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라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할까? 그 대상이 가까운 사람일 때가 많음에도 알 것이라 생각하며 지내는 경우가 많은 듯싶다. 정작 잘 모르는 이들과 대하기 어려운 이들, 사무적으로 얽힌 이들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더 많이 하는 것은 아닐까.

 

  최근 들어 시집이 내게 오고 있다. 다시 시를 쓰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인지 주위에서도 돕는 것 같다. 친한 시인 누나의 신간 세 번째 시집부터 학교 후배이자 이제는 광흥창 시학교 시 멘토로 연을 맺고 있는 시인 동생의 선물, 그리고 곧 올 같이 펀딩에서 펀딩 한 시집까지... 파블로 네루다의 '시'처럼 시집이 나를 찾아온다.

 

  이 시집도 나를 찾아온 책이다. 제목이 끌렸는데 관련된 시를 읽으며 형네 개 차돌이가 떠올랐다. 사실상 나와 함께한 시간도 많기에 항상 형네 가족이 집을 비울 때 내가 돌보는 15살의 요크셔테리어. 잘 보지도 못하고 냄새도 잘 맡지 못하는 녀석이 떠올랐었다.

 

  시집을 천천히 읽은 게 오랜만인지 시인의 시들이 들어온다. 빠르게 보기 바빴다면 자세히 보지 못했을 시. 이미지를 떠올리며 읽는 시는 어렵지 않았고, 시인이 왜 주목받는 시인인지 관심을 갖게 된다. 「픔」이란 시를 읽고 '픔'으로 끝나는 단어를 선물하는 지인 시인 그 상황을 다시 시로 풀어내는 시인의 시선이 따뜻했다. 

 

  따뜻해져야 할 시간 더 차가워졌던 것 같다. 사회에 찌들어 뒤통수를 여러 번 맞으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은 경험하지 않고 쉽게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데까지 들인 시간과 노력에 대한 보상 때문인지 모른다. 적절한 타이밍에 시가 다시 나를 찾아왔다.

 

  언어유희의 호기심에 읽기 시작한 시집에서 따뜻함을 만났다. 그리고 천천히 시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러시아워의 좁은 지하철 공간 속에서 느리게 시를 읽는 순간 다른 시공간이 교차했던 것은 아닐지.

 

  부담 없이 읽을 수 있었고, 시인의 따듯함을 느끼기 좋았던 시집이었다. 이제 시인의 팟캐스트 방송을 들어봐야 할 차례인 것 같다. 시를 좋아하는 이들 쌀쌀해진 날씨에 움츠리는 이들이 읽어보면 좋을 시집이라 전하며 리뷰를 마친다.

  알쓸신잡에서 알게 되어 유현준 교수의 책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 이어 주문한 책. 앞서 언급한 책이 먼저 나왔음에도 새 책으로 주문한 책을 이제라도 읽어야겠다는 생각에 책탑에서 꺼냈다. 방송을 통해 건축에 대해 잘 설명해 주는 저자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기대 이상으로 흡인력이 있었다. 이 책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여는 글(뭐 본문에서도 나온다)에서 만나는 괴베클리 테페라는 기원전 1만~8천 년경에 축조되었다는 신석기 유적에 대한 설명은 기존의 학설을 깨는 발견이었다니 세상 일은 정말 모를 일이다. 성경에서 나오는 바벨탑의 형태가 지구라트였다는 사실도 배운다.

  여는 글에서부터 저자의 생각에 동조를 하게 되는 도시에 대한 주장. 1장으로 이어지는 학교와 교도소의 공통점은 전과자들이 학교 다녀왔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변화가 필요함에도 쉬운 통제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바꾸는 것을 두려워한다. 분명 창의성을 강조하면서도 획일화 시키는 모습은 언행불일치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 저자가 제시하는 디자인의 학교와 시스템이 언젠가 도입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서울에서 자랐지만 어린 시절 나도 골목과 동네에서 뛰어놀고, 물방개와 올챙이, 땅강아지를 잡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데 귀중한 자산이 되어 주고 있다.

  2장에서도 사옥의 높이와 공간 설계가 어떻게 브랜드의 아이덴티티에 영향을 주는지 보여준다. 건축물 때문에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예를 드는 기업들의 모습이 수평적 기업인 것이 우연만은 아닐 것이라 여겨진다.

