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맹자'는 '성선설', '순자'는 '성악설'을 주장한 사람으로 알고 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나 맞는 말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이 책은 순자의 사상을 집약한 『순자』를 완역하고 있는데, 인간은 '악'하다는 말을 찾기란 쉽지 않다.

 

1 권학(勸學)

 

君子曰 學不可以已.靑取之於藍,而靑於藍.氷水爲之,而寒於水.

군자가 말하기를 '학문이란 도중에 그만둘 수가 없다. 푸른 물감은 쪽풀에서 얻지만 쪽보다 더푸르고 얼음은 물이 얼어서 되지만 물보다 더 차다'고 한다.

우리가 흔히 '청출어람'으로 알고 있는 내용에 대한 언급이다. 순자는 이 대목에서 다음과 같이 부연한다.

​

故木受繩則直,金就礪則利,君子博學而日參省乎己,則知明而行無過矣.

그러므로 나무는 먹줄을 받으면 곧아지고 쇠붙이는 숫돌에 닿으면 날카로운 칼이 되는 것이니, 군자는 넓게 배워서 매일 자기 성찰을 되풀이한다면 지혜가 밝아져서 행동에 잘못이 없을 것이다.

여기서 '군자'란 위정자, 즉 임금으로 이해해도 될 듯하다. 다만 '군자는 넓게 배워서 매일 자기 성찰을 되풀이'해야 한다고 언급한 점으로 볼 때, 순자는 인간을 완벽한 존재로 보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순자는 끊임없는 노력과 성찰을 이야기한다. 아무리 재주가 좋아도 꾸준하지 않으면, 꾸준한 이를 따를 수 없다고 주장한다.

 

 

積土成山,風雨興焉,積水成淵,蛟龍生焉,積善成德,而神明自得,聖心備焉.

故不積蹞步,無以至千里,不積小流,無以成江海.

흙이 쌓여 산을 이루면 바람과 비가 일고 물이 괴어 깊은 못이 되면 이무기와 용이 살고 선을 쌓아 덕을 이루면 저절로 신명(神明)에 통하여 성인의 마음이 갖추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한 걸음씩 쌓아나가지 않으면 천리를 갈 수 없으며 작은 흐름(물줄기)이 모이지 않으면 강이나 바다를 이룰 수 없다.

 

 

騏驥一躍,不能十步,駑馬十駕,功在不舍,

鍥而舍之,朽木不折,鍥而不舍,金石可鏤,

기기(騏驥)가 한번 크게 뛴다고 하더라도 열 걸음을 나아갈 수 없고 노둔한 말일지라도 열흘 달리면 역시 거기에 미칠 수가 있다.

일의 성과는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데 있다. 새기다가 중도에 그만두면 썩은 나무도 부러지지 않는다. 새기고 새겨서 쉬지 않으면 금속류나 돌도 아로새길 수가 있다.

이 얼마나 대단한 반역인가. 그는 위정자에게 말한다. "당신이 아무리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꾸준히 노력하는 나보다 못할 수 있다."라고.

『순자』는 기본적으로 『중용』이나 『맹자』보다는 『논어』, 『대학』에 맞닿아 있다. 비록 1편인 '권학' 다음에 '수신'편을 내세우고 있지만 이는 『중용』에서 말하는 개인의 수양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즉, 개인의 수양보다는 통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위정자는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하는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리고 순자는 이를 통해 3 '불구'편에서 군자와 소인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것과 같다.

 

 

君子能亦好,不能亦好,小人能亦醜,不能亦醜.

君子能則寬容易直以開道人,不能則恭敬繜絀以畏事人,

小人能則倨傲僻違以驕溢人,不能則妬嫉怨誹以傾覆人.

故曰,君子能則人榮學焉,不能則人樂告之,

小人能則人賤學焉,不能則人羞告之.是君子小人之分也.

군자는 능해도 호감을 주고 능하지 못하더라도 호감을 준다. 소인은 능해도 추해 보이고 능하지 못하더라도 추해 보인다.

군자가 능하면 관용과 정직을 가지고 남을 계발 지도하고 능하지 못하더라도 공경스럽게 제 몸을 낮추어 가지고 남을 삼가 섬긴다.

