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확 시선을 잡아 끈다. '미치광이 예술가의 부활절 살인'. 그냥 예술가가 살인을 저질렀네~ 하는 것과 미치광이 예술가가 그것도 부활절에 살인을 저질렀네~ 라고 자극적인 면을 더하니까 그럴 것이다. 책은 처음 소설인줄 알고 읽었는데 논픽션 작가인 해럴드 셰터의 작품이고 1930년대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실제 살인사건을 토대로 씌여진 거라는걸 알게됐다. 사건의 발단과 전개과정에서 뉴욕시민들과 언론이 보여주는 광기 - 살인자와 마찬가지로- 를 다루면서, 사건 이면에 숨겨져있던 여러 연관적인 내용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준다. 이 책에서 작가가 가장 중점을 둔 면은, 혹은 책을 읽는 내가 가장 관심을 갖게 되는 부분은 바로 언론이라는 장치다. 신문, 방송, 어릴때는 가장 공정하고 진실만을 말하는 매체라고 생각했던 언론이, 어른이 되고 보니 언론처럼 주관적이고, 공정하지 못한게 없다는걸 알게됐다. 공정하게, 진실만을 보도하는게 아니라 보다 선정적이고, 자극적이고 많이 읽힐수 있는 기사를 쏟아내는 곳이 언론이다. 때로는 정권과 야합하고, 때로는 이권에 개입하고, 온갖 더러운 향을 피우기도 한다. 그런 언론중에서 공정하고, 깨끗한 매체를 찾고, 키워가는 것이 바로 국민들의 몫일텐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예나 지금이나 그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었던 것이다. 책속에서는 대공황을 겪으면서 침체되어 가던 1930년대라는 시간적 배경과,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이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으면서 뭔가에 분풀이를 할 대상이라도 찾고 있을것 같은 뉴욕이라는 공간적 배경으로 이 분위기를 조성하며 한곳으로 몰고가는 뉴욕의 언론을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시간과 공간만 다를뿐 한국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언론의 공정성 논란과 부패혐의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가 생각하고 결정해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에서 보여주는 것만 보고, 알려주는 것만 알고, 언론에서 주장하는 바 대로 따라간다. 그러다보니 어떨때는 사건의 본질에서 벗어나 엉뚱한 것이 논란거리가 되기도 하면서 정작 중요한 본질이 묻혀버리기도 한다. 지난 대선때 국정원 직원이 조직적으로 야당 후보를 비난하고, 여당 후보를 지지하는 인터넷 댓글작업을 펼치면서 국내정치에 관여한 일이 있었다. 이는 명백히 국정원법을 위반한 것일뿐 아니라, 선거법 위반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제보를 받고 야당당직자와 선관위 직원들이 국정원 직원이 댓글작업을 진행중이던 오피스텔을 급습했을때, 이 여직원은 문을 걸어잠그고 안에서 증거를 은폐하였다. 그러나 여당과 경찰, 그리고 그들을 지지하는 언론들에 의해 이같은 중요한 "국정원 직원이 선거에 관여를 했는가" 여부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채, 야당 의원들과 당직자들이 국정원 여직원을 감금하고, 협박했는가 여부로 온 국민의 관심사를 돌려 버린 사실이 있다. 당시 여당 후보도 야당이 국정원 직원을 감금했다며 인권침해를 강하게 주장했고, 경찰은 서둘러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정원이 선거에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면죄부를 줬다. 결국 여당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야당의 주장이 사실임이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어디 이 사례뿐일까.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큰 일간지 회장은 성접대 등으로 자살한 여자 연예인의 수첩에서 이름이 오르내린다는 설이 있다.

