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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전쟁 2 : 기원과 개전[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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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소개

    전쟁사학의 결정판

    러일전쟁은 우리 민족의 운명을 결정지은 전쟁이었을 뿐 아니라 20세기 세계사의 대사건이었다. 대한제국은 전쟁 직후 을사늑약 체결을 강요받았고 그때부터 국권 침탈까지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한 일본에서는 제국주의 국민이 탄생했고 러시아에서는 혁명의 열기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그간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비교하고 연구한 책은 없었다.
    일본의 역사학자이자 '행동하는 일본의 양심'이라 불리는 와다 하루키(和田春樹)의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러일전쟁에 관해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의 자료를 전면적으로 조사한 최초의 책으로 전쟁사학의 결정판이다.
    와다는 러일전쟁의 성격을 '조선을 지배하고 정복하려 한' 일본이 러시아와 맞닥뜨려 전쟁으로 '몰아간' 뒤 "조선을 일본의 것으로 한다는 점을 러시아로 하여금 인정하게 한 전쟁이었다"(36쪽)라고 정의한다. 그는 전쟁의 가장 큰 결과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 지배한 것이다"라고 밝힌다. 전쟁의 명칭은 '러일전쟁'이지만 전쟁의 본질은 조선을 차지하기 위한 '조선전쟁'이라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러일전쟁의 가장 주요한 결과는
    일본이 대한제국을 말살하고
    조선 전역을 식민지 지배한 것이다"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

    제국주의자들에게 보내는 준엄한
    경고장이자 단죄의 논고(論告)

    이 책을 읽은 한국과 북한의 여러분이 일본제국주의의 교묘한 행보에 관해서, 일본의 침략 때문에 망국의 위기에 떨어졌던 자국의 행보에 관해서 보다 깊이 생각해준다면 기쁘겠다.
    (/ p.37)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각주를 2,402개나 넣을 만큼 사료를 철저하게 고증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꼼꼼하게 재구성한 서사극(敍事劇)이다. '사건' 중심의 서술이 아니라 '등장인물'들의 관계를 통해 역사의 지류가 '어떻게' 러일전쟁으로 흘러가게 되었는지 밝힌다. 러시아, 일본, 조선, 중국, 영국, 미국, 독일, 프랑스 그리고 태국 등 9개국에서 700여 명에 이르는 인물이 등장해 사실 관계를 고증한다. 와다는 러일전쟁이 발발하게 된 원인을 샅샅이 훑는다. 이를 통해 10년의 간격을 두고 벌어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은 따로 떼어 해석할 수 없으며 이 전쟁은 일본이 조선을 차지하기 위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단일 범죄임을 밝혀낸다.
    청일전쟁은 '제1차 조선전쟁', 러일전쟁은 '제2차 조선전쟁'이었다는 독특한 시각을 제시하는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1, 2는 이 두 차례의 조선전쟁이 한반도 비극의 출발점이 되었음을 명쾌하게 규명하면서, 비극의 서막을 연 역사 법정의 피고(被告)는 반성해야 한다고 준엄하게 질타한다.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 1, 2는 일본이 전쟁을 기획, 모의하고 마침내 실행하는 현장을 마치 동영상을 틀어놓은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면서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이제까지 밝혀진 것과 달리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제시했고 일본이 용의주도하게 계획한 범죄였다는 증거를 장장 1,300여 쪽에 걸쳐 입증한다.
    전쟁으로 몰아가던 군국주의 시대에도 침묵하지 않고 평화를 지키려는 양심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세세하게 기록해 이성적 판단이 결핍된 야만의 시대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역사의 법정에 울려 퍼지는 예리하고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로 가득 찬 이 대작은 전범(戰犯)을 겨눈 논고의 전범(典範)이다.

    일본의 간섭, 지배, 침략에 일관되게 저항한 고종

    고종이 흥선 대원군(興宣大院君)에게서 벗어나 직접 정사를 다스리겠다고 선언한 것은 1873년이다. 그의 나이 21세였다. 현재까지 고종은 '암약'(暗弱)한 인물이고 민비에게 완전히 좌지우지되었다는 게 통념이지만 최근에는 이런 통념을 비판하며 고종을 재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많다.
    [러일전쟁- 기원과 개전]1, 2에서도 고종이 "일본의 간섭, 지배, 침략에 일관되게 저항"(1199쪽) 했으며 이는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사실이라고 평가한다. "분명 고종은 대원군의 정치에 비판적인 시각을 지니고 있었고, 개명(開明)성도 갖추었으며, 백성의 생활에 대한 배려심도 있었다"(127쪽)라는 것이다.

