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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온 김일수 시인의 제1시집〈하늘과 기러기〉(2015). 제2시집〈너와 나 사이〉(2020)에 이은 제3시집이다. 고통 속에서 더욱 뜨겁게 흘러내리는 눈물처럼 황무한 땅 위의 삶을 바라보는 괴로움 가운데서 또 하늘과 땅과 바다에 걸친 피조세계의 경이로움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듯 다가오는 갖가지 시상들, 그건 연약한 심령을 어루만지는 신의 은총인 듯 아니면 아련히 느껴지는 어머니의 자장가인 듯도 싶다. 그렇게 돋아난 생각의 편린을 조개껍질처럼 모아두었다가 사회적 거리 두기로 얼어붙은 이 적막한 시기에 다시 꺼내어 손질한 시편들이다.

그 월광의 황홀함과 맑은 영혼의 눈금읽기
- 김일수 시집,『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의 시적 담론
엄창섭(김동명학회 회장 · 월간『모던포엠』주간)

1. 시적 감응(感應)과 바람의 변주(變奏)

모름지기 삶의 일상과 맞물려있는 시적 합리성에 의한 창조활동은 지극히 의미 있는 정신작업이다. 특정한 시인이 작금의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의 문제는 다양하게 접근하고 대응함에 의해 그 명료성은 점차 확인된다. 한편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서 소소한 일상에서 체득한 자잘한 기억흔적을 절제된 감정으로 말끔 정제한 시편들은 빛나는 생명체로서 시적 작위(作爲)에 의한 내적 발현이다. 여기서 「그 월광의 황홀함과 맑은 영혼의 눈금읽기-김일수 시집,『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의 시적 담론」에 맞물려있는 내면의식은 즉물 대상인 푸른 식물성 질료와 연계성을 지니기에 새삼 관조(觀照)할 일이다. 일단 앞서 평자는 그의 첫 시집 『하늘과 기러기』(모던포엠, 2015)의 「맑은 영혼에서 통신된 따뜻한 감성적 형상」을 전제로 하여 의식의 파동을 기호화하고 시적 행위를 즐길 줄 아는 존재감 빛나는 시인이 빗나간 전통의 실을 그 자신의 시 안에 다시 꼬아 넣는 힘겨운 역주(力走)의 당위성을 합리적 해법으로 지적한 바 있다. 그 같은 시각에서 “정신적 피폐함에 의해 고통 받는 현대인의 불안의식마저 동양적인 숙명관으로 일관성 있게 연계지어서 시적 토양에 경작(耕作)한 연유로, 그의 시적 특이성은 즉물적 대상의 화합과 사랑으로 전이시키는 역동성을 공리적 시관으로 풀어낸 인간존재에 관한 교시(敎示)이기에 그 놀라움이 하나의 충격임”을 스스럼없이 제시하기도 하였다.
모처럼 깊은 고뇌 끝에 간행하는 제3시집『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모던포엠, 2021)는 공감각적 시 심리의 효과를 못내 더하기에 신선한 관심의 대상물이다. 까닭에 견고한 성채(城砦)와 견주어 여백의 틈새마저 치밀한 그물망으로 촘촘히 챙긴 편집구성은 「Ⅰ.꽃비와 나비, Ⅱ.그게 사랑인가 봐, Ⅲ.이제 알겠네, Ⅳ.복숭아꽃 그늘 길, Ⅴ.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각각 20편씩 5부, 총100편의 적지 않은 분량은 초월적 다양성도 체계적으로 수용하고 있다. 개념상 담론(談論)은 ‘어떤 주제에 관해 체계적인 논의를 뜻하는 언동(言動)’으로 미셸 푸코가『담론의 질서』에서 ‘단순한 기호들의 집단이 아닌 사물을 체계적으로 형성하는 사회적 실천의 의미임’은 한번쯤 가늠할 당위성을 지닌다.