  3장에서 말하는 공원 등의 공간이 집에서 그나마 멀지 않은 곳에 있다. 2~30분 걸어가야 하는 곳이지만 내 감수성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오늘도 연주회를 보러 가며 여의도 공원을 왔다 갔다 했다. 지금의 내 상황이라면 더 우울해질 수도 있지만 그럭저럭 살아가는데 주위 지인들과 이런 환경의 영향은 무시하긴 어려울 것 같다.

  4장의 공간도 여의도와 영등포에 대형 쇼핑몰이 있기에 쉽게 갈 수 있다. 하지만 동네는 골목길이 많은 예전의 동네다.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기에 익숙하다. 주변 동네에는 다양한 변화가 있었지만 살아온 시간에 비해 엄청난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여전히 어린 시절 놀던 건물도 있고(당시의 공간은 사라졌다), 공원도 작게나마 흔적은 유지하고 있다. 내가 걷기를 좋아하게 된 것도 이런 골목길에 살아 그런 건가?라는 생각도 해본다. 종종 다른 코스로 움직이게 되는데 골목길은 골라 가는 재미가 있다. 어린 시절에는 별로 생각하지 못했으나 이제는 그 덕에 동네의 여러 골목이 어디로 연결되는지 잘 알게 됐다. 언제까지 이 골목길들이 유지될지 모르겠으나 지금의 소중함에 더 자주 애용을 해줘야겠다.

  동네에 재개발 바람이 불고 있으나 내 생각에 어려울 듯싶다. 그럴 거라면 리모델링으로 동네가 유지되며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다. 철길 옆의 오래된 건물들은 수명을 거의 다했고, 30년 전 있었던 다세대주택들도 수리가 필요한 시기다. 아파트도 30년 이상 됐기에 변화는 있어야 하는데 동네 자체가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기 어려운 곳이라 어찌 될지 모르겠다. 정말 획기적인 방법으로 특화되는 동네 재개발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다. 내 생애의 대부분이 이곳이었기 때문에...

  몽골제국이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가졌지만 로마와 다르게 빨리 망한 이유에 대해서도 접하게 된다. 크게 생각하지 못했는데 유목 민족이기에 정복지 통치의 어려움이 건축 문화였다는 점은 와닿는다. 만약 텐트 문화가 아닌 거대 건축 문화가 있었다면 세계사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위치에너지와 주가 총액'에서 롯데 그룹과 현대차 그룹이 지었거나 짓고 있는 건축물의 위치에너지와 현재 주식 총액의 비가 동일하게 난다는 사실은 신기한 일이다.

  8장에서 현대 도시를 만든 백만장자들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알쓸신잡' 때 들었던 처마 양식에 대한 내용을 다시 만나니 반가웠다. 위도에 따라 처마의 경사도가 달라지는 이유가 기후 문제 해결을 하기 위한 지능의 결과물이었다. 별로 생각하지 않고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건축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음을 방송을 볼 때도 배웠지만 책을 통해 더 자세히 알게 된다.

  맺는 글에 알짜의 내용들이 많이 보인다. 저자의 생각도 많이 담겨 있기에 흥미롭게 읽으며 독서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우리를 화목하게 만드는 도시를 함께 만들어 보자.'라는 저자의 말을 새기며 '어디서 살 것인가'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생각하게 만든 책이었다.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해 사진을 찍는다. 유치원을 미술 학원으로 나왔는데 당시 어린 시절 내 그림 실력에 자부심은 없다. 나보다 6년 먼저 같은 유치원을 나온 형은 그림에 소질 있었던 게 기억난다. 내가 먹지를 대고 그려야 할 그림을 형은 그냥 보고 그렸으니까.

 

  그림을 잘 그리지 않지만 사진을 오래 찍었기에 그 감각은 나쁘지 않다. DSLR로 찍던 일상 속 풍경을 이제는 주로 스마트폰으로 기록한다(과거 휴대폰 시절에는 사진 기능이 있음에도 퀄리티가 맘에 들지 않아 찍지 않았다). 하지만 종종 인스타그램에서 보게 되는 다른 이들의 스케치와 드로잉은 또 다른 끌림이 있었다.

