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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루 : 김현장 시조집
2013년 9월 9일 이후 누적수치입니다.
- 출판사 : 고요아침
- 발행 : 2023년 12월 27일
- 쪽수 : 104
- ISBN : 97911672416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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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수의사이자 시인인 김현장의 첫 번째 시조집
단단한 언어와 팽팽한 시조 리듬,
현실의 바깥과 안쪽을 두루 살피는 시조집 「느루」
수의사이자 시인인 김현장의 첫 번째 시조집이 출간되었다. 이번 시조집에서 독자는 시골 수의사의 하루를 엿볼 수 있는 동시에, 생명의 시작과 끝을 장엄하게 펼치고 있는 시인만의 독특한 감성을 만날 수 있다. 시인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남도의 특별한 풍광과 함께 시인 내면의 시적 풍경도 함께 할 수 있는 이번 시조집은 시조의 리듬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독자에게 사색과 서정의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시인이 앞으로 걸어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사실 시조는 관념적인 언어의 조합이 많기 때문에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점에서 시인은 대부분 작품에서 구체적인 형상화를 통해 시상을 이끌어 가고 있기 때문에 매우 단단한 시적 바탕을 구축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살 찬 바람”과 “떼 지어 나는 철새”, “시린 눈”, “눈 내린 들판”은 실제의 상황을 연출한다. 이에 반해 거울 속에 갇힌 “눈 감은 햇빛들”과 “내 안의 마른 꽃향기”(「곡두」)는 실제 상황의 양념이라 할 수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실제 상황과 버무려져 생생한 화폭을 만드는데 기여한다. “곡두”이자 시적 상상력인 셈이다. 이로 인해 시는 보다 탄력적이고 긴장감이 넘친다. 이는 관념을 넘어서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인 셈이다. 나는 시인이 이런 “곡두”와 같은 시적 상상력을 폭넓게 구사해주기를 바란다. 여기에 우리 시조 미래의 한 방향이 있을 것이다.
─ 이지엽 경기대 교수ㆍ시인
목차
시인의 말 05
제1부 삶과 죽음에 관한 보고서
우영이 13
안락사 14
울음을 꿰매다 15
시골 수의사의 하루 16
뿔 17
줄탁동기？啄同機 18
소 19
발톱에 관하여 20
계란을 삶는 저녁 21
우시장에서 22
단종애사斷種哀思 23
3월 24
제2부 마음의 고요한 중심을 찾다
소금 창고 27
마리오네트 28
명태 29
느루 30
가위 31
아내의 식탁엔 바다가 산다 32
별 나루 33
물을 읽다 34
책 한 권의 각도 35
사랑은 커브로 간다 36
곡두 37
들꽃 38
제3부 뿌리가 가지는 힘
드라이 플라워 43
국도 1호선 표지석 앞에서 44
달의 이력 45
좁교 46
어머니의 신발 47
손톱을 깎으며 48
바퀴 50
단풍 51
선인장, 그 여자 52
빈들에 눕다 53
윤달 54
신 고려장 55
제4부 흐르는 강물처럼
크레바스 59
신 도시학 개론 60
역병 61
블루 마운틴 62
압화 63
날씨 공작소 64
거위눈별 65
저녁의 문장 66
아나스포라 67
빛의 감가상각 68
공존의 그늘 69
시월을 읽는 오후 70
제5부 시간을 반올림하다
계동마을 슈퍼 73
폐차장에서 74
스캣 75
죽음에 관한 몇 가지 메모 76
사랑의 경제학 78
유월의 편지 79
한숨의 정체 80
연꽃의 개화 81
갯벌 담채 82
노둣길 83
다산, 불시착하다 84
백색 소음 85
절집에서 86
해설_ 뿌리와 시간과 죽음에 관한 탐구 /이지엽 89
본문중에서
우영이
맹우盲牛로 태어나서 어미 젖 못 찾아도
제 이름 불러주면 달려와 손을 핥던
여러 배
새끼를 낳아
내 아이들 학비 대던
그러다 난소 이상, 불임 진단 받은 후엔
사료의 양을 늘려 비육을 시작했다
우시장
경매 소들 사이
귀를 세운 우영이
초점 없는 눈 굴리며 소리를 찾고 있다
다가가 쓰다듬고 이름을 불러주니
긴 혀로
쓱쓱 핥으며
눈물 뚝뚝 떨구던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느루
노을빛 짙은 갈대숲 지나는 바람 무리
그대 종종걸음 서둘지 마세요
갯벌 속 계절의 향기가 숨어들고 있어요
꽃구름 슈크림처럼 넌출 거리며 오고 있네요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면
강바닥 느린 유속으로 가없이 흐르기로 해요
거꾸로 매달린 종유석이 자라나고
갓 베인 시간들은 논바닥에 쓰러져
늦가을 햇살 바람을 온몸으로 즐기네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랑은 커브로 간다
너는 늘 직구를 원하지
남자가 뜨뜻미지근하다고 타박하면서
그러나 직구가 언제나 스트라이크가 되는 건 아니지 볼 빠르기만 자랑하다 컨트롤 난조로 조기 강판하는 투수가 얼마나 많은가 사랑은 날아가는 속도 보다 스트라이크 존에 얼마나 정확히 꽂히느냐가 중요하지 너를 향해 커브로 날아가는 동안 마음의 궤적이 일으키는 파동을 조절하며 심장에 안착하는 꿈을 꾸지 회전력에 따라 파워커브 너클커브 슬로커브등 이름도 다양하지만 입을 활짝 열고 있는 너의 글러브를 향해
매조지 마지막 한 구球의 커브를
힘차게 뿌리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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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바스
한밤중 낙원아파트 고요에 금이 간다
비속어와 악다구니 골짜기를 울리고
빙하가 갈라지면서 시린 어둠 스며든다
신경줄 다잡아도 추락하는 말의 세락
어린아이 뛰는 소리 틈새를 벌려놨다
혹한의 깊은 미로로 눈보라가 몰아친다
안개 속 화살처럼 박혀오는 낙빙들
꽉 다문 환한 달빛 도랑 따라 넘치는데
경광등 멀리 번쩍이며 사이렌이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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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불시착하다
늦은 오후 고을 읍내 낯익은 사내 걸어간다
도포 자락 펄럭펄럭 구름 빛 수염 사이로
갓 볶은 원두커피 향 코점막을 마비시킨다
테이크 아웃 커피 한잔 유배의 숨결 담아
녹차 꽃 순하게 핀 동문 안 울타리 걸으면
주모는 가고 없는 사의재, 품은 신독만 여여하다
물색 고운 구강포 이랑 흑산까지 흘러갈 때
동백림 붉은 동굴 지나, 산 녹차 푸른 숲 지나
백련사 호젓한 길 따라 초막으로 넘어간다
해 저문 천일각에 수북한 수루愁淚 쌓여
식지 않은 그리움 손샅에 바장이고
누마루 건너 포구에 뉫살 같은 물결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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