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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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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제주시 구좌읍에서 반짝 열리는 벨롱장, 옥빛 바다가 수려한 협재와 수많은 오름이 있는 송당 그리고 새순이 가득 돋아 있는 사려니 숲과 절물 휴양림, 강정마을과 용머리해안까지 돌고 나면 문득 가방을 싸 제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는 젊은 작가 6인의 테마소설집 《소설 제주》가 출간되었다. 소설가 전석순 김경희 SOOJA 이은선 윤이형 구병모가 전하는 한여름 반짝이는 바다처럼 제주에서의 찰나의 순간들을 담은 이 소설집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를 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풍경이 되어줄 것이다. 《소설 제주》를 통해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이라는 풍선을 가슴에 품고 사는 도시인들이 이 책을 펼치는 동안만이라도 복닥거리는 지하철 어딘가에서 잠시나마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길 바란다.
《소설 제주》는 테마소설 시리즈 ‘누벨바그’의 첫 번째 앤솔러지로, 세계 여러 도시와 작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지역과 문화, 사람이 어우러지는 장을 만들고자 야심차게 기획한 아르띠잔의 첫 테마소설 시리즈다.

제주를 만난 젊은 소설가 6인이 전하는 단편모음집

제주시 구좌읍에서 반짝 열리는 벨롱장, 옥빛 바다가 수려한 협재와 수많은 오름이 있는 송당 그리고 새순이 가득 돋아 있는 사려니 숲과 절물 휴양림, 강정마을과 용머리해안까지 돌고 나면 문득 가방을 싸 제주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는 젊은 작가 6인의 테마소설집 《소설 제주》가 출간되었다. 소설가 전석순 김경희 SOOJA 이은선 윤이형 구병모가 전하는 한여름 반짝이는 바다처럼 제주에서의 찰나의 순간들을 담은 이 소설집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어느 날 문득,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 모를 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하나의 풍경이 되어줄 것이다. 《소설 제주》를 통해 언제 터질지 모를 불안이라는 풍선을 가슴에 품고 사는 도시인들이 이 책을 펼치는 동안만이라도 복닥거리는 지하철 어딘가에서 잠시나마 미소 지을 수 있는 여유를 갖게 되길 바란다.
《소설 제주》는 테마소설 시리즈 '누벨바그'의 첫 번째 앤솔러지로, 세계 여러 도시와 작가들과의 만남을 통해 지역과 문화, 사람이 어우러지는 장을 만들고자 야심차게 기획한 아르띠잔의 첫 테마소설 시리즈다.

출판사 서평

“언제나 그렇듯 휴가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개 이름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다.”

여섯 개의 풍경 중 첫 번째 작품인 전석순의 〈벨롱〉은 직장을 잃은 남편이 아토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제주로 떠난 후 홀로 도시에 남아 바쁜 삶을 견뎌야만 했던 한 여자가 제주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맑고 청정하기만 했던 제주는 난개발과 수많은 관광객들로 어느새 악취가 풍겨오는 곳이 되어버렸다. 남편과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아이를 서울로 데리고 가기 위해 아이가 체험학습을 위해 갔다는 벨롱장을 찾지만 아이는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멀리서 반짝이듯 서 있던 벨롱장은 그저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질 뿐이다.

