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478페이지.
책 크기도 커서 체감상으로 600페이지가 넘게 느껴졌을 정도로 분량이 상당했는데요.

아무리 두꺼운 책도 완독하기까지 3일 이상은 걸려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이 책은 거진 일주일은 걸린 것 같아요.

중간중간 다른 책도 읽어야 해서 조금 더 시간이 걸린 것도 있지만,
영화 <아이언맨>과 <어벤져스>의 멤버들만 수박 겉핥기식으로 알고 있던 터라
처음 프롤로그를 읽기 시작할 때부터 빌런, 나이트로 등 생소한 단어 천지에
속속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들 때문에 스마트폰으로 검색하지 않고서는 이해하기 힘들더라구요.

 

 

마블의 세계관이 얼마나 방대한지, 만약 그래픽 노블을 읽으려고 마음먹은 사람이 있다면
1년 목표로 삼고 읽어도 될 정도로 시리즈가 많더라구요.

오죽하면 시공사에서 마블 그래픽노블을 읽는 데 도움을 주는 리딩 가이드까지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가장 처음 출간된 <토르:천둥의 시대>를 시작으로 <스파이더 아일랜드>까지 총 68편,
개중에는 아직 출간 예정인 것도 있고, 아직도 시리즈는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

이 책은 33번에 해당하는 <시빌 워>로,
마크 밀러와 스티브 맥니븐의 그래픽 노블을 소설화한 것이랍니다.

 

 

십대 슈퍼 히어로들로 이루어진 '뉴 워리어즈'는 '어벤저스'와는 달리 삼류 팀입니다.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위해 TV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고 있기도 하죠.

처음에만 반짝 인기를 끌었던 그들은 다시 화제를 몰기 위해 코네티넛 스탬포드에서
건드려서는 안 될 나이트로를 상대하다가 뉴 워리어즈 일행뿐만 아니라
촬영 팀과 시민 900여명의 사상자를 낸 큰 참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 스탬포드 참사를 계기로 상원 위원회에서는 초인 등록법안이 상정됩니다.

영웅이든 악당이든, 능력이 있는 초인이라면 전원 정부에 등록 절차를 거치고,
능력을 대중 앞에서 쓰기 위한 교육을 받는 데다
정부가 초인을 통제할 수 있는 근거가 생기게 되는 것이죠.
그동안 정체를 숨겨왔던 초인이라면 그 정체도 드러내야만 하는 법안인 것입니다.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는 탐탁지 않았지만 잠재적인 위험요소를 막을 수 있다는 것,
누군지도 모르는 정부 관리가 맡을 바에는 슈퍼 휴먼 커뮤니티를 이해하는 사람이
자진해서 먼저 등록하고 대중 앞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맡아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시행과 감독을 맡겠다고 나서게 되죠.

그리고는 과학 천재의 두뇌를 소유하고 있는 데다 전투력도 높아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스파이더맨의 정체, 피터 파커를 전면으로 내세워 대중 앞에 공개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법안 자체가 헌법이 보장하는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악법이라고 생각한
캡틴 아메리카는 상부의 지시를 어기고 자신을 따르는 소수의 히어로들과
지하로 숨어 비밀리에 활동을 시작합니다.

바로 저항군으로 말이죠.

 

아무래도 큰 영향을 발휘하는 영웅인 만큼 이들의 의견 충돌은 갈등을 빚었고,
초인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되면서 '시빌 워', 즉 내전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내년에 영화로 개봉하는 <캡틴 아메리카:시빌 워>가 바로 이 내용을 담을 예정인데요.

슈퍼 히어로들이 너무도 많이 등장해서 조금 어지럽긴 해도
이들을 화면으로 만나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마음이 두근거리는 것 같습니다.
특히 스파이더맨의 활약도 기대되고, 책으로도 굉장히 귀엽게 느껴졌어요.

마블 영화를 좋아하는 당신!
영화 개봉하기 전에 이 책을 읽어두는 센스를 발휘해 보심이 어떨까요!

 

손에 올려놓으면 휘는 기름종이 같은 불투명한 재질이
표지를 감싸고 있어서 뭔가 더 아련한 느낌을 주는 것도 같습니다.

기억과 추억, 첫사랑이라는 소재를 섬세하면서도 담백하게,
정말 딱 표지의 느낌대로 아련하게 그려낸 책입니다.

그래서인지 읽고 나서도 묘한 여운이 오래 지속되기도 했던 책이구요.

 

 

첫 장편이기도 한 이 소설로 2002년 '제23회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는데요, 그 때의 심사평이 실려 있었습니다.

 

 

십구 년 만에, 그것도 새벽 2시에 걸려 온 전화.

"알겠어?"
단 한 마디만으로도 이내 유키코라는 것을 금세 알아차린 야마자키.

