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이덕일의 '조선왕 독살사건'이란 책을 읽었었다. 실록이나 야사에서 독살설이 있었거나 의심되는 왕들의 사례를 모아 당시의 정치상황과 왕권 신권의 대립을 통해 왕들의 타살을 유추해보는 책이었는데 상당히 흥미진진했다. 왕의 타살을 이해하려면 당시의 시대상황을 알아야 하는데 그 책을 읽다보니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왕조 500년의 궁중사가 한 눈에 정리가 되었었다. 오늘 소개할 '대비, 왕 위의 여자'도 그런 맥락에서 상당히 흥미로운 책이다. 조선시대 어린 왕의 뒤에서 수렴청정하며 실제 왕 역할을 했던 네명의 대비들의 이야기로 흔히 정치를 남자들의 세계에서 이해하고, 중전이나 후궁들은 내명부에 조용히 지내다 사라져간 시각이 있을수 있는데 목숨을 내걸고 자신들의 당과 가문을 위해 싸우던 남자들 못지않게 치열하게 싸우고, 때론 아들을, 손자를 제거하면서까지 친정가문의 중흥을 꾀하던 독한 여자들의 이야기가 시대상황을 풀어가며 재미있게 펼쳐진다. 그리고 저자 김수지도 역사서의 대가 이덕일의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출신이다.

 

그런데 뒷방 늙은이가 아니라 왕의 위에서 군림하던 여자들의 이야기, 당파의 당리당략에 따라 또는 친정가문의 부활과 중흥의 목적에 따라 친아들, 손자인 왕을 제거하기도 하는 무서운 이 여자들, 그리하여 조선을 쥐고 흔들던 여성 권력자들의 이야기를 다 읽고나면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오늘날 여자대통령의 탄생처럼 여자로서 이만한 자리에 오르고 한 국가를 통치하면서 길이남을 업적을 남겨놓았다면 후세에 우러러 기림을 받을텐데 이 책에 나온 정희황후 윤씨, 인수대비 한씨, 정순왕후 김씨, 순원왕후 김씨 네 여자는 조선의 역사를 후퇴시키고 온갖 부정부패, 비리로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결국에는 망국의 길로 향하는데 커다란 일조를 한다.

 

우리 역사의 위대한 대왕 세종의 아들 문종, 그리고 그 문종의 아들로 이어지는 적통의 왕 단종을 죽이고 왕권을 찬탈한 수양대군의 부인 정희왕후 윤씨는 세조의 사후 아들 예종이 왕위를 잇자 효를 강조하는 유교사회 조선에서 왕의 위에서 권력을 휘둘렀다. 국가의 안위나 백성들의 삶은 관심도 없고 반정공신들인 신숙주, 한명회 등과 연합해 조정을 장악하고 자기 친정가문인 윤씨집안의 사욕을 위하다가 개혁을 지향하던 예종과 사이가 멀어진다. 부정부패를 막아보려던 젊은군주는 번번이 자신의 정책을 반대하는 정희왕후와 사사건건 부딪치다가 나이 19세, 재위 14개월만에 갑작스런 죽음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 죽음이 수상한 이유는 역대 왕들이 아프거나 병이 중하면 투병의 기록이 실록에 남아있기 마련인데 예종의 죽음은 너무나 급작스러워서 투병한 기록마저 거의 없을뿐더러 죽음이후 시신이 변색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너무나 태연스러운 태도를 보인것도 의문이다(심지어 울지도 않았다고 한다). 예종이 남긴 아들은 4세였는데 너무 어리다하여 세조의 죽은 큰아들의 둘째아들 12살 자을산군(후에 성종)을 후계자로 지목하고 수렴청정으로 직접 나라를 통치한다.

