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의 <타인의 고통>
전쟁, 평화 그리고 고통.
우리는 대중매체의 날렵하고도 무자비한 보도정신 덕에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끔찍한 고통의 얼굴에 익숙한 편이다. 이 책의 시작은 바로 그 고통에 대한 익숙함이다.
TV만 틀면 난민과 기아의 배고픔이 나오고 내전에 사지를 잃은 지구촌의 친구가 나온다. 우린 정말 그 고통을 아는 것일까? 머리로 안다고 해서 그 고통을 안다고 감히 말하지 말자. 나 역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환경을 보호하고 전쟁의 피해자들의 위한 기부를 해야 한다고 앵무새처럼 말해왔으니.
p.153
감정을 무디게 만드는 것은 수동성이다.
손가락으로 버튼만 누르면 고통에 익숙해졌다면 그 수동적인 영상에 익숙해졌다면 우린 이미 감정이 무뎌진 것이다.
놀랍도록 나를 자극하는 책
수전 손택의 전쟁, 평화, 고통에 대한 깊은 생각을 이렇게 싼 값으로 공유할 수 있다니, 정말 책은 위대하다. 그녀는 이미 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없지만 그녀가 인류에게 남긴 생각은 나에게는 발칙해 보일 정도로 날카롭고 또한 매력적이었다.
우리가 쉽게 탓하지 못하는 권력이 빚어내는 대중매체의 보도, 연출된 수많은 정보, 그리고 우리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무관심과 특권의식, 계급의식, 그리고 쾌락. 이 책은 우리 주변을 둘러싼 수많은 것들을 이야기하며 우리의 삶에 녹아있는 고통에 대해 논리적으로 증명하는 책이다.
또한 내가 열심히 생각하고 반성하고 분석하며 따라가지 않으면, 절대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쉴새 없이 독자를 몰아치는 책이기도 하다. 불친절하다고 느낄 정도로 딱딱한 문체는 불쾌하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이 문제(고통)에 대하여 객관적인 증명과 필연적인 제안을 하고 싶은 작가의 절실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탁월한 그녀의 사색과 우리의 과제
어떤 내용을 대표로 뽑아 소개할 수조차 없다.
수잔 손택이 이야기하는 고통의 포괄적인 사색은 마치 한 편의 논문처럼 부드럽게, 내 입으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는 대의로 수렴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그 고통의 현장이 아닌 거리의 카페에서 향기로운 커피를 즐기며 책을 읽고 있는 우리에게, 우리의 한없이 쉬운 고통에 대한 태도를 적어도 다시 한번 생각하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분명하다.
p.154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 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정말 읽어보길 잘한 책, 하지만 번역의 불편함에 읽는 내내 힘겨웠던 책이다. 번역이 좀 더 좋았으면 더 큰 감동을 받았을 텐데. 읽는 내내 번역을 번역하느라 힘들었다. 다음에는 원서를 사서 읽고 싶다.
수잔손택,
전쟁,
고통,
타인의고통,
저널리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