과연 연쇄살인을 일으키는 살인자만 미치광이라고 할 수 있을까? 미치광이로 몰고가는 언론이 진짜 미치광이 아닐까. 언론에서 미치광이라고 정의 내리면 어떤 방법을 쓰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게 만들어 버린다. 반면에 진짜 미치광이라도 언론에서 순한 양의 탈을 씌워주면 그 미치광이는 양이 되고 마는 것이다. 언론은 스스로 자정될 수 없다. 오로지 수준높은 국민들이 그렇게 만들어 가야 한다. 논픽션이면서도 소설처럼 재밌고, 오늘날 언론의 역할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세계적인 석학이자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의 신간이 나왔다. 제목이 특이하다. '적을 만들다'-특별한 기회에 쓴 글. 사실 '적을 만들다'는 목차중에 첫번째 에피소드 제목이다. 저자 스스로가 '특별한 기회에 쓴 글'이 원래 제목이 됐어야 하나 출판사측 마케터들이 특징없는 제목이라며 독자들의 눈에 확 띌수 있는 독특한 제목을 찾다보니 '적을 만들다'가 메인 테마가 되버렸다고 한다. 확실히 효과는 있어 보인다. 안그래도 움베르토 에코 하면 왠지 철학적이고 어려워 보이는 작가인데 거기다 제목도 '특별한 기회에 쓴 글'하면 팬들이 아닌 이상 지나가다 서점에서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볼 제목은 아니다 싶다. 근데 '적을 만들다'? 요 제목은 특이하기도 하고 무슨 내용이지? 하과 관심을 끌었던게 사실이다. 이 책은 한가지 주제를 놓고 쓴 글이 아니라 각기 다른 주제를 놓고 작가가 매스컴에 기고한 글들을 모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적을 만들다', '절대와 상대', '불꽃의 아름다움', '보물찾기', '들끓는 기쁨', '천국 밖의 배아들', '오, 빅토르 위고! 과잉의 시학', '검열과 침묵', '상상 천문학', '속담 따라 살기', ' 나는 에드몽 당테스요!', ' 율리시스, 우린 그걸로 됐어요', '섬은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위키리크스에 대한 고찰' 이렇게 총 14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짧은 단편 기고문이라고 생각하면 되겠다. 쉽게 읽히는 내용도 아니다. 각각의 소재들이 움베르토 에코 특유의 깊고 깊은 성찰들을 담고있다. 하지만 읽지 못할 정도로 철학적인 내용들로 가득 차있는 것도 아니라서 하루에 한 편씩 읽는다는 생각으로 독서를 시작하면 좋을것 같다. 나 역시 평소에 관심도 가지지 못했던 소재들과 생각을 접하니 당혹스러웠지만 천천히 읽으면서 오랫만에 고급진 독서의 취미생활을 향유했다. 누구에게나 적이 있기 마련이고 만에 하나 적이 없다면 적을 만들어야 한다? 작가의 모국인 이탈리아에 대해 "지난 60년간 진정한 적들을 두지 않았던 것이야말로 이탈리아가 지닌 불행들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쓰고 있다. 얼핏 이해가 안되는 얘기였지만 개개인들도 라이벌이 있어야 더 발전을 가져올수 있고,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개인이든 국가든 내적으로 국력과 국론을 모으고 힘을 합칠 수 있다는 데 반론이 있을 수 없다. 오죽하면 도요토미 히데요시도 국력을 모으고, 반대세력을 누그려뜨리려 임진왜란을 일으킬 생각을 했을까.

'절대와 상대' 편에서는 작가의 유머감각을 잘 나타내주는 글로 시작한다. 아마도 강연의 주제였던 모양이다. "내가 발표할 강연의 끔찍스러운 제목을 듣고도 오늘밤 이곳을 찾은 여러분들은 모든 것을 각오한 사람일 것입니다." 딱 들어도 딱딱하고 재미없을 것 같은 강연을 듣겠다고 모인 청중들은 단단한 각오를 하고 온게 틀림없을 것이다. 때로는 감탄스럽기도 하고, 때로는 괘변이라고 생각되는 움베르토 에코의 글들을 읽으면서도 함부러 무시할 수 없는게 이미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의심의 여지없는 천재 작가라는 평 때문이기도 했다. 마지막 '위키리크스에 대한 고찰'은 그간 힘들어 했을 독자들을 위한 보너스 편이다. 머리도 식힐겸 위키리크스 사건에 대한 유머러스한 작가의 상상력을 보여주며 책을 끝낸다. 첨단기술이 발전할수록 도청이나 해킹의 위혐때문에 정보당국이 더이상 비밀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아마 먼미래에는 그 옛날 재래식 방법들이 다시 등장하지 않을까? 으슥한 골목길에서 접선하고, 사우나 탕에서 살짝 만나 귓속말로 정보를 전달하는 강대국들의 정보기관들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게 가장 안전하고 확실한 보안기능일테니...

오래전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를 너무 강렬하고 감명깊게 읽어서 움베르토 에코라는 이름만 들어도 친근하고 대단하다는 느낌을 갖게된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을까? 움베르토 에코의 책을 갖고다니며 읽는동안 나 역시 대단하게 보여지지 않았을까 뿌듯한 요즘이었다.

 

 

