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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녜스 바르다의 말 : 삶이 작품이 된 예술가, 집요한 낙관주의자의 인터뷰[양장]

원제 : Agnes Var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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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진, 영화, 설치 미술까지 분야를 넘나든 전방위 예술가
아녜스 바르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주는 국내 첫 책

데뷔작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1954)으로 영화사의 새로운 시대를 열며 일찌감치 ‘누벨바그의 대모’라는 수식어를 거머쥔 아녜스 바르다. 그는 기성 상업 영화의 관습을 거부하고 저예산, 즉흥성, 자유로운 촬영 기법을 중시한 누벨바그의 선구자로 불린다. 첫 작품을 만들기 전까지 영화를 거의 보지 않았다는 고백처럼 바르다는 영화를 잘 몰랐기에 오히려 기존의 영화 어법을 답습하지 않을 수 있었다. 사진가로서 예술가 인생에 첫발을 내디딘 바르다는 “사진을 찍는 건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국립민중극장의 공식 사진가로 당대 유명 배우들의 사진을 찍으며 영화와의 연결 고리가 생겨났고, 자연스레 영화라는 또 다른 표현 수단을 얻게 됐다. 사진과 영화를 병행하며 폭넓은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이던 그는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3) 촬영 중 발견한 감자를 설치 미술 작품으로 발전시키며 미술작가로의 행보를 시작한다. 머릿속에 펼쳐진 드넓은 세계를 시각적 우주로 만들어내는 방식에 한계란 없었다. 그러나 평생 쌓아 올린 바르다의 명성과 업적은 철저하게 장 뤽 고다르, 프랑수아 트뤼포, 에리크 로메르 등 같은 시대 남성 감독들 뒤에 놓여 왔다. “저는 그저 완벽한 문화적 도구일 뿐이에요. 사람들은 제가 시네마테크나 도서관에 어울린다고 생각하죠. 저는 잊힐 거예요.”

마음산책 열네 번째 ‘말 시리즈’의 주인공은 영화를 만드는 매 순간 “호랑이처럼 싸워야만” 했던 아녜스 바르다이다. 그는 누벨바그의 유일한 여성 감독으로 주체적인 여성으로서의 정체성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 발견하는 모순들을 끊임없이 조명해왔다. 처음으로 국내에 바르다를 소개하는 책 『아녜스 바르다의 말』에는 1962년부터 2017년까지 55년의 세월을 가로지르는 스무 편의 인터뷰가 담겼다. 연도순으로 각본가, 영화평론가, 배우 등 각기 다른 스무 명의 인터뷰어와 나누는 때론 유쾌하게 장난스럽고 때론 묵직하게 진솔한 대화들은 읽는 이를 웃고 울게 한다.

유년 시절 여러 지역을 옮겨 다니며 자란 덕에 자유의 감각을 얻게 되었다는 일화부터 영화감독이자 창작자로서 느끼는 고충과 희열, 외부 반응에 휘둘리지 않으며 예술적 자아를 유지하는 힘, 삶과 사람을 향한 애정, 여성운동의 흐름에 대한 견해까지 내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인터뷰 당시 상황에 따라 감정이 격해질 때도 있고 같은 사안에 대해 다른 견해를 보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또한 즉흥적인 발화에서만 느낄 수 있는 톡톡한 매력이다. 아녜스 바르다의 작품 세계뿐만 아니라 그의 생애까지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아녜스 바르다의 말』은 그 자체로 귀중한 자료집 역할을 한다. 2019년 아흔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난 “작고 통통한 수다쟁이 할머니”는 작품을 넘어 그 자신의 말들로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곧 죽겠죠. 하지만 제 작품은 저 스스로도 존중해요. 제 작품을 칭찬한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싸워서 얻어낸, 싸울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의미로요. 돈도 없이, 힘도 없이, 보답도 없이 늘 투쟁해왔죠. 찾는 사람이 없어 한동안 손을 놓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제가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걸 원치 않아요. 제작비를 지원하지 않아요. 완성된 제 작품엔 박수를 보내면서도 말이죠.
─258쪽

