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주인공이 여성이었기 때문이었을까. 사실은 두 가지 사실이 공존하고 있었기에 많은 관점 중에서도 ‘페미니즘’ 을 택하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여성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다.
먼저 언급할 인물은, 주인공인 ‘딸’이다. 괜히 민감해진 탓인지는 몰라도 <바늘>은 초반부터 ‘나’라는 인물에 대한 이미지를 확고히 심어준다. 문신을 받고 있는 남자가 던지는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나’를 무시하고 가벼이 보는듯한 느낌들이 서려 있었으며 그녀를 존중하지 않기에 - 극의 흐름을 보고 있노라면, 존중이라는 단어가 어울리기나 하는가? - 거친 이야기들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리고 기어이 “네가 조금이라도 예쁘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냐. 그림을 그리고 나면 그게 간절해지거든. 근데 넌 문신 기술은 좋지만 도저히 하고 싶은 생각이 안 들어. 하긴, 그림을 그려준 그 많은 놈들이 너한테 덤벼들었다면 너는 매일 항생제를 달고 살아야 했을 거야” 라는 말까지 망설이지 않고 한다. 이 남성뿐 아니라 그녀에게 지금까지 문신을 받아온 수많은 남자들 중 그 누구도 성적인 것을 요구한 사람은 없었다. 한 명의 여성이자 한 명의 독자로서 불편함을 호소하고 싶은 이유는 ‘요구’의 문제 때문이 아니라 남성들의 태도, 그리고 그에 대한 주인공의 반응 때문이다. 분노나 모멸감을 느끼는 것 같지는 않다. 어째서일까? 적어도 외형적인 면에 있어서는 타인들의 시선과 말과 행동에 어떤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여성이기 때문인 것일까. 어쩌면 우리 사회의 단면일 것이다. 조금 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성형수술의 아픔과 금전적 부담들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풍조를 떠올리게 만든다. 여성은 다른 것보다도 외모로 평가 받곤 한다는 차별적 시선들이 아직까지도 만연한 요즘, ‘나’와 같은 사람은 위축되어야만 하는지도, 현실적으로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품에서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모습에서 일반적인 여성성을 상실한 인물이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또 한번 부각된다. 어머니가 살인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전화를 받은 후에도 평소처럼 쇼핑을 하고, 오히려 육류 코너의 붉은 살덩이들 속에서 스님의 삭발한 머리를 연상한다. 전혀 평범치 않은 한 인물을 통해 같은 여성인 작가가 그려내고자 했던 것은 어떠한 반발일지도 모른다. 예쁘고, 남성에게 순종하는 그런 여성상이 아닌 여러 면에서 정반대에 가까운 요소들만을 조합시킨 주인공은 안쓰럽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며 다소 씁쓸한 기운도 남긴다. 차라리 긍정적으로 보자면 ‘툭 튀어나온 광대뼈, 곱추를 연상케 할 정도의 모습들...’ 을 가지고 있긴 하지만 문신 하나로는 누구에게도 불만을 사지 않는다는 그녀의 말이 인상적이긴 하다. 바늘땀을 뜰 때만큼은 더 이상 말더듬이가 아니라고 확고히 이야기하는 주인공 - 사실 작가 - 은 정말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존중 받는 한 명의 여성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다른 인물, ‘엄마’. 역시 조금은 왜곡되고 비틀어진 모습의 인물이다. 미륵암 주지를 살해한 것이 자신이라 주장하였지만 증거도 증인도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혐의가 인정되지 않았으나 끝내는 자살로 삶을 마감하고 만다. 일반적으로 소설 속에서 누군가 죽이고, 죽고 하는 상황이 펼쳐진다면 가해자는 남성이며 피해자는 여성으로 그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비단 ‘살인’ 이라는 극단적 상황까지 가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아니다. 어쩌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폭력이나 피해가 아니라 더 거대한 상황 - 살인 같은 - 일 때는 여성이 가해자인 적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극한의 상황에서는 여성이 표출하는 분노가 더 무서운 것일까. ‘자살’ 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의외로 답이 쉽게 나온다. 남성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는 오히려 드물다.
어쨌든 <바늘> 속에서의 사건은 마지막 부분에서 주인공이 끝이 잘라진 바늘을 발견하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스님을 살해한 사람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살해의 동기, 자살의 이유, 무엇 하나 분명한 것은 없지만 이쯤에서 한번 추측해 보게 된다. 스님을 죽일 수 밖에 없었던 이후,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가 그런 현실을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비록 섬뜩하고 잔인하게 녹즙 속에 바늘을 잘게 잘라 넣었던 ‘엄마’의 모습이긴 하지만 내면적 아픔과 고통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수많은 추측이 난무할 뿐이다. 그녀는, 가해자인 동시에 자신을 지켜내지 못한 피해자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딸’과 ‘엄마’. 두 인물 사이의 ‘관계’ 설정은 어떨까? 딸은 엄마를 닮는다고 했던가. 어린 시절부터 어쩌면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를 닮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육체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부족한 면을 지니고 있었기에 그랬을수도 있고, 아무런 이유 없이 본능적으로 그러했을지도 모른다. 간질 발작 때문에 들어갔던 미륵암에서 나왔을 때 주인공은 강하게 결심했었다. 그곳에서의 기억을 모두 지우겠다고. 그리고 앞으로는 ‘엄마에게 한복 만드는 법을 배워 엄마처럼 고운 옷을 만들리라. 엄마 곁에 꼭 붙어있겠다.’ 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런 소망은 현실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며칠 후 꽤 많은 돈뭉치만을 남긴 채 딸의 곁을 떠나 미륵암으로 - 현파 스님에게로 - 돌아가 버린 것이다. 엄마에게 버림 받은 상태로 남겨진 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 어쩌면, 외형적으로도 보통 사람들과는 좀 다른 그녀가 정신적, 심리적으로 역시 사회 속에 녹아들지 못했던 이유는 이러한 기억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모녀’라고 하는 관계 안에서 비틀어지고 일그러진 이 두 여성의 삶은 결국 한 쪽은 자살로, 또 한 쪽은 여전히 융화되지 못하고 겉도는 상태로 남고 말았다.
페미니즘이라는 것의 궁극적 목적이 ‘여성 자신의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이라 본다면, 천운영의 <바늘>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비록 그 결말이 희망적이지도, 긍정적이지도 않지만 두 여성의 모습을 주체와 비주체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그러할 것이다. ‘나’라는 인물은 비록 사회에서 소외되고, 남성들에게 ‘여성’이라는 면으로는 다소 모욕적인 대접을 받은 채 살아가지만 수동적으로 그들의 삶에 편승하거나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녀의 어머니 역시 살인과 자살이라는 비극적 결말로 생을 마감하고 말았지만 기존의 여성 소설에서 나타나던 억압적인 삶에 눌린 모습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한 가지, 차별적 여성의 모습에 대한 극복까지 미치지 못한 점이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