    러시아에 접근하는 고종과 일본의 반응

    고종은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을 겪으면서 조선의 운명을 구원할 수 있는 길은 러시아에 의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종주국이었던 청국도 거부하고, 새롭게 밀고 들어오는 일본도 거부했으며, 북쪽의 러시아 제국의 보호 하에 들어감으로써 자신의 통치를 확립하는 길을 모색"(1190쪽)하기에 이른 것이다. "고종이 러시아에 처음으로 밀사를 보낸 것은 갑신정변 이전인 1884년 5월이었다."(128쪽)
    이 사실이 전해지자 일본의 외무경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는 격노했다. 그는 1885년 6월 5일 청국 공사 수청쭈(徐承祖)에게 "청국과 일본이 협력해 방법을 모색하지 않는다면, 그 나라 외교의 졸렬함으로 인해 귀국과 아국 양국에 화를 초래할 것이 경각에 달려 있다."(1190쪽) "따라서 조선 왕의 임정(臨政)을 약간 구속하고, 외교상의 망동을 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1190쪽)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1910년 병합 때까지 일본에 대항하는 고종의 긴 투쟁이 시작되었다. 한편 러시아의 태도는 소극적이었다. 러시아는 조선이 어느 국가의 보호국도 되지 않은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다.

    청일전쟁과 삼국간섭 이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조선에서 청국을 몰아냈을 뿐 아니라 막대한 배상금까지 요구했다. 또한 타이완, 랴오둥반도, 남만주의 할양까지 요구했는데 이는 "제국주의의 기준으로 봤을 때도 지나친 욕심"(1192쪽)이었다.
    일본이 만주에 진출하려 하자 러시아가 즉각 반응했다.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와 함께 '삼국간섭'으로 일본을 압박했고 일본은 랴오둥반도를 반환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조선이 러시아에 거는 기대는 높아졌다. "고종과 민비는 러시아의 힘에 의지해 일본의 간섭을 배척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1193쪽)
    다급해진 일본은 청일전쟁에서 '획득한'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주장하려 했다. 이 과정에서 미우라 고로(三浦梧楼)공사가 민비를 시해하는 폭거를 저지른다. 비(妃)를 서민으로 격하한다는 조칙을 내도록 강요받은 고종은 분노해서 아관파천을 감행하는 반격에 나섰다.
    일본은 조선에서 힘을 강화한 러시아와 어떻게든 협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조선을 남북으로 분할해 일본과 러시아의 세력권으로 하자는 안과 만주와 조선을 교환하자는 '만한교환론'(滿韓交換論)이 생겼다.

    러시아의 만주 진출
    일본은 그동안 소극적인 자세로 '만한교환론'을 주장했다. 하지만 러시아가 만주를 점령하자 '만한교환론'을 강하게 밀어붙인다. 그러자 고종은 대한제국의 중립국 노선을 처음으로 내세우며 일본 정부에게 교섭하자고 제의한다. 이를 "주일 러시아 공사 이즈볼스키(Izwolskii)가 강하게 지지했고, 그의 설득으로 러시아 외무성도 대한제국 중립국 노선을 지지하게 된다."(1196쪽) 하지만 일본은 이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1196쪽) 사실 러시아가 만주에 진출했을 때부터 일본은 '만한교환론'으로는 만족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본은 "조선을 완전히 일본의 것으로 하고, 더불어 남만주로 진출하는 것을 목표"(1197쪽)했다. 이는 완전히 전쟁을 하겠다는 자세였다.

