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2시에 자곤하던 나인데, 오늘은 유난히 잠이 오질 않았다.

바쁘다는 핑계로 머리맡에 쌓아두기만 했던 책들 중

유난히 공지영이란 이름이 아른거려 집어들었다.

표지 안쪽 커버에 단풍을 배경으로 환히 짓는 정갈한 미소가 아름답다.

어쨌든 다섯시간에 걸쳐 끝 페이지를 넘기고 이렇게 밤을 샜다.

읽기 전 처음,중간,끝 부분을 대충 흝어보고 '이거 희한한데'

위녕, 둥진, 제제, 쪼유...처음엔 이 희한한 이름들이

"공지영 씨가 인터넷 소설도 연재하시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결국 호기심에 나도 모르게 위녕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리고 소설을 읽으면서 참으로 오랜만에 눈물 펑펑 쏟았다.


사실 이 소설이 다루는 내용은 색다를 건 없다.

세번의 이혼을 겪은 작가엄마, 그 중 첫째딸이 10년도 훌쩍 지나서야

다시 가정으로 돌아와 성이 다른 두 동생과 함께 지내는 일상사...

살다보니 친인척이 죽음의 고비를 겪거나 실제로 죽기도 하지만

나 위녕에겐 인생에 다시없을 중대한 사건이라는 것도 어디 보자, 하고 달려들면 사소하기 그지 없다.


하지만 그 일상이,

'사람'으로 태어나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노곤한 일인가.

불혹의 엄마든, 초등학생 제제든, 스무살의 위녕이 바라보는 인생이든 저마다의 사연은 있다.

굳이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살아가는 과정이 눈물겹고 또 아름다운 것이다.


남들과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 성이 다른 세남매 중

한 아이의 아버지가 운명을 달리했을때

아버지의 장례식만 세 번 겪어야 하는 아이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는가.




내가 유독 눈물을 쏟은 장면은

키우던 고양이 코코가 병이 들어 죽었을 때였다.

나 역시 주워와서 한달 남짓 키우던 강아지가 차에 치어 죽었을때

한없이 울기만 하던 내 모습이 위녕의 모습에 겹쳐지는 듯 보였고

"그래도 사랑받으려고 잠시 머물다 가는가보다"는 엄마의 말도 같을줄이야..

공지영씨가 그때 내 주변에서 날 보고 있었을까? 이런 생각까지 들었다.





말로 지지고 볶고 병줬다 약까지 보너스로 내미는 

공지영식 촌철살인의 내러티브는

세상 풍파 다 겪고도 한없이 태평한듯 농이나 던지다가도

불쑥불쑥 인생의 쓰린 단면을 보듬어주는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모습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난다.




...

나는 시류를 모르는 형광등에,

좋게 말하면 결과론적인 사람이고, 솔직해지자면 내 관심사외에는 알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에필로그까지 다 읽고 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공지영 작가 본인의 가족사가 상당부분 소설 전체에 깊이 배어있다.

세남매의 이름도 모두 실명 그대로였다니...

하지만 타인의 조금 남다른 사생활에 대한 관음증 따위 보다는,

그냥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딪히고 다투다가도 서로 용서하고 보듬어 줄줄 아는

세상 앞에 큰 소리로 가족이라고 외칠 수 있는 그 사랑이 아름다워 오래오래 기억될 작품인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