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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원제 : FANG SI-QI'S FIRST LOVE PARADISE (房思琪的初戀樂園)

2013년 9월 9일 이후 누적수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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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게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지 마세요.
언젠가는 나를 놓아주겠다고도 말하지 마세요.
열세 살 그날 이후, 나는 한 뼘도 자라지 못했습니다.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열세 살 소녀 팡쓰치가 쉰 살의 문학 선생님 리궈화에게 5년에 걸쳐 상습적으로 성폭행당하는 이야기이다. 이를 눈치챈 어른도 있고, 힘겨운 고백을 들은 친구도 있었으며 가해자를 도운 사람까지 있었지만 아무도 팡쓰치에게 손을 내밀어주지 않는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탈출구도 없이 고통에 길들여지는 소녀의 이야기이다. 오직 명문대 합격만 바라보며 달리는 기형적 교육제도, 성교육에 무관심한 부모, 가해자의 당당함, 사회의 싸늘한 시선.... 작가 린이한은 세상의 팡쓰치들이 처한 현실을 고통스러울 정도로 정밀하게 그려냈다. 대만의 서평지 [오픈북]에서 ‘올해의 좋은 책’으로, 중국 최대의 서평 사이트 더우반에서 추천도서로 선정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 후 대만 사회 전체가 들끓었으며, 출간 후 석 달이 못 되어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며 또 한 번 충격에 휩싸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린이한의 부모는 이 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쓰였다고 폭로하고 가해자를 지목했다.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지목된 강사는 혐의를 부인했고 결국 불기소처분되었다.

출판사 서평

"그런데 왜 제가 선생님한테 미안하다고 해야 해요? 선생님도 나한테 미안해요?"
팡쓰치, 고통에 길들여지다


열세 살까지 팡쓰치의 세상은 단짝친구인 류이팅과 책으로 가득했다. 문학작품을 권해주고 함께 읽어주는 이원 언니를 만나면서 이팅의 세상은 한 뼘 더 커지는 듯했다. 새로 이사온 유명 문학 강사 리궈화가 그 세상으로 틈입하기 전까지는. 리궈화는 ‘글 쓰는 법을 가르쳐주겠다’며 쓰치를 자신의 집으로 불러 강간했다. 그리고 5년 동안 쓰치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하면서 길들였다. 리궈화가 단단히 세워놓은 언어로 만든 감옥 속에서도 쓰치는 성장하고 조금씩 강해졌다. 한발만, 딱 한발만 더 내디디면 되는지도 모른다. 그녀가 사는 사회가 그의 공범이 아니라면, 가장 친한 친구라도 그녀의 고통을 알아봐주었다면, 어른들이 자신이 만든 세상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그녀의 편에 서주었다면 말이다.

"난 네가 행복할 줄 알았어."
류이팅, 방관하다


이팅과 쓰치는 동네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영혼의 쌍둥이’였다. 둘은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상처를 나누었다. 입만 열면 고전을 줄줄 읊는 리 선생님이나 키 크고 멋진 이웃집 오빠를 동경하는 것도 함께였다. 어느 날, 리 선생님이 쓰치와 이팅에게 작문을 가르쳐주겠다며 두 소녀를 교대로 자신의 집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이팅에게는 즐거운 나날이었지만 어쩐지 쓰치에게 비밀이 생긴 것만 같다. 마침내 쓰치가 무거운 입을 열고 3년 동안 당한 일을 털어놓았을 때 이팅은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했다. 쓰치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평생 안고 살아야 하는 짐이 무엇인지도. 그래서 쓰치를 비난했다. 훗날 이팅은 생각한다. ‘나만이라도 쓰치를 더럽다고 비난하지 않았더라면....’

"나를 지켜주고 아껴준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왜 날 때려요?"
쉬이원, 학대받다


생각해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대부호의 아들이자 잘생기고 명석한 첸이웨이를 일등 신랑감으로 꼽던, 동네 중매쟁이를 자처하는 리씨 아주머니는 그와 자신의 딸 사이에 혼담이 오가자 재빨리 쉬이원을 그에게 소개했다. 첸이웨이는 자신이 진정한 사랑을 만나지 못했노라고 했고 이원은 그 말을 믿었다. 그래서 비교문학 박사과정을 밟던 중 학업을 그만두고 그와 결혼했다. 첸이웨이는 다정한 남편이었다. 술을 마시지 않고 그녀를 무자비하게 때리지 않을 때는. 팡쓰치와 류이팅에게 책을 읽어주는 것이 이원의 유일한 기쁨이었지만, 곧 그 역할마저 리궈화에게 빼앗긴다. 쓰치가 보내는 SOS 신호를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도 이원이었다. 그러나 이원은 자신의 고통에 매몰되어 쓰치의 고통을 돌아보지 못했다.