    러일교섭
    당시 일본 외상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郎)는 즉각 러일교섭을 시도했지만 '만주문제'와 '조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교섭이 아니었다. 고무라는 "교섭의 장에서 조선은 일본의 것이고 일본이 보호국으로 삼는 것을 인정하라고 러시아에게 요구한다. 러시아가 이를 거부하면 전쟁을 시작한다. 전쟁은 시베리아철도가 완성되지 않은 지금이 찬스다"(1198쪽)라고 말했다. 당시 러시아의 상황을 보면 러시아가 일본의 요구를 거부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했다. 일본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고종은 러일교섭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개전이 가까워진 것이라 생각하고, 1903년 8월 전시 중립을 인정받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1199쪽) 고종은 "8월 15일자로 러시아황제에게 보내는 밀서를 작성했다."(880쪽)

    "만약 전쟁의 막이 열리면 우리나라가 전쟁터가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 두렵다... 우리 백성들로 하여금 귀국 군대의 세력을 도와서, 적[일본군]이 올 때에는 재물과 곡식을 옮겨 감추게 하고, 몸은 산의 계곡 사이에 숨도록 하게 할 것이다...."
    (/ p.881)

    이는 러시아에게 전시 협력을 제의하는 것이었다. 물론 이는 고종의 개인적인 소원을 표명한 데 지나지 않았다. 고종은 이 밀서를 쓰고 난 후에 외부대신 이도재(李道宰)에게, 러시아와 일본 양국에 대해서 중립국으로서의 승인을 요청하는 내용으로 양국의 주재 공사에게 보내는 훈령을 작성하라고 지시했다. 고종은 이렇게 전시 중립의 승인을 러시아와 일본 양쪽에 촉구함과 동시에 러시아에게는 제한 없는 연대협력의 의사를 은밀하게 표명했던 것이다.

    러일전쟁 이후
    일본과 러시아는 포츠머스 강화조약에 조인했다. "양국의 평화를 강조한 제1조에 이어 제2조에는 일본의 가장 중요한 전쟁 목적이 적시되었다."
    (/ p.1210)

    "제2조 러시아제국 정부는 일본국이 한국에서 정사상, 군사상 및 경제상의 우월한 이익을 지니는 것을 승인하고, 일본제국 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 보호 및 감리의 조치를 위함에 있어 이를 방해하거나 또는 이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 p.1211)

    일본은 이 결과에 기초해서 움직였다.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는 서울로 들어가 고종과 한국 정부 각료들을 위협해 제2차 한일협약, 즉 을사조약을 체결했다. 참정대신 한규설(韓圭卨), 탁지부대신 민영기(閔泳綺), 법부대신 이하영(李夏榮)만이 무조건 '불가'를 썼고, 학부대신 이완용(李完用), 군부대신 이근택(李根澤), 내부대신 이지용(李址鎔),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 농상공부대신 권중현(權重顯)은 찬성했다.

    최후의 저항
    이렇게 대한제국은 완전히 일본의 보호국이 되었다. 이토 히로부미는 초대 통감이 되었다. 그러나 고종은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이 협약의 무효를 여러 나라에 은밀하게 호소하는 밀사를 계속해서 파견했다. 그 최후의 노력이 1907년 제2회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 세 명을 파견한 것이었다. 그러나 회의의 주최자에 의해서 이 특사들의 회의 참가는 거절되었다. 이토 통감은 이 행동의 책임을 추궁해 고종을 퇴위시켰다.

    1907년 7월 19일 고종은 퇴위했고, 황태자가 순종(純宗)으로 즉위했다. 7월 24일에는 제3차 한일협약이 체결되어 통감이 한국 정부 내정의 모든 것을 지도하게 되었다. 보호국화의 완성이었다. 그 시점부터 한국병합까지 3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고종은 1880년대 중반부터 1919년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간섭, 지배, 침략에 일관되게 저항했다. 그 저항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평가가 있겠지만, 그 일관된 저항의 사실은 역사의 중요한 요소이며, 그것을 모르면 이 시대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 p.1199)

    목차

    제6장 새로운 노선의 등장
    701 • 새해의 첫 나날들
    704 • 제2차 해군대학 도상(圖上) 훈련
    711 • 신임 해군상과 신임 군령부장
    715 • 만주철군의 기한이 임박하다
    719 • 극동의 베조브라조프
    721 • 베조브라조프와 보가크
    724 • 극동정책의 신 구상
    726 • 경비대 파견 문제
    729 • 페테르부르크의 보가크 호출과 중앙의 반응
    732 • 4월 8일(3월 26일) 협의회
    737 • 무린암(無隣庵) 회의
    742 • 러청교섭 결렬
    744 • 러시아를 향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다
    748 • 일본 참모본부의 개전론
    752 • 쿠로파트킨의 출발과 보가크 의견서
    756 • 베조브라조프의 상주보고와 황제의 지시
    761 • 5월 20일(7일) 협의회
    767 • 5월 협의회 이후
    772 • 베조브라조프, 극동으로 출발하다
    774 • 일본의 의주(義州) 개방 요구
    777 • 쿠로파트킨 육군상의 일본 방문
    780 • 조선의 반응
    782 • 참모본부와 일곱 박사
    789 • 일본의 쿠로파트킨
    794 • 일본, 대러 방침을 결정하다
    800 • 니콜라이와 아바자의 새로운 방침
    802 • 쿠로파트킨, 일본을 떠나다
    805 • 뤼순(旅順) 회의
    819 • 일본의 반응
    822 • 일본에서 고조되는 개전론
    826 • 차르의 사로프 수도원 방문
    828 • 베조브라조프와 쿠로파트킨의 논쟁
    838 • 극동태수제 도입

