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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의 시 [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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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오늘 밤, 모든 사람들은 소설 속 주인공이 된다!

현대 이스라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아모스 오즈의 소설『삶과 죽음의 시』. 유명한 남성 소설가인 '저자'가 자신의 신작 낭독회가 열리는 텔아비브에서 보낸 여덟 시간을 그리고 있다. 어느 무더운 여름 저녁, 40대의 유명한 소설가인 '저자'는 자신의 신작을 소개하는 행사에 도착한다. 낭독회 전에 들른 카페에서, 그리고 낭독회가 진행되는 와중에도 '저자'는 청중들을 날카롭게 포착하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삼아 온갖 이야기들을 지어낸다. 행사가 끝난 뒤 밤거리를 홀로 배회하던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읽던 여성 낭독자의 아파트에 가기 위해 좁은 계단을 오르는데….

출판사 서평

아이러니와 연민을 담아 소설가의 삶의 이면들을 폭로한다.
책을 덮을 즈음, 오즈를 그토록 유명하게 만들어 준 솜씨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 예루살렘 포스트


현대 이스라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아모스 오즈의 신작 『삶과 죽음의 시』가 열린책들에서 출간되었다. 오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힘써 온 행동하는 지식인이자 지난 10여 년간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세기의 이야기꾼으로, 그의 작품은 30여 개 언어로 번역돼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1965년 소설집 『자칼의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나의 미카엘』(1968), 『물결을 스치며 바람을 스치며』(1973), 『첫사랑의 이름』(1978), 『블랙박스』(1987), 『여자를 안다는 것』(1989),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2002) 등 섬세한 필치로 인간의 본성을 꿰뚫는 소설과 정치적인 에세이를 꾸준히 발표하며, 평단과 독자의 뜨거운 찬사를 받아 왔다. 이스라엘 문학상, 페미나상, 런던 윙게이트상,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괴테 문학상 등 화려한 문학상 수상 이력 외에도, 반전 단체 〈즉시 평화〉를 이끌며 중동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독일 프랑크푸르트 평화상과 프랑스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바 있다.
2007년 작 『삶과 죽음의 시』는 열린책들이 소개하는 아모스 오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 유명한 남성 소설가인 익명의 〈저자〉가 자신의 신작 낭독회가 열리는 텔아비브에서 보낸 여덟 시간을 쫓는다. 〈저자〉는 카페와 문화회관에서 마주치는 낯선 사람들을 포착해 그들의 삶에 대한 유쾌하고도 음험한 상상을 거듭하며 삶과 죽음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인다. 상상과 현실이 혼란스러우면서도 매혹적으로 뒤엉킨 이 작품에서 독자는 현실과 픽션, 독자와 작가, 삶과 죽음, 무엇보다도 글쓰기 자체에 대한 세계적인 거장의 사색을 엿볼 수 있다.

오늘 밤, 그의 눈에 띄는 사람은 모두 소설 속 주인공이 된다

어느 무더운 여름 저녁, 텔아비브. 40대 남성인 〈저자〉는 자신의 신작을 소개하는 문학의 밤 행사에 조금 일찍 도착하고, 자신에게 쏟아질 질문들을 지긋지긋해하며 카페로 들어선다. 그는 자리를 잡자마자 조금은 지친 안색의 매력적인 웨이트리스를 발견하고는, 그녀의 생김새와 옷매무새(치마 너머로 드러나는 팬티 선과 양쪽 엉덩이의 비대칭)며 행동거지를 샅샅이 훑어본 다음, 〈리키〉라는 이름을 붙이고 축구 선수 찰리와의 가슴 아픈 첫사랑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지어 낸다. 이어 옆 테이블에 앉은, 판이한 용모의 두 사내가 성공에 대해 나누는 대화를 엿듣고는 그들의 이름과 직업과 관계를 상상한다. 행사가 시작되고 연단에 올라서도 저자의 시선은 강연 중인 문학 평론가, 진행자인 문화국장, 각양각색의 청중들을 향해 있고, 그는 각각에게 어울리는 이름, 가족, 남다른 기벽(이를테면 우표 뒷면을 게걸스레 핥는 버릇이나 공원의 도둑고양이들에게 먹이를 주는 일과) 등을 부여한다. 이처럼 저자는 호기심을 넘어 관음증을 방불케 하는 집요한 관찰과 거침없는 상상으로 방금 만났을 뿐인 타인들의 전 생애를 아우르고 더 나아가 그 인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려 시도한다. 상상은 상상이면서 곧 인간에 대한 탐구이며, 픽션과 현실은 등장인물들 속에서 구분할 수 없이 하나로 녹아든다. 그렇게 얻어진 등장인물들의 스케치는 축축한 어둠과 저자의 씁쓸한 회오가 주조를 이루는 이 작품 곳곳에서 번뜩이며 범상치 않은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랫동안 마음에 남을 탁월한 스케치를 꼽는다면, 서서히 진면모를 드러내는〈저자〉의 모습일 것이다. 검은 보자기 속에 머리를 묻은 채 모든 인물을 입맛대로 배치한 다음 일제히 책 속의 유령으로 만드는, 만질 수도 만져질 수도 없는 아웃사이더, 저자.

