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막걸리 잔이 생각날 때가 있다. 
시골길을 걷다가 마주치는 농부들과 악수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촌구석에 소리없이 쳐박혀 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나는 여전히 도시 한복판에서 
커피와 와인을 마시고, 
때로는 시끄러운 도심 한가운데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살아가고 있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정신적으로나마 촌동네에 살게 해주는 즐거움을 던져준 책이다.

꼭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처럼 마법이 나오고 뭔가 날라다녀야만 판타지는 아닐 것이다.
지금 있는 공간으로부터 다른 공간으로 이동할 수 있다면, 
지금 갇혀지고 답답한 생각으로부터 좀 더 자유롭고 여유로운 공간으로 움직일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판타지가 아닐까.

사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을 
도시인들에게 땅냄새와 사람냄새를 맡게해주는 그리움의 판타지라고 정의하고 싶다. 

책의 저자는 이인환, 그의 약력을 보면 그는 여전히 글밥을 먹고사는 작가요, 식자다.
그런 그가 사는 곳은 도시가 아닌 경기도 이천의 조그마한 시골마을 자오리다.
그리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온갖 소소한 이야기들을 글로 기록해 
독자들에게 전할 책으로 엮은 것이다.

허황된 거짓이 아니기에 따뜻하게 마음에 와닿고,
거추장스러운 예의를 차리지 않았기에 책을 읽는 내내 마음이 편하다. 
심심풀이 땅콩같은 차원에서 읽을 수도 있겠고,
마음속 고향을 그리워하는 연정으로 책장을 넘겨갈 수도 있겠다. 

누군가 갑자기 고향이 그립다고 말하거나,
혹은 시골가서 살아보고 싶다고 말한다면 
나는 기꺼이 이 책을 권해줄 생각이다.  



이인환, 이레, 우리동네이야기, 이천, 자오리

동유럽은 왠지 멀고 춥게 느껴진다.
때론 음산하게까지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동유럽을  
한번쯤 가볼만한 곳으로 느껴지게 만드는 많은 요소들이 있다. 
카프카의 소설, 쇼팽의 음악, 그리고 수많은 예술가들의 자유와 사랑, 
그렇게 지금도 여전히 불멸의 기억으로 기록되고 있는 것들이 동유럽의 기억과 항상 함께 하기 때문이다. 

책의  시작은 바로 프라하다.
몇해전 '프라하의 연인' 이란 드라마를 통해 대한민국의 수많은 이들을 설레게 했던 도시다. 
기본적인 수준의 역사이야기를 거쳐 저자는 곧장 프라하의 구시가지 광장으로 독자들을 끌고 간다.
곁들여진 사진과 해박한 지식이 배어나는 설명을 따라 책을 읽어가노라면 
마치 우리가 가이드를 따라 이동하는 여행객이라도 된 착각에 들 정도다. 
가보지 않아도 가본 것 같은 호흡과 느낌덕분인지,
꽤 유명세를 치른다는 황금소로 상점을 거쳐, 카를교에 이르면 숨이 다 찰 지경이다, 
책의 시작이 된 프라하 편만 보더라도 더이상 
이 책과 관련한 구구절절한 설명이 불필요해질지 모른다. 

걸어본 사람은 안다.
차가 아닌 두발로 여행지를 걸어본 사람은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동유럽의 다양한 도시들에 대한 진짜 기록이다. 
또한 누구라도 이 책의 저자가 
그누군가가 될지도 모르는 이들에게 
자신의 동유럽 도시 경험을 진심을 담아 
전하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채게 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숨이 차올랐던 나처럼. 

눈치챘겠지만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편안한 설명과 함께 적확하게 곁들여진 수많은 사진들이다. 
책의 몰입을 방해하지 않는 딱 적당한 수준의 설명과 함께 
제대로 뽑아낸 사진들이 있어 이 책은 
동유럽을 떠날 이들에게는 충실한 가이드북으로,
굳이 여행계획을 세우지 않는 이들에게도
충분한 감상의 기회를 선사하는 책이 될 것 같다.

물론 책을 읽자마자 몸이 근질근질해져 
배낭을 챙기고 싶어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겠지만 말이다.
기분좋은 사실 하나 더, 그런 이들을 위해 이책에는 
<예술의 도시 포인트 가이드>라는 부록이 하나 더 달려있다. 
꼭 둘러볼 곳과 여행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이다. 

이제 남은 것은 무엇일까?
떠나야 한다는 의지깨치기와 그냥 좋았다는 기분좋은 감상,
어느 쪽이라도 좋겠다.
특히나 동유럽을 닮아가는 이 가을에는 말이다.



예술의도시, 이태훈, 프라하, 카프카, 동유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