김경희의 <크루즈>는 실체를 알 수 없는 행복을 찾기 위해 제주를 찾는 해정의 이야기다. 제주로 가서 살자는 약속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남편에 의해 지켜지지 않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해정은 불행이라는 통증을 떨쳐내기 위해 제주로 향한다. 행복이라는 판타지는 결국 꿈틀대는 해삼처럼 살아 숨 쉬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주의 풍경을 그림처럼 묘사한 SOOJA의 <송당>은 시간이 날 때마다 제주를 찾는 병원 수술실 간호사 지우를 통해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한걸음 빠져나와 낯선 곳에서 느끼는 평온함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그 평온함은 잔잔하게 퍼진 붉은 빛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나 바스락거리는 마른 풀 소리, 낯선 이가 건네주는 손에 들기도 어려울 만큼 큰 잔에 가득 담아주는 시원한 커피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은선의 <귤목>은 제주의 또 다른 슬픈 기억 ‘세월호’의 아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느 날 아들한테서 손자 놈이 갑자기 유학을 떠났다는 전화가 온다. 마누라 기일이 되었는데도 아들과 며느리한테서는 도무지 연락이 없고, 텔레비전 속에서는 연신 제주로 가던 배가 침몰되었다는 사고 소식만 나온다. 이른 나이에 홀아비가 되어 두 자식을 키워낸 할아버지가 소식이 닿지 않는 쌍둥이 손자를 찾아 젊어서 떠나왔던 고향 제주를 찾는다. 떠난 아이들과 함께했던 기억 때문에 더 가슴 아픈, 남아있는 자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품이다.

윤이형의 〈가두리〉는 쌍둥이 남매로 태어나 여성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았던 ‘나’가 제주에서 인간들의 폭력에 의해 불법 포획된 돌고래 ‘복순’이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남자들의 선의 속에서 길들여지는 삶이 아닌 힘들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짓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나로 사는 것임을 깨닫는 과정을 차분한 어조로 서술한다.

몽고 침략 이후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구병모의 〈물마루〉는 몽고로부터 들어온 말을 키우는 테우리(말을 키우는 사람) 소녀 자이아와 물질을 업으로 하는 잠녀(해녀) 나불의 이야기다. 나불은 병든 어멍(엄마) 대신 물질을 해서 공물을 바쳐야 하고, 원제국의 후손인 자이아는 동생처럼 돌본 말 발란을 뭍에서 온 고려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도망치려 한다. 자문까지 구해 제주어를 구사해 쓴 작품으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보태었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했어!”

여행은 우리에게 낯설고 불편하지만 설렘을 선사한다. 낯선 이들에게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어쩌면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제는 타성화 되어버린” (<송당>) 도시에서의 삶은 “숨 쉴 구멍조차 없이 차단된 곳”(<크루즈>)이 되어 “살아온 시간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져 “어느 순간 간절한 구조요청”(<벨롱>)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소설 제주》는 잠시 쉬었다 가도 좋다는 위로가 된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 버리는 일상에서 잠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행복이라는 것의 정체”(<크루즈>)를 언뜻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제주》의 풍경은 때로는 ‘상실’과 ‘결핍’으로 삶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뉘 집 자손들인지 모르지만 안타깝고 애석해” “눈앞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는 ‘세월호’의 안타까움과(<귤목>), “세계로 향하는 감각이 모두 닫힌” 채 포획되어버린 제주 남방큰돌고래 ‘복순이’나(<가두리>), “무사히 돌아오는 일 자체가 싸움 비슷이 여겨지기도 하는” 뭍에서 온 사람들의 횡포를 감당해야 하는 섬사람들과(<물마루>)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곳 제주에서 휴식하기를 원한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겨우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바다 건너의 그곳”(<프롤로그>)은 어쩌면 우리 삶에 있어 잠시 반짝이는 “찰나의 순간”(<벨롱>)이거나 “한순간 ‘펑’ 하고 모든 걸 잊게 만드는”(<송당>) 선물일지 모른다. 그리고 《소설 제주》가 그 잠시의 휴식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도시인들에게 《소설 제주》가 작고 심심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복닥거리는 지하철 어딘가에서 이 책을 펼치며 잠시나마 미소를 지을 당신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당신이 제주로 가게 된다면 이 책 한 권이 가볍게 손에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소설 제주》는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 5인과 등단한 적은 없지만 한 번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작가 SOOJA(필명)의 작품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기쁨을 작가에게는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지면을 열어놓았다. 누벨바그 시리즈는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언제나 그렇듯 휴가는 지구 반대편에 사는 개 이름처럼 낯설게만 느껴졌다."