 

두번째 주인공 인수대비 한씨. 그는 성종의 어머니이자 세조의 큰아들이었던 의경세자의 부인이었다. 세조 다음의 왕위를 약속받아 후에 왕후가 될터였지만 의경세자가 세상을 뜨는 바람에 세조의 둘째아들 예종에게 세자의 자리를 빼앗기고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궁에서 쫒겨가다시피 한다. 후에 예종이 죽고 그 아들이 너무 어리다하여 다시 궁으로 돌아와 둘째아들이 왕위를 계승하는 바람에 왕후는 못됐지만 대비가 되서 정치무대 전면에 서게된다. 정희왕후의 수렴청정 기간이 끝나고 성종이 친정을 하는 재위기간 내내 성종의 뒤에서 왕을 조종하며 실제 권력으로 나라를 통치했다고 봐야한다. 하지만 후에 연산군의 어머니였던 중전을 폐하고 사사시키는 바람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도 한 사실이 잘 알려져있다. 인수대비에 대한 역사의 평도 그리 좋지못하다. 조선을 개혁하고 부패를 척결하는 대신 가문과 자신들의 이익만을 좇았다고 볼수있다.

 

세번째는 조선 역사상 가장 악녀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는 영조의 젋은 부인 정순왕후 김씨 차례다. 현빈이 출연한 영화 '역린'에서 정조와 맞서 왕의 목숨까지 노리는 역할로 등장했었다. 실제로 15세 나이로 60이 넘은 늙은 왕과 혼례를 치웠던 정순왕후는 당시 조정을 장악하던 노론세력과 힘을 합쳐 사도세자를 제거하는데 성공하고, 또 정조와도 끊임없이 갈등관계를 지속하며 정조의 개혁정치를 방해했다. 그럼에도 정조는 할머님인 정순왕후에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괴로워했던듯 하다. 정순왕후가 속한 노론 그룹은 장희빈의 아들이었던 경종도 제거했었고, 또 후임으로 영조를 끌어다 왕을 만들었으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않던 사도세자도 제거했던 세력이었기에 정조도 재임기간 내내 정순왕후나 노론신하들의 살해위협속에서 살았다. 그런 정조는 재임 24년만에 종기치료를 받다가 사망했는데 치료를 담당했던 의관이 정순왕후쪽 사람이었다. 수은을 태운 연기를 종기에 쬐는 방식으로 치료했는데 당시에 수은은 꽤 약효가 뛰어난 약재로 취급됐었다고 한다. 수은을 직접 먹어서는 별 해가 없지만 연기로 흡입할 경우 인체에 치명적인 독이 된다. 정조는 죽으면서 "수정전!"이라고 외치고 죽었는데 수정전은 정순왕후가 거처하던 전각의 이름이었다. 정조 사후 아들 순조는 11세였고 정순왕후는 결국 수렴청정으로 실질적인 여왕이 된다. 그로부터 행하는 정책들이 정조가 벌였던 사업들을 폐하고, 각종 개혁정책을 원래대로 회귀시키는 정치를 한다. 노론벽파에 대항하던 시파와 남인들을 탄압하기 위해 천주교 신자들을 죽이는 신유박해를 일으키고 순조비로 들어와있던 순원왕후가 보는앞에서 외척정치란 어떤것이라는 전형을 보여주고 세상을 뜬다.

 