 

  나름 드로잉과 스케치에 미련이 있어 관련 책들을 읽기도 하고 남들에게 공개하지 않는 공간에서 끄적였다. 단 하루였으나 서양화가인 친구에게 배우기도 했다(신기하게 그때 배운 내용이 이 책에 보인다 선 긋기 연습). 생각을 해보면 캘리그래피 손글씨를 처음 시작할 때도 책에 선 긋기는 항상 있었다. 그걸 꾸준하게 다 해주진 않고 며칠 하다 말고 '그냥 쓰자!' 주의로 4년이 넘게 매일 쓰는 것도 내겐 글씨와 그림의 경계에 있다.

 

  책을 펼치고 저자가 전하는 야매 스케치의 마음가짐 중 1~3은 글쓰기와도 연관이 된다. 결국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익숙하기에 지금도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일 뿐. 처음 '선 가지고 놀기'를 보며 저걸 언제 매일 하지? 싶었다. 나 같은 마음의 독자와 수강생을 많이 겪어봤기에 여지(잠깐! 하루 10분 준비운동)를 뒤에 남겨둔 것에 감사한다. 그마저도 하기 싫어지면 그림 그릴 생각을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드로잉은 아이패드의 '프로크리에이트' 앱을 추천하는데 태블릿이 없는 내겐 뒤로 가면 갤노트로 그리는 것도 있겠지? 하는 기대감을 조금은 했지만 아쉽게도 없었다. 뭐 드로잉이 익숙해지면 갤노트로도 그리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이패드 뽐뿌에 발목을 잡히진 않았으나 손글씨 때처럼 필기구의 뽐뿌는 온다. 흔디 작가가 자주 간다는 장소도 이미 손글씨 때문에 익숙한 포인트다. 그래도 기본 필기구는 있기에 연필에 뽐뿌가 온다는 것에 안심을 한다. 이러다 잘 그려지면 색연필도 지르고 추가로 지름신을 영접해야 할지 모르나 현재의 경제 사정이 접신의 가능성을 차단하고 있어 다행이다.

 

  책을 보며 어반 스케치와 여행 드로잉이 내가 원하는 그림 그리기 였음을 상기시킨다. 암스테르담 레이크스 뮤지엄의 이야기는 또 다른 경험을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을 한다. 사진 촬영이 금지이기에 그려야 하지만 그래서 더 뭔가 그릴 수 있는 게 아닐지...

 

  1~2장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그리는 내용이라면 3~4장은 그리기에서 응용의 단계가 나온다. 이 단계까지 가기 이전에 우선 1~2장의 단계가 습관화될 수 있다면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길을 먼저 간 저자가 자신의 경험을 정리해 놨으니 일단 그림을 꾸준히 그리는 게 우선이다. 걷기도 전에 날아갈 생각하는 것은 무리다.

 

  부담스럽지 않게 그림 그리기를 접했다. 텍스트도 많았으나 그림으로 된 책이라 더 그림에 집중하게 해주는 책이었다. 기본기를 제대로 연마해야 늘겠지만 일단 '하루 10분 준비운동'을 어떻게 꾸준히 습관화 시킬지를 고민해야겠다. 이거만 돼도 분명 어느 순간 그리고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손글씨 쓰기도 그렇게 시작해서 지금까지 하고 있으니).

 

  함께 글쓰기처럼 함께 그리기도 좋은 것 같다. 과거 홍대 북카페 작업실에서 바리스타로 일할 때 주말마다 그림 그리는 손님들이 단체로 왔던 기억이 난다. 떠난 후 테이블 위에 남겨진 지우개 똥만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모임이었다. 함께 그리기 부분을 보니 문득 그때가 떠오른다.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걱정인 이들이라면 읽고 실천하면 도움이 될 책이다. 일단은 그림 그리기에 소질은 없으나 끄적이기 시작해야겠다. 언제가 될지 모르나 내가 좀 괜찮다 싶어지면 SNS에도 올리며 기록을 하고 싶다. 내 그림을 누구에게 보여줄 정도가 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자신의 노하우를 전한 저자에게 감사를 전하며 리뷰를 줄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