김진명 작가의 작품들을 대하면 항상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용두사미'. 처음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으면서 느꼈던 참신함과 소재선택의 대담함, 이야기를 끌어가는 흥미진진한 힘에 매료되었다가 흐지부지 서둘러 끝맺는 결말에 이르러서 많은 실망을 했었더랬다. 이후 '고구려'를 읽으면서도 미천왕편에서 중국의 삼국지를 읽는듯 그 스케일에 놀라며 빠져들었다가 고국원왕편에 이르러 어? 이게 아닌데...로 끝이났다. 물론 고구려 시리즈는 아직 진행중인 이야기라 다음편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간 김진명 작가가 써왔던 소설은 하나같이 소재가 과감했다. 박정희 전대통령의 서거를 다룬 1026, 삼성 컨스피러시, 신의 죽음등. 모두가 독자들의 관심을 끌만한 소재였고, 또 한번쯤은 다뤄줬으면 하는 내용들을 과감하게 작품으로 만들어냈다. 다만 아쉬운건 이야기는 잘 만들어내는데 모두가 유쾌한, 또는 공감하는, 아니면 공감은 아니더라도 이해할 수 있는 결말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번 최신 작품 '싸드'도 소설가가 현시점에서 다루기 쉬운 소재는 아니었다. 쉬운게 아닌게아니라 자칫 힘있는 정권에 밉보일수도 있는 민감한 화두다. 미국의 미사일 방어체계의 핵심을 이루는 고고도 미사일 요격시스템의 한반도 배치라는 소설의 소재는 현재진행형이었고, 미국이 사활을 걸고서 한국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지 않은가. 그럼에도 바로 그 핵심을 꼭 집어내 사람들이 무관심한 싸드에 대해 싸드가 무엇이고, 왜 미국이 한반도에 배치하려 하고있고, 왜 우리는 받으면 안되는가를 잘 설명해준다. 중국의 무서운 경제성장과 달러의 약세로 돌이킬수 없이 회복불가능한 미국경제, 이의 해법이 전쟁을 통한 미국경제 부흥에 있다고 보고 중,미 전쟁을 생각하는 상상력은 못믿겠지만 섬뜩하게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미국이 중국과 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선행되어야 할 첫번째 과정이 중국의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중국 근교에 고고도 미사일 요격시스템을 갖추는 것이고, 그게 바로 북한의 핵미사일 방어를 핑계로 한반도에 배치하려하는 싸드 포대가 될것이라는 점도 의문에 여지가 없다. 놀라울 정도로 국제정세를 꿰뚫어보고 있다. 참 대단한 작가다. 하지만 여기까지가 감탄의 끝이다. 이제부터 쓴소리를 해보자.

 

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등장하는 변호사가 사무실 개설도, 로펌에 취직도 못하는 능력없는 변호사였음에도 아~주 우연한 계기에 세계은행 직원 죽음에 관여되고, 사건을 해결하러 미국에 날아가 미국 경찰국과 세계은행을 종횡무진 헤집고 다니며 아무도 풀지못한 살인사건을 해결해 낸다는, 도통 믿어지지 않는 이야기는 개연성이 없지만 소설이니까 그럴수 있다~라고 치자. 영어에 자신이 없어 공항 입국심사대 통과도 간신히 할수 있었던 이 변호사는 어떻게 공항을 나오자마자 그렇게 유창하게 현지인들과 고급영어를 구사하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을까. 사건이 미궁에 빠질때마다 등장하는 신과 같은 존재인 '김변호사'라는 미지의 인물은 그저 작가가 소설을 쓰다가 앞뒤 맞추기 힘들때, 또는 도무지 적절한 개연성을 부과하기 힘들때 편리하게 등장시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장치에 불과하다는게 너무 눈에 보인다. 원래 소설의 재미가 꼬이고 또 꼬이면서, 등장인물들의 갈등관계를 부각시키다가 나름대로의 질서로 풀려나가야 말이 될텐데 그런면에서 '김변호사'라는 예언자이자 능력자는 참 쉽게도 모든것을 정리해줘 버린다. 거기다 마지막 결말은 또 어떤가! 세계은행 직원의 죽음에 싸드의 한반도배치라는 거대한 음모가 숨겨져 있음을 알아낸 우리의 주인공은, 개인이 어떻게 해볼수 조차 없는 거대한 조직의 힘에 눌려 기껏 한다는것이 광화문 광장에서 피켓들고 일인시위하는게 전부다. "싸드의 한반도 배치, 절대 안됩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 미친놈 다 본다는 표정으로 무시한다. 그럴수 밖에 없다. 반듯하게 생긴 젊은놈이 밑도 끝도없이, 아니 싸드가 뭔지도 말안하고 혼자서 싸드 배치하면 안됩니다~를 외치고 다니니 그럴 수 밖에. 이 장면이 소설의 마지막이다. 결말이다. 작가는 주인공을 통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방향을 잡아줬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가상의 공간에서(소설의 지면속에서) 주인공이 미국의 음모를 깨부수고 세계평화를 지켜냈어야 한다. 미드 24시에서 잭 바우어는 혼자서 세계의 테러리스트들과 상대하고, 미국 대통령을 구해내고, 핵전쟁을 막아낸다. 그건 뭐 가능한 일이겠는가. 하지만 그 이야기에 빠져들 수 밖에 없고, 카타르시스를 느끼지 않는가. 싸드에서 우리 주인공이 미친놈 소리 들어가며 피켓들고 헤매이다 끝나는 결말보다는 더 나은 결말이었으면 했는데 참 아쉽다.

 

소설적인 재미보다는 현실에 민감한 시사성 있는 소재를 다루고 있고, 우리 국민 모두가 숨겨져있는 내면의 진실을 보게되길 바라는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급하게 쓴 소설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읽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