여섯 개의 풍경 중 첫 번째 작품인 전석순의 [벨롱]은 직장을 잃은 남편이 아토피로 힘들어하는 아이를 데리고 제주로 떠난 후 홀로 도시에 남아 바쁜 삶을 견뎌야 했던 한 여자가 제주에 도착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맑고 청정하기만 했던 제주는 난개발과 수많은 관광객들로 어느새 악취가 풍겨오는 곳이 되어버렸다. 남편과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되었고, 아이를 서울로 데리고 가기 위해 아이가 체험학습을 위해 찾아갔다는 벨롱장을 찾지만 아이는 거짓말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멀리서 반짝이듯 서 있던 벨롱장은 그저 찰나의 순간처럼 느껴질 뿐이다.

김경희의 [크루즈]는 실체를 알 수 없는 행복을 찾기 위해 제주를 찾는 해정의 이야기다. 제주로 가서 살자는 약속은 목표를 이루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남편에 의해 지켜지지 않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에 시달리는 해정은 불행이라는 통증을 떨쳐내기 위해 제주로 향한다. 행복이라는 판타지는 결국 꿈틀대는 해삼처럼 살아 숨 쉬는 것임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섬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제주의 풍경을 그림처럼 묘사한 SOOJA의 [송당]은 시간이 날 때마다 제주를 찾는 병원 수술실 간호사 지우를 통해 복닥거리며 살아가는 바쁜 일상 속에서 한걸음 빠져나와 낯선 곳에서 느끼는 평온함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그 평온함은 잔잔하게 퍼진 붉은 빛 바다 위에 떠 있는 섬이나 바스락거리는 마른 풀 소리, 낯선 이가 건네주는 손에 들기도 어려울 만큼 큰 잔에 가득 담아주는 시원한 커피만으로도 충분하다.

이은선의 [귤목]은 제주의 또 다른 슬픈 기억 '세월호'의 아픔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어느 날 아들한테서 손자 놈이 갑자기 유학을 떠났다는 전화가 온다. 마누라 기일이 되었는데도 아들과 며느리한테서는 도무지 연락이 없고, 텔레비전 속에서는 연신 제주로 가던 배가 침몰되었다는 사고 소식만 나온다. 이른 나이에 홀아비가 되어 두 자식을 키워낸 할아버지가 소식이 닿지 않는 쌍둥이 손자를 찾아 젊어서 떠나왔던 고향 제주를 찾는다. 떠난 아이들과 함께했던 기억 때문에 더 가슴 아픈, 남아있는 자의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품이다.

윤이형의 [가두리]는 쌍둥이 남매로 태어나 여성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았던 '나'가 제주에서 인간들의 폭력에 의해 불법 포획된 돌고래 '복순'이를 통해 진정한 자유를 알게 된다는 내용이다. 남자들의 선의 속에서 길들여지는 삶이 아닌 힘들더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짓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나로 사는 것임을 깨닫는 과정을 차분한 어조로 서술한다.

몽고 침략 이후 고려 시대를 배경으로 한 구병모의 [물마루]는 몽고로부터 들어온 말을 키우는 테우리(말을 키우는 사람) 소녀 자이아와 물질을 업으로 하는 잠녀(해녀) 나불의 이야기다. 나불은 병든 어멍(엄마) 대신 물질을 해서 공물을 바쳐야 하고, 원제국의 후손인 자이아는 동생처럼 돌본 말 발란을 뭍에서 온 고려군에게 빼앗기지 않으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에서 도망치려 한다. 자문까지 구해 제주어를 구사해 쓴 작품으로 제주의 아름다움을 보태었다.

“여기까지 오느라고 수고했어!”