마지막 순원왕후 김씨. 정조의 아들 순조의 비로 궁에 들어와 정순왕후의 수렴청정을 눈으로 보고 친정가문의 외척정치를 직접 배운셈이다. 우리가 흔히 조선후기 순조, 헌종, 철종 삼대의 기간을 백성은 도탄에 빠지고, 통치세력은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로 얼룩지며, 국력은 쇠약해지고, 안동김씨 풍향조씨가 나라를 좌지우지하던, 그래서 나라가 망해가던 단초를 제공한 시기였다고 배운다. 그 한가운데 순원왕후 김씨가 있었다. 왕은 순조, 헌종, 철종으로 바껴가지만 실제 나라를 통치하던 사람은 순원왕후 였으니. 순조34년에 세상을 뜨자 아들인 헌종은 9세였으므로 어머니인 순원왕후가 수렴청정을 시작했다.이미 순조의 재위기간에도 순원왕후의 친정집안인 안동김씨가 세도정치를 하고 있었고, 수렴청정 기간에는 더더욱 노골적으로 안동김씨의 세상이 되었다. 6년동안의 수렴청정 기간이 끝나고 헌종이 친정을 펼칠때 헌종은 어머니 순원왕후와 갈등관계에 접어든다. 안동김씨 일족의 세도정치를 혁파하고 개혁을 펼치려는 헌종은 사사건건 어머니와 부딪치는데 그러다 22세의 나이에 갑자기 사망한다. 사망당시 몸이 불편한데 어의의 치료를 받지않고 할머니 순원왕후가 보낸 의원과 탕약으로 치료를 했다. 도제조가 "근일 조리하는 탕제를 대내에서 드시므로 바깥에서는 드시는 것이 무슨 처방인지 몰라서 우려가 적지 않으니 약방의 사체로 말하면 이것이 어찌 말이 되겠습니까? 이 뒤로는 다려 들이고 지어 들이는 것이 모두 탑교에서 나온다면 사체가 당연할 것이고 여정의 답답함이 쾌히 풀릴 것입니다."라는 실록의 기록이 있다. 결정적으로 순원왕후가 안동김씨 수장인 김좌근과 주고받은 편지중에 "불행히 내 집에 패악한 자식이나, 이 남의 없는 일을 당하니 무엇이라 말할길 없다....(중략)...조상과 부모를 추락시키려 하는 것을 살려둘 길이 없으니 큰 결단할 수 밖에 없으니, 판서가 강기없어 결단을 못하여 미루어 가면서, 왕을 몰아내지 않으려고, 참으로 이대로 놓아두면 그는 이에서 더할 것이니, 내가 말한대로 처치하소."라고 한다. 내 집에 패악한 자식이란 친손자인 헌종을 뜻하는게 아닐까? 헌종은 22세에 후손도 없이 사망하였기에 다음 왕은 왕족중에 순원왕후가 지목한 철종이 왕위를 잇는다. 철종은 나이가 어렸기에 순원왕후가 다시한번 수렴청정으로 통치하게 된다.

 

단순히 실록의 사료를 중심으로 짜맞추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다. 저자 나름대로 과학적인 근거를 찾아 합리적인 추측을 하는데 이런 시도가 돋보인다.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꼭 읽어보시라고 추천하고 싶다.

제목 그대로 <류성룡의 재발견>이다. 그간 류성룡 하면 임진왜란 당시의 명재상, 이순신을 발탁한 사람 정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을 통해 류성룡에 대해 정확히 그리고 세부적으로 임진왜란 당시 어떻게 3도체찰사로 조선군을 이끌어 전쟁을 지휘했고, 영의정으로 어떻게 명군과 협력해서 군량을 조달하며 전쟁을 치워냈는지 알게됐다.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 재직중인 저자 송복은 류성룡이 정유재란 후 탄핵받아 파직된 뒤 고향에서 죽기 3년전 저술한 <징비록>을 토대로 임진왜란 당시의 조선 조정과 대신들의 움직임, 명과 조선의 외교를 낱낱이 분석해냈다.

 

 

 

역사에 문외한이라든지, 역사서를 싫어하는 분들에게는 이 책을 읽는 것도 고역이 될 수 있다. 역사서를 좋아하는 분일지라도 저자와 다른 시각을 갖고있는 분들에게는 역시 불편할 수 있다. 저자는 철저히 류성룡의 입장에서 그의 정적들을 비판하고, 오로지 류성룡만이 당시 조선의 충신이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명재상이라는 시각의 글들로 가득 차있다. 그런 점을 강조하기 위해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의 허구를 파헤치기도 한다. 어차피 두 인물이 동시대 인문들이 아니라서 직접적인 정적이나 사상의 대립으로 발전하진 않았지만 십만양병설은 당시 조선의 사정으로 보아 실현가능하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율곡이 당시 십만양병을 주장했다는 근거가 미약하다는 점을 이야기 한다. 류성룡의 징비록과 당시 상소문등을 통해 본 조선의 선조와 조정은 정말이지 국가라 할수도 없을 정도로 참담하기 그지없는 정부를 구성하고 있더라...