그렇다. 서정성이 미적 주권을 보다 확장한 정신작업의 결과물은 일상의 감동을 회복시켜주기에 데리다의 ‘책의 바깥은 없다.’는 주장은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는 정신작업에 종사하는 이들의 시적 행위에 견주어 불꽃같은 열정과 깊은 사유와의 결과물에 해당한다. 또 하나 존재감 빛나는 시인이 망각한 불의 꿈을 다시 지피는 인생의 중량감은 묵언의 응시로 관망할 타당성이 주어지기에 애써 미적 주권의 확장을 위해 ‘시의 자주성, 독자성을 회복시키려는 시의 틀 짜기’를 위한 그만의 고뇌는 눈물겹다. 짐짓 현대와 전통의 틀을 쌓고 허물며 자신의 시적 토양과 지평을 구도적인 자세로 아우르기를 반복하는 정신적 행위는 한순간 치솟던 마음의 격정을 평정시켜 정신기후마저 따뜻하게 조성시켜주기에 때로는 의미심장하다.
비교적 그 자신이 즐겨 틀과 도구로 사용하는 서정시는 생명력이 있는 건강한 현대시와 결속되고 있기에, 즉물적 대상을 눈부신 존재의 꽃으로 피워내는 정신작업은 물론하고 삶의 일상에서 치열한 시정신은 소홀하게 지나칠 수 없다. 혹여 그의 시편은 전율 같은 긴장감에서 파생되는 존재론적 해석과도 맞물려있다. 차지에 시집의 목차 「꽃비와 나비」편에서 푸른 계절 화사한 왕관을 쓴 장미의 연상은 ‘여성상징의 꽃(장미)’을 시적 질료로 하여 “가시가 아닌 인고의 사랑 고이 품고서/시의 진실 발아(發芽)하기 알맞은 시점에서/보일 듯 보이지 않고 들릴 듯 들리지 않는(겨울장미)”의 보기에서나 또는 “꽃비가 수면 위 우수수 쏟아질 때마다/푸른 화폭은 금빛반짝이는 색조로 변하고/다시 연분홍색 덧칠 반복하길 수차례/젖은 꽃잎들은 화사한 봄 물결을 타고(바람의 손)”에서 이미지의 형상화는 생명감이 묻어나 충동적이다.
특히 동질화의 양상에서 시적 정감이 맞물린 〈봄비〉, 〈가랑비〉 등의 시편도 예외는 아니지만 그의 대표시격으로 점쳐지는 “나비는 금빛 사다리 통해 마침내/구름 위로 날아갈 꽃 비행에 오른다,/이윽고 무거운 정적이 깨어지며/공중으로 힘차게 날아오르는 나비(꽃비와 나비)”에서 애매 모호성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에 결부되는 조짐이다. 모처럼 추상(抽象)에 의한 푸른 생명의 언어는 영혼의 목마름을 해소시켜주는 은총의 충만감이다. 비록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우울한 삶의 시간대일지라도 신이 허락한 존재의 섭리를 구명하려고 리듬과 형태를 갖춘 뜻있는 정신작업은 ‘특정한 시인의 정직함과 성실성, 그리고 시편의 해법’의 그 의미망에 의해 더없이 다채롭다.
여기서 전체적으로 칙칙함이 말끔 씻겨난 시격의 발아(發芽)로 평상심을 유지시켜주는 선미(禪美)와 담백한 시격에 의해 시적 정조는 자못 매혹적이다. 소소한 일상에서 아름다운 동행자가 되어 햇빛과 바람소리를 감미롭게 체득하고 통섭의 틀 짜기를 위해 열중하는 정신작업은 높이 평가해도 결코 지나치지 아니하다. 전통적으로 서정성은 시의 본말로 내면의식에서 삶의 비의를 응축하기에 “보이지 않는 바람의 형상 불러 모아/빈들에서도 생명의 꽃 피우느라/눈코 뜰 새 없어 말수 적었던 친구,(젊은 예술가의 죽음)”의 시적 교감은 친근감을 지닌다. 또 한편 ‘아침저녁 무채색 웃음꽃으로 피어나는 꽃 접시’에서 입증되는 “아내의 눈은 멀고 또 깊어서/날마다 메마른 식탁 위로/생명의 흔적 하나 불러온다./절로 솟아나는 해맑은 웃음꽃/아내의 그런 속마음은/생각보다 깊고 청초(淸楚)하다.(아내의 마음은 깊다)”에서 지극정성은 존재의 꽃을 피워냈기에 보다 처연하다. 차지에 〈가발논쟁〉과 같은 해학적이고 삶의 일면을 풍자한 시편도 있지만 ‘세속에 찌든 신발 벗어놓고 맨발로 서고 싶은 충동’에 비춰 “우듬지 푸른 나무그늘에 서면/우두머리, 으뜸 닮은 그 성품이/어린아이보다 천진한듯하여/겹겹의 추한 생각 못내 수줍음이다.(우듬지 곁에서)”에서 시적 양상은 수줍은 듯 잔잔한 감동의 파동이다.

