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보고도 많은 생각이 들었다. 가족이라는 병은 무엇일까? 이 작가는 왜 가족을 병이라고 했을까? 어째서 가족이 병이 되는 걸까? 하고.

우리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믿어줄 수 있는 존재를 흔히 가족에서 찾는다. 보통 탄생의 순간부터 삶의 모든 희노애락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며, 죽음의 순간까지 함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가족이고 잘 이해해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조금 달리 생각하는 듯 하다. NHK아나운서 출신인 저자는 군인이지만 예민하고 예술가적 성정을 지녔던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을 비난하는 저자의 말에 찬성하면서도 떠나지 않았던 어머니, 3살 차이의 이복오빠와의 관계 모두가 상처로 남은 것 같았다.

 

인간은 늘 혼자라는 것을 인식하고, 고독을 즐길 수 있어야 비로소 상대의 기분을 가늠하고 이해할 수 있다. 가족이나 사회 사람들이나 마찬가지다.

가족은 사회의 축소판이 아닌가.

 

지극히 개인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저자의 말에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다. 특히 자신이 아닌 남에게 기대를 품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 더욱 그랬다. 불평불만과 낙담의 원인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해서 라고 하는데 나는 아주 사소한 부분까지도 기대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는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생각을 잘 따라갈 수 없었다. 물론 우리는 '가족이니까'라는 말로 서로 많은 상처를 주고받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이니까' 조건없는 애정 또한 주고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서로를 잘 믿지 못하는 요즘같은 세상에는 더더욱.

마지막 나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성장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던 거겠지, 라는 저자의 말이 있다.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생명의 연쇄가 끔찍하다는 말도 있다. 내가 나일 수 있는 방법이 성장을 멈추고 오직 세상에 혼자 남는 것 뿐이었는지 묻고 싶다. 저자의 삶을 책에 나온 부분만을 보고 판단할 수는 없겠지만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가족이 큰 아픔을 주기도 하고 우리는 가족에 대해 잘 모르고 사는 게 맞지만 가족이 있기에 나라는 사람도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것만으로도 '가족'이라는 말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

 

 

 

 

 

국민 첫사랑 수지를 만든 건축학 개론이라는 영화는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추억을 불러 일으키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었다. 나 역시 그 영화를 보며 말 못할 짝사랑으로 끝난 첫사랑이었지만 설렘으로 가득 찼던 당시를 회상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첫사랑이 있다, 라는 문구가 눈에 띄는 이 책 <첫사랑>도 제목처럼 순수했던 그 때의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반듯하고 똑바르게 그려진 것이 아닌, 대칭이 맞지 않고 서투른 듯 그려진 하트가 오히려 첫사랑이란 단어를 잘 나타내는 것 같아 책을 읽기도 전에 괜히 마음이 일렁였다.)

책은 작가인 화자가 초등학교 동창회에 참석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과 쌓인 담소를 나누고 추억을 떠올리다가 어린 시절 만인의 연인이었던 자현의 안부에 이르게 되고, 후에 은봉을 만나고 뒤이어 그녀를 만나게 되면서 나름의 숨겨졌던 이야기가 밝혀진다.

 

세상의 물줄기들은 왜 그렇게 우리가 바라지 않는 쪽으로 너무 쉽게 흘러갈 때가 있는 것인지. 왜 그작고도 큰 사랑을 방해할 때가 있는 것인지...

 

미선의 첫사랑이었던 정수, 정수에 관한 것이라면 사소한 것까지 기억하는 미선, 사랑을 가슴 속에만 간직했던 은봉, 어린 날의 깜찍했던 연인 자현. 이 네사람의 이야기가 저자의 담담하면서도 간결한 문체 속에 전개되는데, 사실 화자의 어렸을 적의 어려움이나 환경 등은 내가 공감할 수 없는 부분이었지만 첫사랑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들은 어떠한 계산이나 의도 없이 정말 순수했다. 특히 은봉이 지니고 있던 사랑의 무게가 굉장히 묵직하고 아련하게 다가와서 자현을 만난 은봉의 뒷이야기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 물론 씩씩하게 삶을 살아나가기로 한 자현이라면 분명 은봉을 꼭 안아주면서 활짝 핀 꽃을 은봉의 가슴에 안겨줬을 거라고 믿는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이해관계가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처음'의 그 때를 많이 그리워한다. 서투르고 미숙하지만 그렇기에 순수한 열정을 가질 수 있었던. 그 때로 돌아갈 순 없지만 이 책을 읽으며 그리움을 달래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가끔 책을 읽을 때마다 내가 정말 '잘' 읽고 있는 걸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독서 방법에 대한 책들도 찾아보는 편인데 이 책은 제목만으로도 눈길을 끌어서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책장을 펼쳤다.

 

소믈리에가 와인에 정통한 사람이라면 북소믈리에는 책에 정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소믈리에가 와인에 대한 아주 오랜 경험과 단련된 미식가의 혀를 갖고 있듯이 북소믈리에는 책에 대해 그만큼 세밀한 입맛을 가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책을 전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겠지.

 

책에 관해서는 사실 나는 다독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재능에 자신이 없으면 양으로 승부하자."라는 나카타니 아키히로의 말이 꽤 충격적이었기도 하지만 다독을 통해 좋은 책과 나쁜 책을 구분할 수 있게 되고 자신이 어떤 분야에 흥미를 느끼는 지 알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솔직히 작가의 말에 조금 공감을 못했다. '양보다 질'도 좋지만 차곡차곡 쌓여진 독서량의 내공도 무시할 수 없진 않나 싶었다. 하지만 막상 책을 읽어보니 저자의 생각이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의 두번째 챕터인 북소믈리에의 독서 레시피 첫번째에서 저자는 독서의 3단계를 설명하는데 그 중 제 1단계 '책을 읽는 단계'가 내가 생각하는 다독과 비슷했다.

 

독서의 1단계는 그냥 책을 읽는 것이지만, 2단계는 세상을 읽게 되고, 마지막 3단계는 사람의 마음을 읽게 된다는 것이다.

 

독서에 관련된 말 중 정조의 이런 말이 있다. "독서를 하는 것은 마치 백 층 보탑에 오르는 것과 같아서, 멈추지 않고 묵묵히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자연히 꼭대기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탑 밖에 서서 그저 층수만 세고 있으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할 것이다."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수동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일 것이다. 인내심을 가지고 꾸준히 적극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쓴다면 평범한 우리도 저자가 말하는 북소믈리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철학을 전공한 저자답게 단순히 독서의 방법론만을 소개한 책이 아니라 삶에 있어서의 독서에 대한 가치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