    제7장 러일교섭
    855 • 교섭 개시
    858 • 일본의 제1차 제안
    860 • 러시아의 사정
    864 • 세 장관의 경질 위기
    868 • 쿠로파트킨, 황제를 수행하다
    869 • 러청교섭의 중단
    871 • 러시아의 회답 준비
    878 • 베조브라조프의 움직임
    880 • 한국 정부, 중립을 추구하다
    885 • 주일 무관의 경고
    889 • 러시아의 제1차 회답
    892 • 가을의 위기
    898 • 러・일 해군력 비교
    900 • 러시아 정부의 대응
    905 • 일본의 제2차 서한
    912 • 『도쿄아사히신문』, 교섭 결렬을 촉구하다
    914 • 알렉세예프의 펑톈(奉天) 점령
    915 • 일본과 러시아 군인들의 의견
    919 • 극동특별위원회 설치와 임업회사 문제
    926 • 얻어맞는 수병들, 사살되는 동물들
    929 • 러시아 측의 제2차 서한
    935 • 개전을 촉구하는 일본 여론
    940 • 공상소설 『러일전쟁 하네카와 로쿠로』
    945 • 일본의 제3차 서한
    951 • 일본군의 조선출병에 관한 정보
    955 • 러시아의 12월 특별협의회
    964 • 일본, 대러 작전계획을 결정하다
    968 • 한국에 대한 방침
    971 • 일본과 러시아의 상호 인식
    976 • 주재 무관의 경고 전보
    977 • 러시아의 제3차 서한

    제8장 전야
    999 • 뤼순의 긴장
    1003 • 황제와 육군상은 망설이다
    1006 • 가는 해, 오는 해
    1007 • 이탈리아 군함의 매입
    1008 • 구리노 공사와 베조브라조프
    1016 • 베조브라조프의 러일동맹안
    1027 • 일본 정부, 개전을 포함한 최종회답을 결정하다
    1031 • 주재 무관들의 보고와 증원함대
    1034 • 대한제국의 중립선언
    1038 • 러시아 정부 내의 검토
    1044 • 중재 조정의 요청
    1046 • 일본 한국을 죄다
    1050 • 마지막 장관협의
    1055 • 일본의 개전 준비
    1057 • 협의회가 끝난 뒤, 람스도르프
    1065 • 일본, 각의에서 국교 단절을 결정하다
    1071 • 러시아 외상 최후의 몸짓
    1076 • 낭패한 알렉세예프
    1079 • 일본의 단교 통보
    1080 • 일본군 전투행동을 개시하다
    1081 • “러시아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제9장 개전
    1095 • 1904(메이지37)년 2월 6일(1월 24일) 토요일
    1103 • 2월 7일(1월 25일) 일요일
    1112 • 2월 8일(1월 26일) 월요일
    1128 • 2월 9일(1월 27일) 화요일
    1136 • 2월 10일(1월 28일) 수요일
    1143 • 2월 11일(1월 29일) 목요일
    1146 • 2월 12일(1월 30일) 금요일
    1148 • 2월 13일(1월 31일) 토요일
    1150 • 2월 14일(1일) 일요일
    1153 • 2월 15일(2일) 월요일
    1154 • 2월 16일(3일) 화요일
    1155 • 2월 17일(4일) 수요일
    1156 • 2월 18일(5일) 목요일
    1156 • 2월 19일(6일) 금요일
    1157 • 2월 20일(7일) 토요일
    1159 • 2월 21일(8일) 일요일
    1159 • 2월 22일(9일) 월요일
    1162 • 2월 23일(10일) 화요일
    1164 • 2월 24일(11일) 수요일
    1167 • 2월 25일(12일) 목요일
    1168 • 2월 26일(13일) 금요일
    1169 • 2월 27일(14일) 토요일
    1169 • 2월 28일(15일) 일요일
    1172 • 2월 29일(16일) 월요일
    1175 • 3월 1일(2월 17일) 화요일
    1176 • 3월 2일(2월 18일) 수요일

