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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 없이 당분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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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금 우리에게 따뜻한 위로와 뜨거운 격려가 되어줄 짧지만 힘찬 소설들!

절망의 시대인 동시에 희망의 시대인 지금, 세상을 향해 외로운 목소리를 내온 소설가들의 작품을 엮은 짧은 소설집 『이해 없이 당분간』. 김금희, 김덕희, 임현, 정용준, 조해진, 최정화 등의 신예 소설가들과 오수연, 한창훈, 이제하, 조해일 등의 중견·원로 소설가들의 작품이 고루 포함된 손바닥 소설집이다.

집회를 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또 각각의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놀랄 만큼 정확하게 그려낸 조해진의 《빛의 온도》,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마님의 이야기를 담은 백민석의 《눈과 귀》, 취업을 미끼로 청년들에게 사기를 치는 국가 권력의 모습을 그린 백가흠의 《취업을 시켜드립니다》 등의 작품을 통해 작가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어떤 언어로 그려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출판사 서평

[우리는 희망의 시대를 살고 있는가]
예술가들은 늘 절망과 희망의 틈바구니에서 새로운 작품을 창작해낸다. 절망의 시대이며 동시에 희망의 시대인 지금, 세상을 향해 외로운 목소리를 내온 소설가들의 짧은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이해 없이 당분간』은 김금희, 김덕희, 임현, 정용준, 조해진, 최정화 등의 신예 소설가들과 오수연, 한창훈, 이제하, 조해일 등의 중견·원로 소설가들의 작품이 고루 포함된 손바닥 소설집이다.

[오지 않는 미래, 미래를 찾아나선 작가들]
절망만으로 가득한 시절은 없었다. 동시에 희망이 함부로 호명되는 시대가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자 그것은 곧 신기루에 불과했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빛과 어둠의 이분법으로 정의내릴 수 없다. 그러나 종종 폭력을 무릅쓰고 정의내리려 한다. 광장을 밝히는 촛불과 그것을 둘러싼 거대한 어둠, 한쪽은 선이고 다른 쪽은 악이라고 정의내리는 것만큼 편리한 일은 없다. 촛불집회를 나가는 젊은 세대와 태극기 집회를 나가는 노인들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간극, 이해할 수 없는 시간의 단절, 그 모든 정의내릴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우리는 그것들의 실체가 과연 무엇이라고 말해야 하는가.

“나는 어느새 인파를 헤치며 빠른 속도로 걷고 있었다. 분명 보았다. 아버지를, 왕년의 군인을, 눈도 귀도 어두우면서 내 이름의 통장으로 삼십만 원을 입금하기 위해 지금도 매달 말일에 은행으로 외출을 나가는 그를……. ”
-조해진 「빛의 온도」부분

「빛의 온도」에서 조해진 소설가는 집회를 나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또 각각의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놀랄 만큼 정확하게 그려내고 있다. 또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듣는 마님(백민석, 「눈과 귀」), 섬마을 아이 동식이와의 대화를 통해 세태를 꼬집는 블랙리스트 작가(한창훈, 「동식이」), 각자의 이유로 따로 또 함께 울고 있는 버스기사와 승객(임현, 「이해 없이 당분간」), 그리고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투표권을 사고팔 수 있는’ 투표를 하는 아이러니한 상황(김덕희, 「배를 팔아먹는 나라」), 취업을 미끼로 청년들에게 사기를 치는 국가 권력의 모습(백가흠, 「취업을 시켜드립니다」), 지금 이곳에서 한 치도 나아질 것 같지 않은 일상의 모습(김금희,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헤어진 애인을 추억하며 현대인들이 가진 무관심과 신성함이 사라진 세계의 모습(손보미,「계시」),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자의 방황과 상실감(조수경, 「외선순환선」) 등을 통해 작가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어떤 언어로 그려내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지난 정권을 떠받친 보수의 시대착오적 인식을 신랄하게 짚은 신작 「달팽이가 올 때까지」를 집필한 이제하 소설가, 1971년 발표한 「통일절 소묘」를 이어 촛불의 기억을 간직한 세대를 주인공으로 삼은 2탄을 46년 만에 집필한 조해일 소설가의 작품은 지금의 상황이 지난 시절보다 더 희망적이라든가 절망적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있다. 다만 우리가 오랜 시간 기다려왔던 희망의 세상은 기다리고 또 기다리며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다.

