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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1 : 기원과 개전[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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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전쟁사학의 결정판

    러일전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은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세계사의 대사건이었다. 대한제국은 전쟁 직후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받았고 그때부터 국권 침탈까지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일본에서는 제국주의 국민이 탄생했고 러시아에서는 혁명의 열기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간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비교하고 연구한 책은 없었다.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이라 불리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의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조사한 최초의 책으로 전쟁사학의 결정판이다.
    와다는 러일전쟁의 성격을 '조선을 지배하고 정복하려 한' 일본이 러시아와 맞닥뜨려 전쟁으로 '몰아간' 뒤 "조선을 일본의 것으로 한다는 점을 러시아로 하여금 인정하게 한 전쟁이었다"(36쪽)라고 정의한다. 그는 전쟁의 가장 큰 결과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 지배한 것이다"라고 밝힌다. 전쟁의 명칭은 '러일전쟁'이지만 전쟁의 본질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조선전쟁'이라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러일전쟁의 가장 주요한 결과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 지배한 것이다"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

    제국주의자들에게 보내는 준엄한
    경고장이자 단죄의 논고(論告)

    이 책을 읽은 한국과 북한의 여러분이 일본제국주의의 교묘한 행보에 관해서, 일본의 침략 때문에 망국의 위기에 떨어졌던 자국의 행보에 관해서 보다 깊이 생각해준다면 기쁘겠다.
    (/ p.37)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각주를 2,402개나 넣을 만큼 사료를 철저하게 고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재구성한 서사극(敍事劇)이다. '사건' 중심의 서술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역사의 지류가 '어떻게' 러일전쟁으로 흘러가게 되었는지 밝힌다. 러시아, 일본, 조선, 중국,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그리고 태국 등 9개국에서 700여 명에 이르는 인물이 등장해 사실 관계를 고증한다. 와다는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을 샅샅이 훑는다. 이를 통해 10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따로 떼어 해석할 수 없으며 이 전쟁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단일 범죄임을 밝혀낸다.
    청일전쟁은 '제1차 조선전쟁', 러일전쟁은 '제2차 조선전쟁'이었다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하는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1, 2는 이 두 차례의 조선전쟁이 한반도 비극의 출발점이 되었음을 명쾌하게 규명하면서, 비극의 서막을 연 역사 법정의 피고(被告)는 반성해야 한다고 준엄하게 질타한다.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일본이 전쟁을 기획, 모의하고 마침내 실행하는 현장을 마치 동영상을 틀어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이제까지 밝혀진 것과 달리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제시했고 일본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범죄였다는 증거를 장장 1,300여 쪽에 걸쳐 입증한다.
    전쟁으로 몰아가던 군국주의 시대에도 침묵하지 않고 평화를 지키려는 양심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세세하게 기록해 이성적 판단이 결핍된 야만의 시대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역사의 법정에 울려 퍼지는 예리하고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가득 찬 이 대작은 전범(戰犯)을 겨눈 논고의 전범(典範)이다.

    일본의 간섭, 지배, 침략에 일관되게 저항한 고종

    고종이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에게서 벗어나 직접 정사를 다스리겠다고 선언한 것은 1873년이다. 그의 나이 21세였다. 현재까지 고종은 '암약'(暗弱)한 인물이고 민비에게 완전히 좌지우지되었다는 게 통념이지만 최근에는 이런 통념을 비판하며 고종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1, 2에서도 고종이 "일본의 간섭, 지배, 침략에 일관되게 저항"(1199쪽) 했으며 이는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사실이라고 평가한다. "분명 고종은 대원군의 정치에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고, 개명(開明)성도 갖추었으며, 백성의 생활에 대한 배려심도 있었다"(127쪽)라는 것이다.