소인은 능하면 오만하고 도리에 어긋나 남을 너무 방자하게 대하고 능하지 못하여도 샘내고 비방해 남을 뒤집어엎는다.

그러므로 말하기를 '군자가 능하면 사람들이 배우기를 좋아하고 능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깨우쳐주기를 좋아한다.

소인이 능하면 사람들이 그에게 배우기를 창피하게 여기고 능하지 못하면 사람들이 깨우쳐주기를 부끄럽게 생각한다.'라고 하니 바로 이것이 군자와 소인의 다른 점이다.




 

言無常信,行無常貞,唯利所在,無所不傾,若是則可謂小人矣.

말에는 일정한 믿음이 없고 행동에는 일정한 진실됨이 없으며 오직 이(利)가 있는 곳에만 마음 쏠리는 바가 있다. 이와 같다면 가히 소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군자든 소인이든, 그네들이 정치를 한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도대체 정치란 무엇인가?

순자는 '왕제'편에서 말한다. 정치란 현자나 유능한 이는 등용하고 어리석거나 무능한 자는 그만 두게 하는 것이라고.




 

請問爲政.

曰賢能不待次而擧,罷不能不待頃而廢,元惡不待敎而誅,中庸不待政而化.

分未定也.則有昭繆. 雖王公士大夫之子孫,不能屬於禮義,則歸之庶人,雖庶人之子孫也,積文學正身行能屬於禮義,則歸之卿相士大夫.

故姦言姦說姦事姦能遁逃反側之民,職而敎之,須而待之,勉之以慶賞,懲之以刑罰,安職則畜,不安職則棄.

五疾上收而養之,材而事之,官施而衣食之,兼覆無遺.

才行反時者死無赦.夫是之謂天德,是王者之政也.

 

정치하는 법을 묻고 싶다.

대답해 말하기를 ‘현자나 유능한 이는 차례를 기다림 없이 등용하고 어리석거나 무능한 자는 지체없이 그만 두게 하며 극악한 자는 깨우침 없이 벌주고 일반 사람은 형벌 가함 없이 감화시킨다.

신분은 아직 정해지지 않더라도 그 등급 절차는 있는 것이다. 비록 왕공(王公) 사대부의 자손일지라도 예의를 힘써 할 수 없다면 그를 서인으로 돌리고 비록 소인의 자손일지라도 학문을 쌓아서 몸을 바르게 하고 행동이 능히 예의를 힘써 할 수 있다면 그를 경상(卿相)이나 사대부 신분으로 귀속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간악한 말과 간악한 논리를 펼치고 간악한 일과 간악한 재주를 부리며 사람 눈을 피하고 마음 바르지 못한 민은 한결같이 가르쳐 깨우치며 잠시 기다려 포상을 힘쓰게 하고 형벌로 응징하며 하는 일에 안정되면 머무르게 하고 안정하지 못하면 내버린다.

다섯 종의 질환자는 관이 가두어 부양하고 재능을 가늠하여 일을 시키며 벼슬자리에 임용하여 옷 입고 밥 먹게 하여 모두를 다 함께 감싸서 빠짐 없게 한다.

그 기능과 행동이 시의(時宜)와 반하는 자는 죽이고 용서하지 않는다.

대저 이를 일러 천덕(天德)이라 말한다. 이것이 바로 왕자의 정치라고 하는 것이다.’

라고 한다.

 

그리고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예'에 다해야 한다고 말한다.

 

 

有亂君,無亂國,有治人,無治法.

羿之法非亡也,而羿不世中,禹之法猶存,而夏不世王.

故法不能獨立,類不能自行,得其人則存,失其人則亡.

法者,治之端也,君子者,法之原也.

故有君子,則法雖省,足以徧矣,無君子,則法雖具,失先後之施,不能應事之變,足以亂矣.

不知法之義而正法之數者,雖博,臨事必亂.

故明主急得其人,而闇主急得其埶.

急得其人,則身佚而國治,功大而名美,上可以王,下可以覇,不急得其人,而急得其埶,則身勞而國亂,功廢而名辱,社稷必危.

故君人者,勞於索之,而休於使之.

書曰,惟文王敬忌,一人以擇,此之謂也.

 

 

나라를 어지럽히는 군주는 있어도 저절로 어지러워지는 나라는 없으며 다스리는 사람은 있어도 저절로 다스려지는 법은 없다.