바르다는 늘 경계에 서 있었다. 스스로 자신을 주변인으로 여겼다. 기존의 방식에 안주하지 않고 늘 새로운 실험을 시도했다. 사진에서 영화로, 영화에서 설치 미술로 자연스럽게 새 영토를 개척했다.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바로 지금 자신에게 적합한 표현 수단을 찾았다. 그의 삶이 그의 작품 목록만큼이나 풍성해 보이는 이유는 끊임없이 세상과 교감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스스로의 눈으로 보고 느끼고 표현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바르다에게 주된 표현 도구는 영화였고, 그는 그 도구를 마음껏 활용했다. 더할 나위 없이.
─407쪽 ‘옮긴이의 말’ 중에서

출판사 서평

삶과 사람을 향해 보내는 집요한 애정
휴머니즘과 굽히지 않는 긍정주의로 빚어낸 작품 세계

바르다의 관심은 늘 지금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 세계와 그 세계를 구성하는 사람들을 향했다. 삶에서 포착한 문제의식을 유의미하게 전달하기 위해 바르다는 허구와 실재를 결합하는 표현 방식을 고수한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이라는 두 장르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한 노력은 실제 마을 주민들과 배우들을 함께 출연시킨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에서부터 시작한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에서 클레오가 바라보는 거리 또한 실제 거리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내 최대한 다큐멘터리의 질감을 살리려 했다. 떠돌이 소녀의 죽음을 회고적으로 돌아보는 〈방랑자〉(1985), 40세 여성과 15세 소년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아무도 모르게〉(1987), 남편 자크 드미의 어린 시절을 탐구한 〈낭트의 자코〉(1991) 등 바르다의 픽션 영화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경계를 절묘하게 오간다.
이러한 영화 만들기는 새로운 시도를 주저하지 않는 탐구적이고 실험정신 강한 바르다의 성향에서 비롯되었다. 첫 아이를 임신한 상태에서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화 〈오페라 무프 거리〉(1958)에서는 한 임신부가 무프타르 거리를 거닐며 품는 다양한 상념들을 접이식 의자 위에 올라가 담아냈다. 〈다게레오 타입〉(1975)에서는 80미터짜리 전선을 다른 차원의 탯줄로 상상하며 그 범위 안에 사는 주변 이웃들을 보여준다. 남이 버린 물건과 음식을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실제 인물들의 모습을 그려낸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2000)는 형식뿐 아니라 내용 면에서도 영화계 안팎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서 멈추지 않은 바르다는 젊은 예술가 JR과 사진 트럭을 타고 프랑스 마을을 돌아다니며 촬영한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2017)로 “시네마로 쓰는 에세이의 정점”(김혜리)에 올라섰다.
한동안 영화에 전념하던 바르다는 일흔 중반에 들어서 설치 미술로 보다 도전적이고 혁신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일찍이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소통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서”라고 말했던 그는, 관객들을 작품 속으로 더욱 친밀하게 끌어들일 수 있는 설치 미술에 큰 매력을 느끼며 작업을 이어간다.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활동 영역의 확장에도 변함없이 바르다의 내면 한가운데 자리했던 것은 사람과 삶을 향한 애정이었다. 그런 휴머니스트적인 면모야말로 바르다의 예술 생애를 지탱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린 서로 알고 지내는 사이잖아요. 우리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를 원해요. 제 영화에서 당신을 왜곡하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꾸밈없이 영화에 담아낼게요.” (…) 다시 말해, 누군가에게 다가가려 한다면 아주 부드럽게 움직여야 해요. 물리적으로 천천히, 도의적으로도 천천히 다가가야 해요. 어떤 인물을 향해 줌인을 한다면, 최대한 부드럽게 해야 해요. 그들의 실제 움직임을 유기적으로, 생물학적으로도 정확한 방식으로 따라가야 하죠. 카메라가 움직일 땐 영화의 리듬을 따라야만 해요.
─140~141쪽

촬영은 영화언어들 가운데 하나예요. 구도 잡기나 편집과 마찬가지로요. 관객을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거리를 두고 판단할 수 있게끔 해야 하기도 하죠. 관객들의 감정선을 제 의도 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어요. 궁극적으로 모든 창작자는 매개자예요. 삶과 우리가 감정이라 부르는 직감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생산물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개자죠.
─62쪽


