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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홍경희 시인의 시집이다.

『13월의 유다』 속에 수록된 시들은 무소유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함으로써 보다 새롭고 보다 넓은 세계와 삶을 열어갈 수 있다. 이를테면 현존하는 세계가 아니라 가능한 세계,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를 보여준다. 홍경희 시인의 시는 어떤 의미에서 인식적인 기능을 하고 있다. 또한 언어를 통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계가 바로 홍경희 시인의 시가 지니는 거창한 의미의 시 세계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모두가 주지하듯이 시는 응축의 문법이다. 특히 홍경희 시인은 ‘소멸의식’과 ‘생성의식’을 시의 정서로 삼으면서 행과 행이 서로 지탱하는 긴장과 연과 연이 유기적 관계를 형성하는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이런 것을 요약하면 홍경희 시인의 시 의식과 장인의식은 같은 뿌리에서 나온 예술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이다.

나는 편운이다 구름 한 조각이 쓴 시는 너무 가벼워서 개미의 헛기침에도 날아간다 더구나 새벽시장 좌판에 앉은 노인의 눈가에 맺힌 눈물하나 노래하지 못하는 시인이다 다시 구름으로 되돌아가지 않으려고 맨발로 원고지 위를 순례하고 있다

2020년
홍경희

강동우(문학평론가, 가톨릭관동대 교수)
세계의 깊이, 존재의 깊이는 유현(幽玄)한 것이다. 아득하고(幽) 어둡기(玄) 때문에 심오하고 잘 알 수 없다. 홍경희는 이 어둡고 아득한 것들, 예컨대 ‘밤’이라든지 ‘그림자’, ‘허공’ 혹은 ‘벽’ 등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들여다본다. 홍경희의 시는 내 안의 ‘타자’, 즉 ‘또 다른 나’를 발견하는 과정의 산물이다. 낮과 밤이 이어져 있으면서도 분리되어 있듯이,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듯이, ‘어둠’에 가려진 ‘존재’를 찾기 위해 그녀는 과감하게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날마다 어둠 속으로 출근한다. 그 속에서 발견하는 ‘나’는 분열되어 있고 ‘나’를 지탱하는 언어의 안전지대는 녹슬어 있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찾아간다고 하지만, 홍경희 시인은 이 언어의 허망과 절망을 노래한다. 감각이 포착하는 것들을 언어가 왜곡하고 변질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 절망을 제 존재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자가 시인이다. 홍경희의 시들은, 언어 속에 불법체류하면서 언어로 포착되지 않는 ‘나’의 모습들, 그러니까 현실과 꿈, 실재와 허구, 존재와 비존재, 그리고 삶과 죽음의 불협화음을 허공 속에서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게 한다.

● 시인의 말

제1부 문설주에 외등이 깨어나고

장마 ----- 12
두통의 밤 ----- 13
설화雪花문자 ----- 14
확찐자의 서간 ----- 15
벽 ----- 16
벽 2 ----- 17
통의산방 ----- 18
석조보살좌상 ----- 20
기억의 실족 ----- 22
뉴욕의 화석 ----- 24
율법의 고뇌 ----- 26
섭취의 진화 ----- 28
두 얼굴 ----- 29
낡은 자전거 ----- 30
무당거미 ----- 32

제2부 남은 울음의 편린을 목에 걸고

대설경보 ----- 34
新파초열전 ----- 35
허드슨 강의 내력 ----- 36
소시론小市論 ----- 38
때죽나무꽃 ----- 39
할미꽃 실록 ----- 40
장마가 지나가다 ----- 42
포인세티아 ----- 44
논골담길의 소묘 ----- 45
폭염비 ----- 46
유월 감자 ----- 48
봄내[春川] 연가 ----- 49
봄날, 흔들리다 ----- 50
껍데기 모모 ----- 52
수국水菊 전상서 ----- 53

제3부 집어등이 잠든 밤바다의 고독

404번 버스 ----- 56
사과의 역린 ----- 57
강릉 소묘 ----- 58
오래된 우물 ----- 60
영정, 혹은 숨 쉬는 초희 ----- 62
강설개론 ----- 64
강릉페이 ----- 65
속실리 소묘 ----- 66
월아천의 달 ----- 68
베드로의 딸 ----- 70
독천獨天 ----- 71
논골담길 벽화 ----- 72
난전의 여인 ----- 74
금붕어의 비가 ----- 76
13월의 유다 ----- 78

제4부 또 하얗게 소멸되어 간다

휴대폰 ----- 82
수국 ----- 83
유기견 ----- 84
사물 A와 C ----- 86
달리의 풍경화 ----- 87
진통제, 혹은 봄밤 ----- 88
아날로그 교신 ----- 90
사물 A의 초상 ----- 91
고인돌 자판기 ----- 92
강가Ganga ----- 93
7252호 지하철 ----- 94
선택품목사양 ----- 96
블랙박스 ----- 98
욕망을 살해해요 ----- 99
코로나19 ----- 100

▨ 홍경희의 시세계 | 심은섭 ----- 1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