2. 매혹적 형상과 위대한 창조적 영혼

어디까지나 ‘극소수의 창조자’로 일컬어도 거부감 없는 화자(persona) 자신의 생산적인 결과물은 마침내 저마다의 영혼을 생명나무 그늘로 인도하여 아집의 편린(片鱗)으로부터 이탈케 하고 끝내 관조의 세계로 몰입시키는 골격을 구축하기에 한번쯤 '테레사 효과(Teresa effect)'와도 연계시킬 일이다. 그만의 이채로운 시적 의미는 풀꽃 잘게 흔드는 자유로운 바람의 영혼이거나 산 여울의 자잘한 울림으로 끈끈한 친근감을 나직한 육성으로 불러내고 마침내 어둠의 그늘 말끔 걷어낸 정치(精緻)한 언어의 그물망이다. 이처럼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시켜 창조주 앞으로 인도하는 작은 신의 대언자로서 상승작용을 시도하는 역할의 충직함은 그 자신의 명백한 정직성에 의해 차별성을 지닌다.
일단 김일수 시인과의 각별한 관계층위라면 ‘천년의 시향’으로『예성시고(蘂城詩稿)』에 ‘예부터 명주에 시인이 많다(溟州詩人多)’는 그 하슬라(何瑟羅) 땅에서 중고등학교의 동기로 6년간 국어교사였던 원영동 시인의 문하생이라는 자긍심이 인연의 끈으로 옥조여왔음도 배제할 수 없다. 또 한편 우연치 않게 시집평설을 정리하는 중에 파도소리가 낮게 깔린 ‘우울증 해소음악’인 〈해변을 거니는 너와 나(Me And You on The Beach)〉, 〈화창한 날, 황금모래사장에서(Sunshine Day And The Golden Sand)〉, 〈포말의 아름다운 멜로디(Melody Of Wave)〉를 접하며 작업에 임했다. 위에 열거한 피아노곡은 태국의 세계적 뉴에이지 명상음반작곡가로 뮤지션작곡가 샴라스 세와타폰의 곡은 비교적 명상적이고 자연주의적인 ‘Green Music’은 불교와 선(禪)에 뿌리하고 있다.
무엇보다 인생의 황혼기를 만보(漫步)하고 유유자적하되 한 사람의 지성임을 자처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몸담고 있는 시대상황에서 지극한 애정과 관심을 쏟고 있기에 현상학적으로 그 자신은 긴장감을 늦추지 못하고 있다. 그 같은 현상에서 “왁자지껄하던 대낮의 광장과/인적이 사라진 공원도 생기를 잃고/유령들이 어슬렁거리는 거리/슬픈 피리소리만 들리는 것 같다.(거리두기가 뭐여)”에서 타당성을 제기한 전의식(前意識)이나 삶의 공간인 가정을 기본골격의 인자(因子)로 의식하고 종교적 경건함을 단순한 교리로 수락하지 아니하고 일상화의 동질성으로 풀어낸 온전한 삶의 현상은 측은지심이다. 비록 지구촌이 코로나 19로 절망의 늪에서 허적이고 있지만 솔로몬의 잠언서나 유대경전인 미드라쉬(Midrash)의 ‘이 또한 지나가리라’의 일깨움처럼 그 자신의 ‘거리두기가 뭐여’라는 시의미의 반응은 동기부여의 차별성이다. 차지에 “놀라워라. 하나님 어린 양의 지극한 사랑//그 사랑 본받아 살라는 생명의 언약(言約)/허나 ‘죄는 미워하되 죄인은 사랑하라’는/진리의 가르침 앞에 가끔은 의문이다.(죄인과 친구)”라는 물음의 제기야말로 천상(天上)의 층계를 오르는 키워드이기에 새삼 관망할 바다.
이 같은 맥락에서 차고 처연하되 담백한 시적 이미지는 고통을 눈 뜨게 하는 응결체로 작동하고 있다. ‘사랑 닮은 진실이 미의 창조(創造)임’은 예의주시할 항목이지만 “파도처럼 와락 밀려와 피었다 사라지는/흰 포말처럼 봄비에 젖어들어 수줍은/설렘으로 다가오는 애틋한 숨결처럼/그런 은근한 사랑이어도 좋지 않으랴?(매화의 사랑)”라며 물음 앞에서 그 자신을 놓아본 시적 태도는 한번쯤 관망할 점이다. 여기서 “일이 마무리돼 다행이라는 것/태무심하게 그간 빈방에 묵혀두었던/가장이라는 신분 다소 부끄러운 시간에/아내의 콧노래는 왠지 흥겨울 뿐이다.(가장이라는 자리)”에서 삶의 동질성은 더없이 흥미롭다. 