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과 사슴이 싸움을 벌였다. 말은 사냥꾼을 찾아가 사슴에게 복수하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사냥꾼은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정말로 복수하고 싶거든 내가 고삐로 널 조종할 수 있도록 입에 마구를 채우고, 사슴을 쫓는 동안 내가 편히 앉도록 등 위에 안장을 얹어야 해." 말은 기꺼이 동의했다. 결국 말은 사냥꾼의 도움을 받아 사슴을 물리치는 데 성공했다. 말은 사냥꾼에게 말했다. "이제 그만 내려와요. 입과 등에 채운 것도 풀어주세요."하지만 사냥꾼의 대답은 이랬다. "이봐,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이제 막 마구를 채웠잖아. 난 지금 이대로가 좋단 말이야."
- <말과 사슴, 그리고 사냥꾼>, 《이솝 우화》, 재인용
이 책은 위의 '이솝 우화'의 한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 이야기는 그리 어려운 이야기도 아니다. 아주 단순한 알레고리를 담고 있을 뿐, 우리는 '사냥꾼'의 도움이 갖는 위험성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이후 글쓴이는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검은셔츠단'을 역사적 사례로 들면서, "아웃사이더 정치인들 모두 내부로부터, 그리고 선거나 강력한 정치과의 연합을 통해서 권좌에 올랐다. 기존 엘리트 집단은 인기 있는 아웃사이더를 받아들여도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으며, 나중에 자신들이 권력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은 어긋나고 말았다. 그들은 두려움과 야심, 그리고 판단 착오라는 치명적 실수로 파멸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들은 권력의 열쇠를 잠재적 독자자에게 기꺼이 넘겨주었다'고 평가한다.
그럼, 기성 정치인들은 왜 이런 바보같은 짓을 할까? 그것은 위에 언급했듯이 '얼마든지 제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는 자신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위험한 '아웃사이더'에게 고삐를 쥐어주는 것이다. 글쓴이는 '기존 정치 지도자가 정치적 책임을 저버릴 때 그 사회는 전체주의로 들어서는 첫 걸음을 내딛게 된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잠재적 대중선동가는 모든 민주주의 사회에 존재하며, 때로 그들은 대중의 감성을 건드린다. 그러나 어떤 사회에서는 정치 지도자들이 경고신호를 인식하고, 이러한 인물들이 권력의 중앙 무대로 올라서지 못하도록 방어한다. 극단주의자나 선동가가 대중의 인기를 얻었을 때 기성 정치인들은 힘을 합쳐 그들을 고립시키고 무력화한다. 물론 극단주의자적 호소에 대한 대중의 반응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치 엘리트 집단, 특히 정당이 사회적 거름망으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정당은 민주주의의 문지기 gatekeeper인 셈이'라고 말하며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물론 정당의 제1 목표는 정권을 잡아서 자신과 자신들을 지지하는 유권자의 지지에 보답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민주주의'라는 기초 아래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고 민주주의를 해치면서까지 권력을 잡으려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자유를 담보로 사냥꾼에게 고삐를 주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정당은 이런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글쓴이는 매우 회의적으로 접근한다.
왜냐하면 잠재적 독재자를 감별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이는 역사적 사례를 들면서 정당이 자신에게 부여된 역할을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그럼 우리의 정당은 어떠한가? 진정으로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가?
과거를 통해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해보자.
제1공화국부터… 이승만 정권 때 우리의 정당은 진정으로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는가?
장면 정부를 거쳐(워낙 짧아서리) 박정희 정권 때 우리의 정당은 진정으로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는가?
아니면 전두환, 노태우 때는 어떠했는가? 진정으로 그 시기 우리 정당은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는가?
만약 그때 정당이 문지기로서의 역할을 다하였다면…. 정녕 그 정부가 수립될 수 있었을까?
비록 이 책은 트럼프 정부에 대한 자기반성적 성향이 강하지만, 난 이 책에서 '타산지석(他山之石)'을 읽는다.
자고로 "산에서는 넘어지지 않으나 개미 구멍에서 넘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사소한, 충분히 제어가 가능할 것이라는 어리석음으로 사냥꾼에게 자신의 고삐를 주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
책의 마지막에 글쓴이는 인용의 방법을 사용하여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나름의 답을 한다.
민주주의는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침이다. 민주주의는 'don't shove(밀지 마세요)'에서 'don't'에 해당하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톱밥을 가득 채운 셔츠에 난 구멍이며, 높은 모자 위에 움푹 들어간 곳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절반 이상이 절반 이상의 경우에서 옳다는 생각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다. 투표장에서 느끼는 프라이버시, 도서관에서 느끼는 교감, 곳곳에서 느끼는 활력이다. 민주주의는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이며, 9회 초의 점수다. 민주주의는 아직 반증되지 않은 이념이며, 타락하지 않은 노래 가사이다. 민주주의는 핫도그에 바른 머스터도, 그리고 배급받은 커피에 넣은 크림이다. 민주주의는 전쟁이 한창인 어느 아침에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대답해달라는 전쟁위원회의 요청이다.
민주주의,
어떻게_민주주의는_무너지는가,
정당,
문지기,
트럼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