여성으로서 여성의 영화를 만든다는 자긍심
계속 싸워나가면서 더 나은 삶을 꿈꾸자는 희망의 메시지

바르다는 차분하고 꾸준한 관심으로 ‘여성’의 주체적인 삶을 고민했고, 그에 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는 암 진단을 기다리며 자신과 세상을 재인식하게 되는 한 여성의 이야기로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뒤이어 나온 〈행복〉(1964)에서는 아내를 두고 또 다른 사랑을 찾는 남편에게 단죄를 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급진적 페미니스트들에게 거센 비난을 받기도 한다. 이에 대해 바르다는 자신이 〈행복〉에서 그리고자 했던 것은 행복의 가변성과 죽음이라는 두 가지 테마였음을 확실히 했다.
몇 년 뒤 그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페미니즘을 다룬 영화 한 편을 만든다. 두 여성의 우정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여성이 낙태할 권리를 주장한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1977)를 통해 68혁명보다 보비니(한 소녀가 성폭행당한 뒤 낙태를 했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아 광범위한 저항을 불러온 사건)가 더 중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다. 이미 1971년 여성 지식인 343명이 참여한 낙태 합법화 찬성 선언문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터였다. 바르다는 그때까지 남성 영화감독들 손에 수동적이고 사랑밖에 모르는 존재로 다뤄진 여성상에 반기를 들며 주체적인 여성을 그리는 데 주력했다.
“저는 제 자신을 페미니스트라고 말할 수 있어요. 물론 다른 페미니스트들이 보기엔 충분치 않겠지만요.” 스스로 말하듯 바르다는 여성 각자가 자기만의 방식과 속도대로 여성운동에 참여하기를 바랐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급진적이지 않은 여성들을 탄압하는 대신, 다양한 유형의 여성들과 함께 사회 제도와 관습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스트들에게는 충분히 페미니스트적이지 못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너무 페미니스트적”이라고 평가받는 어중간한 위치에서도 바르다는 소신껏 여성의 더 나은 삶을 위한 영화를 만들어나간 바르다의 신념은 지금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영화에서 여성의 이미지는 남성들에 의해 강력하게 구축됐죠. 남성들은 그걸 받아 들여요. 여성들 또한 그걸 받아들이고요. 여성 스스로가 여자는 예뻐야 한다고 생각하죠. 옷도 예쁘게 잘 입어야 하고, 사랑스러워야 하고, 항상 사랑을 꿈꿔야 하고 등등. 저는 이런 문제들에 늘 분노했지만, 그 이미지를 바꾸기에는 저 역시 역부족이었죠. 영화를 보면 여성은 언제나 사랑과 연관이 있어요. 사랑에 빠져 있거나 그렇지 않죠. 사랑에 빠진 적이 있거나 앞으로 그럴 예정이죠. 혼자일 경우에도 과거에 사랑에 빠졌었거나, 마땅히 사랑에 빠져야 하기에 당장이라도 사랑에 빠지고 싶어 하죠.
─120쪽

한 여성의 삶에서 한 명의 남자는 고작 5.1퍼센트 정도를 차지할 뿐이에요. 그가 호감형이어도 그렇고,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죠. 여성에겐 직장이 있고, 아이들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있어요.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요. 다른 모든 남성의 영화를 보세요. 역전된 관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적용시키죠. 서구 영화 중에서 여성이 러닝타임의 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요? 범죄 영화에서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이 얼마나 되나요? 심리 드라마도 마찬가지고요. 남자들은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된 것처럼 보여요.
─157쪽

추천사

아녜스 바르다하고는 세 번 사랑에 빠졌다. 〈방랑자〉가 최초였다. 시체로 시작하는 이 이상한 여행기는 영화 안에서 생은 죽음으로, 서사의 종결로도 끝나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설령 내가 평생 방랑만 하다 더러운 신발을 신은 채 죽는다 해도 영화는 거기서 의미를 볼 수 있었다! 극장에서 뒤늦게 관람한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가 두 번째 매혹이었다. 이 작품과 바르다의 초기작들로 인해, 누벨바그라는 영화사적 사건은 비로소 내게 사적인 의미를 갖게 됐다. 정작 영화기자로 취직한 다음 한동안 바르다는 책 속 거장의 이름이 되어갔다. 그러고는, 똑똑. 경이로운 〈이삭 줍는 사람들과 나〉가 문을 두드렸다. 21세기의 아녜스 바르다는 시네마로 쓰는 에세이의 정점에 도달해 느긋이 머물렀다. 〈아녜스 바르다의 해변〉과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이 이어지는 바람에 나의 세 번째 사랑은 끊길 틈이 없었다.
1962년부터 2017년까지 이뤄진 스무 편의 바르다 감독 인터뷰를 모은 이 책이 나를 질투심으로 괴롭힌 것도 놀랍지 않다. 특히 그의 모국어로 진행한 예술가의 인터뷰에는 대화의 깊이와 별개로 드러나는 체취와 결이 있기 마련이다. 오래 동경해 왔지만 책을 덮은 이제야 그의 영화사 시네타마리스의 현관을 열고 들어간 기분이 드는 이유다. 때로 내용이 겹치고 숫자가 오락가락하기도 하는 이 인터뷰들을 따라 나선형으로 걷다 보면 당신도 히치하이커를 지나치지 못하는 운전자, 존경받지만 투자는 못 받는 감독, 여성영화의 생동하는 정의, 장난기 넘치는 만담꾼을 만나고 포옹하게 될 것이다.