    러시아에 접근하는 고종과 일본의 반응

    고종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겪으면서 조선의 운명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러시아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종주국이었던 청국도 거부하고, 새롭게 밀고 들어오는 일본도 거부했으며, 북쪽의 러시아 제국의 보호 하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통치를 확립하는 길을 모색"(1190쪽)하기에 이른 것이다. "고종이 러시아에 처음으로 밀사를 보낸 것은 갑신정변 이전인 1884년 5월이었다."(128쪽)
    이 사실이 전해지자 일본의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는 격노했다. 그는 1885년 6월 5일 청국 공사 수청쭈(徐承祖)에게 "청국과 일본이 협력해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 외교의 졸렬함으로 인해 귀국과 아국 양국에 화를 초래할 것이 경각에 달려 있다."(1190쪽) "따라서 조선 왕의 임정(臨政)을 약간 구속하고, 외교상의 망동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1190쪽)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1910년 병합 때까지 일본에 대항하는 고종의 긴 투쟁이 시작되었다. 한편 러시아의 태도는 소극적이었다. 러시아는 조선이 어느 국가의 보호국도 되지 않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다.

    청일전쟁과 삼국간섭 이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서 청국을 몰아냈을 뿐 아니라 막대한 배상금까지 요구했다. 또한 타이완, 랴오둥반도, 남만주의 할양까지 요구했는데 이는 "제국주의의 기준으로 봤을 때도 지나친 욕심"(1192쪽)이었다.
    일본이 만주에 진출하려 하자 러시아가 즉각 반응했다.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와 함께 '삼국간섭'으로 일본을 압박했고 일본은 랴오둥반도를 반환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조선이 러시아에 거는 기대는 높아졌다.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의 힘에 의지해 일본의 간섭을 배척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1193쪽)
    다급해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획득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미우라 고로(三浦梧楼)공사가 민비를 시해하는 폭거를 저지른다. 비(妃)를 서민으로 격하한다는 조칙을 내도록 강요받은 고종은 분노해서 아관파천을 감행하는 반격에 나섰다.
    일본은 조선에서 힘을 강화한 러시아와 어떻게든 협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조선을 남북으로 분할해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하자는 안과 만주와 조선을 교환하자는 '만한교환론'(滿韓交換論)이 생겼다.

    러시아의 만주 진출
    일본은 그동안 소극적인 자세로 '만한교환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만주를 점령하자 '만한교환론'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러자 고종은 대한제국의 중립국 노선을 처음으로 내세우며 일본 정부에게 교섭하자고 제의한다. 이를 "주일 러시아 공사 이즈볼스키(Izwolskii)가 강하게 지지했고, 그의 설득으로 러시아 외무성도 대한제국 중립국 노선을 지지하게 된다."(1196쪽) 하지만 일본은 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1196쪽) 사실 러시아가 만주에 진출했을 때부터 일본은 '만한교환론'으로는 만족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은 "조선을 완전히 일본의 것으로 하고, 더불어 남만주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1197쪽)했다. 이는 완전히 전쟁을 하겠다는 자세였다.

    러일교섭
    당시 일본 외상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郎)는 즉각 러일교섭을 시도했지만 '만주문제'와 '조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섭이 아니었다. 고무라는 "교섭의 장에서 조선은 일본의 것이고 일본이 보호국으로 삼는 것을 인정하라고 러시아에게 요구한다. 러시아가 이를 거부하면 전쟁을 시작한다. 전쟁은 시베리아철도가 완성되지 않은 지금이 찬스다"(1198쪽)라고 말했다. 당시 러시아의 상황을 보면 러시아가 일본의 요구를 거부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일본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고종은 러일교섭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개전이 가까워진 것이라 생각하고, 1903년 8월 전시 중립을 인정받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1199쪽) 고종은 "8월 15일자로 러시아황제에게 보내는 밀서를 작성했다."(880쪽)

    "만약 전쟁의 막이 열리면 우리나라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다...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귀국 군대의 세력을 도와서, 적[일본군]이 올 때에는 재물과 곡식을 옮겨 감추게 하고, 몸은 산의 계곡 사이에 숨도록 하게 할 것이다...."
    (/ p.881)

    이는 러시아에게 전시 협력을 제의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고종의 개인적인 소원을 표명한 데 지나지 않았다. 고종은 이 밀서를 쓰고 난 후에 외부대신 이도재(李道宰)에게, 러시아와 일본 양국에 대해서 중립국으로서의 승인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양국의 주재 공사에게 보내는 훈령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고종은 이렇게 전시 중립의 승인을 러시아와 일본 양쪽에 촉구함과 동시에 러시아에게는 제한 없는 연대협력의 의사를 은밀하게 표명했던 것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과 러시아는 포츠머스 강화조약에 조인했다. "양국의 평화를 강조한 제1조에 이어 제2조에는 일본의 가장 중요한 전쟁 목적이 적시되었다."
    (/ p.1210)

