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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완숙의 시집 『타키의 노래』. 이 시집은 임완숙의 시 작품을 엮은 책이다. 크게 4부로 나뉘어 있으며 책에 담긴 주옥같은 시편들을 통해 독자들을 시인의 시 세계로 안내한다.

우리가 영원히 쫓겨나지 않을 낙원이 있다면 그것은 그리움이란 낙원일 것이다. 그만큼 작가가 가진 그리움은 자유스럽고 얼마던지 소유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움은 사랑을 잉태한다. 사랑은 우리가 흔히 가질 수 있는 미지의 것에 대한 성스러운 그리움이 진전된 모습이다. (.....) 향안 시인은 ‘죄에 대한 싸움’보다는 철저하게 현실에 대한 권리를 부여하면서 고뇌하는 ‘깨달음에 대한 싸움’에 온갖 노력을 쏟아 붓고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생각이 인간 본래의 그리움에 대한 인식이 그녀의 시를 만드는 바탕이 되고 그 위에 일상의 평화와 平定心평정심이 기둥이 되는 인생관을 문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갖는다.

[책속으로 추가]

타키의 노래

1.
내 이름은 *타키
광활한 몽골의 魂혼
드넓은 초원을 달리는 바람

위대한 칸 징기스칸
전설 속의 지혜로운 푸른 이리
끓어오르는 뜨거운 피 붉은 구름 일으키며
질풍노도처럼 西서으로 西서으로 물밀어 갈 때

나는
그 발굽 아래 무릎 꿇는
공포의 대륙을 휘달리던
바람 속의 바람이었지.

몽골 대초원 위대한 푸른 이리의 땅
푸른 지평선 맞닿는 하늘엔 흰 구름 흘러가고
푸른 초원엔 구름 같은 소 떼와 양의 무리
한가로이 풀을 뜯는데

헤롤렌 江강가 징기스칸 山산 언덕에 서면
상기도 힘찬 진격의 함성소리 들리는 듯
서쪽 멀리 비양고비 초원 위로
황홀한 노을이 핏빛으로 붉게 타오르네.

2.
몽골 대초원 위대한 푸른 이리의 땅
태초의 푸른 평화가 깃든 침묵의 땅
주먹만한 별들이 쏟아지는 초원에서
나는

애끓는 馬頭琴마두금 소리에 애잔히 마음 열고
야생의 꽃들을 부드러운 콧김으로 어루만지는
대지의 精靈정령
이슬 젖은 꿈길을 밟고 馬乳酒마유주에 취해 잠든
몽골의 젊음 속으로 스며드네.

나는 솔롱고스(무지개)
꿈을 그리는 푸른 바람

자유와 평화의 깃발 펄럭이며
광막한 몽골의 초원을 지나
西서으로 西서으로 세계 만방으로
푸른 구름 일으키며 달리고 싶네.

내 이름은 타키(Takhi)
몽골의 야생마,
광활한 초원을 달리는 푸른 바람.

봄 꿈

아하, 누가 뿌린 씨앗일까
저리도 무섭게 터지는 그리움은.

솔새 쑥새 분주한 날갯짓에도
설렘으로 일어서는 함성
언 땅에 불을 지펴 아지랑이 피워내고

해묵은 살구나무 등걸에 점점이 맺히는
연분홍 눈물 구름처럼 휘감은 산하
굽이굽이 검은 핏줄 뻗친 번들대는 고속도로 위에는

짓이겨 배가 터진 오소리 한 마리
무참히 해체된 나약한 육신 흩어진 살점 으스러진 뼈
시뻘건 핏물 사이로 격렬히 펄럭이는 참담한 그리움

새끼를 위해 길을 나선 것일까
눈 먼 대지 위에 터지는 무서운 봄꿈
봄날의 찬란한 기지개 목 메이는 그리움 사무친다

나이아가라 폭포

은하수가 무너져 내린다.
물 폭탄이 터진다.
우르릉우르릉 하늘이 울고 땅이 흔들린다.

