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이 책을 읽는동안 참 힘들었다. 제목도 제목인데다 - 누구나 한번 흘끔 보고는 고개를 돌렸다가 다시 되돌려 자세히 읽어본다 - "뭐? 어땠어, 좋았어? 이거 무슨책이야? 야한책이지?" 표지마저 빨간색이다 보니 여지없이 그 옛날 '빨간책'이라 불리던 음란서적임을 말하고 다니는거나 다름없다. 하루아침에 앉은 자리에서 다 읽을수는 없으니 짬 날때마다 읽으려고 가지고 다녔는데 버젓이 내놓고 다니기가 민망해서 항상 제목이 안보이게 뒤집어서 다니고 책상 한켠에 둘때도 다른책들로 가리느라 신경이 쓰였다. 어찌됐든 내용은 참 좋다. 그런데 책 홍보때문에라도 노골적으로 성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기획된 책이다보니 읽는 독자들은 주위 시선이 참 부담스럽기는 하다. 출판사에서 그런점들도 감안했더라면 좋았을텐데...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뭐 책에 해서 말하자면 완전 노골적인 섹스책이다. 내용보다 한층 더 노골적인건 책 표지에서부터 소개되는 저자이력 등인데 보수적인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것 자체가 큰 용기를 필요로 할터이지만 저자 박훈희는 아예 "나, 남자경험 많은 섹스매니아 인데다 섹스 전문가요~" 하고 드러내놓고 홍보한다. '좀 놀아본 칼럼니스트', '섹스 칼럼을 제데로 쓰기위해 첫 섹스를 시작한 경험지상주의 칼럼니스트' 저자가 자기자신을 표현한 문구들이다. 잡지사에서 섹스기사들을 쓸때 정작 자신은 처녀면서 전문가스럽게 글을 쓰려다보니 항상 뭔가가 부족하다며 선배들의 지적을 받았단다. 그래서 섹스칼럼을 잘 쓰기위해 그날로 아무나 생각나는 남자를 불러다가 처녀딱지를 뗏다고 한다. 이런이런... 이런 작가가 그동안 수많은 남자들을 만나 직접(?) 몸으로 경험한 체험을 바탕으로 남녀간의 성심리와 잘못된 섹스상식 등에 대한 이야기를 써댔으니 얼마나 노골적인 내용이 담겼을지는 안읽어도 짐작이 갈 것이다.

이처럼 자극적인 소개글이라서 거부감이 들지도 모르지만 내용 자체는 성인들의 성생활에 도움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너무도 당연스럽게 생각해왔던 섹스심리들이 사실은 잘못된 내용이라는 것도 알게되었고, 남녀의 심리라고는 하지만 특히 섹스에 임하는 여성들의 심리를 주로 기술했기에 남자들에게 도움되는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요즘에 성에 대한 책들의 출판이 많지만 정작 도움되는 책들은 보기 드물다. 하지만 그속에서 이 책은 나와같은 한국인, 나와같은 동시대에 살고있는 문화를 공유하는 솔직한 여성작가의 섹스심리 고백이라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 달리 확실히 공감이 많이된다. 성인이라면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다만 앞에서 말했듯이 출판사에서 다음 인쇄할때는 좀 신경을 썼으면 좋겠다. 제목을 바꾸기가 어렵다면 키스하고 있는 표지사진을 바꾸든지, 하다못해 책 색깔을 바꾸든지 말이다. 읽는 독자들도 신경써주길 바란다.