무더운 여름밤, 하나의 운율로 녹아드는 상상과 현실, 삶과 죽음, 저자와 독자

언제 보아도 그들은 나란하다.
신부 없이는 신랑도 없으리니.


이제는 잊힌 이류 시인 체파니아 베이트할라크미는 그의 책 『삶과 죽음의 시』에서 위와 같이 노래했다. 사회자는 낭독회에 지각한 저자와 그를 기다리는 독자에 빗대 이 시를 인용하는데, 그 뒤로 저자는 거듭 이 시구의 의미를 곱씹는다. 오즈의 『삶과 죽음의 시』에는 저자와 독자는 물론, 허구와 현실, 삶과 죽음, 행복과 환멸 등 언제나 나란히 존재하며 대립 쌍을 이루는 주제와 이미지가 여럿 포진해 있다. 오즈는 대립하는 둘을 거칠고도 리드미컬한 운율 속에 이중주로 엮어 낸다. 한 매트리스에 함께 누워 잠을 청하는 병든 어머니와 실직자 아들, 좁다란 침대에서 몸을 섞고 아침이 오기 전에 헤어지는 저자와 독자, 죽어 가는 말기 암 환자의 몸을 애무하는 젊은 여자들의 손…….
매력적이지 않은 여성 낭독자와 만족스럽지 않은 섹스를 나눈 뒤 다시금 홀로 밤거리에 나선 저자는 베이트할라크미가 틀렸다고 말한다. 신랑과 신부는 함께가 아니라고. 저자는 언제나 혼자라고.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오즈가 작품 속 등장인물인 저자에 동의하는지는 의문이다. 작가 지망생 소년 유발 도탄/다한은 저자와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저자는 소년에게 답장을 보내며, 스스로가 잊혔다고 믿고 낙심했던 베이트할라크미는 어느 젊은 소설가의 책에 자신의 시가 실린 것을 발견하고 기뻐한다. 그들은 모두 응답받았다. 단 글로써. 독자와 저자는 지상(地上)에서는 불가능했던 행복한 만남을 지면(紙面)에서 이룬다.
또한 이 책의 말미는 그 어떤 저자도 처음에는 독자였음을 상기시킨다. 한때는 대중의 사랑을 받았으나 이제는 기억에서 지워진, 더는 글을 쓰지도 출판하지도 않는 베이트할라크미는 이제 순전한 독자의 자리로 돌아가 종일 요양원 발코니에서 독서의 지복을 누린다. 백발의 전직 시인은 누군가의 책에 실린 자신의 옛 시를 보며, 문집에서 자신의 작문 숙제를 발견한 어린아이처럼 해맑게 기뻐한다.

작가 인터뷰

- 2010년 부다페스트 도서전의 주빈 작가로 초대된 아모스 오즈와의 인터뷰 중에서
2010년 5월 11일

정치적인 활동과 문학적인 활동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당신은 단지 글이나 사상, 문학을 통해서뿐만 아니라, 무기를 들고도 평화를 위해 싸웠다.

나는 결코 나의 문학을 정치 투쟁의 도구로 만들지 않았다. 사실 나는 매우 선명하게 선을 긋는다. 나는 정치적인 이슈에 대해 쓰고 싶을 때는 에세이나 기사를 쓴다. 정부를 향해 꺼지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기사에 〈친애하는 정부 관계자 여러분, 꺼지시오〉라고 쓴다. 그들도 내 기사를 읽겠지만 어찌 된 건지 꺼지지는 않는다.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똑같은 기사를 쓰고 또 쓴다. 이야기(a story)를 쓰고 싶을 때는 호기심과 연민, 열정, 유머, 인간 본성에 대한 매혹을 품고 쓴다.