캐나다 국경지대
메리어트 호텔 23층 객실에서 바라보는
굉장한 물보라 눈이 현란하다.

오늘은 칠월 칠석 저 하얀 포말 부서지는
소용돌이치는 무서운 은하물 위에서
사랑의 보석 가슴에 품고 견우와 직녀는 만난다.

하얗게 부서지는 강 미리내 위로 무지개가 걸리고
멀리 태평양을 건넌 부모의 애틋한 마음
나이아가라 飛沫비말로 촉촉이 아들의 옷깃을 적신다.

바이칼 호수 겨울의 심장으로

나 어릴 때부터 한 꿈이 있었지
초승달 같은 시베리아의 파란 눈동자
내 먼먼 조상의 고향 바이칼 호수에 발 담그는 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이르츠쿠츠 역에서 내려
앙가라 江강가를 서성이다가 바이칼 호수의 심장 알
혼 섬으로 가리
신들의 本鄕본향 바이칼을 닮은 작은 초승달 알혼이여.
적송나무 참나무 울창한 그곳 하얀 피부의 자작나무
숲을 지나
눈처럼 순결한 영혼 알혼 섬으로 가면

핏빛 붉은 이끼 옷을 입고 호수기슭에 우뚝 서 있는
신성한 브르칸 바위 그 샤먼바위 아래
위대한 징기스칸 신령한 샤먼들 잠들어 해 솟는 동쪽
나라를 그리나니
일만 삼천 년 전 우리의 조상이 그러했듯
白夜백야의 황홀한 석양 撞木당목에 오방색 천 자아라
를 묶으며
나 춤추고 노래하며 자비의 기도를 바치리.

양 떼와 말들이 한가로이 풀 뜯는 초원을 달려
오색의 보석 흩뿌려놓은 찬란한 들꽃과 숲과 호수
호보이 곶에 이르면 해 진다 해 뜬다 숨 막히는 전율
모두 되돌려 내 영혼 깊숙이 우주의 차크라를 열고
자작나무 숲을 건너오는 청정한 바람으로 속진 씻으며
오래도록 깊은 ?禱묵도로 환희의 계단을 오르리.

나 어릴 때부터 한 꿈이 있었지
먼먼 조상들의 고향 시베리아의 진주 바이칼 호수
그 순백의 영혼 겨울의 심장으로 가는 꿈
그 한 꿈을 꾼 지 육십 년 내 이제사 바이칼에 왔네.
주먹만한 별들이 파랗게 쏟아지는 태초의 신비
오! 바이칼! 샘솟는 생명의 호수에 발을 담그네.

생일 아침에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미역국 앞에 놓고 울컥 목이 멘다.

어머니
밤새도록 모진 산고 끝에 날 낳으시고
어머니가 잡수셨던 이 미역국 한 그릇
떨리는 손으로 첫 국물을 뜨셨을 때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하셨을까

문풍지를 울리는 섣달의 매서운 추위 속에서
갓 난 핏덩이 옆에 뉘어놓고
따뜻한 한 숟갈의 국물로 단내 나는
마른 입술 축이며 창백한 얼굴에 웃음 되찾았으리.

무심한 세월 어머니 먼 길 떠나신 지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건만
생일 아침에 미역국 앞에 놓고 어머니,
어머니 사무치는 그리움 눈물로 흐른다.