언제였을까 아마 중학교때가 아니었나 싶다. 드라큘라 영화를 처음 봤던게. 배우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당시에 꽤 유명했던 남자배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후로도 여름만 되면 항상 새로운 버젼으로 리메이크 되서 상영하는 드라큘라, 뱀파이어 영화들을 봤었고 톰 크루즈와 브래드 피트가 뱀파이어로 나오는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라는 영화도 기억이 난다. 암튼 중학교때 처음 봤던 그 '드라큘라'는 이제까지는 그냥 수많은 뱀파이어 영화의 하나였을 뿐인데 이번에 소설 '드라큘라'를 읽고나니 그 작품이 원작에 가장 가까웠던 영화라는걸 알게 됐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영화의 장면 하나하나가 다 소설속에 그대로 들어있는 장면 아닌가. 다만 원작소설은 아무래도 음향효과나 시각효과가 배제되서인지 공포 측면에서는 영화보다 덜한 면이 있다. 소설이라는 장르고 상상력을 자극해서 더 큰 감흥을 주는건 사실이지만 놀래키거나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는건 영화쪽이 좀 더 자극적인가 보다.

드라큘라의 원작 줄거리를 알게 됐다는 점 이외에 역시 수많은 영화에서 한번쯤 들어봤음직한 인물 '반 헬싱'이라는 캐릭터가 바로 원작 드라큘라에 나오는 인물이라는 점을 알게된 것도 수확이다. 무시무시한 흡혈귀 드라큘라를 상대로 전혀 무서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 결국 이기는 주인공이 반 헬싱이라는 인물이다. 소설의 홍보문구에는 '공포와 성을 결합시킨 환상문학의 고전'이라고 소개됐지만 사실 '성'이 작품속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일부분인 듯. 한때 공포에 대한 동서양의 코드차이를 얘기하면서 회자되던 이런 얘기가 있다. 서양인들은 하얀 소복에 긴생머리를 휘날리며 눈을 뒤집고 등장하는 한국 처녀귀신을 보고 무서워하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에서 공포를 느껴야하는건지 되묻는다. 마찬가지로 검은망토를 휘날리며 젠틀해 보이지만 날카로운 송곳니를 언뜻 비치며 다가오는 흡혈귀는 한국사람들에게 그다지 큰 공포를 조성하지 못한다. 그런면이 맞는것 같다. 나도 소설을 소설적인 재미로만 빠져들어서 몰입했지 공포심을 가지고 읽진 않았으니까. 다만 허무하게도 무시무시할 것 같은 흡혈귀 대장 드라큘라가 너무나 쉽게 우리의 주인공들에게 한방에 넉다운 되서 먼지로 사라져버리는 결말은 좀 심심하게 느껴진다. 그 후로 수없이 리메이크 되는 드라큘라나 흡혈귀들은 점점 대담해지고, 금기되는 성물도 없어지고, 여간해선 죽지도 않고 했는데 이 원작소설에 나오는 드라큘라는 성체로 쓰는 밀빵에 꼼짝 못하고, 마늘냄새만 풍겨도 달아나고 하니 시시하기까지 하다.

드라큘라는 실재 인물이라고도 하고, 어떤 사유로 저승에 가지못한 시체들이 산사람의 피를 마시면서 개체수를 늘려간다는 흡혈귀 이야기는 스칸디나비아 반도 일대에 전해져 내려오는 미신적인 전래라고도 한다. 그게 18세기 서유럽에 전파되면서 공포의 한 코드로 자리잡았다고. 아직 올여름에는 대표적인 뱀파이어 영화가 안나왔지만 불과 몇년전만 하더라도 매력적인 뱀파이어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이 대히트를 친 적이 있지않은가. 그 소설을 읽고 수많은 여성팬들이 이런 뱀파이어라면 기꺼이 내 목을 들이밀리라~ 했었으니. 소설이든 영화든 그만큼 뱀파이어는 위험하면서 매력적인 캐릭터임에 틀림없는 모양이다.

소설 '명량'을 손에 받아들고 읽지않고 한참을 기다렸다. 기왕이면 영화로 보고나서 소설을 읽으려는 마음때문이었는데 글쎄 아내가 영화보러 가자고 할때마다 피곤하네, 약속있네, 오늘은 영화가 안땡기네 하면서 차일피일 다음에..라는 말만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보겠다고 하면 나혼자라도 가서 보겠는데 또 그건 아니고 저도 보고싶다면서도 그렇게 사람 애간장을 녹이기를 여러번, 마침내 부부싸움을 각오하고 나혼자 일요일 심야프로를 보러 가버렸다. 그리고 이제서야 소설 '명량'을 펼쳐들고 읽기 시작한 것이다.