하나뿐인 진실은 얼마나 쾌적하며 거기에 이끌리는 나를 막아내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지. 바로 그럴 때 여러 작가들의 짧은 소설을 한꺼번에 읽어보는 일은 도움이 된다. _신형철 평론가

삶은 지옥이다. 우리는 지옥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이 소설집을 읽으면 우리들은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삶은 희망이라는 것을 이 소설은 보여준다. _안현미 시인

예술가는 각기 다른 감각을 지닌 존재이다. 그러나 동시대를 살면서 때로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로 호응하여 발화하기도 한다. 여기에 실린 짧지만 힘찬 소설들이 절망에 빠진 분들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길, 희망을 향해 나아가는 분들에게 뜨거운 격려가 되길 바란다.
- 기획의 말 이시백(소설가) 김이구(문학평론가)

[책 속으로 추가]
수화기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별들처럼, 나는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지만 은하수처럼 쏟아지고 내가 전에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야 만다.
- 최정화 [포비아]

동식이는 대답을 안 했다. 가겠다는 것도, 안 가겠다는 것도 다 이상한 대답이 되니까. 아저씨는 더 이상 묻지 않고 걸어갔 다. 이틀 동안 날이 궂었는데 오늘은 파랗게 맑다. 이런 날 학교 를 안 간다는 것은 뭔가 더 잘못한 것 같기만 하다.
- 한창훈 [동식이]

목차

김금희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김남숙 교대
김덕희 배를 팔아먹는 나라
김연희 시그널
김종옥 사랑
박솔뫼 내 기억으로 나는
백가흠 취업을 시켜드립니다
백민석 눈과 귀
손보미 계시
송지현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
오수연 강변에서
이시백 민초(民草)
이연희 탕 속의 여인들
이제하 달팽이가 올 때까지
임 현 이해 없이 당분간
임승훈 2077년, 여름 방학, 첫사랑
정용준 다정한 유모
조수경 외선순환선
조해일 통일절 소묘2
조해진 빛의 온도
최정화 포비아
한창훈 동식이

본문중에서

김밥은 사지 못했지만 선미는 그렇게 일정 시간이 지나면 보도에서 사라져야 하는 노점이 어딘가 애틋하다고 생각했다. 나타났다 사라지는 신기루처럼, 펼쳐졌다 접히는 우산처럼.
- 김금희 [그의 에그머핀 2분의 1]

비에 젖은 들개 냄새나 날개가 부러진 새 냄새. 몸의 무기질을 제외한 모든 것들이 낡아 무너지는 냄새. 나는 그럴 때마다 여자의 스타킹 냄새를 다시금 떠올립니다. 여자는 그들과 달리 살아 있습니다. 여자의 냄새는 냄 새라기보다 어떤 소리에 가깝기도 합니다.
- 김남숙 [교대]

이미 수백 번이나 시스템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돌려봤다. 예측된 물결은 파고가 아무리 높아도 위협적이지 못했다. 시스템은 72시간 안에 저항 세력이 반토막 날 거라고 했다.
- 김덕희 [배를 팔아먹는 나라]

우주가 시그널이라고 했던가. 시그널. 우주는 시그널. 아름다운 시그널. 시그널이 아름다울까. 아름다운 시그널이란 무엇 일까.
- 김연희 [시그널]

그뿐이었다. 택시가 왔고, 그녀가 탔다. 잘 살아. 남편하고 열심히 돈 벌어서 빚도 다 갚고. 그녀는 웃으면서 그것을 다 갚으려면 남편이 백 명이거나, 자신이 한 백 번쯤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 김종옥 [사랑]

아무튼 가고 있고 하고 있고 잠깐 볼 수 있던 가는 사람들의 방향과 흐름을 나는 선명하게 기억하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또 그것을 내 기억으로 나는, 이라고 말하며 언젠가 말하고 있겠지.
- 박솔뫼 [내 기억으로 나는]