목차

서문_제퍼슨 클라인

5시부터 7시까지의 아녜스 바르다
모든 창작자는 매개자다
세속적 우아함
땅속을 흐르는 직관의 강
여성은 사랑만 하는 존재가 아니에요
나, 영화 만드는 사람
삶을 통해 구축되는 영화
바다는 그 어디도 아니라서
시간은 혈액의 순환을 닮았어요
다양한 우연의 순간들
저는 잊힐 거예요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타로 카드 인터뷰
영화는 죽고 싶어 하지 않아요
개척자는 언제나 모험을 추구해요
줍는 자의 소박한 몸짓
새로운 친구를 소개하듯이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작업
영화 만들기와 직관을 향한 애정
다들 평화롭게 지내면 좋겠어요

옮긴이의 말
연보
원주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글쓰기는 목격자가 되는 거예요. 제가 흥미를 느끼는 부분은 사람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무언의, 비밀스러운, 표현하기 어려운 그 어떤 것들이에요. 직감의 영역은 느낌의 영역 못지않게 많은 것들을 품고 있어요.
─39쪽

다큐멘터리적 요소가 없는 픽션은 있을 수 없고, 미학적 의도가 없는 영화는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62쪽

이렇듯 촬영은 영화언어들 가운데 하나예요. 구도 잡기나 편집과 마찬가지로요. 관객을 영화에 집중하게 만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거리를 두고 판단할 수 있게끔 해야 하기도 하죠. 관객들의 감정선을 제 의도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어요. 궁극적으로 모든 창작자는 매개자예요. 삶과 우리가 감정이라 부르는 직감으로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생산물을 관객에게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중개자죠.
─62쪽

사진을 찍는다는 건 세상을 보는 하나의 방식이에요. 몇 년간 사진가로 일했죠. 지금은 아니고요. 감은 잃겠지만 보는 눈은 결코 잃지 않았어요. 요즘은 주로 영화 촬영 장소를 물색할 때 사진을 찍어요. 책상 위에 근사한 18×24인치 크기의 사진을 올려놓고 보는 것만큼 사물들, 풍경들을 제대로 바라보는 방법도 드물어요. 이렇게 하면 시나리오를 쓰는 데도 도움이 돼요. 일련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일종의 연결 고리 같은 게 자연스레 생겨나요. 거기서 뭔가를 ‘읽어’내기도 하죠. 아주 고무적이에요.
─65쪽

감독은 자신만의 어휘를 사용하고 싶어 해요. 자신의 느낌을 신뢰하고요. 그러다 보면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에 이미 형성돼 있는 이런저런 관념들과 부딪히게 돼요.
─93쪽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작가가 되는 거예요. 감독 역시 영화를 만들면서 영화감독이 되는 거고요.
─95쪽

남자와 여자는 말없이도 서로 소통할 수 있다고 우린 믿어요. 그래서 우리에겐 자연스러운 일이죠.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사실상 그 사람이 되어야 해요. 그럴 경우, 말이란 건 사실 필요치 않죠.
─105쪽

우리는 영화가 대중 예술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돼요. 사람들은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극장에 가요. 늘 뭔가를 배우고 싶어 하진 않아요.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이미지를 바꾸려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지루한 영화가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122쪽