[줄거리]
팡쓰치와 류이팅은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을 함께한 ‘영혼의 쌍둥이’이다. 고등학교 졸업반인 이팅은 어느 날, 낯선 산 근처의 파출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그곳으로 찾아간다. 거기에는 정신나간 표정으로 콧물과 침을 흘리는 쓰치가 있었다. 경찰은 산에서 쓰치를 ‘발견’했다고 했다. 소설은 쓰치의 일기를 통해 이팅이 지난 5년 동안을 재구성하면서 시작된다. 5년 전, 쉰 살의 문학 강사 리궈화는 열세 살의 팡쓰치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강간했으며, 그 후에도 상습적인 성폭행으로 쓰치를 길들였다. 강사로 유명세를 얻은 20년 동안 리궈화는 수많은 소녀들을 취하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모든 것이 너무나 쉬웠다. 입시위주의 교육은 매년 새로운 수강생을 공급해주었고, 강간당한 소녀들은 수치심을 자신의 것으로 여겼으며 세상은 든든한 그의 공범이었다. 심지어는 여성인 동료 강사마저 여학생들을 그에게 차로 실어날랐다. 한편, 5년 전 이웃집 오빠 첸이웨이와 결혼한 이원은 두 소녀에게 책을 권하고 읽어주며 가깝게 지낸다. 비밀을 안고 조용히 시들어가는 쓰치에게 처음 주의를 기울인 것도 이원이었다. 그리고 이원 언니가 더운 날에도 짧은 소매를 입지 못하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챈 사람 역시 쓰치였다. 이원은 남편의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리궈화의 성폭력이 더욱 교묘하고 치밀해지면서 쓰치는 완전히 입을 닫고 만다. 쓰치의 엄마는 자신이 왜 딸에게 성교육을 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했고, 단짝 친구 류이팅은 쓰치를 비난했으며 이원에게는 쓰치를 도울 힘이 없었다.

이것이 사랑이라면 어째서 이토록 폭력으로 느껴질까?
이것이 사랑이 아니라면 선생님은 어떻게 저토록 떳떳할 수 있을까?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은 고통의 기록이다. 인물들은 섬세한 언어 속에서 저마다 비밀을 간직한 채 괴로워한다. 언어는 단단히 정제되어 그 깊이를 가늠할 수조차 없다. 책 말미에 실린 서평에서 작가 장이쉬안은 ‘쓰치에게는 폭력에 저항하는 문명이 있었지만 문명은 야만을 당해내지 못했다’고 일갈한다. 이 책은 어쩌면 팡쓰치가 자신만의 문명, 즉 ‘언어’로 자신이 처한 폭력적 상황을 제목처럼 일종의 ‘낙원’으로 받아들이려다 실패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낙원을 누릴 수 없기는 다른 여성들도 마찬가지이다. 이팅은 친구의 고통을 방관하다 마침내 마음의 문을 열지만 너무 늦었고, 젊고 발랄하던 이원은 서서히 무너져간다. 팡쓰치에 앞서 리궈화에게 지속적으로 성폭행당한 샤오치는 결국 인터넷 게시판에 그의 행각을 폭로하지만 싸늘한 비웃음만 살 뿐이다. 다른 어른들은 어떤가. 어린 여학생을 차례로 섭렵한 것을 자랑하는 학원 강사들, 명문대 합격만이 모든 것인 교육 환경, 성교육에는 무관심하면서도 성적 순결을 강요하는 가정 분위기, 가정폭력을 눈치채고도 모른 척하는 이웃들.... 작가 린이한은 성폭력을 비롯해 오늘날 여성들이 마주한 크고 작은 비극을 소설 곳곳에 복선처럼 깔아두었다.