그 자신은 오랜 날 대학 강단에 몸담아왔기에 ‘습관처럼 무거운 책가방을 끼고 연구실로 나가던 그 생활’을 정년으로 끝낸 뒤 새롭게 체득한 일상에서 “인천행비행기 이륙은 하루 늦춰졌다는 것,/따스한 스프는 다시 냉장고에 들어가/긴긴 하루 꼼짝 말고 기다려야하고/얼떨결에 든 내겐 신열이 일 듯도.(기다림 2)”의 보기에서 빈도수 높게 처리되듯 ‘존재의 뿌리며 삶의 요람인 가정’을 축(軸)으로 한 ‘집, 아내, 자녀의 삼각대위(三角臺位)의 구도처리’는 불가분의 관계이다. 이처럼 존재의 뿌리인 가정을 중심으로 아내와 자녀에 관한 따뜻한 관심과 배려감은 “우편배달부 동구 밖 휘돌아 가면/군문에 든 막내아들 잘 있을까./먼 마을로 시집간 딸은 잘 지낼까./시간의 실핏줄 사이를 휘저으며/검은 구름 몰고 다니는 폭풍같이/오늘과 내일을 무시로 넘나드는/저, 그림자도 없는 검은 실체(염려)”의 그 다양성은 끝내 열린 우주로의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각론하고 삶의 면면이 수용된 그 자신의 대다수 시편에는 혼돈의 시간대를 걸친 중량감이 물씬 가해져 목가적 서정성이 빛나고 있다. 가끔 인간소외를 경계한 ‘미끄러짐의 시학’에서 “허위의식에 사로잡힌 똘마니가 아니면/그때 소박한 눈망울 지닌 사람도/진실의 힘이 무언인지 분명 알게 되리.(웃어주다 보면)”도 그렇지만 일상의 개아적인 느낌이 명백하게 해명되지 않을지라도 “별안간 낯선 곧은길 들어섰을 때/칼 들고 내게로 달려오는 게/마적 떼만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그 또한 불안의 뿌리인 것 알았다.(무지에서 오는 축복)”에서 숙고할 필요성은 절실하다. 혹여 이미지의 형상화 조건이 상이한 〈착시현상〉, 〈k성형외과〉이나 또 〈노인과 나무지팡이〉의 시편들은 비교적 선명한 즉물적 대상을 질료로 빚어낸 시편이지만 그 자신의 합리적인 항변 뒤에 소음의 도시 공간, 그 사각의 빌딩 숲을 뛰쳐나와 자연(physis)과 연계성을 맺는 현존재(Dasein)로서의 일관성이 주어진 시적 상상력은 수동적인 사물과 능동적인 정신의 결합에 의해 마침내 매개적 정신능력의 추이(推移)에서 처리된 경우다. 〈/k성형외과〉
비록 시적 상상력을 확장하여 귀소심리(歸巢心理)와 연계성을 결부 짓지 않더라도 “주위를 가벼이 날면서 기웃거려 보며/못내 즐거운 가락으로 정겹게 지저귀는 게/필시 누군가 겪은 어둠의 굴레에서 벗어나/감격 어린 환희를 나누는 나들이인 듯하다.(귀소)”는 따뜻한 감성을 축(軸)으로 한 윤무야말로 모처럼 ‘죽어가는 황무지로 하여금 푸른 생명의 노래 부르게 하리라.’는 절박한 기대감 역시 “홀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는 나무/천형(天刑)의 땅에서 뿌리는 짓밟혀서/비록 비틀어지고 새까맣게 타들어갔어도/거센 바람에도 뜻 굽히지 아니하고(꿈꾸는 나무)”에서 내심 감지되듯 강인한 집념마저 푸른 식물성 언어로 읊어내며 “철따라 이름 없이 피고 또 지는 들꽃/각양각색의 풀꽃과 이름 모를 풀벌레들/숲속에서 조잘대는 산새의 울음과/늘 깨어 화답하는 청산의 마음.(어떤 조화)”에서 그 지극선(至極善)의 구도처리 양상은 못내 정겨울 따름이다.
차지에 “기억의 해안선을 깨우는 하얀 물결처럼/기다림은 소망의 언덕에서 설렘을 낳고/그 느낌이 또 일기장 갈피마다 쌓이면/추억 속에서의 아름다움이나 안타까움은/애틋한 그리움으로 오롯이 남으리니.(길 위의 시간)”라는 시 의식에 내재된 아득한 유년의 정신풍경화에 맞물린 시적 분위기는 마침내 ‘해안선→기다림→그리움’으로 연계되어 “고향으로 봄나들이 가는 길에/화사하게 피어오른 복숭아꽃/그 꽃그늘 밑 숨겨진 길을 따라/낯선 좁은 문이 아득히 열리면/또 하얀 해안선 그 너머로/넘실대는 푸른 바닷길이 보이고(복숭아꽃 그늘 길)”의 시편에서와 같이 ‘복숭아꽃 그늘→푸른 바닷길’은 〈개나리꽃 동산〉 등에서 클로즈업(近接撮影)되어 시적 감응은 지극히 충동적이다.
