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자전거를 훔친 날(사토 마키코 글, 장연주 그림, 고향옥 옮김, 웅진주니어’은 네 편의 이야기가 실린 아동소설이다. 이 책에는 네 명의 주인공이 ‘처음’ 겪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처음 산 브래지어’, ‘처음 오빠를 만난 날’ 등 소제목은 모두 ‘처음’으로 시작한다. 이 ‘처음’은 어떤 이는 겪고 어떤 이는 겪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각 각의 ‘처음’은 사춘기를 맞은 어린이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잊혀지지 못할만한 것들이다.
이야기 주인공들은 6학년 같은 반 친구이며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일들로 엮어져 있어 이야기에 생동감을 준다. ‘처음 산 브래지어’의 주인공 아야코는 9월 18일 일요일에 혼자서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사러 갔으며, ‘처음 오빠를 만난 날’의 주인공 마리나는 같은 날 처음으로 배다른 오빠를 만나게 된다. ‘처음 자전거를 훔친 날’의 쇼고가 자전거를 훔친 날도 같은 날이며 ‘처음 가진 우리들의 집’의 료헤이가 자신들만의 집으로 삼을 ‘빈 집’을 발견한 것도 같은 날이다. 이 날을 중심으로 또는 발단으로 각 각의 사건들이 전개된다.
앞의 이야기에는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주변인물로 나온다. ‘처음 산 브래지어’에는 주인공 아야코의 엄마가 ‘마리나’의 엄마와 통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다음 이야기인 ‘처음 오빠를 만난 날’에서는 마리나가 주인공이다. 현재의 이야기에서는 주변인물에 불과한데 다음 이야기에서는 주인공이 된다. 이처럼 우리 모두는 각자 생활에서 주인공이다.
네 편의 이야기에서 공통적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생각하게 한다. ‘처음 산 브래지어’에서는 자신의 마음을 잘 알아주지 못하는 엄마에 대한 원망스런 마음이 나타나 있다. 아야코는 애써 스스로를 위로하며 자신은 결코 엄마처럼 하지 않으리라 결심한다.
‘처음 오빠를 만난 날’에서는 마리나와 언니 오리카가 처음으로 ‘배다른 오빠’의 존재를 알게 되고, 또 처음으로 오빠를 만나면서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처음 자전거를 훔친 날’의 주인공 쇼고는 사춘기에 들어선 친구 유스케의 반항적인 태도에 의아해하면서도 친구의 의견을 따른다. 유스케의 어머니는 쇼고가 보는 앞에서 슬리퍼로 유스케의 머리를 때리기도 하고 게임기의 전원을 갑자기 꺼버리기도 한다. 쇼고의 눈에는 그것이 문제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린이 독자들은 유스케가 자전거를 훔쳐서라도 일상을 벗어나 모험을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훔쳤다기보다는 버려진 자전거를 잠시 빌려 탄 것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처음 가진 우리들의 집’의 주인공 료헤이에게는 아홉 살이나 차이 나는 여동생이 있다. 우연히 엄마의 전화통화를 듣던 일곱 살 어린 료헤이는 부모님이 아들이 아닌 딸을 원했다는 것을 알고 충격에 빠진다. 이후 열 살 때 여동생이 태어난 후 동생에 대한 시샘을 ‘무관심’으로 표현한다. 동생을 편애하는 부모님도, 동생도 장난감도 없는 ‘우리들의 집’을 발견하고 료헤이가 얼마나 좋아했을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료헤이의 친구 소타는 부모님이 이혼하여 엄마와 살고 있다. ‘우리들의 집’이 포크레인으로 무참히 짓밟힌 날 ‘여기에 새 집이 지어지면 행복한 가족이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소타의 대사가 여운을 준다.
어른들은 뭐든지 쉽게 잊어버린다. 아야코의 엄마가 언제 가슴의 멍울을 느끼고 처음으로 브래지어를 하게 되었는지 잊어버린 것처럼. 어릴 적 동생만 예뻐하는 부모님에게 잔뜩 불만을 품었으면서도 어른이 된 후에 역시 작은 아이를 편애하는 료헤이의 엄마처럼. 그러나 아이들은 현재를 살고 현재를 느끼고 있다.
이 책은 어린이들에게는 공감대를, 어른들에게는 ‘잊혀진’ 사춘기 어린이들의 마음을 읽게 해 준다. 어린이용 책이지만 어른이 읽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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