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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그리가 알파벳순으로 말하는 자신의 생체정치적 삶과 사상을 담은 책. 경찰의 감시 아래 가택 연금 상태에 있던 2002년, 네그리가 1997년의 <신체의 귀환>과 그보다 몇 년 뒤에 이루어진 <진정한 귀환>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담 형식의 자서전이다. 정신분석학자인 안느 뒤푸르망텔과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네그리는 자신의 삶과 사상을 요약하는 핵심어들을 A부터 Z까지 알파벳순으로 따라가며, 자신의 가족사와 성장 배경에 대해, 지적으로나 인간적으로 큰 영향을 준 사람들에 대해, 그의 사상과 실천의 자양분이 되었던 정치 격변기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알파벳순으로 읽는 네그리의 삶과 사상
이 책은 21세기 벽두에 ꡔ제국ꡕ으로 전 세계 사상계를 뒤흔들고 지식인들에게 충격을 던졌지만 여전히 경찰의 감시 아래 가택 연금(선택적 구금) 상태에 있던 2002년, 네그리가 1997년의 ‘신체의 귀환’과 그보다 몇 년 뒤에 이루어진 지적․정치적인 ‘진정한 귀환’을 중심으로 자신의 삶과 사상에 대해 이야기하는 대담 형식의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 네그리는 자신의 삶과 사상을 요약하는 핵심어들을 A부터 Z까지 알파벳순으로 따라가며 자신의 가족사와 성장 배경에 대해, 그에게 지적으로나 인간적으로 큰 영향을 준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그의 사상과 실천의 자양분이 되었던 정치 격변기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한다.
네그리가 말하는 네그리 속으로 들어가보자. 할머니가 만들어주셨던 크림 카라멜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의 ‘즐거움’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감옥에서 고통과 불안 속에 깰 때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기도’했다고 말하는 그에게서, 그리고 펠리니의 <달콤한 인생>을 상영하지 못하게 한 독재자 신부에 대항해 1만여 명의 군중들과 함께 시위를 했던 25살의 어느 날 밤을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우리는 20세기의 천재적인 정치철학자이자 사상가, 운동가인 네그리가 아니라, 나약한 보통 사람으로서의 네그리를 볼 수 있다. 또한 자녀들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는 모습에서는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을, 완전한 귀환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전진하는 모습에서는 어떤 폭력으로도 망가뜨릴 수 없는 행동하는 지성으로서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정신분석학자이자 철학자인 대담자 안느 뒤푸르망텔은 이 생체정치적 대담에서 때로는 추임새를 넣고, 때로는 네그리를 도발함으로써, 굴곡 많고 순탄치 않은 현대사를 살아야 했으나 과거의 상처를 딛고 “살아 있는 삶으로 복귀”한 인간 네그리의 진정한 귀환을 추적한다.


출발의 상처, ‘사악한 지도자’의 가면이 씌워지다
1979년, 네그리는 파도바대학의 교수로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며, 노동자계급의 독자성, 자율성을 강조하고 운동의 공간을 ‘공장에서 사회로’ 확대하고자 하는 아우토노미아 운동을 주도하던 중 붉은 여단이 저지른 전 수상 알도 모로의 납치, 살해를 배후 조종한 혐의(조작된 혐의)로 체포되어 수감되었다. 그는 붉은 여단의 수뇌로 피소되었지만, 실제로는 붉은 여단의 무장 투쟁에 반대하고 있었다. 그때 아우토노미아 운동을 하던 60여 명의 교수, 작가, 언론인 등도 그와 함께 체포되었고, 그에게는 ‘국가에 대한 무장 반란’ 혐의가 추가되었다. 네그리는 그간의 모든 테러 행위의 배후 수뇌로 낙인찍혀, 파시스트 법률하에서 4년 반 동안 재판도 없이 특별 감옥에 억류되었다.
1983년, 옥중 당선되어 출감한 네그리의 의원면책특권을 두고 하원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고, 결국 그는 4표 차이로 면책특권을 상실했다. 역설적이게도 그 4표는 그의 사면을 위해 그를 의원 후보로 지명했던 급진당 의원들의 표였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그는 재수감되기 직전에 프랑스로 망명을 떠났다.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에서 그는 배신자이자 ‘사악한 지도자’, 즉 ‘카티보 마에스트로’라는 이미지로 왜곡되었다. 언론은 그가 도망간 것에 대해 격분했고, 우파는 그를 비겁자로 취급했으며, 심지어 좌파마저도 당시 공산당 자체의 위기의 상징이자 반영이었던 네그리가 망명하자 그 위기에서 어떤 결과를 끌어내기 위해 그를 ‘배신자’로 낙인찍었다. 그의 감옥 동지들 또한 상당수가 그의 망명을 배반으로 받아들였고, 이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는 네그리와 같지 않다. 우리는 여기 머물렀다. 네그리는 우리를 배반했다.”


‘새로운 생명의 탄생’, 그리고 당대 지성들과의 교유
그는 이탈리아를 떠난 것(‘출발’)이 진정한 상처였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은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육체적 생명뿐 아니라 지적인 생명마저도 위협받는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망명한 그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은 생명을 잉태하는 일이었다. 파리에서 태어난 그의 딸은 그에게 삶을 재확인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존재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망명과 구명을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절친한 친구 펠릭스 가타리, 동료 철학자 질 들뢰즈 등 당대 최고의 프랑스 지성들과 활발히 교유하면서 제2의 지적인 삶을 복원해나갔다. 그는 가타리와 함께 프랑스 최초의 ‘녹색’ 조직을 설립하는 한편, 들뢰즈와 끊임없이 철학을 토론하고, 알렉상드르 마트롱, 에티엔 발리바르 및 맑스주의자인 장-마리 뱅상, 드니 베르제 등과 교유하면서 ꡔ자유의 새로운 공간ꡕ, ꡔ전복의 정치학ꡕ, ꡔ구성 권력ꡕ 등을 출간하고, 알튀세르, 들뢰즈 등의 후원으로 파리8대학에서 강의를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적인’ 망명 생활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망명이 얼마나 공허했는지 이야기한다.