또 한편 특이한 시적 현상으로 “해질녘 서산 넘어가는 저녁노을처럼/폭풍의 바다를 달리는 구름이나/숨 가쁘게 퍼지는 전쟁의 소문처럼/하루살이의 시간은 참 빨리도 지나간다.(빠르고 느림)”에서 그만의 감응도 새롭지만 ‘생각의 발길 가닿지 않는 어디쯤에 은밀한 생명의 숨결 피어오름’을 의미 깊게 헤아리면 “가로세로 교직으로 만나 한데 어울리고/남들은 신기하게도 곧잘 이해하지만/도무지 알 수 없는 그 어떤 것들이다.(사물의 경험)”와 같은 일상의 동질성은 잠든 영혼을 흔들어 깨우는 시적 상상력의 확대로 점철(點綴)된다. 또 하나 “절벽을 타고 올라 새겨놓은 이름 석 자/치열한 인정투쟁에 눈은 아프도록 시리다.(사구(沙丘)에서)”도 그렇지만 〈바다와 길손〉에서 ‘바다가 다가와 일렁이는 산길이 좋아, 태곳적 신비 묻어나는 따뜻한 어촌?그 곳의 가난한 마음 더 좋았지.’라는 기대감은 시적 감흥 뒤의 깊은 감회(感懷)다.
모처럼 지정학적으로 탯줄을 묻은 그의 향리는 자연풍광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오색월광이 그 상징’인 처소이기에, ‘그윽한 빛 한결같은 마음에 빚어내어 순결한 신부마냥 고아한 오, 심지 깊은 생명나무’를 배경으로 하고 아득한 월광을 상징화한 〈달빛 소나타〉는 “원망마저 그 원만한 마음으로/그 또한 실하게 다듬고 다지어(온달)”→“다른 반쪽은 어디다 숨겨놓고/이슥한 한밤중 왜 너 혼자 왔니?(반달)”→“조심스럽게 먼발치에 비켜서서/숨죽이고 따라오는 그 심중(心中)/깊고 따뜻한 걸 철들면 알겠지.(낮달)”→“검은 가로수 가지 스쳐가던 하현달/홍등 꺼진 창문 가까이서 당황한 듯/눈길을 슬며시 돌리고 돌아선다.(하현달)”→“무거운 발걸음 받쳐 든 꽃신/하얀 외씨버선 같이 생긴 달(月)/가까운 듯 먼, 빠른 듯 느린/산허리 휘어 넘는 흰 구름 타고(상현달)”→“수면 위에 소복 접어둔 채/슬며시 산기슭 어디론가/아스라이 사라져가는 월광.(달밤)”을 연작시 양식인 황홀한 달빛의 서사구조로 변형시킨 뒤의 ‘눈부신 오색월광’은 신화처럼 밤하늘을 한순간 황홀하고 아득하게 밝혀 놓는다. 일단 소나타(sonata)는 일종의 기악형식으로 서양음악에서 작곡가와 청중간의 약속으로, 작곡가는 주어진 요소(멜로디, 화성, 조성(調性)의 규칙)로 그 기량을 발휘하는 반면 청중은 작곡가의 곡을 잘 감상할 일이다.
비교적 제3시집의 편집구성 제5부 「Ⅴ.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는 핵심파트에 해당되기에 “그 농심 팔려 다니기도 하면서/선거철 아니어도 표심의 흐름을 헤아려/뒷짐 지고 훈수도 둘 줄 아는 농자들/노림수를 알았으니 속탈 일 전혀 없네.(불타지 않는 농심)”라는 공감대를 형성하되 ‘홀로 청계천으로 발걸음을 내딛는 정황의 꽃샘바람 추위 속 할아버지는‘“웬 일인지 휴대전화는 자꾸 호들갑을 떨고/집 가까이 와 있다는 손주목소리에 그만/할아버지는 선뜻 집으로 발걸음을 돌린다./꽃보다 더 보고 싶은 게 손주였나 보다.(꽃보다 손주)”에서 그 혈연(血緣)의 친근함은 비열한 이기주의로 치닫는 정황에서도 끈끈한 연계성을 지닌다. 그렇다. 〈전쟁소문이 들리던 날〉은 “끝나지 않은 영혼의 처절한 몸부림과/고통스런 부르짖음에 응답은 오지 않고/침묵 속 잠잠히 참아 기다리노니/평화의 교신은 언제쯤 다시 열리려나.(끝나지 않은 전쟁)”에서 파악되는 일화(逸話)이지만 우리가 처한 세태의 일면을 풍자적인 일깨움으로 충동하는 〈고향비타민〉, 〈뚱딴지같은 소리 1〉과 같은 시편을 포함해 “13호 입석표를 내보이며 따지기 무섭게/입석표 가지고 자리타령이냐고 쏘아붙인다./할 말을 잃고 잠시 어리벙벙 하는 사이/마침 지나가는 승무원에게 넌지시 물어본다.(입석유감)”에서 분별력 있게 처리되고 있다.