    "제2조 러시아제국 정부는 일본국이 한국에서 정사상, 군사상 및 경제상의 우월한 이익을 지니는 것을 승인하고, 일본제국 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 보호 및 감리의 조치를 위함에 있어 이를 방해하거나 또는 이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 p.1211)

    일본은 이 결과에 기초해서 움직였다.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는 서울로 들어가 고종과 한국 정부 각료들을 위협해 제2차 한일협약, 즉 을사조약을 체결했다.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 탁지부대신 민영기(閔泳綺), 법부대신 이하영(李夏榮)만이 무조건 '불가'를 썼고,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은 찬성했다.

    최후의 저항
    이렇게 대한제국은 완전히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통감이 되었다. 그러나 고종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이 협약의 무효를 여러 나라에 은밀하게 호소하는 밀사를 계속해서 파견했다. 그 최후의 노력이 1907년 제2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세 명을 파견한 것이었다. 그러나 회의의 주최자에 의해서 이 특사들의 회의 참가는 거절되었다. 이토 통감은 이 행동의 책임을 추궁해 고종을 퇴위시켰다.

    1907년 7월 19일 고종은 퇴위했고, 황태자가 순종(純宗)으로 즉위했다. 7월 24일에는 제3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어 통감이 한국 정부 내정의 모든 것을 지도하게 되었다. 보호국화의 완성이었다. 그 시점부터 한국병합까지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종은 1880년대 중반부터 1919년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간섭, 지배, 침략에 일관되게 저항했다. 그 저항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겠지만, 그 일관된 저항의 사실은 역사의 중요한 요소이며, 그것을 모르면 이 시대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 p.1199)

    목차

    17 • 러일전쟁 주요 인물들
    35 • 한국과 북한의 독자들에게 | 와다 하루키
    39 • 와다 하루키 전쟁사학(戰爭史學)의 위용 | 이웅현

    제1장 러일전쟁은 왜 일어났는가?
    53 •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郎)의 견해
    61 • 『고무라 외교사』(小村外交史)와 『기밀 일러전사』(機密日露戦史)
    63 • 비테의 『회고록』을 둘러싼 상황
    69 • 전쟁 체험기의 산(山)
    71 • 러시아군 공식 전사와 시만스키 조서(調書)
    74 • 일본의 공식 전사와 비밀 전사
    76 • 러시아 혁명 후의 연구
    83 • 구미와 한국에서의 연구
    86 • 일본의 연구
    91 • 나의 러일전쟁 연구 역정(歷程)

    제2장 근대 초기의 일본과 러시아
    105 • 막말유신(幕末維新) 전야의 일본과 러시아
    109 • 메이지유신과 러시아
    111 • 사할린 문제
    115 • 조선에 대한 일본의 관심과 러시아
    119 • 러시아 황제 암살과 조선의 군란
    123 • 일본의 러시아경계론
    127 • 러시아에 대한 고종의 기대
    136 • 일본 정부의 격렬한 반응
    140 • 고종의 대러 접근 제2막
    149 • 메이지 초기의 일본과 러시아
    150 • 일본 제국헌법 제정과 러시아
    153 • 비테의 등장과 시베리아철도 구상
    155 • 러시아 황태자의 세계일주 여행
    156 • 제국의회 개회일의 불상사
    162 • 러시아 황태자의 일본 도착
    166 • 오쓰사건(大津事件)
    173 • 시베리아철도 착공
    181 • 노불동맹(露佛同盟)의 성립