 

 

 

 

이 책을 읽고 새롭게 알게된 임진왜란에 대해 몇가지 적어보자.

1. '정명가도' - 명을 치러 가니 조선을 길을 내어달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쟁전 조선에 요청한 서한이다. 당시 우리가 황국으로 모시던 명을 치겠다니, 이는 불가능할 뿐더러 실제 왜가 군사를 일으킨다해도 길을 내어줄순 없는 일이었다. 그럼 왜는 정말로 명을 정벌하기 위해 조선을 침략한걸까 아니면 조선침략이 목적이었고 명을 치겠다는건 단지 핑계였을 뿐일까? 나는 이전까지 후자의 내용이 사실일거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그렇게 쉬운 얘기가 아니더라. 먼저 당시 조선은 후자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명은 조선으로부터 왜의 야욕을 보고받기 전 정보망을 통해 왜가 실제로 명을 치려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조선에 원군을 파병한건 조선 조정의 청대로 조선군을 도와 왜를 쫒아내려는 지원군의 성격이 아니라, 어차피 조선을 점령한 후 명나라 요동을 공격할테니 전장을 중국땅이 아닌 조선땅에서 치루겠다는 의도로 대군을 파병한 것이다. 왜의 진심은 알 길이 없다. 후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과 강화협상 등으로 종합해보면 애초부터 명을 공격할 의사는 없지않았나 추측할 뿐.

 

2. 우리는 항상 한국사를 배워올때 일본을 우리보다 한수 아래의 민족으로 치부해왔다. 우리가 문화를 전수해줬고, 항상 우리를 상국으로 모시던 왜구, 왜적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임진난 당시 일본의 국력(전쟁 수행능력)은 조선은 상대도 아니고 오히려 명나라 보다도 우위에 있다고 분석한다. 아마 당시 명이 지는 해였던 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떠오르는 해였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무기에서 조총이라는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의 전투력이 월등히 조선이나 명을 앞섰다고 한다.

 

3. 일본의 선봉군 고니시 유키나가의 군대는 1592년 4월 13일 금산에 상륙해서 5월 2일 한양을 점령했다. 하루 평균 20킬로미터 속도로 북진해왔는데 정작 평양성을 함락시킨후 선조가 피신해있던 의주까지 진군을 하지않고 평양에 주저앉아 중요한 시간을 허비하고 말았다. 그의 경쟁자 가토 기요마사는 함경도 최북단까지 진군하여 임해군과 순화군 두 왕자를 포로로 잡는 공을 세웠는데도 주력군을 지휘하던 고니시 유키나가는 평양성에서 나오지않고 주둔만 하고있었다. 그덕에 조선군은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었고, 군수물자가 보급됐으며, 명의 지원군이 들어왔고, 바다에서는 이순신이 왜의 보급로를 차단하고 호남을 지킬수 있었다.

 

4. 명나라 군대는 우리가 알던것처럼 조선을 도와주러 파병된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왜와 싸우려는 마음보다 강화를 통해 휴전하고 조선을 분할통치 하려는 의도였다. 한강이남 지역은 일본의 통치를 인정하고, 한강이북지역만 조선영토로 남겨두는 조건으로 휴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일본도 같은 생각이었으니 당시 휴전협상에서 전혀 목소리를 낼수 없었던 조선의 처지를 생각하면 분할통치는 기정사실화 되는듯 보였으나 '하늘의 도움으로' 또는 '이해할수 없는 외교의 실수로' 이 계획이 무산되었다. 이미 이때부터 한일합병은 예정되어진 일이었던 셈이다.