3. 심미적 개아(個我)와 매혹적 합리성

각론하고 선한 심성과 담백한 시격의 기법으로 감정을 엄격하게 절제하고 즉물적 현상을 적확하게 풀어낸 「심미적 개아와 매혹적 합리성」에 보다 무게가 실린 시적 의미성은 그 자신의 시편에서‘길고 짧음’이라는 대칭구도로 응축되어 빛난다. 비교적 우리가 접하는 현재의 즉물 현상은 일정한 패턴으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향한 지속적인 변전이기에‘삶과 죽음, 만남과 이별 등’이분법적 발상은 우주적 상상력을 확대하는 이미지의 추이로 가슴의 눈금 읽기는 자아의 내적성숙을 위한 합리적 해법이다. 그 같은 점에 비춰 그의 시편에서 비중을 지닌 ‘생명의 본원인 바다(海)’가 불어(佛語)에서 ‘바다(la-mer)와 어머니(mere)’의 문자적 연관성은 새삼 고려할 점이다.
어디까지나 순수성이 결핍되고 무너져 내린 암울한 사회에 있어 한 시대의 예언자로서의 시인은 예기치 못한 즉물적 현상을 버텨내기가 버거울지라도 푸른 생명의 언어를 조탁하여 실상이 흐려있는 영혼의 통로를 씻겨내기 위해 고뇌도 응당 감당할 일이다. 그렇다. 21세기 화두인 ‘통섭(通涉)의 원리’를 거역하지 말고, 영혼의 안식을 위해 언어의 식별력과 내면인식에 대한 열정은 지속해야할 까닭에 “매캐한 고층건물 사이 아무 말 없이/잿빛 도시의 나무가 힘겹게 걸어가고/이 꼭두새벽 근심도 깊어졌나 봐.(할 말을 잃은 나무)”의 예시도 그렇지만 “하늘로 돌아갈 길조차 막막한/이제 슬픈 영혼의 나무는/저녁에도 울고 아침에도 그렇게/뿌리 채 흔들며 서있다.(울음 우는 나무)”에서 슬픈 영혼이 극명하게 입증되어지듯 ‘성자(聖子)의 표징인 생명나무’와의 연계층위에서 영혼의 잠식을 확증하는 정신작업은 시적 탐색과도 맞물려있기에 그 의미망은 뜻깊다.
그와 같이 ‘땅 위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하늘을 향해 두 팔 벌려 기도하는 나무’의 형상에서 생태학적 현존성은 인간의 삶을 비유적으로 풀어내지 않더라도 성서를 포함해 고대신화에서 강한 생명력을 유지하는 신성의 영역으로 간주된다. 또 한편 나무의 이원적인 상징구조는 종교적 대상으로 생의 원리에 순응하여 목적지향적인 삶을 염원하는 사람살이를 효과적으로 투영하는 것이리라. 차지에 본질적 고독 앞에서 구원의 십자가를 골격으로 서정성을 꽃 피운 맑은 영혼의 울림은 대비(對比)의 역설이다. ‘나무는 자기희생의 비장감이 묻어있기’에 시적 상상력을 확장시켜‘떨켜(abscission layer)의 개념이 ‘잎, 꽃, 과실 등이 각 기관의 기부에 발달된 이층에서 분리되는 현상임’을 구분 짓되 영성(靈性)적 측면에서 짐짓 접근할 필요성이 주어진다.