아마도 제가 하는 작업은 목격자로서의 작가 영화라고 부를 수 있을 듯해요. 저는 ‘작가주의’ 영화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작가주의’란 말을 좋아하진 않아요. 너무 제한적 의미를 갖고 언급하는 경우에 있어서는요. 어떤 경우든 저는 늘 영화 속에 제 자신을 드러내죠. 자아도취로 인한 건 아니고, 영화에 진솔하게 접근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147쪽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사회적 관계에서도 그렇고, 사적인 삶에서도 마찬가지죠. 이러한 정체성 찾기는 영화감독으로서도 의미가 있어요. 저는 한 여성으로서 영화를 만드니까요.
─148~149쪽

한 여성의 삶에서 한 명의 남자는 고작 5.1퍼센트 정도를 차지할 뿐이에요. 그가 호감형이어도 그렇고, 아무리 특별한 사람이라도 마찬가지죠. 여성에겐 직장이 있고, 아이들도 있고, 다른 친구들도 있어요. 사회생활도 해야 하고요. 다른 모든 남성의 영화를 보세요. 역전된 관계를 아무 거리낌 없이 적용시키죠. 서구 영화 중에서 여성이 러닝타임의 5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는 영화가 몇 편이나 될까요? 범죄 영화에서 여성이 등장하는 장면이 얼마나 되나요? 심리 드라마도 마찬가지고요.
─154쪽

사실, 제 이웃들은 저에 대해 알레르기가 좀 있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가 괜찮아졌고, 저는 어느새 늘 주변에 있는 존재가 되었죠. 그렇게 받아들여진 이유는 그저 제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저는 거리를 유지하면서 정치적 측면과 정서적 측면에서의 그 거리를 이해해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같은 거리에 사는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 어렴풋한 애정을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죠.
─159쪽

우정은 하나의 강력한 연결 고리예요. 질투도 유발하고 그리움도 만들어내지만, 함께할 때 생성되는 그 아름답고 즐거운 순간들은 대단하죠. 사랑의 경우는 좀 더 나아가요. 서로를 만지고 싶은 욕망을 품게 되는 지점에 도달해요.
─163쪽

저 역시 누구보다도 제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는 것들에 관심이 많아요. 바위들 사이에 작은 샘이 있고, 그 샘은 마르지 않죠. 이 철없지만 집요한 낙관주의는 제 행복의 원천이기도 해요.
─165쪽

제가 베니스를 택한 이유는 바다 때문이에요. 바다는 그 어디도 아니죠. 딱히 나를 맞추고 적응할 필요가 없어요. 이곳에서 아주 안정감을 느껴요. 프랑스를 떠나와서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는 게 사실 미국에 있다고 할 수도 없으니까요. 그저 해변가에 살고 있을 뿐이죠. 저는 자리 잡은 느낌이 들지 않는 게 좋아요. 지리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사회적으로든요.
─181쪽

제게 ‘좋은 작품’이란 다른 뭔가를 의미해요. 상상력을 통해 클리셰와 고정관념을 새롭게 조명할 때, 마음을 풀어놓아주고 연상 작용이 자유롭게 진행될 때, 순수하게 영화적인 언어로 시나리오를 쓸 때, 이미지와 사운드 사이에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져 이전까지 우리 안에 억압되어 있거나 숨겨져 있던 이미지와 사운드가 밖으로 드러날 때, 그래서 그 모든 고양된 정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 때, 저는 그 영화를 ‘좋은 작품’이라고 지칭해요.
─187쪽

저는 항상 제 삶을 진행 중인 하나의 작품처럼 여겨왔어요. 경력을 쌓아간다는 생각은 그다지 하지 않아요.
─196쪽

대부분의 영화감독들이 단편을 장편영화로 가기 위한 발판 정도로 여기는 것과는 달리 저는 수시로 단편영화를 만들죠. 아주 짧은 시간 안에 감정들, 상상의 순간들, 여러 발견들을 담아내고 표현할 수 있어요. 이 영화들은 제 작품 세계가 성장하는 데 도움을 주죠. 그리고 미래의 관객들과 저의 지각 또는 인식을 미리 짜 맞춰 보는 그런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훈련 같은 역할도 하죠. 저의 눈과 귀, 이런저런 모든 것을 단련시키는.
─213쪽

시네크리튀르는 시나리오가 아니에요. 영화를 위한 탐사, 선택, 영감, 작성한 텍스트, 촬영, 편집 등 모든 것의 앙상블이죠. 영화는 이 모든 다양한 순간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내는 결과물이에요. 저는 하루에 아홉 시간을 편집실에서 보내요. 영화는 그곳에서 한데 합쳐지고, 영화의 감정들은 명확하게 조율되고, 조정되고, 다듬어지고, 최종적으로 바로잡아지거든요.
─224쪽

