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라는 것을 읽다보면 이유를 떠나, 내 마음에 딱 맞아 집중해서 읽어 나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지난한 싸움을 하는 듯이 책과 내가 겨루기를 하는 기분이 드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내 마음에 딱 맞아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읽어 나가는 경우는 그다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차라리 어릴 때에는 이러한 것들이 종종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를 먹으면서 점차 책과 겨루기를 하면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엠마누엘 칸트, 너무 많이 들어서 친근한 이름이지만 제대로 읽은 책이 몇 권이나 있나 싶다. 썩 드다지 맘에 드는 이름은 아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특별한 이유가 없음에 "법이론"이라는 책을 샀다.

정말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처음부터 재미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래서인지 맘 편하게 천천히 읽어 내려갔다. 읽히면 읽히는 대로, 막히면 막히는 대로 읽어내려간다.

그닥 눈에 띄는 구절도 없이, 원래 이 사람 글은 어려우니까…~~ 원래 '법'이라는 것이 내 생활 권역은 아니니까…~~

다 읽고 난 후의 감흥은?

 

없다.

 ㅠㅠ

 

다만, '법'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태도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서양이나 동양이나 그리 크게 다르지는 않다는 것을 알았으며,

다만, 내가 궁금한 것은

이 책을 출간한 "이학사"라는 출판사는 도대체 무엇을 먹고 살까 ? 라는 점이다.

"이학사"에서 출간한 책을 몇 권 읽었는데… 그것들은 모두 소위 "돈이 되는" 책은 아닌 듯 싶다. 

대중매체에서 언급하는 것과는 달리, 읽기 편안한 책은 아니다.

아돌프 히틀러는 <나의 투쟁>의 서문에서 

 

문어보다는 구어가 사람을 설득시키는 데는 더욱 유효하며, 따라서 세계의 모든 위대한 운동은, 위대한 문필가에 의해서가 나이라 위대한 연설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연설을 규칙적.통일적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는, 그 원칙적인 것이 영구히 글로써 남아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여기에 적힌 것은 우리가 다같이 수행해 나가는 사업에 내가 가하는 하나의 초속에 불과할 뿐이다.
  

 라고 하였다. 그리고 이 책은 '문어'보다는 '구어'적 성격이 강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기에 지난하고 어렵다. 아렌트의 여타의 책과는 달리, 오히려 읽기에 불편하다는 것이 첫째 특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하는 메시지는 매우 명확하다. 

처음부터 아렌트는 일관되게 주장한다. 그의 저서 <인간의 조건>에서 

 

말과 행위가 일치하는 곳에서, 말이 공허하지 않고 행위가 야만적이지 않는 곳에서, 말이 의도를 숨기지 않고 행위가 실재를 현시하는 곳에서, 권력은 실현된다. 그리고 행위가 관계를 침해하거나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확립하고 새로운 실재들을 창조하는 곳에서만 권력은 실현된다. 

라고 언급했듯이, 말과 행동 그리고 사유에 대한 주장은 매우 일관되다. 마치 아이히만에 관한 재판은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사례일 뿐.

그리고 아렌트는 말한다. 말과 행위가 일치하기 위해서는, '사유'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정확하게 말한다면, '무사유'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그리고 우리는 역사적으로 '무사유'의 위험성에 대해 정치/사회적으로 목격하지 않았던가.

 

 

자신의 개인적 발견을 도모하는 데 각별히 근면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는 어떠한 동기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리고 이러한 근면성 자체는 결코 범죄적인 것이 아니다. (…) 이 문제를 흔히 하는 말로 하면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그로 하여금 경찰 심문을 담당한 독일계 유대인과 마주앉아 자신의 마음을 그 사람 앞에 쏟아 부으며 어떻게 자기가 친위대 중령의 지위밖에 오르지 못했고 또 자기가 진급하지 못한 것이 자기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또다시 설명을 하면서 4개월 동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상상력의 결여 때문이었다. 원칙적으로 그는 이 모든 일의 의미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법정에서 있었던 최후 진술에서 그는 "[나치] 정부가 처방한 가치의 재평가"에 대해 말한 것이다.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결코 어리석음과 동일한 것이 아닌)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그리고 만일 이것이 '평범한' 것이고 심지어 우스꽝스러운 것이라면, 만일 이 세상의 최고의 의지를 가지고서도 아이히만에게서 어떠한 극악무도하고 악마적인 심연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그것이 일반적인 것이라고 부르는 것과 아직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무지는 그것이 무지인 한에서만 축복으로 남아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무지를 깨닫게 되는 순간, 그는 무지하지 않기를 원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 나 스스로가 뭔가를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을 대, 그 뭔가를 알려고 하는 욕망은 보편적이며 아마도 저항 불가능할 것이다. 이것은 인류의 원초적인 유혹이었으며, 그 어떤 남자나 여자도 - 그리고 아이의 경우엔 특히나 - 이런 유혹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이것은 세익스피어의 말마따나 무엇을 먹느냐에 의해 자라나는 욕망이다. 지식에 대한 갈증을 만족시키기는 불가능하다. 그리고 여러분이 더욱 똑똑할수록, 이 갈증 역시 더욱 심해진다.우리는 흔히 지식이 많은 사람이 되기보다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렇다면 '지혜'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도렌의 <<지식의 역사>>는 우리 인류가 지식을 어떻게 쌓아왔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인도, 중국에서 지식을 쌓아가는 과정과 알파벳과 같은 문자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압축적이고 명료하게 서술하고 있다.

그렇지만, 문제는 너무 간략하고 정보는 있으나 서사가 없다는 점이다. 서사가 생략된 채 정보만 제시되는 느낌이라 이를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다는 점이 아쉽다.

다만, 작가의 박학 다식한, 아니 심학 다식한 지식에 대해 경외를 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