망명은, 비록 극도로 능동적인 망명―나의 망명이 그랬듯이―일지라도,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합니다. 나는 14년 동안 신분증 없이 살았습니다. 망명 생활을 하는 것이 어떠한지를 그리고 그러한 망명 생활을 우리 주위에서 성공적으로 설계하는 것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본문 6쪽에서)


귀환의 상처
1997년, 마이클 하트와 ꡔ제국ꡕ의 공동 집필을 끝마친 직후 네그리는 이탈리아로 귀환했다. 자신의 귀환이 1970년대의 문제를 종결짓고 아우토노미아 운동을 하다가 수배와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정치적 해결책을 찾아줄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서였다. 그러나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네그리는 다시 수감되었다. 그는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감옥형)를 해결하기 위해 제멋대로 돌아왔다고 비난받았으며, 법원은 그에게 3년 반의 구금형을 추가했다. 그의 공적인 이미지는 1979년에 그가 체포되었을 당시 매일 저녁 8시 텔레비전 뉴스를 장식하던 큰 코에 부스스한 머리를 한 수배자, 사악한 지도자의 이미지 그대로였던 것이다.
이 신체의 귀환에서 그는 “진정한 배반을, 마치 사람들이 역사에서 지우기를 원했던 것 같은 진정한 붕괴를 경험”했다고 말한다. 그에게 이것은 진정한 귀환이 아니었다.


진정한 귀환, 귀환은 다시 걷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의 진정한 귀환은 그가 이탈리아로 돌아온 1997년으로부터 4, 5년이 지나서야 이루어졌다. ꡔ제국ꡕ 출간 직전인 1999년 12월, 네그리가 ꡔ제국ꡕ에서 ‘제국’에 대항하는 대안 세력으로서 제시한 ‘대중multitude’의 정확한 구현인 듯, 시애틀에서 열린 WTO 각료회의에 때맞춰 세계화에 반대하는 6만여 명의 시위 군중이 세계 각처로부터 운집했다. 하나의 예언서가 되어버린 ꡔ제국ꡕ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고, 전 세계 언론과 지식인들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리고 2001년, G8 정상회담이 개최된 제노바에 수십만 명의 반세계화 시위 군중이 결집했다. 제노바 사건은 그야말로 ‘제국’에 저항하는 ‘특이성들의 구성적 역능’을 확인시켜준 사건이었다. 이를 계기로 비로소 네그리는 ‘사악한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낡은 이미지를 깨부수고 과거가 아닌 현재로, 그리고 미래로 돌아와 삶의 새로운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지칠 줄 모르는 사상가는 멈추지 않는다. 삶을 고정된 틀에 맞추려는 모든 시도들에 대한 끝없는 저항을 외치며 억압적인 거대 권력에, 초국적 기업에, 제국에 대항하는 대중들의 아우토노미아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여전히 품고 있다. 그리하여 그의 귀환은 완수되었으나 끝나지 않았다. 그의 귀환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알파벳순으로 쓰는 생체정치적 전기라는 착상에 대한 간단한 서문

A…… 무기Arme, 습격Attentat, 행위Action, 기대Attente, 미래Avenir
B…… 붉은 여단Brigades Rouges
C…… 장Champ
D…… 상처Déchirure
E…… 제국Empire, 우생 사상Eugénisme
F…… 파시즘Fascisme
G…… 전 지구화Globalisation
H…… 하이데거Heidegger, 잡종화Hybridation
I…… 무의식Inconscient, 순수함Innocence, 발명Invention
J…… 더 이상 안 된다Jamais plus, 즐거움Joie
K…… 칸트Kant, 카이로스Kairòs
L…… 롬바르드인Lombard
M…… 대중Multitude, 물질Matière, 괴물Monstre
N…… 이름 붙이기Nommer, 네그리Negri, 중립Neutre
O…… 억압Oppression
P…… 공황Panique, 기도Prière, 정열Passion
Q…… 무엇을 말할까요?Que dire?
R…… 저항하기Résister, 귀환Retour
S…… 관능Sensualité
T…… 유혹Tentation, 땅Terre, 쌍둥이빌딩Twin Towers
U…… 통일성Unité
V…… 베네치아Venise
W…… 비트겐슈타인Wittgenstein
X…… 방정식의 미지수l’innconnue de l’équation
Y…… 눈Yeux
Z…… 엘레아의 제논Zénon d’Élée

옮긴이의 말

현실 속으로 도약하는 것이, 현실 속으로 빠져들고 현실 속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유일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삶은 바로 세계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형하고 세계를 발명하는 것입니다. 세계를 혁명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를 재건하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비싼 값을 지불해야 했던지……. 오늘날 나의 귀환은 완수되었고 [……] 나는 많이 걷습니다. 귀환은 다시 걷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모든 난관에서 벗어나는 것이며 또한―그리고 무엇보다도―실패에 의해 지워졌던 열정을 돌아오게 하는 것입니다. 더 적은 추억들, 따라서 더 많은 새로운 경험들. 미래는 낡은 가슴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미래는 우리가 매일 구축하는 것이며 그래서 항상 새로운 어떤 것입니다. (본문 240～241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