서문 _ 5

제1부 굿바이 사이공
정월 초이튿날 아침의 산비둘기 소리 15
지렁이 16
정암사 18
청개구리 20
鳶연 22
그래도 봄은 온다 24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없다 25
長城장성의 낙타 26
벌 나비도 잉잉대며 29
잃어버린 장갑 한 짝 30
오! 낙산사! 32
꽃들은 아름답다 36
植物人間식물인간 38
굿바이 사이공 40
봄 비 46
가을 나들이 50
법장스님 가시는 길에 54
雨水우수에는 60

제2부 길에서 길을 묻네
개구리 소리 63
가을이 깊어지면 66
눈 내리는 풍경 67
까치집 68
라이카에게 바치는 노래 71
바로 당신 74
길이 끊어진 자리 75
봄 꿈 76
나무 77
그대에게 가는 길 78
초록 뱀 80
고추잠자리 81
하동 포구에 서면 82
호랑가시나무 84
기억의 빗장을 열고 85
꽃그늘 아래 부는 바람 88
겨울 숲 90
길에서 길을 묻네 91

제3부 타키의 노래
사과밭에서 97
가을 한 점 98
여름날의 트럼펫 소리 100
고추밭을 지나며 103
文身문신 104
가을 속을 걷다 106
자귀나무에 분홍 꽃 피면 108
업둥이 110
안개 속을 걷다 112
바이칼 호수 겨울의 심장으로 114
나이아가라 폭포 116
강동 팔십 리 나무그늘 아래 117
초파일 무렵 120
타키의 노래 121
선운사 극락교 앞 작은 돌판에는 124
알락그물나비 127
오래된 사랑 128
老婆心 斷想노파심 단상 130

제4부 생일 아침에
午睡오수 135
똥이다! 똥! 136
그 나이가 되어보기 전에는 138
가을나무 140
천리포 수목원 142
火焰山화염산 144
鳴沙山 月牙泉명사산 월아천 145
톨스토이 무덤에서 146
생일 아침에 147
빅토르 최 추모의 벽 148
낙산사 150
늑대거미 152
해오라기 154
어떤 봄날 155
둔황석굴 156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158
찰나의 화두 159
제주를 그리다 160

평설 / 깨달음의 詩學과 이야기 시 / 성기조 _ 162

[머리말]

은혜를 새기는 일

내 서재에는 ‘十分春色십분춘색’, ‘有報國文章유보국문장’ 이라는 두 점의 오래 된 서예작품이 걸려 있다. 내가 철없던 시절, 스승께서 내게 내려주신 말씀이다.
미음은 언제나 넉넉한 봄빛을 품고, 글로써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사람이 되라는 큰 축복과 가르침을 주셨음을 뒤늦게 깨닫고는 얼마나 가슴이 먹먹했는지 모른다. 천지 분간 못하고 아둔하기만 한 제자에게 ‘有報國文章’이라는 아름다운 길을 열어 보이신 스승님. 그 크나큰 은혜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시의 숲은 멀고도 아득하여 나는 아직도 매사에 서툴고 미망 속을 헤매고 있는 천둥벌거숭이이다. 그러나 시를 쓰는 일이야말로 천지에 가득한 은혜를 가슴에 새기는 일이기에 게으름 피우지 않고 열심히 쓰려고 한다. 내 삶의 투박한 노래가 어디선가 상처 난 가슴을 치유할 수 있는 향기가 되기를, 싸움이 있는 곳에서는 평화가 되고, 배고픈 이에게는 밥이 될 수 있고, 슬픔이 있는 곳에서는 기쁨이 되고, 미움이 있는 곳에서는 사랑과 웃음으로 피어나기를 소망하면서 열심히 쓰려고 한다.

그동안 발표한 시들을 묶어 세 번째 시집 [타키의 노래]를 상재한다. 2004년부터 2013년 초까지의 묵은 작품들을 정리한 것이다. 시집이 나오기까지 애써주신 주위의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늘 나를 지지해 주고 용기와 희망을 북돋아주는 문우들과 사랑하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 나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그리운 얼굴들을 하나하나 떠올리며 감사드린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함께 가는 도반들과 나를 키워주신 스승님들과 저 세상에 계신 부모님... 책을 엮어주신 ≪문예운동≫과 한국문화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특히 금쪽같은 시간을 공들여 정성스럽게 평설을 써주신 청하 성기조 선생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끝으로 표지를 멋지게 그려준 사랑하는 막내딸 이동연 작가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