여행은 우리에게 낯설고 불편하지만 설렘을 선사한다. 낯선 이들에게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고,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있는 용기를 주기도 한다. 어쩌면 너무나 익숙해져서 “이제는 타성화 되어버린” ([송당]) 도시에서의 삶은 “숨 쉴 구멍조차 없이 차단된 곳”([크루즈])이 되어 “살아온 시간이 다 거짓말처럼 느껴”져 “어느 순간 간절한 구조요청”([벨롱])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소설 제주》는 잠시 쉬었다 가도 좋다는 위로가 된다. 너무 빠르게 흘러가 버리는 일상에서 잠시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되돌아보고 “행복이라는 것의 정체”([크루즈])를 언뜻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제주》의 풍경은 때로는 ‘상실’과 ‘결핍’으로 삶의 민낯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래서 “뉘 집 자손들인지 모르
지만 안타깝고 애석해” “눈앞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는 ‘세월호’의 안타까움과([귤목]), “세계로 향하는 감각이 모두 닫힌” 채 포획되어버린 제주 남방큰돌고래 ‘복순이’나([가두리]), “무사히 돌아오는 일 자체가 싸움 비슷이 여겨지기도 하는” 뭍에서 온 사람들의 횡포를 감당해야 하는 섬사람들과([물마루])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곳 제주에서 휴식하기를 원한다. 서울에서 비행기로 겨우 1시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바다 건너의 그곳”([프롤로그])은 어쩌면 우리 삶에 있어 잠시 반짝이는 “찰나의 순간”([벨롱])이거나 “한순간 ‘펑’ 하고 모든 걸 잊게 만드는”([송당]) 선물일지 모른다. 그리고 《소설 제주》가 그 잠시의 휴식이 되어주리라 믿는다.

도시인들에게 《소설 제주》가 작고 심심한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복닥거리는 지하철 어딘가에서 이 책을 펼치며 잠시나마 미소를 지을 당신을 생각하니 벌써 가슴이 설렙니다. 이게 사는 건가 싶을 때 당신이 제주로 가게 된다면 이 책 한 권이 가볍게 손에 들려지기를 바랍니다.
― ‘프롤로그’ 중에서

《소설 제주》는 활발하게 활동 중인 작가 5인과 등단한 적은 없지만 한 번도 작품 활동을 멈추지 않았던 작가 SOOJA(필명)의 작품을 함께 소개함으로써 독자들에게는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기쁨을 작가에게는 독자를 만날 수 있는 지면을 열어놓았다. 누벨바그 시리즈는 앞으로도 독자들에게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기쁨을 느낄 수 있게 할 예정이다.

[책속으로 추가]
p. 178~179 가두리
이 섬으로 오는 일이 나에게 쉽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다.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는 일, 명현에게 이야기하는 일, 그 모든 시선과 비난과 몰이해와 원망과 실망을 받아내는 일, 회사를 그만두는 일, 집과 짐들을 정리하는 일, 삼십여 년 동안 살아온 삶의 방향을 정반대로 돌리는 일, 내가 의존하며 살아온 세계에서 벗어나는 일.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겪는 내내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그랬다.
즐겁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확신할 수 없었다. 이것이정말로 나일까. 나는 단지 무언가에 또다시 지친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명현이 말한 것처럼 그저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이것이 진짜 나라고 다시 한번 헛되이 나를 설득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조금 더 근사하고 정의롭고 멋져 보이는 무언가에, 주류가 아닌 삶에, 소수자라는 레이블에 편승하기 위해서, 내 것이 아닌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너도 무리에 섞이는 일이 어쩌면 그러했을지 모른다. 너는 처음부터 잘할 수 있었을까. 어색하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그렇게 믿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만, 어쩌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삶이 무겁고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수족관 속에 있던 자신 쪽이 진짜라고 믿고 싶은 날들이, 너에게도 있었을지 모른다.