예(羿)의 활 쏘는 법이 없어지지 않았지만 예의 법이 대대로 적중시키지는 못했으며 우(禹)의 법이 아직도 존속하지만 하(夏)가 대대로 왕 노릇을 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므로 법은 홀로 설 수 없고 유례(類例)도 혼자서 행해질 수 없으며 그 사람을 얻으면 존속되고 그 사람을 잃으면 없어진다.

법이라 하는 것은 다스리는 단서이고 군자라 하는 것은 법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군자가 있으면 비록 법이 간단하더라도 족히 두루 미치고 군자가 없으면 비록 법을 갖추어 전후로 시행하더라도 일의 변화에 대응할 수 없어서 족히 어지러워진다.

법의 본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법의 개별조항만 바르게 하는 자는 비록 박식하더라도 실제 일을 당하면 반드시 어지러워진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그 사람을 얻는데 먼저 힘쓰고 어두운 군주는 그 세를 얻는데 먼저 서두른다.

그 사람을 얻는데 먼저 힘쓴다면 그 자신은 편안하고 나라가 다스려지며 공적이 크고 명성은 훌륭하니 상질은 왕이 될 수 있고 하질이라도 패자가 될 수 있다. 그 사람 얻는 데 먼저 힘쓰지 않고 그 세 얻는 데 먼지 서두른다면 그 자신은 고생하고 나라가 어지러우며 공적이 패하고 이름이 욕되어 사직이 반드시 위태롭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군주 된 자는 그 사람을 구하는 데 수고하더라도 그 사람을 부리는 데는 쉬게 된다.

『서』에 이르기를 ‘문왕이 삼가 두려워하여 훌륭한 사람을 택하였다’라고 하니 이것을 가리켜 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군자와 소인은 원래 구별되어 있는 것인가?

순자는 '영욕'편에서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 군자나 소인이나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다.

 

 

凡人有所一同.飢而欲食,寒而欲煖,勞而欲息,好利而惡害,是人之所生而有也.是無待而然者也.是禹桀之所同也.

 

모든 사람은 동일한 데가 있다. 배고프면 먹으려 하고 추우면 따뜻하게 하려 하고 피곤하면 쉬고자 하며 이를 좋아하고 해를 싫어함은 바로 사람이 태어나면서 갖는 바이다. 이는 후천적으로 습득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禹)나 걸(桀)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 둘을 가르는 가? 순자는 말한다. 그것은 '바꾸는 일부터 시작하여 닦는 노력을 이루고 끝까지 다하기를 기다'려야 한다고.  사람의 성품은 원래 '소인'과 같기 때문에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한다고.

 

 

 

堯禹者,非生而具者也.

夫起於變故,成乎修,修之爲,待盡而後備者也.

人之生故小人,無師無法,則唯利之見耳.

 

 

요·우라고 하는 이도 태어나면서 갖추어진 자가 아니다.

대저 그 바꾸는 일부터 시작하여 닦는 노력을 이루고 끝까지 다하기를 기다린 뒤에 갖추어진 자다.

사람의 성품은 본래 소인 같다.

스승도 없고 규범도 없다면 오직 이득만이 눈에 보일 따름이다.

 

 

 

故曰,仁者好告示人.

告之示之,靡之儇之,鈆之重之,則夫塞者俄且通也,陋者俄且僩知也.愚者俄且知也.

是若不行,則湯武在上曷益,桀紂在上曷損.

湯武存則天下從而治,桀紂存則天下從而亂.

如是者,豈非人之情固可與如此,可與如彼也哉.

 

옛말에 이르기를 ‘어진 자는 남에게 도를 알리고 가르치기를 즐겨한다’고 하였다.

그것을 알리고 그것을 가르치며 그것을 익히고 그것을 행하며 그것을 따르고 그것을 거듭한다면 저 완미하게 꽉 막힌 자도 갑자기 통할 것이고 고루한 자도 갑자기 관대해질 것이며 어리석은 자도 갑자기 지혜롭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하지 아니하면 탕(湯)이나 무(武) 같은 성왕이 위에 있다 해도 무슨 이익이 될 것이며 걸·주 같은 폭군이 위에 있다 해도 무슨 손해가 있겠는가.