    제3장 청일전쟁과 전후 일본・조선・러시아 관계
    195 • 주재 무관 보가크와 동학농민운동
    197 • 일본의 조선 출병 결정
    201 • 일본 정부의 기본 방침
    202 • 전쟁을 회피하기 위해 움직이는 러시아
    205 • 일본군의 서울 점령
    207 • 러시아 정부의 제안에 대한 반응
    209 • 러시아, 일본 정부의 회답을 받다
    211 • 조선 정부에 대한 일본의 요구
    214 • 7월 23일 사변—조선전쟁의 개시
    219 • 러시아인의 관찰
    222 • 조선전쟁에서 청일전쟁으로
    227 • 일본의 조선 취급 방침
    231 • 개전과 러시아
    233 • 보가크의 첫 인상과 평양 대회전(大會戰)
    237 • 보가크의 일본군 종군 관찰
    240 • 이노우에 공사의 개혁 지도
    244 • 러시아 황제의 죽음과 신 황제 니콜라이
    246 • 새로운 외무장관
    248 • 전쟁의 종장을 둘러싼 움직임
    250 • 전투의 종결
    252 • 전쟁 종결의 조건
    256 • 강화 교섭과 러시아
    260 • 간섭을 위한 장관 협의
    265 • 러시아 해군, 즈푸에 집결하다
    267 • 삼국간섭
    272 • 조선 정부와 이노우에 공사
    275 • 주둔군 문제와 조선 정부의 위기
    279 • 베베르와 히트로보의 견해
    282 • 미우라(三浦) 공사의 등장
    285 • 이노우에 공사의 귀임
    287 • 미우라 공사 도착
    291 • 민비 살해
    293 • 살해의 목격자들
    295 • 대원군과 신정부의 성립
    296 • 러시아 공사의 추궁
    298 • 일본 국내의 반응
    300 • 고무라 조사단의 사건 처리
    305 • 랴오둥반도 반환조약의 조인과 러・청 접근
    307 • 11월 28일 사건
    309 • 일본과 러시아의 군비증강 계획
    311 • 러시아 군부의 청일전쟁 연구
    314 • 러시아 지식인과 청일전쟁

    제4장 러시아의 뤼순 점령과 조차(1896-99)
    337 • 고종의 아관파천
    341 • 일본이 받은 충격
    343 • 페테르부르크와 도쿄에서의 교섭
    346 • 야마가타의 러시아 방문 구상
    350 • 고무라-베베르 각서 조인
    353 • 러・청 비밀동맹조약과 동청철도협정
    357 • 러시아의 야마가타 아리토모
    360 • 대관식과 그 후의 교섭
    364 • 야마가타-로바노프 협정 조인
    367 • 조선 사절의 교섭
    368 • 러시아인 군사교관과 재정고문의 파견 문제
    370 • 해군상의 경질, 외상의 죽음
    372 • 보스포루스 해협 점령 문제
    376 • 고종의 환궁
    377 • 무라비요프 외상의 등장
    378 • 러시아 군사교관의 활동
    380 • 새로운 주일 공사 로젠 발령
    382 • 군사교관의 증파와 베베르의 이한(離韓)
    385 • 명성황후(明成皇后)의 국장(國葬)
    386 • 러시아인 재정고문의 파견
    387 • 독일의 자오저우만(膠州灣) 점령과 러시아
    394 • 러시아 분함대(分艦隊), 뤼순으로
    396 • 러시아 함대의 뤼순 입항
    399 • 비테의 기회
    400 • 쿠로파트킨 육군상의 등장
    404 • 러・일 신협정을 요구하는 움직임
    407 • 한국에서 반러시아 운동이 일어나다
    409 • 로젠 의견서
    411 • 러시아, 랴오둥반도를 조차하다
    415 • 한국 정세의 급변
    417 • 니시-로젠 의정서
    421 • 요동치는 한국
    425 • 주한 공사의 교대
    426 • 헤이그 평화회의
    434 • 마산 문제
    439 • 관둥주(關東州)의 시작
    443 • 주일 육해군 무관들
    448 • 조선 임업이권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453 • 조선 북부로의 조사대 파견
    454 • 베조브라조프의 동아시아회사
    459 • 무라비요프의 20세기 외교방침
    461 • 쿠로파트킨의 대(大)상주보고
    463 • 1900년 해군대학 춘계 도상(圖上)훈련