이제는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하고는
갑자기 오랜만에 스티커 사진을 같이 찍는 건 어떠냐고 물어왔습니다.
딸인 아야코가 스티커 사진을 모은다는 말과 함께 재미있을 것 같지 않으냐는 목소리에서
어쩐지 취기가 느껴집니다.

 

기억이라는 것,
한 번 만났던 사람과는 두 번 다시 헤어질 수 없다는 것.

우리가 잊어버린 줄만 알았던 기억들은 잊혀진 게 아니라 잠시 묻어둔 거라
언제고 갑자기 떠오를 때가 있다는 말로 처음 운을 띄웠던 문구처럼
이 소설은 유키코의 전화로 야마자키가 그녀와의 만남, 사랑, 이별,
그리고 그 만남으로 이어진 사람들과의 추억을 회상하며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전개를 보입니다.

자칫 어지럽게 느껴질 수 있는 전개지만 물처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져서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삿포로에서 상경한 야마자키는 복잡한 도쿄가 익숙하지 않아
아르바이트를 구한 곳을 끝내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헤매다 지쳐 들어간 찻집에서 유키코를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울고 있던 유키코에게, 난생처음으로 모르는 여자에게 먼저 말을 건네게 되었던 건데
야마자키는 자연스레 자기의 이야기를 하게 되면서 유키코가 왜 울게 되었는지도 듣게 되었죠.
예쁘고 붙임성도 좋아서 인기가 많은 그녀의 친한 친구인 이쓰코가
친구의 남자친구랑 자 버린다는 이야기였는데, 유키코의 남자친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그날 헤어지면서 유키코는 전화번호를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난 후에야 성사된 첫 통화, 그렇게 그들의 만남은 시작되었죠.

무기력한 대학생활을 하던 야마자키에게 유키코는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현재까지도 근무하는 문인출판을 연결해준 것도 그녀였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묻는 그녀에게 딱히 없었지만 편집 관련 일이라면 하고 답했던 게 그 시작이었죠.
문인출판이라는 고지식한 느낌의 이름 때문에 철학이나 심리학 계통의 전문서적을 출판하는 곳이라
생각했지만, 대표 잡지라고 건네받은 것은 <월간 이렉트(발기)>였습니다.

당황스러웠지만 인상 좋은 사와이 씨, 그리고 그와 나눴던 이야기들,
유키코의 응원으로 이루어진 결과였습니다.

 

 

 

사와이 씨, 그리고 와타나베 씨, 그의 부인인 사토코 씨와 두 딸 후유카와 아키나.
문인출판 부편집장인 이가라시, '신주쿠 풍속양' 기획을 하며 만났던 가나.
그리고 가나의 친구이자 현재 여자친구가 된 나나미까지.

마치 하나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듯이 서로의 관계가 하나둘씩 밝혀졌을 때,
인연이라는 게 얼마나 놀랍고도 신기한 것인지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인연과 운명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과거를 회상하면 할수록 너무도 잘 어울렸던 유키코와 야마자키가 왜 헤어졌는지 궁금했는데,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이유에, 어쩌면 어린 나이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던 야마자키에게 조금 화가 났습니다.

그리고 십구 년 만의 재회로 유키코의 현재 상황을 들으면서 씁쓸하기도 했구요.
지난날 그렇게 단호하게 돌아설 수밖에 없던 그녀와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게..
어쩌면 많은 사람이 그래 왔듯이, 후회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선택은 있기 마련이니까요.

 

 

아직 생태계가 형성되지 않는 물속에 건강한 물고기의 배설물로 좋은 박테리아를 만들어야만
수조가 완성되기에, 수조를 설치하고 제일 처음 넣는 물고기, 파일럿 피시.

물이 만들어지면 햇볕에 말려지거나, 산 채로 변기에 흘려지거나,
잡아먹히게 내버려지는 파일럿 피시들.
유키코는 그렇게 야마자키의 파일럿 피시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문장들이 너무도 많이 나와 소장할 수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과
내가 그동안 잊었던 기억들을 조금이나마 떠올려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공중그네>로 유명한 오쿠다 히데오의 신작입니다.
한때 우리나라 서점의 베스트셀러로 등극하며, 지하철에서 책 읽는 사람들 대부분이
읽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당시 오쿠다 히데오의 인기가 높았는데요.

이번에 나오미와 가나코,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담은
<나오미와 가나코>라는 제목의 장편소설로 돌아왔습니다!

표지가 예쁜 책을 좋아하는 저의 마음을 읽어낸 것처럼
은색의 제목이 빛에 따라 반사되는 느낌마저 예쁜 표지입니다.

책은 장편소설답게 두께가 상당합니다.
조금 걱정스럽긴 했는데, '마지막 한 줄까지 손에 땀을 쥐게 한다'는 띠지의 문구처럼
한 번 읽기 시작하자 멈출 수 없을 정도로 몰입감이 높은 책이었습니다.

