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는 처벌받으면 되지만, 악덕은 박멸의 길 밖에 없다.

-      한나 아렌트, 『전체주의의 기원』1 –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 두 권 중 이제야 첫째 권을 읽었다. 이 책을 옮긴 이진우는,

전체주의 정권은 무한히 많고 다양한 인간들을 마치 모든 인간이 하나의 개인인 것처럼 조직한다. 인간의 세계를 구성하는 복수의 다원성은 사라지고 단수의 획일성만이 존재한다. 개인들은 전체주의 운동의 도구가 되어 ‘한 사람’(one man)이 된다. 대중들이 똑 같은 의견을 같은 목소리로 말하고 동일하게 행동할 때 그들은 전체주의의 폭민이 된다.

고 말하였다. ‘똑같은 의견을 같은 목소리로 말’한다. 일찍이 우리가 교과서에서 보아왔던 ‘전체주의’에 대한 개념이다. 그런데 아렌트는 이러한 전체주의가 어떠한 과정을 통해 발생하였으며, 형성되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우선 ‘반유대주의’에 대해 언급한다. 그리고 반유대주의 사건으로 대표성을 띠고 있는 드레퓌스 사건을 언급한다. 사실, 난 반유대주의나 드레퓌스 사건, 그리고 아렌트가 바라본 제국주의와 인권에 대한 종말 등을 여기에서 굳이 언급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느낀, 2019년 대한민국을 살고 있는, 현 시점에서 나에게 와 닿은 내용들과 그에 대한 내 생각을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제1부 제3장에 나오는 디즈레일리는 "대중 사이에서는 범죄인 것이 소수에게는 단지 악덕일 뿐이다."라고 언급하였다고 한다. 이 구절과 함께 나에게 제일 먼저 꽂힌 문구는, 제목에서 언급한, ‘범죄는 처벌받으면 되지만, 악덕은 박멸의 길 밖에 없다.’이다. 불평등과 불공정의 사이에서 촛불을 밝혀 어둠을 몰아내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겠다고 정권을 바꾼 지금의 우리 사회는, 진정으로 평등과 공정으로 나아가고 있는가? 그러한 방향을 향해 한걸음이라도 걷고 있는가?

지금의 정부와 여권은 10여 년전 ‘폐족’을 자처하며, 좀더 나은 사회를 꿈꾸다 실패했을 때 어떠한 결과를 맞이하는 지 절감하였다. 그리고 그들을 ‘폐족’으로 만든 우리는 밝음에서 어둠으로 전환하는 시간이 얼마나 짧은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였다. 그리고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외치면서 다시한번 밝음의 세계로 나아가려 하고 있다.

그럼 지난 10년의 시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아렌트의 말에서 나는 조금의 근거를 찾는다.

무력하거나 권력을 상실한 집단을 박해하는 것은 그리 유쾌한 광경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박해가 오로지 인간의 비열함 때문에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권력이 모종의 기능을 하며 일반적으로 유용하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까닭에 실질적 권력에 복종하거나 견디는 한편, 권력 없이 부만 가진 사람들을 증오한다. 착취와 억압조차도 사회가 돌아가게 만들 나름의 질서를 확립시킨다. 단지 권력을 상실한 부와 정책적 대안 없는 냉소만이 기생충 같고 무용하며 역겨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 이유는 이런 조건이 사람들을 서로 묶어주는 끈을 모두 잘라 버리기 때문이다. 착취하지 않는 부에는 흔히 착취자와 피착취자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마저 결여되어 있다. 정책 없는 냉소에는 착취자가 피착취자에 대해 통상 가질 수 있는 최소한의 관심조차 들어 있지 않다.

너무 잔인하지 않은가? 자신과 다른 입장을 취한다고 해서, 단지 권력을 상실한 존재라고 해서 ‘기생충 같고 무용하며 역겨운 것’이라고 여길 필요가 있을까? 그리고 그네들을 ‘박해’하는 것이 옳을까? 온갖 박해를 받은 유대인 학자 아렌트의 말이라고 믿겨지지 않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 지위를 잃은 모든 계급은 결국 그들 자신의 폭민 조직을 통합하고 확립한다. 폭민 조직의 선전과 매력은 다음의 가정을 기초로 한다. 즉 악덕의 형태를 띤 범죄를 기꺼이 자신의 구조 안에 편입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사회는 이제 공개적으로 범죄자를 허용하고 공적으로 범죄를 자행하면서 악덕을 청소할 차비를 갖출 것이라는 가정 말이다.

<중략>

사회와 정치적 대의제도에서 배제된 폭민은 필연적으로 의회 밖의 행동에 의지하게 된다. 더욱이 이들은 몸을 숨기고 무대 뒤에서 활동하는 그런 운동과 영향력에서 정치적 삶의 실질적 힘을 찾으려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 광화문에서 천막을 치고 자신의 조직을 만들어 주장을 앞세우는 무리들을 본다면 아렌트는 혜안을 가진 사람이라고 아니할 수가 없다. 위에 인용한 구절이 2019년 대한민국 사회에 적용되지 않는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나는 『전체주의의 기원』1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2019년 대한민국을 본다.

범죄는 처벌받으면 되지만, 악덕은 박멸의 길 밖에 없다.

바람소리는 소슬하고     風蕭蕭兮
억수는 차갑구나!        易水寒
장사가 한 번 떠나면     壯士一去兮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리. 不復還

9월 10일 김익상은 마침내 큰 뜻을 품고 북경을 떠났다. 역두에는 약산 이하 동지들이 모두 나와 장한 길에 오르는 그를 바래 주었다.
“장사일거해! 불복환(壯士一去兮! 不復還)일세그려.”
동지 가운데 하나가 이렇게 말하였다. 물론 농으로 하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에는 또 무한한 감개가 들어 있었다.
“쓸데없는 소리 말게. 이제 일주일이면 내 넉넉히 성공하고 돌아올 것이니 술상이나 잘 차려놓고 기다리게.”
그는 말을 마치자 껄껄 웃었다.

장량(張良)의 철퇴와 형가(荊軻)의 칼을 품은 지 오래되었고,
공자같이 바다를 건너고 굴원(屈原)처럼 소상강(瀟湘江)에 갈 생각을 자주 하였다.
오늘 답답한 마음 안고, 물귀신이 되려니
그 옛날 일찍이 와신상담 했었네.
이번 걸음 벌써 평생에 품어 온 뜻이니,
관문(關門)을 향하지 않고 나루터를 찾아 나선다.

구축왜노(驅逐倭奴)
광복조국(光復祖國)
타파계급(打破階級)
평균지권(平均地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