    제5장 의화단(義和團)사건과 러청(露淸)전쟁
    485 • 의화단사건
    491 • 톈진 전투
    492 • 러청전쟁의 개시
    495 • 블라고베셴스크의 전투와 학살
    502 • 쿠로파트킨과 람스도르프
    505 • 러청전쟁은 계속되다
    506 • 잉커우 제압과 베이징 점령
    508 • 러시아 정부의 결단
    510 • 러청전쟁의 마지막 국면
    512 • 의화단사건과 조선, 일본
    515 • 조선을 보는 러시아의 눈
    519 • 한일공수(攻守)동맹
    522 • 한국중립국안의 등장
    525 • 국민동맹회와 여섯 교수의 건의서
    527 • 계속되는 한국 대표의 노력
    531 • 러시아 정부의 방침과 고무라 공사
    535 • 러청밀약 체결
    539 • 황제, 티푸스를 앓다
    540 • 영독협정의 조인
    541 • 러청밀약의 파문
    543 • 이즈볼스키의 한국중립화 구상 추진
    553 • 러청교섭
    558 • 반러시아론 고조
    561 • 러시아 정부, 러청협정 체결을 단념하다
    563 • 계속되는 전쟁의 공포
    568 • 가쓰라 내각의 성립
    569 • 참모총장 사하로프의 모반(謀反)
    577 • 황녀의 탄생과 닥터 필리프
    579 • 베조브라조프의 그림자
    581 • 위기가 표면화하는 제국
    583 • 일본의 러시아관
    588 • 구리노 러시아주재 공사의 인사 문제
    592 • 영일동맹 교섭
    596 • 페테르부르크의 이토 히로부미
    600 • 영일동맹의 체결을 위하여
    604 • 람스도르프의 회답 만들기
    607 • 영일동맹조약의 조인
    608 • 러불선언
    610 • 러시아, 만주철군협정을 체결하다
    612 • 이즈볼스키 최후의 한국중립화안
    615 • 구리노의 러・일 협상안
    619 • 로젠과 파블로프의 의견
    626 • 한국중립화안에 대한 일본의 반응
    628 • 비테의 극동 시찰
    633 • 베조브라조프의 극동 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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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비 살해의 참극을 목격하고 증언을 남긴 러시아인이 있다. 세레진-사바친이다. 그는 1883년에 상하이에서 조선으로 임시 고용되어 온 외국인이었는데, 마지막에는 건축가로서 고종을 위해 일했다. 1888년에 왕과 왕비가 거주하는 건청궁 안에 2층짜리 양옥인 관문각(觀文閣)을 건축했다. 인천의 만국공원 안에 있는 제물포 클럽의 건축에도 관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신문 『달료키이 크라이』(Далёкий край)에 익명으로 조선으로부터의 통신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세레진-사바친은 건청궁 내의 국왕과 왕비의 거실로 통하는 문에 모여든 사람들 속에서 평복을 한 여러 명의 일본인을 보았다. 그들은 왔다 갔다 하면서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했다. “왕비의 거실이 있는 구내는 일본인들로 꽉 찼다. 20명 내지 25명 정도였다. 그들은 평복차림이었고, 칼도 지니고 있었다. 일부는 칼을 빼들고 있었다. 그들을 지휘하고 있던 것은 긴 칼을 지닌 일본인이었다. 아마 그들의 대장이었을 것이다. 일부 일본인들은 궁전 구석구석까지, 또 다른 건물 내부도 분주하게 찾고 있었다. 다른 자들은 왕비의 방에 난입해 거기 있던 궁녀들에게 달려들어 머리채를 잡고 창에서 끌어내 떨어트려서는 땅에 질질 끌고 가면서 무언가 추궁했다.” “나는 원래 장소에 머물면서, 일본인들이 왕비의 어전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뒤집어 놓는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사람의 일본인이 한명의 궁녀를 잡아채어 집 안에서 끌어내 계단 아래로 질질 끌고 내려갔다.”
    (/ pp.293~294)

