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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원 시집『기수역』. 이 시집은 제 1부 'ㄱ ㄴ ' 제2부 'ㄷ ㄹ ㅁ'의 순으로 5부까지 구성되어 있다. '겨울 일경', '라면이 끓고 있다', '운석을 보다', '저렇게 작은 별이', '함지에 대한 기억' 등 주옥같은 시편을 수록하였다.

생은 휘어진 등에 얹혀있고 죽음과 비등해지는 현실에서 인간의 향기를 잃어버리면 살 붙은 사랑이 무슨 소용인가, 영혼이 바람인지 가늠 없는 죽음의 강을 건너 살아 있다면 거기는 전생이 밀려오는 땅이다.
별에게 흔들리며 접신하는 꿈 마음 조였던 그리움을 건져내어 멀미하는 세상으로 던져보았지만 부딪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는 신을 부정하지 않겟다. 행성을 밟고 내려다보는 유혹, 절대로 뿌리칠 수 없을 테니까. 가슴에 돌덩이 하나 간직하고도 떠도는 슬픔을 이음하는 세상 숱한 허물을 벗는 인연에서 숨 끊어지는 현기증을 앓았다.

제1부 ㄱ ㄴ
가래톳
노을
겨울 일경
낙화
게으른 도시
공회전
고독한 여행
꽃 버짐
겨울 창이 깨지면
기수역
그림자
꽁지를 치켜세우고
고인돌의 별
나그네
꿈을 던지다
날개는 바람을 원했다
낙엽
나이테
경제민주화
고향 장터
끝나지 않은 전투
나비 날다
나는 늙었다
그대 꽃나무
나이
그대


제2부 ㄷ ㄹ ㅁ
닻
되새김
막장 인생
무임승차
달무리
돌기
무서리
미려에 이르러
라면이 끓고 있다
달거리
무의식
돌탑
물을 원했지만
무정란
달빛에 숨어
담쟁이 추억
닫힌 문
무심한 시간
단풍
덕장의 계절
다물 수 없는 입술
모닥불
멀미하는 현실
땅을 파며
단풍들 때
무덤


제3부 ㅂ ㅅ
빨랫줄 끊어지다
소금 꽃
분재
소문
산통 깨지다
빛이 나른한 창
신경질
바람과 여자
상처의 시간
바느질
빈집에서
불티
쓸모없는 소망
비의 찻집
별빛 인연
생리통
빈 둥지
사막의 국경
쓸쓸한 족보
성운을 보며
봄빛 향기
수레바퀴
성형수술
붉은 파리
벽돌담
별 같은 사랑


제4부 ㅇ ㅈ
찔레꽃 피면 1
찔레꽃 피면 2
찔레꽃 피면 3
입질
장마
은하수
움집
운석을 보다
재회
외지인
저수지
인간 가면
이슬
유리 심장
여음
어두운 굴뚝
잡초
인간의 슬픔
우물에 잠긴 별
아궁이
아직도 꿈속인가
일출
여인의 화장
종소리
윤회
저렇게 작은 별이


제5부 ㅊ ㅋ ㅌ ㅍ ㅎ
창 없는 집
함지에 대한 기억
코다리
화독내
태양의 아침
해방지역
추억의 문
피안으로
해를 보는 낮달
하현달
한숨
파도 소리
키위 새
한 방울
폐인
최면의 시간
천년여우
호랑나비
흰 영산홍
홑이불 덮고
탈모증
해빙기
피곤한 인연
폐경
평행선
철없이 피는 꽃

?후기 이 시대의 서정을 찾아

1부 ㄱ ㄴ어둠에서 별을 후비던 기억이

가래톳
지친 시간에 붙은 기억이
슬픔을 끌고 올 줄 몰랐다
서로 맞물린 톱니 인생에서
여유 잃은 다리로 걸어가면
견디기 어려운 그리움이 곱아
절룩거린 발자국의 흔적
아직 여물지 않은 사타구니에
속살 멍울 가래톳이 돋아났다
더듬거리며 길 찾는 어둔 세상
무수히 눈뜬 전생의 별들이
오그라든 가슴 소리 없이 열고
고동치는 꿈을 눈부시게 내려도
행적이 흉터로 박히는 일상은
사지가 끊어지는 아픔이었다.
접질린 영혼의 굽은 길에서
이 빠진 바퀴로 굴러가는 마음
기다림을 잇는 등불은 꺼지고
자꾸만 걸음이 늘어졌다
노을
베인 상처가 녹스는 시간
피 흘린 영혼은 어디 갔을까
새가슴 같은 속을 끓이다
산골짜기에 기약 없이 묻히는
구슬픈 상엿소리 따라갔을까
핏물 가득히 머금고 있는
다시는 동여맬 수 없는 슬픔이
짧은 하루의 휴식으로 기울면
노을은 온통 불륜의 향연이었다.
태양을 집어삼킨 침묵 속에는
그림자 하염없이 늘어트리고
꽃잎을 아련히 밀고 가는 황혼
헐렁한 몸으로 서 있는 장승이
목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대며
고목에 잠든 사랑 깨웠다
가슴 적시는 눈물로 바라보면
인생은 기다림으로 스러지고
이미 눈앞은 피범벅이었다.
겨울 일경
아무것도 날지 않았으니
바람이 잠들었나 보다
대지에 흰 눈 쌓이는 계절
누군가 사랑 앓는 신음을 보내왔다
헝겊에 싸매져있던 겨울 이야기
문턱 없는 집으로 들어가고
이불 속에서 마른 풀씨로 흩어지며
(너는 겨울잠도 안 자는 거니)
겨울밤은 견딜 수 없는 가려움 되었다
밤새 온기를 가로막고 있는 창은
밖을 내다볼 수 없는 마음
곁에 있는 슬픔에게 웃음을 던지고
그리움 분주하게 불러들이는
그곳은 이 세상 어디쯤이나 될까
성에가 까치집같이 눌어붙었다
꿈의 흔적 하얗게 지운 벌판으로
득달같이 달려오는 아침 햇살
눈먼 풍경을 가슴에 묻었다
낙화
핏물 마르는 낙엽의 계절
떨어진다는 건 슬픈 일이었다.
태양이 수평선 너머에서
소망하는 하루의 닻을 올려도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울음은
소리 없는 낙화였다
마음의 가시나무 거친 숲
한해살이 뱀 허물은 나풀거리고
별들이 지새우는 인생의 울타리
어깨가 비좁은 골목에서는
영혼을 짊어지고 걸어야 했다
피 흘린 상처의 아픔을 잊고
외로운 몸 하염없이 긁어대며
밀려온 파도에서 붉어진 낙조
다시는 헤어 나올 수 없을
꽃잎은 무엇을 닮으려 했는지
몰골사나운 고깃배에 실려
오랫동안 그대 곁을 떠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