학기 중인데 불쑥 소식도 없이/외지에 나간 막내딸이 집에 들렀다./‘-무슨 일 있었니?’엄마가 조심스레 묻는 말에/‘-아니, 그냥.........’/맑은 두 눈에 살짝 지나치는 물안개다./별일 없어도 그저 흔들리면서/아프게 왔다가는 파도의 마음 저렇겠지.//
잠시 왔다 흰 포말로 부서져 수런거리다/다시 망망한 대해 힘겹게 떠돌다보면/비록 연어의 그 회귀(回歸) 아니어도/그렇게라도 들러 보고픈 것이 파도의 마음./생명의 본원(本源) 그리워 잠시 들렀지만/아쉬운 발걸음 또다시 토닥여 보내는/해안선의 가슴도 서럽도록 저밀거야.//
-〈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 전문

위에 인용한 그 자신의 대표시격에 가늠되는 〈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는 절창(絶唱)으로 구분해도 거부감이 없을 것이나 순수한 부성(父性)의 인자(因子)로‘슬픔, 헌신, 희생의 아픔’을 끓어 안고 감내하며 시적 상상력을 확장시켜 마침 사순절(四旬節) 기간에 확고한 신앙적 결단으로 창조주와 역사 앞에서 존재감을 홀로 지켜내며 시대적 소임을 수행하는 그 정체성(Identity)은 놀라운‘파도의 마음’이다. 까닭에 충직한 독자라면『우파니샤드』에서 ‘브라만(Brahman-우주의 궁극적 실재)과 아트만(atman-인간존재의 핵)’의 원리로 ‘브라만이 대우주(숲)요, 아트만이 소우주(나무)임’을 새삼 이해하여야한다. 모처럼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시집 『기탄잘리』의 시편 〈바닷가에서〉와 같이‘바다와 뛰노는 아이들’의 시적 조건에 잇닿은 극적 요소의 대비(對比)로 제3시집의 대미를 매듭짓는 〈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 역시‘바다(브라만)와 파도(아트만)’가 끝내는 부녀관계인‘아버지와 딸’로 무리 없이 변주되고 있음은 깊은 사유 뒤 고려할 바다.
차지에 “향나무는 날(刃) 푸른 도끼에 찍히면서도 향(香)을 뿜어내듯이, 최소한 크리스천은 응당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고후 2:15)’여야 한다.”그간에 국제적 형법학자로의 업적도 빛나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유유자적하며 그만의 신앙생활 못지않게 시 쓰기에 몰두하는 삶은 하나의 감동이다. 비록 절망의 끝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간대이지만 고매한 품격과 신념을 지닌 휴머니스트로 이 시대의 진정한 양심(良心)이며 현재「모던포엠 작가회」회장인 김일수 시인에게 거는 소박한 기대라면 ‘느림의 미학’에 보다 충실하되 긴장의 끈을 늦추지 말고 겸허한 삶의 자세로 영감의 비의(秘義)를 극명하게 해명하는 ‘서정시의 초병(哨兵)’으로서의 엄숙한 역할수행이다.
결론적으로 눈부신 존재인 꽃은 그 자체로 심미와 관상의 대상이지만 그 이면에 생존과 종족의 보존이라는 치열하고 숭고한 결정체로서의 효용성을 지니기에, 범신론자인 스피노자가‘도덕과 힘의 동일성’을 역설했듯이 창조적인 영혼의 소유자로 모든 불의와 제도적 모순 앞에서 끊임없이 변화·발전을 수행하여야 한다. 그렇다. 소외된 인간관계성의 회복을 위해 경계층위를 허물고 명백한 삶의 좌표를 설정하고 역풍 앞에서도 새로운 비상을 위해 도전할 일이다. 모쪼록 이 땅의 온유한 크리스천으로 여호와와 역사 앞에서 확고한 믿음과 시대적 소임은 물론하고‘날(刃) 푸른 불멸의 시혼’으로 우주의 새길 트기에도 끝내 열중할 바다.