p. 203~204 물마루
자이아의 눈은 바당 너머에 펼쳐진 세계, 그 외형을 알 길 없으나 고이지 않고 흘러갈 것만은 틀림없는 세계로 뻗어 나가 흔들리고 있다. 나불은 물속 깊이 들어갔다가 언젠가 적당할 때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일에만 골몰했을 뿐, 물마루 너머의 세상을 주우릇하니 그려본 적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아직 먼물질을 나가본 적 없어서기도 하겠으나, 그 너머를 얼핏 볼 때가 온다 해도―거기서 어떤 경이에 사로잡힌다 해도, 그곳이 자기 자리 아니며 거기 닿을 일 없으니 눈에 담아두지 않고 털어버릴 터다. 암만 물마루 너머를 내다본들 머릿속이 구름 사이를 날아다닌들, 그들의 몸은 서천꽃밭에 닿지 않으며 죽는 날까지 이 섬에 정박한 배처럼 매여 있을 것이다. 자이아는 말을 길러 빼앗기고, 나불은 톨과 패각을 따다 빼앗기는 날들이 계속될 것이며, 그것을 빼앗긴다 여겨서도 안 된다고 스스로의 마음을 단단히 여민 채, 물로 둘러싸인 감옥에서 생을 마칠 것이다. - 끝 -

목차

프롤로그_풍경을 걷다

벨롱_전석순
크루즈_김경희
송당_SOOJA
귤목_이은선
가두리_윤이형
물마루_구병모

프롤로그_풍경을 걷다

벨롱_전석순
크루즈_김경희
송당_SOOJA
귤목_이은선
가두리_윤이형
물마루_구병모

본문중에서

벨롱은 무슨 뜻이에요? 벨롱은 여기 말로 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이란 뜻입니다. 그만큼 찰나의 순간이죠.
여자는 시선을 조금 먼 곳에 던졌다. 멀리 무언가 열심히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누군가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파도 소리 때문에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보면 아이의 목소리를 골라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벨롱장은 그쯤일지도 몰랐다. 남자와 옥신각신하는 동안 이만큼이나 걸어온 건가 싶었지만 여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거기쯤에 체험학습을 나온 아이가 꽃잎이 그려진 책갈피나 어디에 써먹을지 알 수 없는 구슬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 여자는 아이가 물건을 파는 쪽이 아니라 사는 쪽일 것만 같았다. 어쩐지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게…… 아이에겐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pp. 6~8, '벨룽')

이런 느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간단히 ‘통증’이라고 뭉뚱그려 부른다. 하지만 해정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유령이다.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없는 것, 해괴하기 짝이 없는 통증이란 것이 수시로 해정의 몸 어딘가를 침범해왔다. 그토록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 것은 결혼 후 1년이 막 지나면서부터였다. 꼭 서른세 살 되던 생일날 아침, 퍼뜩 눈을 떴는데 유령처럼 괴이하고 현실감 없는 통증이 해정의 몸 어딘가를 훅 관통했다. 그 느낌은 지극히 생생하면서도 위험했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을 도무지 피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해괴한 통증은 수시로 해정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pp. 55, '크루즈')

지우의 하얀 승용차는 푸르스름하게 땅거미가 내릴 무렵 고개 하나를 넘었다. 마치 시각을 정확하게 그리 맞춘 듯 지우로 하여금 한순간 ‘펑’ 하고 모든 걸 잊게 만드는 장엄한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우는 2차선 도로 옆에 차를 정차시켰다. 어차피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대로 운전대를 잡고 고개를 바깥으로 뻗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에 걸린 태양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듯 오렌지색 붉은빛을 회색 구름 위로 토해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난데없이 불쑥불쑥 솟은 오름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우며 입체감을 더했다. 모노톤으로 색깔을 덧입은 오름들이 얼핏 봐도 여남은 개는 돼 보였다. 앞, 뒤, 좌, 우 오름들이 앞다투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지우의 입에서는 저절로 “아……” 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우는 다시 미끄러지듯 차를 몰아 고요한 오름의
바다를 가로지른다. 마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라고 말하는 듯 제주는 지우에게 선물을 건넨다. 지우는 제주를 사랑했다.
(/pp. 108~109, '송당')