제 작품에서 가장 현재형인 건 촬영 당일의 바로 저예요. 몇몇 사람들은 안전망 없이 위험을 감수하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이 부분이 제 영화 작업을 흥미진진하게 만드는 요인이고, 영화에서 분명히 그걸 느끼실 수 있으리라 확신해요.
─227쪽

처음엔 영화감독이 아니라 사진가로 시작했어요. 그러다 처음 영화를 찍게 됐는데, 그때는 확실히 여성으로서 외로운 느낌이 있었죠. 하지만 저는 제 자신을 여성, 용감한 여성으로 바라보지 않았어요. 그보다는 용감한 예술가, 영화감독으로 여겼죠. 왜냐하면 당시엔 제 나이에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없었거든요.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도 마찬가지였죠.
─239쪽

에너지를 조금씩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 곧 죽겠죠. 하지만 제 작품은 저 스스로도 존중해요. 제 작품을 칭찬한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싸워서 얻어낸, 싸울 만한 가치가 있었다는 의미로요. 돈도 없이, 힘도 없이, 보답도 없이 늘 투쟁해왔죠. 찾는 사람이 없어 한동안 손을 놓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제가 이런 영화들을 만드는 걸 원치 않아요. 제작비를 지원하지 않아요. 완성된 제 작품엔 박수를 보내면서도 말이죠.
─250쪽

돌아보면 저는 모든 사람에게 거절당하기 위해 살아온 것 같은 기분마저 들어요. 작년으로 영화 인생 30년을 맞이하면서 결심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온전히 자유롭게 하기로요. 더 이상 다른 사람에게 제출하려고 시나리오를 쓸 생각이 없어요. 이제부턴 영화를 만들든가 만들지 않든가 둘 중 하나예요. 이제부턴 저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만들어나갈 거예요.
─266쪽

한 여자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말이 고작 엉덩이가 근사하다, 라면 그건 사실상 그 여성을 파멸시키는 거예요.
─272쪽

나이가 들면서 생겨나는 장점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안에 뭐랄까, 누구도 만질 수 없고 누구도 파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고요.
─276쪽

제가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소통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서예요. 소통이 성공한다면 관객들은 영화 속에 담긴 무언가를 전달받을 수 있겠죠.
─285쪽

프랑스 영화 비평은 허세가 심해요. 그리고 ‘영화광’적인 면모가 있죠. 재밌는 게, 그들은 상당히 진지하게 접근을 하는데 저는 그들만큼은 아니에요. 즐겁게 볼 수 있는 영화를 한 편 만들면 영화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요. 가벼운 마음으로 춤을 췄는데, 거기서 실존주의 논문을 기대하면 안 되죠.
─289쪽

저는 영화를 이런 의미다, 저런 의미다, 단정 짓는 사람들을 싫어해요. 누구나 입맛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예요.
─307쪽

저는 늘 제 마음이 향하는 곳, 저의 욕망, 저의 에너지가 가리키는 곳을 주시해요. 저는 영감을 받아서 작업해요. 거래를 하지 않아요. 비즈니스를 하지 않아요. 경력을 쌓아나간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아요. 그저 영화를 만들 뿐이에요.
─319쪽

영화 작업을 위한 여행도 여전히 즐기지만, 그럼에도 나이가 들어가는 건 사실이죠. 제게 영화를 만드는 일은 아이디어를 줍고 이미지를 줍고 감정들을 줍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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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아녜스 바르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280530

저자 아녜스 바르다는 전방위 예술가다. 사진가, 영화감독, 미술작가를 넘나들며 특유의 작품 세계를 펼쳐 보였다. 1928년 벨기에 브뤼셀 출생으로 프랑스인 어머니와 그리스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남부의 세트 지방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다 1943년 파리로 이사한다. 에콜 뒤 루브르에서 미술사와 사진을 공부하고, 소르본대학교에서 문학과 심리학을 전공한다. 국립민중극장의 사진가로 일하며 당대 유명 배우들의 사진을 찍지만, 정지된 이미지에 만족하지 못하고 사진의 전과 후를 그려내는 작업에 흥미를 갖는다. 1954년 영화사 타마리스필름스를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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