서문 ● 3

Ⅰ 꽃비와 나비

겨울장미 ● 10
젖은 은행잎 하나 ● 12
바람의 손手 ● 13
낙엽의 행로 ● 14
바람소리 ● 15
녹슨 철조망에 핀 꽃망울 ● 16
공원 산책로에서 ● 18
살얼음 ● 19
꽃비와 나비 ● 20
봄비 ● 22
젊은 날의 초상肖像 ● 23
가랑비 ● 24
젊은 예술가의 죽음 ● 26
아내의 마음은 깊다 ● 27
세상이 색깔을 입다 ● 28
원서동 옛 빨래터에서 ● 30
가발 논쟁 ● 32
조는 척 졸지 않는 ● 34
눈물 병甁 ● 35
우듬지 곁에서 ● 36

Ⅱ 그게 사랑인가 봐

거리두기가 뭐여 ● 38
노인과 아이 ● 40
죄인과 친구 ● 42
열정과 사랑 ● 44
소沼에서 ● 45
H에게 ● 46
한 노래 있어 ● 47
매화의 사랑 ● 48
가장이라는 자리 ● 50
사랑에 눈멀었던 여자 ● 52
그게 사랑인가 봐 ● 53
처마 ● 54
초옥 ● 55
부부 ● 56
동행 ● 57
공감 이후 ● 58
상처를 달래며 ● 60
기다림. 1 ● 61
기다림. 2 ● 62
염려 ● 63

Ⅲ 이제 알겠네

강풍 송頌 ● 66
웃어주다 보면 ● 67
무지에서 오는 축복 ● 68
노송老松 ● 70
샛별 ● 71
지는 별 ● 72
꿈꾸는 나무 ● 73
이제 알겠네 ● 74
귀소歸巢 ● 76
이상한 반란 ● 78
착시현상 ● 79
서울역에서 ● 80
참 귀하신 분 ● 82
K성형외과 ● 83
맨주먹을 불끈 쥔 이유. 1 ● 84
맨주먹을 불끈 쥔 이유. 2 ● 85
노인과 나무 지팡이 ● 87
어떤 조화 ● 88
자화상 ● 89
시장市場 ● 90

Ⅳ 복숭아꽃 그늘 길

길 위의 시간 ● 94
사막의 길 ● 96
복숭아꽃 그늘 길 ● 98
개나리꽃동산 ● 99
죄와 벌의 프리즘 ● 100
나이테 ● 102
말싸움 ● 103
하늘에서 별 따기 ● 104
빠르고 느림 ● 105
떨리는 손 ● 106
야학 ● 107
사구沙丘에서 ● 108
바다와 길손 ● 110
사물의 경험 ● 112
달빛 소나타 - 온달 ● 113
달빛 소나타 - 반달 ● 114
달빛 소나타 - 낮달 ● 115
달빛 소나타 - 하현달 ● 116
달빛 소나타 - 상현달 ● 117
달빛 소나타 - 달밤 ● 118

Ⅴ 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

낮술 ● 120
그녀 ● 121
불타지 않는 농심 ● 122
동토 ● 124
겨울 단잠 ● 126
매미소리 ● 128
꽃보다 손주 ● 130
전쟁 소문이 들리던 날 ● 131
끝나지 않은 전쟁 ● 132
입석 유감 ● 134
고향 비타민 ● 136
뚱딴지같은 소리. 1 ● 138
뚱딴지같은 소리. 2 ● 139
뚱딴지같은 소리. 3 ● 140
뚱딴지같은 소리. 4 ● 141
개안開眼 ● 142
층간 ● 143
할 말을 잃은 나무 ● 144
울음 우는 나무 ● 146
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 ● 147

l 시집평설

그 월광의 황홀함과 맑은 영혼의 눈금읽기
- 김일수 시집, 『누가 파도의 마음을 알랴』의 시적 담론 ● 149
엄창섭(김동명학회 회장·월간 『모던포엠』주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