"고통스러운 경험은 말하기가 힘들다.
이 세상에 문학이 있어 다행이다."
- 린이한


2017년 4월 27일, 스물여섯 살 젊은 작가 린이한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데뷔작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을 출간한 지 두 달 남짓, 소설이 베스트셀러 행진을 이어가던 무렵이었다. 생전에 린이한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선생님을 모델 삼아 소설 속 리궈화를 묘사했다고 밝혔다. 소설 속 어른들은 가해하거나 방관하고, 심지어 가해자를 돕는다. 사회학자 차이이원은 서평을 통해 이렇게 지적한다. ‘소설 속에서 가해자는 리궈화와 첸이웨이다. (중략) 하지만 가해자의 가장 중요한 협조자는 바로 무형의 ‘사회’이다. 리궈화는 똑똑했다. 이 사회가 성폭력을 발견했을 때 가해자 편에 선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았고, 이 사실을 이용해 수많은 ‘사랑’을 얻었다. 팡쓰치든 궈샤오치든, 아니면 그 뒤에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소녀들의 사랑이든. 그가 그럴 수 있도록 허락한 것은 바로 사회였다.’ 그리고 그녀가 자살한 후 그녀의 부모는 이 책이 그녀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쓴 것이라고 폭로하고 유명 강사 천싱(陳星)을 가해자로 지목했다. 대만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고 가해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쳤지만, 결국 천싱은 불기소처분되었다. 생전에 가진 인터뷰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니 성공했다고 말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나 자신이 쓰레기라고 여겨졌다. 책 속의 리궈화는 지금도 계속 가르치고 있으니까. 길에서 그의 이름이 적힌 광고판을 볼 수 있으니까. 그는 죽지 않았고 앞으로도 죽지 않을 거니까. 그래서 이 책의 성공을 논할 수가 없다." 2018년 4월 27일은 린이한 작가의 1주기이다. 작가가 소설에서 이원 언니의 입을 빌려 말했듯 우리는 그저 모르는 척, 이런 일이 일어난 적 없는 척하고 살 수 있다. 그러나 기억할 수도 있다. 이제 선택은 우리의 몫이다.

추천사

이것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스며들듯 천천히 진행된 강간이었다. 그 강간은 성(城)에 갇혀 빠져나오지 못하는 소녀들에 관한 괴담이 되었다. 위조된 성과 시(詩) 속에서, 시든 꽃잎 같은 청춘 속에서, 소녀들은 나오지 못한다. 사랑이라는 벽돌쌓기 속에서. ‘착한 소녀’는 미래로 향하는 시간의 통로에서 짓밟혔지만, 그녀가 써낸 이 소녀들은 아름답다. 가려진 채 서서히 타오르는 불꽃처럼 끔찍하지만 아름다운 소설.
- 뤄이쥔駱以軍 / 소설가

피해자가 남긴 지문 같은 이야기. 얼핏 성과 폭력에 관한 작품인 것 같지만, 사실은 문학과 언어가 어떻게 강간과 속임수로 변할 수 있는지를 지적한다. 가해자가 가한 폭력 속에서 언어와 문학은 잔인한 공범이고, 소통과 문명을 배반하고 인간을 실어(失語)와 분열로 몰아갔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이 말하려는 것은 롤리타적 변태만이 아니라 문학이 대상이 된 섹슈얼 페티시즘이기도 하다. ‘연상, 상징, 은유가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임을 이제 알았다’는 주인공의 고백이 이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이러니하게도 풍부한 연상과 정확한 상징, 심오한 은유, 고도의 문학성이 이 작품에 최우수신인상의 수준을 뛰어넘는 가치를 부여했다.
- 탕수원湯舒雯 / 소설가

목차

1. 낙원
2. 실낙원
3. 복락원

작가 후기
옮긴이의 말: 누가 팡쓰치의 낙원을 빼앗았나

서평: 롤리타인, 롤리타가 아닌 : 21세기판 소녀의 모험
서평: 성에 관한 모든 폭력에는 사회라는 공범이 있다

본문중에서

선생님이 말했다. “이건 선생님이 널 사랑하는 방식이야. 알겠니?”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선생님이 틀렸다고. 나는 성기를 막대사탕으로 착각하는 어린아이가 아니라고.
(/ p.43)

여학생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리궈화가 느꼈던 기쁨, 희열, 안도감을 영어 선생은 절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마음속에서 [청평조]의 태평한 노랫가락이 파도처럼 넘실댔다. 한 남자를 향한 최고의 존경은 그를 위해 자살하는 것이다. 그를 위한 자살인지, 그로 인한 자살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 p.72)

‘그가 내 사춘기를 찢어버렸지만 나도 내 사춘기를 찢어버릴 수 있어. 그가 한 것처럼 나도 할 수 있어. 내가 나를 버린다면 그는 나를 다시 버릴 수 없을 거야. 어차피 우리가 먼저 선생님을 사랑한다고 했어. 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네게 뭘 하든 상관없잖아. 안 그래?’
(/ p.94)

