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평생동안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서너번쯤 갖게 된다고 한다.

아직은 기회가 더 남아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기회가

영영 사라져버렸다는 걸 깨닫는 날이 올 것이다.

재앙에서 벗어날 방법이 전혀 없는 날...

- 본문 259 에서

 

 

*

돌아보면 그 시간들이 기회였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헌데 나는 준비가 덜 되어 있었고

소심해서 망설였으며 기회가 지나간 다음에는 후회로 또 남을 시간들을 흘려보내곤 했었다.

사람들에게 기회는 서너번 온다는데 아직은 그래도 그 기회가 다 지나가지는 않았기를

하고 생각해 본다. 혹 그 기회가 이제 없다면, 기회를 만들어가는 수 밖에....

그럴려면 사라진 기회를 떠올리기보다 앞으로 변화할 나를 기대하는 수 밖에 없다.

오늘 집에 오는데, 유턴금지 표지판이 가슴에 팍 와 닿더라... 돌아갈 수는 없고, 앞으로

가는 수 밖에 없다. 좌회전을 하든 우회전을 하든 그건 나중 일. 일단 지금은 직진. ^^;;;

 

샤를로테 링크의 <폭스 밸리>를 읽었다. 전에 <파이브>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요즘은

유럽추리물이든, 영미추리물이든, 큰 차이는 없이 대개 꽉 짜여진 영화나 미드 한 편 보는 것

같은 경우가 많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비슷해지면서 또 상향되어가는 느낌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본 <폭스 밸리>를 보니, 좀 다른 느낌이 들었다.

 

<폭스 밸리>는 잘 써진 추리물이다. 그런데 이 추리물에서 보여주는 것은 완벽한 트릭도 아니고

명석한 탐정도 아니며, 기상천회하면서 요상한 천재 악당도 아니다. 그런 추리물이 가지는 요소들

없이 이 책에는 오직 범죄가 있고 그 범죄를 일으키는 사람이 있다. 추리물이 어떤 형식을 가지게 되면

트릭이나 알리바이 혹은 짜여진 캐릭터들 때문에 어떤 전형으로 흘러가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런 추리물이 아니다. 범죄와 그 범죄를 일으킨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니

<폭스 벨리>에서 기대하게 되는 것은 반전도 아니고, 완벽한 악당이나 명석하고 천재적인 주인공도

아니어야 한다. 헌데 재미있는 것은 그렇다고 해도 이 책에는 반전이 있고, 나름 애정이 가는 인물도

있고 무섭다고 느껴지는 인물도 등장한다는 것이다. ㅋㅋ 난 노라가 젤 무서웠다는. ㅋㅋ

 

추리물에는 분명 명석하고 천재적인 캐릭터와 완벽에 가까운 트릭들이 주는 재미가 있다. 헌데 그것은

일종의 환상이다. 현실에서 이뤄지는 범죄들은 그런 복잡한 트릭이나 머리싸움이 아닌 인간 본연의

감정과 본능이 흥건한 밑바닥일 테니까 말이다. <폭스 밸리>는 그런 짜여진 이야기와 밑바닥인

현실 사이의 어느 지점에 존재하는 이야기이다. 그 이야기는 폭스 벨리는 현실성이 존재하는

추리물이라는 말이고 책 속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설득력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인생의 내리막길에서 미끄러져가는 사람들이다. 자의든 타의든

한 번 미끄러져 가는 인생은 가속도가 붙어 추락하고 실패를 막아보기 위해 버둥대는 와중에 범죄가

일어난다. 그리고 한 번 틀어진 인생은 다시 되돌릴 수 가 없는 것이다. 누구나 실패를 한다. 그리고

그 실패를 막아보려 버둥대기도 한다. 버둥대다가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해버리는 인물들을 우리는

뉴스 속에서 얼마나 많이 만나는지...그러나 그 추락에서 다시 기회를 잡는 사람도 생긴다. 그래서

나락까지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는 또 많이 안다. 바로 오가며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그러니까 말이다... 인생은 새옹지마. 오르막길이 있고, 내리막길도 있다. 기회를 잡는자도

기회를 저버리는 자도 결국 모두 나 자신이다.

