서도 가느다란 한 줄기의 희망조차 버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고독의 힘이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을 읽기 전 그런 생각을 한 번 해보았다. 다양한 수단으로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요즘 시대에 굳이 고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 하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사실 고독이란 단어 자체가 주는 외로움이나 쓸쓸함은 결코 좋은 느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만의 고독한 방이 없는 사람은 얼마나 비참한가'라는 문구를 봤을 때 자기만의 고독한 방이 있는 사람 또한 비참한 것 아닌가, 라는 의문을 가졌었다.

책은 고독을 통해, 또 고독을 딛고 일어나 진정한 자신을 마주하여 스스로의 삶을 빛나게 만들었던 여러 사람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넬슨 만델라의 이야기로, 27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감옥에 수감되어 있던 그의 고독은 감히 짐작하기도 힘들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아득한 고독 속에서 그는 결코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않았다. 감옥에서 생을 마칠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리 대단한 사람이 아닙니다. 단지 노력하는 노인일 뿐입니다. 진정으로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두려움을 정복하고 압도하여 뛰어넘는 사람입니다.

 

만델라는 고독한 시간 속에서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는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과 증오와 복수가 아닌 진정한 용서를 깨닫지 않았을까?

저자가 책에서 밝혔던 이야기처럼 그 비슷한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어떤 동호회의 모임이었는데 회원들 모두가 고개를 숙이고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사진이었다. 소외되는 것을 두려워하면서도 정작 단절하는 것은 자기 자신인 셈이다. 가까운 사람을 두고 멀리 있는 다른 누군가를 찾는 것은 고독한 스스로를 견딜 수가 없어서, 심연의 밑바닥까지 갈 용기가 없어서 일지도... 어쩌면 자기만의 고독한 방이 없는 사람은 비참할뿐만 아니라 영혼의 성숙을 위한 기회조차 갖지 못하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고독은 그저 혼자 남아 있는다는 것이 아니다. 생과 사를 오직 혼자서만 겪어야 하는 우리들로서는 고독의 의미가 그것으로 한정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나는 고독이 자신의 삶에 치열하게 몰두한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누구도 아닌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들여다 볼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것, 고독한 시간 그 자체가 바로 고독이 가진 힘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