 

임진왜란, 정유재란 7년의 기간동안 류성룡의 활약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혼자서 명나라를 상대하고, 군수물자를 보급하고, 조선군을 재정비해서 전투를 총괄 지휘하고, 민심을 수습하고, 명의 조선왕 교체의도를 막아내고, 이순신을 보호하고, 무엇보다 조선분할 야욕을 막아냈다. 전후 정적들의 무고로 파직당할 위기에서도 무고를 주장하며 상대를 공격하는 대신 모든것이 본인의 잘못이라며 스스로 파직을 청하기까지 한다. 또 조정에서 물러나자마자 왕이 다시 불러주기를 기다리며 도성에 머무르는 대신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복귀하려는 선조의 명을 끝까지 거부하며 다시는 조정에 돌아가지 않고 '징비록'을 저술한 후 세상을 떳다. 여러모로 보아 보통 정치인이 아니었다. 조선사 아니 한국사를 통해 또 이런 정치인이 어디 있었을까.

아직까지 해외여행을 한번도 못가본..(신혼여행 빼고) 나지만 언젠가 갈 기회가 생긴다면 그 일순위는 베트남이 될것이다. 언젠가부터 베트남이라는 나라는 묘한 호기심을 자극했고, 가깝게 느껴졌었다. 같은 동남아 국가라도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은 우리와 좀 다른 이국적인 생김새지만 베트남, 캄보디아 이쪽은 피부색만 좀더 검을뿐 상당히 한국인들과도 닮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된다. 언제부터 베트남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되었나 좀더 고민하고 생각하다보니 어렴풋이 답을 찾을수 있었다. 내가 그동안 몰랐던 역사적 사실 바로 베트남의 역사가 놀라울 정도로 한국과 닮았다는 점과, 그간 미국을 도와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해 공산 북베트남의 침략으로부터 자유 남베트남 국민들을 지키는 전쟁에 참여했다고만 알고있던 월남전에 대해 부끄러운 치부를 알게 됐을때 느꼈던 죄의식, 미안함 때문에 생긴 감정인것 같다.

 

 

 

끊임없이 중국 한족으로부터의 침략을 받아왔고 때론 독립국가로, 때론 중국 황제에 조공을 바치는 국가로 연명해오다 개화기 프랑스의 침략으로 나라를 빼앗기고, 다시 일본의 식민지가 된 후 지속적인 독립운동을 펼쳐와서 마침내 해방을 맞은 국가. 그러다 다시 순전히 외세의 영향으로 남과 북이 갈려 서로다른 이념으로 나뉘어진채 통일운동을 펼치다 남과 북이 전쟁으로 치달은 나라, 그게 바로 옛날의 대월국, 지금의 베트남이다. 우리의 역사와 어쩌면 이렇게도 닮았는지. 하지만 남북전쟁때 민주주의 수호라는 명분으로 똑같이 미국이 참전했지만 한국에선 전쟁을 끝내지 못하고 미군이 철수하면서 분단이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고, 베트남에서는 미국이 패전하면서 호치민의 북베트남이 통일을 했다는 점이 우리와는 다른점이다. 그 과정에서 북베트남을 이끌던 호치민은 국민영웅, 베트남의 아버지로 추앙받게 되고 사후 지금까지도 베트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정치인이 되었다고 한다.