 

현실성이 있어서 납득할 수 있어서 더 재미있었던 이야기. 샤를로테 링크의 <폭스 밸리>

유럽에서 건너 온 이 추리물을 여름, 당신에게 권해 본다. ^^

- 다락방서 허뭄

 

*

제목  참 당돌합니다. <납치 당하고 싶은 여자>라니요. 우타노 쇼고의 책이

새로 나왔습니다. 빚을 잔뜩 지고 있는 심부름센터의 구로다에게 미모의 여자가 찾아와

"자신을 납치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다는 여자의 부탁을 들어줄까 말까를

고민도 하기 전에 일이 진행되고 구로다는 여차여차 납치를 감행합니다. 기왕에 하는거 치밀하고

정교하게 계획도 세우지요. 일은 술술 잘 진행되고 납치의 대가로 제시한 거액이 아닌 적당한 선에서

돈을 챙기는 계책에도 성공합니다. 자신의 능력에 뿌듯해 하던 구로다가 계획대로 여자가 숨어 있는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세상에 어디 계획대로 흘러가는 일이 있나요, 숨어 있던 여자가 죽어 있는

겁니다. 난 납치만 했을 뿐인데, 이대로라면 살인자가 될 운명!!!

 

당돌한 제목과 야시시한 표지의 이 책은 우타노 쇼고가 1992년에 쓴 작품입니다. 이후에 일본에서

드라마로도 영화로도 만들어 진 적이 있는데, 이 작품 이후 잠시 공백기를 거쳤다가 다시 작품을

써 냈다고 합니다. 90년대 초반에 씌여진 작품이어서 여러가지로 지금과는 다른 트릭의 기술들이

등장하는데 그게 또 그것대로 정겨운 맛이 있어줍니다. ㅋㅋㅋ 시대가 변하고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범죄의 모습도 방법도 많이 달라질 수 밖에 없지 말입니다. ^^;

 

<벚꽃지는..>으로 너무 유명해서 이후 그의 작품들은 반전 반전 하고 기대하게 되는 면이 있는데

<긴 집의 살인>이나 <우리집으로 놀러오세요> 같은 경우를 보면 그냥 무난한 느낌의 작가로 오히려

기억됩니다. 이번책은 위의 두 책에 비해 훨씬 더 가독력이 뛰어난 느낌입니다. 일단 잡기 시작했더니

끝까지 마구 달려가게 됩니다. 그래서 어찌되는 건데 싶어서 말입니다. ㅋㅋㅋ 고독한 형사도 아니고

천재 탐정도 아닌 빚쟁이 심부름센터 소장이지만 읽다보면 나름 귀여워 집니다. ^^;

 

끝까지 금세 다 읽게 되고 읽고 나면 군더더기 없이 딱 맞이 떨어지는 느낌이 듭니다. 더 궁금할 것도

없이 깔끔하군 그런 느낌인 거죠. 그러고 보면 납치 따위 당하고 싶다는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납치처럼 벼락같은 그런 여행은 떠나고 싶어집니다. ㅋㅋㅋ 봄이 오기도 전에 봄바람이 먼저 들려나

봅니다. ~~ 우타노 쇼고의 딱 떨어지는 추리소설 <납치당하고 싶은 여자>입니다.

그냥 쉬면서 말그대로 쉬엄 쉬엄 재미로 읽기에 이 정도가 정말 딱이 아닐까 싶습니다.

- 다락방서 허뭄

 

 

오늘날의 중국은 격차가 아주 심한 나라가 되었다. 우리는 이런 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아주 이상한 극장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곳은

같은 무대에서 절반은 희극을 공연하고, 절반은 비극을 공연하는 극장이다.

- 본문 210 에서

 

 

*

한국을 단 열 개의 단어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어떤 단어들을 고를 수 있을까?

어떤 단어를 고르든 열 개의 단어로 모국에 대해 조국에 대해 가진 복잡한 심정을 과연 담아내기는

할 수 있을까? 누구나 자신의 모국에 대해서라면 좀 아프고 복잡하고 짜증나면서 싫고 또 안쓰러운

그런 복잡다단한 마음을 가지고 있을 테니 말이다.