당신의 책 『삶과 죽음의 시』의 주인공이 기자들의 지겨운 질문에 몹시 짜증스러워하는 의뭉스럽고 무례하기까지 한 작가라는 점이 아주 흥미로웠다. 그는 인터뷰를 하거나 자신의 독자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당신은 정말로 격식을 차리지 않는 편안한 저자이고, 여기 도서전에 참석한 누구든 당신한테 다가와 궁금한 것을 물을 수 있다. 왜 책에서 저자를 그처럼 묘사했는가?

전적으로 내 상상의 소산인 내 책의 등장인물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아 준 점에 대해 우선 감사드린다. 그것은 내 자화상이 아니다. 그 작가는 나보다 훨씬 경직돼 있고 속을 숨기는 인물이다. 나는 그의 호기심과 상상력이 그로 하여금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도록 추동하는 방식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는 카페에 자리를 잡고, 오믈렛과 커피를 시키고, 카페 여종업원을 보고 즉석에서 그녀의 인생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그런 다음 그는 행사에 참석하는데 교수가 그의 작품에 대해 청중에게 강의하는 동안에도 그는 청중을 관찰하고 온갖 얘기를 지어 낸다. 그는 호기심으로 충만한 인물이다. 내가 보기에, 호기심은 도덕적인 덕목이며, 호기심이 많은 사람은 호기심을 품지 않는 인간보다 나은 사람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으로 글을 쓰지는 않는다. 그건 오히려 내가 기차역이나 공항, 병원의 대기실에서 낯선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있을 때 생각하는 방식에 가깝다. 나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관찰하고, 그들의 몸짓 언어와 옷차림을 눈여겨보고, 그들 사이에 오가는 대화를 토막토막 엿듣고, 그들의 삶을 상상한다. 시간을 보내기에 더 없이 훌륭한 방법이다. 나는 모두에게 다른 사람의 삶을 상상해 볼 것을 권한다. 왜냐하면 상상력의 도움을 받아야 우리는 자신을 자아라는 감옥에서 해방시켜 인간 본성이라는 보다 넓은 개념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랜 세월 가족에 대해, 불행한 가족에 대해 써 왔고, 그것은 나의 주된 주제였다. 내 모든 작품이 무엇에 대한 것인지 딱 한 단어로 답하라고 한다면, 나는 〈가족〉이라고 대답하겠다. 두 단어로 답하라면 〈불행한 가족〉이라고 답하겠다. 세 단어로 대답하라면 차라리 내 작품을 직접 읽으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작가들에게 글쓰기는 비록 거부할 수는 없지만 고통스럽고 고되고 행복하지 않은 일 혹은 영혼의 깊은 곳에서 비롯되는 충동이다. 당신은 글을 매일 쓴다고 했다. 당신에게 글쓰기 힘든 때가 있다면 언제인가?

나에게, 글쓰기에 대한 욕구는 꿈에 대한 욕구와 비슷하다. 나는 꿈을 꿀지 말지 선택할 수 없다. 나는 매일 밤 꿈을 꾸고 매일 글을 쓴다. 글쓰기의 원천은 아마도 꿈의 원천과 같을 것이다.

해외 언론 리뷰

아이러니와 연민을 담아 소설가의 삶의 이면들을 폭로한다. 책을 덮을 즈음, 오즈를 그토록 유명하게 만들어 준 솜씨의 본질을 이해하게 된다. - 예루살렘 포스트

작가들에게 등장인물의 성격을 구축하는 법을 알려 주는 유용한 지침이자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농익은 픽션. - 인디펜던트

글쓰기, 문학과 삶의 관계, 삶과 죽음의 관계, 문학적 명성의 본질과 의미에 대한 명상록. - 스코츠먼

이 책은 우리에게 〈왜 읽는가?〉, 〈왜 읽은 것을 믿는가?〉, 〈과연 현실과 상상 사이에 경계를 긋는 것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문학에서 가장 근본적인 질문 가운데 하나인 〈픽션이란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문제로 인도한다. - 스펙테이터