    제10장 러일전쟁은 이렇게 일어났다
    1188 • 일본이 노린 것
    1190 • 조선과 러시아
    1192 • 청일전쟁의 개시와 그 파문
    1195 • 러시아의 만주 진출
    1197 • 가쓰라-고무라 내각의 성립
    1198 • 러일교섭
    1200 • 러시아의 새로운 노선
    1202 • 최후의 순간
    1203 • 국민의 정신은 전쟁에 동원되었다
    1206 • 전쟁의 확대
    1207 • 전쟁이 끝난 뒤

    1215 • 맺는말
    1217 • 옮긴이의 말
    1225 • 참고문헌
    1253 • 찾아보기

    본문중에서

    ■ 러일전쟁은 조선전쟁으로 시작되었다. 일본군은 전시 중립을 선언한 대한제국의 영내에 침입해 진해만, 부산, 마산, 인천, 서울, 평양을 점령하고, 대한제국 황제에게 사실상의 보호국화를 강요하는 의정서에 조인하게 했다. 인천과 뤼순에서 러시아 함선에 대한 공격이 동시에 시작되었는데, 이 공격은 무엇보다도 대한제국 황제에게 러시아의 보호는 없을 것이라는 의미의 결정타를 날려 황제를 체념시키는 역할을 했다. 조선 장악이 끝나자 전쟁은 압록강을 넘어 만주에서 본격적인 러일전쟁으로 진화해 간다. 일본은 선전포고에서 “한국의 보호”를 위해서 러시아와 싸운다고 선언했지만, 사실은 일본이 조선을 자국의 지배하에 두고 보호국으로 삼고 나서, 러시아에게 그것을 인정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전쟁을 추진했던 것이다. 러시아는 일본 해군의 기습공격을 받고 항의의 선전포고를 발한 모양새였으므로 완전히 수동적인 자세였다. 러시아가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것은 확실하다.
    (/ p.1187)

    ■ 러일전쟁의 뿌리에는 조선에 대한 일본의 야망이 있었다. 메이지유신을 성취한 일본인들은 문명개화, 부국강병에 앞서 영토의 확장을 꿈꿨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조선을 일본이 획득해야 할 목표로 인식하게 되었다. 동시에 러시아와의 대항을 의식하면서, 러시아의 침략이 닥쳐왔기 때문에 일본이 적극적으로 조선에 개입해 조선을 지키고 일본 자신도 지켜야 하는 안전보장 상의 필요를 처음부터 강조했다. 러시아의 조선 침략이란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것을 반복해서 논의함으로써, 이웃나라를 지배하려는 야망을 지닌 일본에 정당화의 대의명분이 생길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 p.1189)

    ■ 러시아는 패배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개전 전의 러일교섭 시의주장을 되풀이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역시 그것은 통하지 않았다. 8월 9일부터 포츠머스에서 열린 강화회의의 서두에 고무라는 12개 항목의 강화조건을 선언했다. 그 제1항은 “러시아국은 일본국이 한국의 정사(政事)상, 군사상 및 경제상의 우월한 이익을 지니는 것을 승인하고, 일본국이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 보호 및 감리의 조치를 취함에 있어서 이를 방해하거나 또는 이에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할 것”이었다. 12일 비테는 각 항목에 관한 회답서를 제출했다. 그 제1항의 한국 처분의 자유에 관해서 “하등 이의가 없다”면서 일본이 한국에서 “우월한 이익”을 지니는 것을 인정하고, 일본이 취하는 “지도, 보호 및 감리의 조치를 방해하거나 또는 이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할 각오다”라고 기술했다. 그러나 훈령에 따라서 “전술한 일본국의 조치 및 실행을 위해서 한국 황제의 주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라 주장했고, 또한 “한국에 인접하는 러시아국 영토의 안전을 침박할 만한 조치”를 취해서는 안 된다는 유보를 달았다.
    이에 대해서 오후에 격렬한 설전이 전개되었다. 고무라는, 러시아가 “일본이 한국에서 충분히 자유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을 승인하는 것이 긴요하다”면서 “한국 황제의 주권 운운하는 자구(字句)는 삭제하는 데 동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테가 말하는 것처럼 “한국의 주권을 전적으로 그대로 계속 보유하게 한다는 주지에는 단연코 동의할 수가 없다…… 도대체 한국의 주권이란 것은 이미 그리고 오늘날에도 완전한 것이 아니다. 일본은 이미 동 국가와 협약을 체결해 동 국가 주권의 일부는 일본에게 위임되었고, 한국은 외교상 일본의 승낙이 없이는 타국과 조약을 체결할 수 없는 지위에 있다”며 극히 노골적이었다.
    (/ pp.1210~1211)