 

 

요즘 이렇게 작가의 친필 사인이 프린트된 책들이 종종 눈에 띄는데
숨겨진 보물을 찾은 기분이 들기도 하더라구요.

 

 

책은 '나오미 이야기'와 '가나코 이야기'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가나코의 남편을 죽이기 전은 나오미의 시선으로, 죽인 후에는 가나코의 시선으로 진행되죠.

 

 

 

오다 나오미는 4년제 대학에서 서양 미술사를 공부하고 큐레이터 자격을 취득한 후
미술 전시회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본점에 훌륭한 미술관이 있는 전통 있는 아오이 백화점에 취직했습니다.
처음 생각과 달리 보석 매장에 배치되었다가 외판부로 발령받아 근무한 지 7년째.

외판부에서는 높은 매출액을 올리는 고객들에게 카드를 발급해 주는데
그들의 개인적인 잡심부름까지 해주면서 충성과 신뢰를 쌓곤 합니다.
바로 매상과 직결되기 때문에 판매 실적을 위해 노력하는 거죠.

나오미에게는 대학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시리이 가나코라는 친구가 하나 있는데
미팅으로 만나 1년여간 사귀어온 핫토리 다쓰로라는 은행원과 결혼했습니다.
외모와 학벌, 중산층 집안까지 모두 괜찮은 조건의 사람이었죠.

하지만 가나코가 아프다며 약속을 취소해서 걱정되는 마음에 찾아간 나오미는
그만 놀랄 만한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남편인 다쓰로로부터 끊임없이 폭행을 당해왔다는 것.

결혼한 지 3개월이 지난 후 술에 취한 다쓰로에게 얼굴을 맞았고,
그 이후에는 술에 취하지 않았는데도 칠칠치 못하다, 국이 맛없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들으며 폭행을 당한 것입니다.

이야기를 들은 나오미는 크게 분개하는데,
친한 친구이기도 하지만 어린 시절 엄마가 아빠로부터 폭행당하는 것을 지켜보며
트라우마가 생긴 또 하나의 가정폭력 피해자이기도 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나오미의 성격상 불의를 못 참기도 해서 가나코에게 당장 이혼하라고 하지만
가나코는 남편이 이혼해 줄 리도 없고, 혹여라도 복수심에 불타
자신뿐 아니라 가족에게까지 피해를 줄까 두려워 안 될 것 같다고 하죠.

 

 

 

한편 백화점에서는 부자 화교 중 하나인 진 회장에게 고가의 명품과 보석을 선보이며
판매하는 연회를 열었는데, 초대받지 않은 화교 일행을 동반한 탓에 큰 혼란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일행들도 부자들이 많아서 물건들을 구매하며 매출을 올리는 가운데
리아케미라는 여자는 고가의 명품 시계를 마음에 들어 하면서도
비싼 가격 때문에 구매하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진 회장과 일행들이 돌아간 뒤, 아케미가 마음에 들어 했던 시계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고
결국 아케미가 시계를 훔쳤다는 것도 밝혀집니다.

시계를 되찾아오는 과정에서 아케미가 뜻밖에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
아케미의 직원 중에 다쓰로와 놀라울 정도로 닮은 사람이 있다는 것,
잠자코 있으면 계속 당하기만 하니까 보복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점점 하나의 생각을 품게 됩니다.

바로 클리어런스 플랜, 남편을 제거하자는 계획을 세운 것입니다.

 

 

처음에는 반대하던 가나코도 계속되는 폭력에 못 이겨 남편을 죽이자는 계획에 찬성하고
살인(?) 예행연습을 하며 얌전했던 모습에서 점차 강한 모습으로 변해갑니다.

남편은 죽이되,
다른 사람들에게는 횡령해서 외국으로 도주한 것처럼 보이도록 꾸미는 것이 그녀들의 계획.

남편도 손쉽게 죽이고, 이후는 계획한 대로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 같았지만
'가나코 이야기'가 시작되자 완전범죄를 꿈꿨던 그녀들의 계획은 여러 가지 허점이 들어나게 됩니다.

 

 

사실 그녀가 세운 계획을 보자마자 'CCTV는?'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을 정도로
우리는 CCTV와 친숙한데, 전혀 언급조차 없는 나오미를 보며
단순히 일본에서는 CCTV와 동떨어진 생활을 한다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역시 오쿠다 히데오는 그러한 모든 것을 '가나코 이야기'에서 다룹니다.
게다가 시누이인 요코를 등장시키며 그녀들을 궁지에 몰기 시작합니다.

과연 나오미와 가나코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저는 서평을 쓸 때 스포일러가 될까 봐 일부러 줄거리를 많이 언급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워낙 분량이 많아서 중요한 부분만 요약한다고 했는데도 내용이 상당히 길어졌네요.

책이 워낙 두꺼워서 다 읽는데 꼬박 하루가 걸렸지만,
분명한 것은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는 거죠.

오쿠다 히데오의 저력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