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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쓸 때의 하루키옹은 '자아, 이제 심기일전해서 여행을 해볼까~' 하는 류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모든 소설가들이 그렇듯 자신의 만들어 놓은 세계로 들어가는 건 그런 걸지도.. 여하튼

어둠이든 청춘이든 마음이든 다 하나 하나 훑어가 주겠어 하는 성실함 같은 것도

느껴지고 말이다. 그러나 에세이를 쓸 때의 하루키옹은 전혀 다르다.

'자아 이제부터는 긴장을 풀고 눈을 가늘게 뜨고 세상과 생각 속의 쓸모없는 잉여를 털어볼까나~'

하는  느낌이랄까. ㅋㅋ  하루키옹의 에세이는 그래서 소설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시시하고 껄렁하고 아주 소소한 그런 분위기. ㅋㅋ

헌데 그게 꽤 중독성이 있고 재미가 있어서 에세이를 좋아하는 이들은 또 엄청 좋아한다.

반대로 그런 분위기를 싫어해서 에세이는 영 별로라는 이들도 있지만 말이다.

 

미뤄두었던 <샐러드를 좋아하는 사자>를 읽었다. 여전히 시시하고 껄렁하고 소소하다.

그래서 낄낄거리며 후다닥 읽어버렸다. 호흡이 긴 소설은 여러모로 시간이 필요하지만, 이렇게

호흡이 짧은 에세이들은 짬짬이 읽기도 좋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하거나 여유가 없을 때 딱이다.

 

하루키옹은 소소하고 시시하고 별 것이 아닌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그런데 실은 일상이란 대개가

그런 시시하고 소소한 일들로 가득 차 있지 않은가. 인생에 절체절명의 위기나 터닝 포인트가

늘 포진해 있는건 아니니까. 소소하고 별 거 아닌 일들로 가득찬 일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의외로

때로 인생의 복잡다난함이나, 위기를 넘길 지혜를 얻어내기도 하니까 말이다. ㅋㅋ

그런데 문득 책을 덮으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이제 나이가 들고 하루키옹이라 내가 부르는

작가의 에세이를 보면서, 시간이 들고 나이가 들고 그럼에도 여전히 사는 건 즐거운 일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한 편으로는 위로가 되는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소소하고 별 것 아닌 그럼에도 즐겁게 읽은 하루키옹의 에세이였다.

- 다락방서 허뭄 

엄마 아빠는 뭐랄까 아이들에게 늘 정답을 바란다. 

정리 정돈도 잘 하고, 말대꾸는 하나도 하지 않고, 늘 어른들과 이웃들께 공손하며, 해야 할 일들은

알아서 잘 하고, 물론 공부도 엄청 잘해야 하고, 씻기를 귀찮아 해서도 안되고, 동시에 천진하면서

귀엽고 이쁘기도 해야 한다. 아이들의 삶이란 참으로 피곤하기 그지 없다. ㅋㅋ 하지만 부모란

부모이기에 정답을 일러주고 정답을 요구하게 되니 어쩔 수 없으려나... 아이가 그냥 아이인 그대로

천진난만하며 동시에 천방지축이고 자유분방하기만 한 것을 바랄 수 없으니까 말이다.

 

동희에게 여름방학이 왔다. 엄마는 하루종일 전화로 이거해라 저거해라만 하고 사촌 언니는

있으나 마나. 없을 것은 하나도 없는 집이지만 허전하기가 이를 데 없다. 그런데 삼촌이 온단다.

갓난 아기였을 때 외국으로 나갓던 삼촌이.. 과연 누가 올지 모르겠으나 사촌 언니 보다 나을 것

같은데... 두둥 두둥!!

기대와는 전혀~~ 다른 삼촌이 옸다!!! 그런데 이거 나쁘지 않다. ㅋㅋ 

 

부모는 아이들에게 정답을 요구하지만, 삼촌이나 이모들은 다르다. 부모는 완전 어른이지만

이모와 삼촌은 어른은 어른이지만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고, 철도 덜 들어서 마음이 통하기도 한다.