 

 

 

 

사진으로 보다시피 영화 '명량'과 소설 '명량'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영화의 각본을 맡은 전철홍, 김한민이 그대로 소설에서도 각본으로 이름이 나오고 영화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소설가 김호경이 글을 썼다. 그렇다보니 대강의 줄거리도 영화에서와 같은 문맥을 갖고있다. 다만 영화가 제한된 시간으로 말미암아 편집을 거치면서 소설에 등장하는 대사나 인물이 약간 축소된 양상을 보이더라. 그렇다면 여기서 왜 내가 굳이 영화를 보고나서 소설을 읽겠다고 버티고 있었는지 설명해야겠다. 많은 영화팬들은 잘 알고있겠지만 소설이 원작인 작품들은 소설의 재미에 흠뻑 빠진다음 영화화된 작품을 보게되면 열에 아홉은 실망하게 된다. 소설에서 보여줬던 감동이 영화에서는 그만큼 느껴지지가 않는거다. 마치 결말을 알고있는 스릴러 영화를 보는것처럼. 그런데 반대로 영화로 재밌게 본 작품은 내용을 알면서도 소설로 다시봐도 또 재밌다는게 신기하다. 나는 여러번 그런 경험을 했다. 영화 '이끼'를 본 후에 만화 '이끼'를 읽었고, '워 호스'가 그랬다. 반면에 '해리포터'는 소설을 재밌게 읽었는데 영화로는 엄청 실망을 했었고. 이번에 '명량'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기대보다 약간 아쉽게 봤지만 소설은 그 약점을 훌륭히 메워줬다.

일단 분명히 밝히고 싶은점은 혹시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분이나 소설을 읽지못했지만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을 예정인 분들은 이 영화와 소설이 팩션이라는 걸 감안하고 봐야한다는 점을 밝힌다. 대부분의 이야기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씌여졌지만 등장인물이나, 그들의 대사, 또는 전투상황은 허구다. 분명 '명량해전'이란 전투는 실제로 있었고, 백의종군한 이순신이 성치 않은 몸으로 12척 판옥선으로 300척이 넘는 왜군을 무찔렀다. 다만 이 에피소드에 양념으로 나온 군졸들은 가상의 인물들이고, 거북선에 불지르고 도망가다 죽는 역할로 나온 배설의 죽음도 실제 역사와는 다르다. 아군이 거북선에 불을 붙였다는 내용도 영화적 허구고, 명량해전 당시 대장선에서 왜군들과 백병전을 벌인 것도 허구라고 할수 있다. 그중에 단연 소설같은 허구는 바로 구루지마 장군 호위역을 맡은 배우의 조총 저격수신이라고 할수 있다. 오늘날 육상에서 망원렌즈 달고 쏴도 맞히기 어려운 타겟을 흔들리는 배위에서 명중률 낮은 조총으로 백발백중 시킨다는 발상은 영화에서나 가능할 일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줄거리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있기는 하다. 대규모 수중 전투신은 한국영화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고 기대가 큰만큼 실망도 컷지만 실감나게 찍기는 했다. 안보신 분들은 꼭 영화를 보던지, 소설을 읽던지 하시기 바란다.

나도 처음 안 사실이지만 당연히 수십번 영화화 됐을것 같은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가 실제로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된건 몇번 안된다고 한다. 가장 최근의 작품이 '불멸의 이순신'이었고 영화로는 1960년대에 제작된 '난중일기' 이후로 이번이 두번째라고 하니 아마 숱한 감독들도 잘만들어야 본전이고 잘못 만들면 욕 얻어듣기 딱 좋은 소재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