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꽃잎’ 은 아역배우 시절의 이정현이 출연했다고 하여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곤 하는 작품이다.

제목에 꽃잎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들어가긴 했지만, 정보가 전혀 없었기에 소설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었다. 영화가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는 사실을.

눈에 띄었던 점은 서술자의 위치와 거리 문제였다. 소설을 읽는 내내 복잡하면서도 어렵다고 느꼈던 이유가 이 때문 이었나보다.

남자의 등 뒤에서 소녀를 바라보는 시각, 소녀의 내면에서 서술하는 시각, 소녀를 찾아다니는 오빠 친구들의 시각. 1부터 10까지 친절하게 번호를 붙여 각각의 단락마다 화자를 달리 하고 있는데, 확실히 다른 작품과는 대비되는 독특한 효과를 엿볼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각기 등장하는 인물들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보고, 이리저리 달리 생각도 해보고, 나름대로의 판단도 내려보고.

혼란스러웠던, 하지만 잊어서는 안되고 잊지도 못할 시기와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기에 작가 최윤 은 독자의 판단에 비중을 크게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소설 속에서 항쟁이나 시위와 같은 단어들은 직접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끝까지 읽어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지 않은가. 소녀로 비추어지는 그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아픔, 사라져 간 자의 고통과 남은 자의 슬픔까지 말이다. 소리 지르는 얼굴, 쓰러지는 얼굴, 쫓기는 얼굴.. 소녀의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않는 수많은 얼굴들 그리고 검은 휘장이 소녀를 미치게 만들었던 걸까. 그 어린 소녀를 그렇게 만든 건 과연 무엇이었을까. 끊임없이 의문을 던져 본다.

작가가 주인공을 ‘신체적 불구’ 가 아닌 ‘정신적 불구’ 로 표현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그것은 당시 사건들이 준 심리적 고통과 압박감이 육체적 고통은 가볍게 여길 수 있을 만큼 컸다는 증거가 된다. 소녀 역시, 등뼈의 고통은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한다. 자신이 왜 길을 걸어가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불확실한 뿌옇기만한 그 속에서도 소녀는 무의식 중에 오빠를 찾아 나선다.

정신적 고통과 몸을 감싸는 새벽빛에 느끼는 죄의식. 당시의 우리 민족을 반영해 주는 이 ‘현대’ 소설 속에서 무엇을 찾을 수 있을까. 오빠의 친구들이 소녀를 찾는 까닭은 무엇일까. 누구도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들 스스로도 이유를 확실히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것은 비단 소녀 한 명만의 일이 아니며 작가가 말했듯이 ‘또 다른 수많은 소녀들이 여전히, 언젠가는, 실성한 시선과 충격에 마모된 몸짓으로’ 자신의 상처를 치유해보기 위해 몸부림 칠 것이라는 사실이다. 고통의 길 위에서 서로를 알아볼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의 처절한 몸부림.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일깨워 주려는 몸부림.

(덧붙임 - 소설의 맨 첫 부분에서 번호도 없이 쓰여 있는 한 페이지 가량의 글. 책을 끝까지 읽은 후에 한번 더 보았더니 참 많은 생각이 밀려왔다. 누가 누구에게 하고 싶은 말일까. 우선, 작가가 하는 말이라는 생각은 하고 싶지 않았다. 왠지 너무 상투적이라는 느낌 때문에. 그 글의 화자는 이미 세상에 없는 소녀의 오빠일 수도, 소녀 자신일수도, 혹은 그 남자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 ‘누군가’가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전달하려는 일종의 메시지 일지도. 참, 어렵고 복잡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