그가 말했다.
“글을 쓰고 싶다면 남다른 사랑도 해봐야 하는 거야.”
그녀가 또 웃었다.
“핑계.”
그가 말했다.
“당연히 핑계가 있어야지. 핑계가 없다면 너랑 내가 어떻게 살겠니? 안 그래?”
리궈화는 내심 그녀의 수치심이 좋았고 그녀의 몸에서 씻기지 않는 도덕성이 좋았다.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방백을 통해 그녀의 수치심이 바로 그의 부끄러움 모르는 쾌락의 정점이라고 분명히 얘기할 것이다.
(/ p.100)

리궈화가 부조를 손으로 가리켰다.
“원숭이와 사슴이 각각 ‘벼슬’과 ‘봉록’을 의미한다는 건 알고 있지?”
또 수업이 시작되었다. 수업 시간에는 가르치지 않고 수업 시간이 아닐 때는 틈만 나면 가르치려 드는 남자였다.
(/ p.139)

“네가 나중에 돌이켜 생각했을 때 행복한 추억이라면 더 바랄 게 없어. 나중에 좋은 남자를 만나면 내 곁을 떠나렴.”
쓰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정말로 이걸 자비라고 생각하는 걸까? 내게 이런 일을 하면서 내가 누군가와 또 연애를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걸까? 내가 세상에 찢긴 여자들이 있다는 걸 모른 척하고 학교에서 다른 남자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돌아다니길 바라는 걸까? 날마다 잠드는 게 두려울 정도로 그의 꿈을 꾸지 말라고 내 머리에 명령하는 걸까? 좋은 남자가 나 같은 여자를, 나 자신조차 받아들일 수 없는 여자를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 p.156)

선생님은 자주 말했다.
“네가 좋아하는 사람도 널 좋아한다는 건 신이 만든 기적이야.”
신이 왔었나 보다. 그와 아내와 아이가 함께 사는 집에, 쓰치와 부모님이 사는 집의 아래층에.
(/ p.155)

“새로 만나는 애가 끝내줘. 아주 훌륭해. 동시에 두 명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몇 살이냐고?”
그는 그저 웃기만 할 뿐 대꾸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열여섯 살 미만이라는 의미다. 자신에게 몰려드는 선망의 눈길에 리궈화가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수학 선생이 큰 소리로 말했다.
“세상에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어?”
리궈화가 말했다.
“우린 늙겠지만 애들은 안 늙어.
(/ p.166)

쓰치가 말했다.
“선생님, 나 같은 학생이 많아요?”
“한 명도 없었어. 네가 처음이야. 나랑 너는 닮은 점이 있어.”
“뭐가 닮았는데요?”
“난 사랑에 결벽증이 있어.”
(/ p.172)

정신이 들고 난 뒤 평소처럼 다급하게 옷을 입었다. 평소에는 손으로 뒤통수를 받치고 노곤하게 선잠을 즐기던 리궈화가 그날은 침대에서 내려와 그녀를 끌어안고 엄지로 그녀의 귀밑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두피에서 그의 거친 숨결이 느껴졌다. 밭은 숨을 내뱉으며 그녀의 머리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녀를 놓아주기 전 그가 짧게 말했다.
“넌 날 너무 아껴. 그렇지?”
너무 로맨틱했다. 쓰치는 겁이 났다. 사랑과 너무 닮아서…….
(/ p.174)

“가끔은 선생님이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었는지 모르겠어요. 난 그때 정말 어렸는데.”
침대에 누워 있는 리궈화는 대답할 말을 생각하는 건지, 대답을 할까 말까 고민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드디어 그가 입을 열었다.
“넌 어렸지만 나는 아니었으니까.”
(/ p.242)

"뭐 이런 세상이 다 있어요? 어째서 피해자가 입 다무는 걸 교양이라고 해요? 어째서 남을 때린 사람이 텔레비전 광고에 나오죠? 정말 실망스러워요. 언니에게 실망한 건 아니에요. 이 세상이든 인생이든 운명이든 아니면 신이라고 부르든 뭐라고 부르든 정말 형편없어요. 요즘은 소설을 읽다가 인과응보 해피엔딩으로 끝나면 울음이 나와요. 세상에 아물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이 제일 싫어요. 이 세상에 한 사람을 완전히 파멸시키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같은 서정적인 결말이 싫어요. 왕자와 공주가 결국에는 결혼하는 해피엔딩이 혐오스러워요. 그런 긍정적인 사고가 얼마나 세상에 영합하는 비열한 결말인지! 그런데 내가 그것보다 더 원망하는 게 뭔지 알아요? 차라리 내가 세속에 영합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차라리 내가 세상의 이면을 본 적도 없는 무지한 사람이면 좋겠어요."
(/ p.267)