이런저런 걱정에 그는 뜬눈으로 아테네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이른 아침이 되자 어제 보았던 강렬한 햇빛은 여전했다. 그나마 그게 위안 삼을 수 있는 전부였다.
- 백가흠 [취업을 시켜드립니다]

마님은 조금은 어리둥절하고, 조금은 이 상황을 의심스러워하고, 조금은 화가 치밀고, 조금은 슬픔에 젖은 표정이었다. 마님은 감정선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말하자면, 정상이었다.
- 백민석 [눈과 귀]

시간이 더 지나면 그런 것 역시 까맣게 잊어버리게 되리라. 가끔 그는 그런 유혹을 느낄 때가 있었다. 자신이 죽었다 살아난 적이 있다고 믿고 싶다는. 하지만 그는 절대 그런 유 혹에는 빠지지 않았다.
- 손보미 [계시]

나는 의뢰인에게 이끼가 되는 것이 평생의 꿈이었던 남자 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요즘은 이끼가 되는 것이 전혀 인기 가 없는 시대인데도 고작 자신의 꿈이라는 이유로 이끼가 되어버렸다고,
- 송지현 [탐정과 오소리의 사건 일지]

묶인 커튼이 낙하산처럼 부풀었다. 건들대는 스탠드 옷걸이에서 옷가지들이 우수수 져서 서로 얽어매면서 마루 끝 까지 미끄러져갔다.
- 오수연 [강변에서]

여전히 개갈 안 나는 소리만 늘어놓고 있는 숙부를 바라보던 재범은 풀이 바람보다 더 빨리 눕는지는 몰라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는 말은 영 터무니없는 것이라고 입속으로 구시렁거려본다.
- 이시백 [민초(民草)]

직사각형의 작은 부엌이 달린 단칸방에서 할머니는 동그란 개다리소반에 바삭하게 구운 조기랑 기름을 발라 구워 윤기가 도는 김을 올려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이연희 [탕 속의 여인들]

그런 씨도 안 먹히는 궤변이 어디 있는가 하는 의혹 같은 것은 스스로 쪽팔려 이쪽에서 잠깐 스쳐 보낸 상념에 불과하다.
- 이제하 [달팽이가 올 때까지]

한번은 양치질을 하다가 욕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가만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슬픔이 치약처럼 부풀었다.
- 임현 [이해 없이 당분간]

아주 추운 날이었다. 폭설이 내리는 날이었다. 성훈에게 얻어맞은 민수는 눈더미 속으로 나가떨어졌고, 그 순간 성훈은 펑펑 울면서 그에게 달려들 어 키스를 퍼부었다.
- 임승훈 [2077년, 여름 방학, 첫사랑]

그레이스는 우아한 걸음으로 걸어 테라스에 놓인 연단 앞에 섰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흔들었어요. 축복의 단비를 내리듯 기쁨의 꽃가루를 뿌리듯 힘차게 힘차게 흔들었어요.
- 정용준 [다정한 유모]

가느다란 줄기를 이루며 흐르던 물이 곳곳에 웅덩이를 만듭니다. 이제, 이것이 꿈이라는 걸 알 것 같습니다. 현실만큼 지독한 악몽에 꿈인 줄 알면서도 나 는 몸을 떱니다.
- 조수경 [외선순환선]

통용되는 실물 화폐는 이제 없다. 단위와 지불 기능만 남아 있고 지불 수단은 주민카드이다. 주민카드는 주민의 신분, 자 산 정보를 포함한 각종 정보를 담고 있고 통신 수단, 지불 수단 노릇을 같이 한다.
- 조해일 [통일절 소묘2]

나는 어느새 인파를 헤치며 빠른 속도로 걷고 있었다. 분명 보았다. 아버지를, 왕년의 군인을, 눈도 귀도 어두우면서 내 이름의 통장으로 삼십만 원을 입금하기 위해 지금도 매달 말일에 은행으로 외출을 나가는 그를…….
- 조해진 [빛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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