나도 크면 저런 어른이 되어야지 하는 멋스러움과 철부지 특유의 똥폼을 간직하고 있달까. ㅎㅎ

난생처음 보는 어른인 삼촌과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고 놀면서 그냥 삼촌이 '우리 삼촌'이 되어

가는 모습은 즐겁다. 수많은 장난감 속에 둘러싸여 있지만 함께 보낼 사람을 갖지 못한 요즘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동시에 아이들과 친해진 다는 것은 내 속의 아이를 꺼내 함께 놀아보는 즐거운

과정임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두 사람의 이 다정한 포즈를 보라~~ ㅎㅎㅎ

누군가를 마음에 담는 다는 것은 함께 시간을 보내고 마음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조금씩 길들여 지는 것!

 

아이들 동화책을 보면 이모나 삼촌들은 철없는 어른들로 자주 등장한다. 별 볼일 없는 삼촌,

철부지 이모, 외모만 꾸미는 이모, 똥품만 잡는 삼촌, 때로 오싹하게 무서운 이모 삼촌... ㅋㅋㅋ

이야기 속에서 동화 속에서 그리고 현실 속에서도 조카들은 부모를 통해서 그리고 이모 삼촌을

통해서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방법과 모습을 배우는 것 같다. 물론 이모 삼촌도 조카들을 보고

애들이란 무엇인지 육아가 어떤 것인지 알게 되기도 하고 말이다. ㅋㅋ

 

그러고 보면 나는 조카들에게 참 얄밉고 혹은 무서운 이모였다. 녀석들과 놀아주는 것도 서툴렀고  

(실은 귀찮았고) 지금도 잔소리나 구박하기에 여념이 없으니까. 그러나 녀석들은 배울 거다.  

나같이 까칠한 어른으로 사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ㅋㅋ

 

귀엽고 재미난 김재희 그림책 <삼촌이 왔다>  

후속작으로 이모가 왔다도 한 권 나오면 재미있을 듯 ^^;;; 

- 다락방서 허뭄

 

 

어떤 나이가 되면, 인간은 삶이 아닌 시간과 대면하네.  

삶이 영위되는 것을 더는 볼 수 없지. 삶을 산 채로 집어삼키는 시간만 보이는 걸세.

그러면 가슴이 저리지.

- 본문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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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나이가 되면.. 결국 그렇게 되는 걸까.

나에게도 그 순간이 찾아오겠지. 삶의 집어삼키는 시간의 순간이...

 

이웃분의 소개로 알게 되어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을 읽었다.

소설이란 스토리를 이어가는 일이지만 어떤 이야기들은 그렇지가 않다.

이미지와 문장으로 촘촘하게 채워진 테피스트리 같은 이야기들이 말이다.

파스칼 키냐르의 이야기가 그러했다. 너무나 뜨겁고 너무나 강렬했던 첫사랑의 낙인을

얻어버린 채 평생을 숨어서 지내야 하는 한 사내가 있다. 이건 사랑의 이야기며 삶의

이야기며 상처의 이야기고 슬픔의 이야기다.

그리고 그건 낯선 소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문장들은 있지만 문장들은 모여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흩어진 문장들은 분명 하나의 스토리를 이어가고 있다. 마치 사랑과 이별로 흩어진 마음이

모아지지 않았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어떤 궤적을 만들어가는 것과 닮지 않았나 싶다.

 

때로 사랑은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몸므는 뜨겁게 찾아 온 사랑의 상처를

온 몸으로 받아안고 온 생으로 끌어 안는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변해도 그는 그 사랑에서

한발자국도 떠나지 않은 채 사랑을 그림으로 판화로 옮겨 놓을 뿐이다.

우리들에게도 그런 낙인들이 있다. 뜨겁고 아프고 잊기 힘든 그런 첫사랑이라는 낙인이...

파스칼 키냐르의 소설 <로마의 테라스>

문장을 음미하며 조각을 모으듯 읽어나간 이야기였다.

- 다락방서 허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