사람들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일말의 상상력도 없었다.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와 젊고 예쁜 불륜녀, 눈물을 흘리는 조강지처의 조합은 자세히 들여다볼 것도 없이 황금시간대 막장드라마 속 스토리로 치부되었다. 그들은 이 세상에 죽음보다 더 끔찍한 고통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그걸 부정하지 않으면 자신들의 작디작은 평화가 너무 이기적으로 보인다는 걸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너도 나도 앞다투어 자신을 ‘루저’라고 칭하는 시대에 진정한 루저인 여자들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아무도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이런 고통과 행복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 사람들은 작은 행복을 누리며 입으로는 작은 고통을 외치고 있다. 누군가의 적나라한 고통이 눈앞에 다가오면 그들의 안락함은 비루해지고 고통은 가볍게 보인다.
(/ p.282)

"넌 아직 열여덟 살이야. 선택할 수 있어. 이 세상에 소녀를 강간하며 즐거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모르는 척 살 수 있어. 강간당한 소녀가 있다는 걸 모르는 척 살 수 있어. 쓰치라는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모르는 척 살 수 있어. (......) 넌 이 모든 걸 다 글로 쓸 수 있어. 속죄를 위해서도 아니고 승화를 위해서도 아니고 정화를 위해서도 아니야. 비록 네가 열여덟 살밖에 안 됐고 어느 쪽이든 선택할 수 있지만, 만약 네가 영원히 분노한다면 그건 네가 너그럽지 못해서도 아니고, 선량하지 못해서도 아니고, 이해심이 없어서도 아니야. (......) 넌 선택할 수 있어. 사람들이 쉽게 내뱉는 동사들처럼 내려놓을 수도 있고, 뛰어넘을 수 있고, 벗어날 수도 있어. 하지만 넌 그걸 기억할 수도 있어. 네가 그걸 기억한다면, 그건 너그럽지 못해서가 아니야. 이 세상 그 누구도 그런 일을 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지."
(/ pp.319~320)

“고통스러웠지만 쓸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소녀를 강간하며 희희낙락하는 사람이 없는 척할 수 없었기 때문에. 쓰면서 두려웠다. 누군가 나의 책으로 이 사회에 살고 있는 팡쓰치를 소비해버릴까 봐, 그녀들이 더 상처입을까 봐.”
- 린이한
(/ 본문 중에서)

상처는 시간이 흐를수록 희미해지지만 린이한의 고통은 8년 동안 점점 더 깊어져 결국에는 그녀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 그녀는 결혼을 앞두고 매일 여덟 시간 넘게 집필에 매달려 이 소설을 완성했다. 결혼식 전날에도 한밤중에 화장실에 숨어서 원고를 썼다고 고백했다. 개인적인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언어로 사실을 전달하고자 했던 그녀의 노력이 오히려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아름다운 문장들의 행간에 꾹꾹 눌러 담긴 고통의 깊이를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
린이한은 세상을 떠났지만 팡쓰치의 비극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린이한을 대신해 팡쓰치들을 안아줄 차례다.
- 허유영
(/ 본문 중에서)

저자소개

린이한(林奕含)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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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타이난(臺南)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집안에서 성장했고, 2009년 대입자격고사에서 전국 수석을 차지하며 화제를 모았다. 타이베이 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지만 2주 만에 우울증이 악화되어 휴학했다. 세 번의 자살 시도 뒤에 2012년 대만정치대학 중문과에 다시 입학했지만 3년 후 또다시 우울증이 악화되어 휴학했다. 2017년 2월 스물여섯 살의 나이로 발표한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이 출간과 동시에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다시 한 번 화제를 모았지만 그로부터 두 달 뒤인 4월 27일 자신의 집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후 작가의 부모는 주인공 팡쓰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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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와 같은 학교 통번역대학원 한중과를 졸업했다. 현재는 전문 번역가로 활동한다. 지은 책으로 《쉽게 쓰는 나의 중국어 일기장》이 있고, 옮긴 책으로 《입까지 살아서 가는 생존 영어》, 《우리는 인간다운 죽음을 꿈꾼다》, 《평생 걱정 없이 사는 법》,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 《초조하지 않게 사는 법》, 《인생이 즐겁지 않다면 한산을 만나라》, 《다 지나간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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