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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힌 브랜드를 한 호에 하나씩 소개하는 브랜드 다큐멘터리 매거진이다. 브랜드가 지닌 철학은 물론 숨은 이야기와 감성, 문화까지 감각적으로 담고 있어 브랜드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다. 2011년 11월에 창간하여 지금까지 패션, 라이프스타일, 테크, 도시 등 90여 개의 브랜드를 전 세계에 소개해왔다. (www.magazine-b.com)

■ 이슈 소개

아흔일곱 번째 매거진 입니다.

작년부터 새해를 막 넘긴 지금까지 가장 많이 듣는 단어를 꼽아보면 도파민이 먼저 떠오릅니다. 호르몬의 한 종류가 이토록 회자되는 건 콘텐츠 시장의 수요와 공급 모두가 재미와 흥미를 좇는 쪽으로 기울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의 콘텐츠 시장은 곧 ‘관심 경제’, ‘중독 경제’로 불리고 있습니다. 대상의 본질을 천천히 탐색하기보다 대상을 경험하고 인증 도장을 찍는 방식으로 빠르게 많은 것을 집어삼키는 소비 패턴이 일상적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는 많은 산업이 엔터테인먼트화하고 있습니다. 패션도, 메이크업도, 뉴스도, 지식도, 모든 것이 놀잇감이 되어야만 하는 시대입니다. 유희가 곧 기술이며 맥락이자 가치인 것입니다.

디즈니는 ‘엔터테인먼트’라는 주제를 놓고 봤을 때 모범 답안지 같은 브랜드입니다. 스토리의 왕국, 거대 미디어 기업, 슈퍼 IP 회사라는 다양한 수식이 디즈니를 따라다니지만, 100년의 역사를 이어온 이들의 정신을 단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엔터테인먼트가 될 것입니다. 창립자 월트 디즈니는 엔터테인먼트를 이렇게 정의한 바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지식의 발견에는 위대한 엔터테인먼트가 있다는 근본 개념을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거꾸로 생각하면 위대한 엔터테인먼트에서는 언제나 지혜와 휴머니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요.” 월트 디즈니의 말대로라면 디즈니가 전하고자 하는 엔터테인먼트는 앞서 언급한 도파민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디즈니의 오랜 팬들은 긍정, 용기, 낙관주의, 기쁨, 삶의 감각 등의 가치를 디즈니가 선사하는 엔터테인먼트와 연결하곤 합니다.

그중에서도 ‘행복(happiness)’은 디즈니에 매우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디즈니는 자신들의 업에 대해 “모든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최고의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함으로써 행복을 창조하는 것”이라 설명합니다. 행복이라는 말은 해석하기 어렵고 과연 실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지만, 디즈니는 그 개념을 실체로 바꾸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습니다. 여러 종류의 뉘앙스를 지닌 행복 중 디즈니가 생산해내는 행복은 충만한 상태이기보다는 안전함을 느끼는 상태와 가깝습니다. 디즈니의 애니메이션과 영화, 뮤지컬,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집약체 같은 디즈니 파크에서 사람들은 부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부터 차단됩니다. 긍정적 정서로 고양되어 세상이 살 만하다고 여기는 것, 좋은 기억과 추억으로 삶을 재편집해주는 것. 이것이 디즈니에서 통하는 일종의 만트라 mantra입니다.

이러한 행복감은 〈미키 마우스〉, 〈인어공주〉, 〈알라딘〉, 〈라이온 킹〉 같은 클래식 애니메이션에서 시작해 이들이 인수한 픽사, 마블, 스타워즈 등의 콘텐츠로 확장되며 거대한 디즈니 세계관의 엔진으로 작용합니다. 사운드트랙과 서적, 관련 머천다이즈, 테마파크 등은 행복감을 복기하고 재생산시키는 도구로 제 역할을 해내고요. 이들이 설계한 선순환 구조는 개인의 생애 주기에서도 흥미로운 양상으로 작동합니다. 어린 시절에 디즈니 콘텐츠를 처음 접하고는 사춘기 시절에 다소 시니컬해졌다가 대학생이 되면서 다시 추억을 소비하거나, 내내 큰 관심을 두지 않던 성인이 자녀나 손주가 생기면서 디즈니를 경험하는 사례가 그렇습니다. 이렇듯 그물망처럼 촘촘하게 직조한 세계관에서 언젠가는 디즈니라는 브랜드와 교차하게 된다는 것, 그 교차점에서 각자가 떠올리는 디즈니의 브랜드 상이 제각기 다르다는 것. 바로 이 범용적이면서 지극히 개인적인 브랜드 경험이 100년 역사를 지닌 디즈니의 성공 비결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편집장 박은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