 

이 수필은 소설가 위화가 열 개의 단어로 자신의 나라 중국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재미있다면

재미있는 것은 이것은 비소설이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이유로 중국 본토에서는

출간이 되지 않았고 중국 본토가 아닌 여러 국가에서는 버젓이 출간이 된 책이라는 것이다.

소설이라는 허구라는 외피를 쓰지 않으면 이야기를 하기 곤란한 체제의 국가 중국, 그러고 보면

우리는 중국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중국, 하면 떠오르는 것은 역시 삼국지나 초한지 같은 고전 소설들이다. 그리고 무협지들과 한 때

좋아했던 홍콩 영화 같은 것들... 그리고 현재의 중국이라면, 현대의 공장을 자처하는 '메이드 인

차이나'와 짝퉁을 생산하는 이미지, 사실 현대 중국의 모습과 문화가 어떠한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거대한 인구와 엄청난 속도의 경제 성장과 더불어 참으로 민망하기 그지없는

촌스러운 문화 수준이 거기에는 함께 한다. 대륙의 위엄으로 대표되는 비아냥은 그런 중국의 현실을

참으로 민망하고도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때문이다. 동양은 기본적으로 서양을 따라가기 위해

뱁새가 가랑이를 찢는 고통을 감내하며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서양의 문화란 그저 다른 것이 아닌

쫓가야하는 것이고, 부러운 것이고, 좋은 것이었으니 말이다.  일본이 백 여년간 체질과 몸을 바꾸고

우리는 오 십년 겨우 넘는는 시기에 따라가려 애쓰고 중국은 삽십년동안 그 간극을 메워 보려 애썼으니

몸이 바뀌고 가랑이가 찢어지고 정신은 못따라가는 혼란이 뒤쫓아오는 것은 당연지사일 것이다.

 

현재의 중국은 누구도 무시하지 못하는 경제 대국이고, 권력을 쥔 강국이다. 그러나 쥐고 있는 힘만큼

본받거나 부러운 국가가 아니다. 뭐랄까 드라마에 흔히 나오는 교양은 없고 돈만 많은 졸부를 대하듯

말이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 중국은 그저 짧은 시간에 돈만 많이 챙긴 졸부. 그걸까? 분명 그것만은

아닐 것이다.

 

내가 중국의 현대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위화 때문이었다. 중국은 우리가 근대라고 말하는 시기를 현대라고 말하고 지금을 당대라고 말한다고 하니, 어째든 중국의 당대 소설들에 관심을

가진 것은 위화의 <허삼관 매혈기>가 시작이었다. 이후에 쑤퉁이나 하진이나 이윤리처럼 조금씩

중국의 당대 소설들을 읽었다. 그러면서 중국이라는 나라와 그 문화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건 다 소설들이다. 소설 너머의 중국, 그리고 지금의 그들의 문화와 생활에 대해서는 딱히.

 

그런데 이번에 나온 위화의 수필집을 읽으면서 내가 생각하는 중국, 그리고 중국인이 바라보는 중국,

중국인의 사고와 문화 등에 대해 여러가지를 알게 되고 또 생각하게 되었다.

 

인민, 영수,독서, 글쓰기, 루쉰, 차이, 혁명, 풀뿌리, 산채, 홀유,

 

열 개의 낱말로 위화와 이야기하는 자신 그리고 중국의 이야기, 위화 열 개의 단어로 중국을 말하다.

중국을 알고 이해하고 또 새로운 중국을 알고 싶은 이들에게 즐거운 그리고 재미있으면서도 기억에

남을 그런 책임이 분명하다. 현재 중국이 가지는 여러 문제를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시선과 그들이

겪어 온 현대사는 그 자체로 코미디면서 동시에 참으로 슬픈 이상한 희비극임을 깨달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의 중국에 대해서도 물론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하게 될 것이다.

근래 읽은 수필 중 가장 재미있고 또 유익했고?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 책이다.

중국을 이해하고 알고 싶은 당신에게 강추!!

- 다락방서 허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