엊그제 오전에 아들이 술에 잔뜩 취해 전화를 걸어 횡설수설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웬 술이냐고 호통을 쳤지만 어쩐지 마음 한쪽이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애들 중 하나가 유학을 떠났단다. 수학여행 간다더니 무슨 유학? 전화를 받으면서도 내내 뉴스 특보에 눈을 두고 있던 터라 아들이 하는 말 대부분을 흘려들었다. 뉘 집 자손들인지 모르지만 안타깝고 애석해서 내 몸이 다 덜덜 떨렸다. 한편으로는 저런 애들도 있는데, 우리 손자는 유학을 간다니 차라리 잘 된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뒤섞인 대형 강당의 아수라장과 놀라울 정도로 고요한 바다가 연달아 나왔다.
(/pp. 102, '귤목')

이 섬으로 오는 일이 나에게 쉽지만은 않았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싶다. 부모님에게 이야기하는 일, 명현에게 이야기하는 일, 그 모든 시선과 비난과 몰이해와 원망과 실망을 받아내는 일, 회사를 그만두는 일, 집과 짐들을 정리하는 일, 삼십여 년 동안 살아온 삶의 방향을 정반대로 돌리는 일, 내가 의존하며 살아온 세계에서 벗어나는 일. 그리고 그 모든 일들을 겪는 내내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 그랬다.
즐겁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확신할 수 없었다. 이것이정말로 나일까. 나는 단지 무언가에 또다시 지친 것에 불과한 게 아닐까. 명현이 말한 것처럼 그저 모든 것으로부터

p. 47 벨룽
벨롱은 무슨 뜻이에요? 벨롱은 여기 말로 빛이 멀리서 반짝이는 모양이란 뜻입니다. 그만큼 찰나의 순간이죠.
여자는 시선을 조금 먼 곳에 던졌다. 멀리 무언가 열심히 햇빛을 튕겨내고 있었다. 누군가 혼잣말처럼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았지만 파도 소리 때문에 확실하진 않았다. 하지만 귀를 기울여보면 아이의 목소리를 골라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벨롱장은 그쯤일지도 몰랐다. 남자와 옥신각신하는 동안 이만큼이나 걸어온 건가 싶었지만 여자는 그럴 수도 있다는 쪽에 무게를 뒀다. 거기쯤에 체험학습을 나온 아이가 꽃잎이 그려진 책갈피나 어디에 써먹을지 알 수 없는 구슬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을 것이었다. 이제 여자는 아이가 물건을 파는 쪽이 아니라 사는 쪽일 것만 같았다. 어쩐지 자신이 직접 만들어서,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게…… 아이에겐 없을 거란 생각 때문이었다.

p. 53 크루즈
이런 느낌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사람들은 그런 것을 간단히 ‘통증’이라고 뭉뚱그려 부른다. 하지만 해정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그것은 유령이다. 이름만 있고 실제로는 없는 것, 해괴하기 짝이 없는 통증이란 것이 수시로 해정의 몸 어딘가를 침범해왔다. 그토록 이상한 증상이 나타난 것은 결혼 후 1년이 막 지나면서부터였다. 꼭 서른세 살 되던 생일날 아침, 퍼뜩 눈을 떴는데 유령처럼 괴이하고 현실감 없는 통증이 해정의 몸 어딘가를 훅 관통했다. 그 느낌은 지극히 생생하면서도 위험했다. 결코 일어날 수 없는 감각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을 도무지 피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해괴한 통증은 수시로 해정의 일상을 파고들었다.

p. 81 송당
지우의 하얀 승용차는 푸르스름하게 땅거미가 내릴 무렵 고개 하나를 넘었다. 마치 시각을 정확하게 그리 맞춘 듯 지우로 하여금 한순간 ‘펑’ 하고 모든 걸 잊게 만드는 장엄한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지우는 2차선 도로 옆에 차를 정차시켰다. 어차피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그대로 운전대를 잡고 고개를 바깥으로 뻗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평선에 걸린 태양이 마지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키듯 오렌지색 붉은빛을 회색 구름 위로 토해내고 있었다. 여기저기 난데없이 불쑥불쑥 솟은 오름에 길게 그림자가 드리우며 입체감을 더했다. 모노톤으로 색깔을 덧입은 오름들이 얼핏 봐도 여남은 개는 돼 보였다. 앞, 뒤, 좌, 우 오름들이 앞다투어 한눈에 들어왔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지우의 입에서는 저절로 “아……” 하고 탄성이 흘러나왔다. 얼마나 지났을까 지우는 다시 미끄러지듯 차를 몰아 고요한 오름의
바다를 가로지른다. 마치 여기까지 오느라 수고했어라고 말하는 듯 제주는 지우에게 선물을 건넨다. 지우는 제주를 사랑했다.