    보가크는 1895년 이전 극동에 존재하는 유일한 주재 무관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가 관찰해야 하는 대상에는 청국, 일본, 조선이 포함되어 있었다. 톈진에서 그가 보낸 보고 가운데 최초로 공표된 것은 1893년 5월 28일(16일)자의 보고였다.
    “현지에서 수취한 최초의 정보에 따르면 [동학농민] 운동은 주로 선교사 특히 미국인을 타깃으로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최신 정보에 의하면 전혀 그렇지 않고, 조선의 쟁란은 훨씬 더 넓은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해졌다. 문제의 소요는 이미 금년 초에 서울에서 감지되었다. 나중에 분명해진 바에 의하면 이는 동학당이라는 결사(結社)를 필두로 한 몇 개인가의 비밀결사의 소행이었다. 동학당은 불과 4, 50년 전에 창립되었을 뿐이지만, 회원은 이미 20만 명 가까이에 달한다.
    보가크는 일본의 움직임에도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일본은 1880년대 중반에 조선을 병탄하려는 기세였지만 청국의 개입으로 톈진조약이 체결되어 일본의 움직임에는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일본의 경제 진출은 멈출 줄을 몰랐고, 이 분야에서 방곡령사건(防穀令事件)이 발생, 일본의 보상요구로 조・일 사이에는 긴장감이 팽배했다. 일본에서는 의회의 다수파와 유력 신문들 모두가 정부의 대 조선 정책이 저자세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들은 조선에서 청국의 영향력을 일소하라고 요구하며, 러시아에 대해서는 “북쪽에서 밀고 내려와 조선 왕국을 병탄하려고 준비하는 허수아비이자적”이라고 보고 있다.
    발생한 소요사건에 대해서 조선 정부는 “고도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탄압할 힘이 없기 때문에 청국의 리훙장에게 원조를 요청하고 있다. 보가크는 입수된 정보만으로는 아무것도 결론 지어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본질적으로 이 모든 사정은, 어느 정도
    악화된다면 조선문제의 발생, 보다 정확히 말해서 조선문제의 재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그러한 종류의 일이라는 점만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보가크의 분석은 선견지명을 보여주고 있었다. 1894년 초부터 동학농민운동은 본격화했고, 조선문제는 정말로 전 극동, 동북아시아의 초점이 되어갔다.
    (/ pp.196~197)

    무쓰 무네미쓰 외상은 조선은 “청국이 하는 대로 맡겨둘 수밖에 없게” 되어버린다면서, 청국이 출병한다면 일본 역시 톈진조약에 기초해 상당수의 병사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 2일 참모총장과 차장의 출석을 요구하며 소집된 각의는 무쓰 외상의 제안을 듣고 공사관과 거류 일본인을 보호할 목적으로 조선에 출병할 것을 결정했다. 조선 정부에게서 받은 요청이 전혀 없었는데도, 조선의 요청으로 청국이 출병하는 사태에 대항해 조선에 군대를 투입하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이 각의 결정이 내려지기 하루 전날 저녁, 가와카미 소로쿠 참모차장이 외무성으로 무쓰 대신을 찾아왔다. 여기에 배석한 차관 하야시 다다스(林董)의 회고에 의하면 “15년[임오군란]・17년[갑신정변]에 뒤진 것을 만회하기 위해서 이번에는 반드시 승리를 거둘 필요가 있다. 아산의 청국 병사는 많게 잡아 5,000명 정도 될 것이다. ……우리의 출병 소식을 듣게 되면 필경 그들이 먼저 습격해 올 것이다. 그때 필승을 기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6,000~7,000명의 병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우선 혼성여단을 보내면 될 것이다”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어떻게 싸움을 일으키고, 어떻게 이길 것인가 하는 것을 상의했다.” 이 회고에는 의문점도 있다. 6월 1일에는 청국 병사들이 아직 아산에 도착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럼에도 외무성과 군부가 출병이라는 핵심 내용을 결정한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1882년의 임오군란 시에는 1개 대대 500명, 1884년의 갑신정변 시에는 2개 대대 1,000명을 투입했다. 이번에는 혼성 1개 여단 8,000명의 투입을 고려했다. 이는 엄청나게 많은 병력이었고, 완전히 전쟁을 하겠다는 자세였다.
    (/ pp.197~198)

    저자소개

    와다 하루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8~
    출생지 일본 오사카
    출간도서 15종
    판매수 845권

    1938년생. 도쿄대학(東京大學) 명예교수. 러시아 근현대사, 한국 현대사 전공.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고려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도쿄대학에서 러시아(소련)외교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이다. 저서로는 『소련의 아프간 전쟁』(2001), 『중앙아시아의 문명과 반문명』(편저, 2007), 『동아시아 철도네트워크의 역사와 정치경제학 II』(편저, 2008), 『새로운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의 미래』(공저, 2019)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일본인은 왜 사과를 잘 하는가?』(1991), 『평화와 전쟁』(1999), 『새로운 중세: 21세기의 세계시스템』(2000), 『러시아의 자본주의혁명』(공역, 2010)이 있다. 그 밖에 「아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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