 

한국군이 베트남전에 참전해서 저지른 민간인 학살은 그 사실을 몰랐던 나에게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한국전때 양민학살이 북한군에 의한 것보다 한국군이 저지른게 더 많았다는 설도 익히 들어왔었고 또 그게 허무맹랑한 소리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있었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좌우 이념전쟁에서 자유롭지 못하지 않은가. '북한=공산당=빨갱이=절대 용서못할 인간 말종' 이라는 공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골수 우익들에게 한국군이 한국민들을 학살했다는 이야기는 소설중에 소설이고 그런 얘길 하는 사람 역시 빨갱이로 취급받기 일쑤다. 그런데 신기한건 참전 한국군들의 무참한 학살의 피해당사자인 지금의 공산 베트남은 이상하리만큼 한국에 우호적인 국가다. 한국 가수, 한국 드라마가 베트남 전역을 휩쓸고 있고, 런닝맨 촬영장에서는 몰려든 팬들로 인해 촬영이 불가능할 정도였고, 언제나 한국관광객들을 따뜻하게 맞아준다. 그럼 이들은 50년전 한국이 그들 땅에서 저지른 일들을 벌써 잊고 있는걸까? 아니면 그 증오의 대상을 미국으로만 국한시키고 한국은 미국의 등쌀에 못이겨 마지못해 참전했다는걸 통크게 이해해주는걸까?

 

이런 의문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소설이 바로 김연정의 '야누스'다. 어쩌면 나와같은 의문과 호기심에서 시작된 소설일수 있지만 한발 더 나아가 우리 사회의 다문화 가정,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로 범위를 넓혔다. 우리사회에서 차별을 받고있는 외국인, 특히 동남아 노동자들의 실상을 폭로하고 그들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사람, 반면에 그들이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있고, 각종 범죄의 온상이 되고 있으니 철저히 관리하고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사람. 베트남전에서 우리가 저지른 과오를 인정하고 용서를 빌며 참회해야 한다는 사람과 그 당시 전황에서는 베트콩과 민간인의 구별이 어려웠던 점등을 감안하면 작전상 어쩔수 없는 소탕작전이었다고 항변하는 사람. 어느쪽의 얘기도 틀린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관점과 상황에서는 옳은 의견이라는 점을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다. 개인적인 평가로는 아직 아마츄어적인 냄새가 풍긴다는 점은 단점이고, 소설에 참고자료가 된 문헌, 뉴스, 인터넷 검색자료등을 소상하게 밝히고 있는점, 그리고 한국과 베트남의 지난 역사와 전쟁, 지금의 상황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 궁금증을 풀어준다는 점은 장점으로 높이 평가할수 있겠다. 아마츄어 냄새가 풍긴다는건 스토리 자체가 매끄럽지는 못하다는 생각을 그렇게 표현했다. 등장인물도 주인공 태훈을 제외하고는 캐릭터 설명이 부족할뿐 아니라 이야기의 발단이 되는 소재와 이야기 전개도 자연스럽거나 필연적이라기 보다는 다분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한마디로 타고난 이야기꾼이라는 생각은 안든다. 다만 위에서 말한대로 폭넓은 자료검색과 공부를 통해 베트남의 역사, 한류문화, 박정희 시대의 공과, 우리사회의 다문화 가정의 현실등을 잘 표현해 낸 점이 눈에 띌뿐 아니라 작가 나름대로 이에대한 해법도 제시하고 있어 완성도는 있는 편이다.

 

 

무엇보다 높히 평가하는 점은 한국에서 소설을 쓰는 많은 여성작가들이 -내생각엔 아마 대부분의 여성작가들이- 소재로 삼고있는 사랑, 연애, 섹스라는 단조로운 이야기 소재에서 벗어나 스케일을 크게 가져간 점이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이 소설을 쓸때의 작가의 심정을 옮겨본다.

 

"쓰고싶지 않은 이야기였다. 내 능력으론 불가능해서 도저히 쓸 수 없는 이야기였다. 그간 전혀 관심갖지 않았던 분야였고, 한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이야기여서 결국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원고를 덮어버렸다. (중략) 뭔가에 홀린듯 다시 원고를 펴들었고, 그 뒤론 미친듯 써나갔다. 1년을 공부하고, 또 1년을 쓰느라 이전 작품이 출간된지 2년만에 원고를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