탕·우가 있으면 천하가 따라서 다스려지며 걸·주가 있으면 천하가 따라서 어지러워질 것이다.

어찌 사람의 성정이 본래 이와 같이 될 수도 있고 저와 같이 될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순자가 말한 '성악'이란 '나쁨'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라고 해야 할 것이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권학'을 다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리라. 

 

순자, 순황, 군주, 성악설

글은 하나의 표현 매체이다. 따라서 글을 읽다보면 글쓴이의 자의식을 종종 발견하곤한다. 그렇다면 '번역'은 어떨까? 원저자의 자의식이 드러날까? 아니면 번역자의 자의식이 드러날까?

 

김용옥의 글을 읽다보면, 번역자의 자의식이 드러남 속에 원저자의 자의식은 실루엣처럼 가리워져 있음을 알 수 있다.

 

莫見乎隱이며 莫顯乎微니 故로 君子는 愼其獨也니라  

 

숨은 것처럼 잘 드러나는 것이 없으며, 미세한 것처럼 잘 나타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군자는 홀로있음 獨을 삼가는 愼 것이다.

 

 

주체의 심화는 고독의 과정이다. 고독은 수신의 대전제이다. 하나님은 나의 고독 속에서만 온전하게 발현된다. 남이 보지 않는 데서, 남이 듣지 않는 데서 계신 戒愼하고 공구 恐懼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군자를 군자다웁게 만드는 일차적 조건이다. 존재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인륜관계에서 발현되지만 나의 몸을 하나님화하는 과정은 일차적으로 나 자신에게 부여되는 천명 天命을 홀로, 고하게 구현하는 것이다. 고독하게 구현한다는 것은 나의 존재의 책임을 나 홀로 짊어진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의존의 대상이 되면 하나님이 아니다. 하나님은 나의 몸의 버전이며 이상태이다. 그것은 자기생성적이며 나의 몸의 과정에 끊임없이 참여하는 가치평가이며 새로움과 탈바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이며 창진이다. 이 모든 과정이 홀로 있을 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고독 속에서의 선택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신독 愼獨"이다. 신독은 고독이지만 폐쇄가 아닌 개방이다. 노아의 방주에 들어간 짐승이나 사람들도 결국 문을 열지 않으면 구원을 얻지 못하고 굶어죽는다. 장자의 애벌레도 고치 속에서만 안주하면 나비가 되어 창공을 날아갈 기회를 잃는다. 모든 종교적 노력에 있어서 도그마의 고정성은 그 종교의 자살을 의미한다. 신독은 영원한 개방이다. 신독은 고독의 심연에서 하느님을 끊임없이 개방적으로 해후하는 것이다.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김용옥은 내용을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자의식을 강하게 내비침으로써 글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강렬하게 제시한다.

이것이 김용옥 번역의 묘미일 것이다.

중용, 번역, 김용옥, 자의식

동양 고전을 읽는다는 것은 옛사람의 사상을 접하고 배우는 것이다. 그런데 그 뜻을 오롯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사회 문화를 알아야 하고, 그와 더불어 당시의 언어를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 당시의 언어를 오롯이 알고 있는 이는 얼마나 되며, 그것을 알고자 공부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그래서 우리는 '번역'된 책을 읽는다.  

김원중 교수의 번역은 그 말이 수려하고 섬세하기로 유명하다. 그리고 이해하기 쉬운 말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또하나의 덤이다.

 

 

見賢而不能擧 擧而不能先 命也 見不善而不能退 退而不能遠 過也

 

어진이를 보고도 능히 들어쓰지 못하며, 들어쓰되 먼저하지 못함이 태만함이요, 불선한 자를 보고도 능히 물리치지 못하며, 물리치되 멀리하지 못함이 과실이다.

 

현명한 사람을 보고 등용할 수 없고, 등용했더라도 우선시하지 않았다면 천명이다. 선하지 못한 사람을 보고도 물러나게 할 수 없고, 물러나게 하더라도 멀리할 수 없다면, 허물이다.

내용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는 두 번역 중 무엇이 나은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 그러나 두 번역을 읽으며 어느 것이 이해하기 쉬운가라는 질문에는 두 번째 것이 훨씬 낫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번역, 김원중, 대학, 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