p. 102 귤목
엊그제 오전에 아들이 술에 잔뜩 취해 전화를 걸어 횡설수설했다. 아침 댓바람부터 웬 술이냐고 호통을 쳤지만 어쩐지 마음 한쪽이 비어버린 느낌이었다. 애들 중 하나가 유학을 떠났단다. 수학여행 간다더니 무슨 유학? 전화를 받으면서도 내내 뉴스 특보에 눈을 두고 있던 터라 아들이 하는 말 대부분을 흘려들었다. 뉘 집 자손들인지 모르지만 안타깝고 애석해서 내 몸이 다 덜덜 떨렸다. 한편으로는 저런 애들도 있는데, 우리 손자는 유학을 간다니 차라리 잘 된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이러저러한 사람들이 뒤섞인 대형 강당의 아수라장과 놀라울 정도로 고요한 바다가 연달아 나왔다.도망치고 싶어서, 이것이 진짜 나라고 다시 한번 헛되이 나를 설득하기 시작한 게 아닐까. 조금 더 근사하고 정의롭고 멋져 보이는 무언가에, 주류가 아닌 삶에, 소수자라는 레이블에 편승하기 위해서, 내 것이 아닌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너도 무리에 섞이는 일이 어쩌면 그러했을지 모른다. 너는 처음부터 잘할 수 있었을까. 어색하지는 않았을까. 우리는 그렇게 믿지만, 그렇게 믿고 싶지만, 어쩌면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삶이 무겁고 버거웠을지도 모른다. 길을 잃은 것처럼 느껴졌을지도, 혼란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수족관 속에 있던 자신 쪽이 진짜라고 믿고 싶은 날들이, 너에게도 있었을지 모른다.
(/pp. 178~179, '가두리')

자이아의 눈은 바당 너머에 펼쳐진 세계, 그 외형을 알 길 없으나 고이지 않고 흘러갈 것만은 틀림없는 세계로 뻗어 나가 흔들리고 있다. 나불은 물속 깊이 들어갔다가 언젠가 적당할 때 떠오르기를 반복하는 일에만 골몰했을 뿐, 물마루 너머의 세상을 주우릇하니 그려본 적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아직 먼물질을 나가본 적 없어서기도 하겠으나, 그 너머를 얼핏 볼 때가 온다 해도―거기서 어떤 경이에 사로잡힌다 해도, 그곳이 자기 자리 아니며 거기 닿을 일 없으니 눈에 담아두지 않고 털어버릴 터다. 암만 물마루 너머를 내다본들 머릿속이 구름 사이를 날아다닌들, 그들의 몸은 서천꽃밭에 닿지 않으며 죽는 날까지 이 섬에 정박한 배처럼 매여 있을 것이다. 자이아는 말을 길러 빼앗기고, 나불은 톨과 패각을 따다 빼앗기는 날들이 계속될 것이며, 그것을 빼앗긴다 여겨서도 안 된다고 스스로의 마음을 단단히 여민 채, 물로 둘러싸인 감옥에서 생을 마칠 것이다. - 끝 -
(/pp. 203~204, '물마루')

저자소개

전석순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83

1983년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회전의자'가 당선되어 등단했다. 2011년 장편소설 '철수 사용 설명서'로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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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SOOJA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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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선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

1983년 충남 보령에서 태어났다. 201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붉은 코끼리」가 당선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발치카 No. 9』이 있다.

윤이형 [저] 신작알림 SMS신청
생년월일 1976

저자 윤이형은 1976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2005년 중앙 신인문학상에 「검은 불가사리」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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