    ■ 9월 5일 고무라 전권과 비테 전권은 강화조약에 조인했다. 양국의 평화를 강조한 제1조에 이어 제2조에는 일본의 가장 중요한 전쟁 목적이 적시되었다. 제2조 러시아제국 정부는 일본국이 한국에서 정사상, 군사상 및 경제상의 우월한 이익을 지니는 것을 승인하고, 일본제국 정부가 한국에서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지도, 보호 및 감리의 조치를 위함에 있어 이를 방해하거나 또는 이에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한다.
    결국 일본은 교섭에서는 러시아에게 받아들이도록 할 수 없었던 한국 보호국화 조항을, 전장에서 우세승함으로써 강화조약으로 받아들이게 했던 것이다. 제3조는 러·일의 만주 철군을 강조하고, 러시아가 만주에 어떤 “영토적 이익”등을 지니지 않는다는 점을 성명했다. 제5조에는 러시아가 “청국 정부의 승낙을 얻어” 뤼순・다롄의 조차권을 일본에게 이전 양도할 것, 제6조에는 러시아가 남만주철도의 일체의 권리를 “청국 정부의 승낙을 얻어” 일본에게 이전 양도할 것이 강조되었다. 제9조는 러시아에 의한 사할린섬 남부의 주권 양여를 규정했다. 일본은 즉시 이 결과에 기초해서 움직였다. 1905년 11월 17일 이토 히로부미는 서울로 들어가, 고종과 한국 정부 각료들을 위협해 제2차 한일협약, 즉 을사조약을 체결했다.
    (/ pp.1211~1212)

    ■ 고종은 러일교섭이 시작되었다는 것은 개전이 가까워진 것이라고 각해서, 1903년 8월 전시 중립을 인정받기 위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 과정에 전쟁이 일어날 시 러시아를 지원한다는 결의를 표명한 밀서를 러시아에 보냈다. “초토작전”(清野之策)에 관해서도 언급한 이 밀서는 확실히 헛된 약속에 지나지 않았지만, 고종의 심정을 잘 나타내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고종에 대한 여러 나라 외교관들의 평가는 극도로 나빴다. 아마도 그에게 인간적으로 공감(sympathy)한 것은 베베르 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1880년대 중반부터 1919년 사망할 때까지 고종은 자신의 나라에 대한 일본의 간섭, 지배, 침략에 일관되게 저항했다. 그 저항의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비평이 있겠지만, 그 일관된 저항의 사실은 역사의 중요한 요소이며, 그것을 모르면 이 시대 동북아시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다.
    (/ p.1199)

    저자소개

    와다 하루키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8~
    출생지 일본 오사카
    출간도서 15종
    판매수 832권

    1938년생. 도쿄대학(東京大學) 명예교수. 러시아 근현대사, 한국 현대사 전공.

    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고려대학교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도쿄대학에서 러시아(소련)외교정책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고려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지정학연구원 원장이다. 저서로는 『소련의 아프간 전쟁』(2001), 『중앙아시아의 문명과 반문명』(편저, 2007), 『동아시아 철도네트워크의 역사와 정치경제학 II』(편저, 2008), 『새로운 동북아 질서와 한반도의 미래』(공저, 2019)가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일본인은 왜 사과를 잘 하는가?』(1991), 『평화와 전쟁』(1999), 『새로운 중세: 21세기의 세계시스템』(2000), 『러시아의 자본주의혁명』(공역, 2010)이 있다. 그 밖에 「아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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