40대의 유명한 문인인 익명의 〈저자〉가 자신의 신작 낭독회에 참석하기 위해 텔아비브에 도착한다. 그는 시간을 보내기 위해 들른 카페에서 사람들을 관찰하며 상상의 이름을 붙이고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지어내기 시작한다. 드디어 행사가 시작되고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 〈유명해지니 어떠한가?〉 등 의무적으로 답해야 하는 공허한 질문들이 쏟아지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와중에도, 그는 청중을 주인공 삼아 온갖 이야기를 풀어 간다. 낭독회 앞자리에 다리를 벌리고 앉은, 외모에 관심을 끊은 듯한 뚱뚱한 여자와 뒤쪽에서 저자를 응시하는 고뇌에 가득 찬 문학 소년의 밀회를 상상한다. 또 비루한 인상의 사내를 발견하고는 하반신이 마비된 어머니를 간호하고 똥오줌을 받으며 한 침대에서 생활하는 하급 당원의 삶을 그린다. 낭독회가 끝난 뒤, 저자는 자신의 작품을 지나치게 감상적으로 읽던 동경에 가득 찬 여성 낭독자 로셸 레즈닉의 아파트에 가기 위해 좁은 계단을 오르는데……. 밤이 깊어질수록 인물들 각각의 이야기는 얽히고설키며, 저자 역시 자신이 지어낸 이야기 속에 녹아들면서,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차츰 모호해진다. 그녀의 집에서 나온 저자는 거리를 배회하고, 담배를 피우고, 이야기를 지어내고, 후회하고, 생각을 거듭하면서 남은 밤을 보낸다. 동이 틀 무렵 그는 우연히, 신문 부고에서 한때는 유명했지만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삶과 죽음의 시』의 시인 베이트할라크미의 죽음을 알게 된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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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중에서

다음은 가장 흔히들 묻는 질문이다.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 왜 그런 글을 쓰는가? 독자들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노력하는가? 노력한다면, 어떤 방법으로? 당신의 책들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당신은 끊임없이 지우고 수정하는가, 아니면 생각나는 대로 단번에 써 내려가는가?
[……]
영리한 대답이 있고 둘러대는 대답이 있다. 간단하고 솔직한 대답은 없다.
그래서 저자는 문학의 밤이 열릴 슈니아쇼르 문화회관에서 서너 블록 떨어진 작은 카페에 자리를 잡으려 한다. 카페 내부는 무기력하고 우중충하고 숨이 막힐 듯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그편이 그에게 잘 어울린다. (그는 어떤 모임이든 30~40분 전에 도착하고, 그래서 뭔가 할 일을 찾아내 그 시간을 때워야 한다.) 지친 웨이트리스가 짧은 치마에 봉긋한 가슴을 하고 다가와 행주로 그가 앉은 식탁을 슬쩍슬쩍 문지른다. 하지만 다 닦은 뒤에도 포마이카는 여전히 끈적거린다. 아마도 행주가 깨끗하지 않아서?
그러는 사이 저자는 그녀의 다리를 훑어본다. 발목이 약간 두꺼운 편이지만 맵시 있고 매력적인 다리다. 다음으로 그녀의 얼굴을 훔쳐본다. 양 눈썹이 미간에서 만나고 머리는 말끔히 넘겨 빨간 고무 밴드로 묶은, 상냥하고 밝은 얼굴이다. 저자는 땀과 비누 냄새, 지친 여자의 냄새를 감지한다. 치마 너머로 속옷의 윤곽이 드러난다. 그의 눈은 어렴풋이 식별 가능한 그 형태에 고정된다. 왼쪽 궁둥이가 약간 도드라져 올라간 경미한 비대칭이 그를 흥분시킨다. 그녀는 자신의 다리, 엉덩이, 허리를 더듬는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고, 역겨움과 애원이 뒤섞인 표정을 지어 보인다. 제발, 날 그냥 내버려 둬요. pp.5~8

열병에 사로잡힌 우리의 저자는 악마의 유혹에 못 이겨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본다. 물론, 잠겨 있다.
그렇다면 너의 수줍은 낭독자는 어쩌고 있을까?
그녀는 오래전에 잠자리에 들었다. 너처럼 혼란에 빠진 나방을 유인하려고 야간 등을 켜놓고서.
그러나 또 다른 가능성이 있다. 그가 조용히 문손잡이를 돌리는 사이 아파트 안에서 소리가 난다. 즉시 그는 생각을 고쳐먹고 달아나지만, 너무 긴장한 탓에 계단의 전등도 켜지 않고 한 번에 두 계단씩 뛰어 내려가다 마지막 모퉁이에서 발을 헛디디고는 계량기 함에 어깨를 세게 부딪치고, 그 바람에 경첩 하나에 기적적으로 매달려 있던 계량기 함 문짝이 떨어져 나가 난간에 부딪혀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고, 아마 〈야니브 슐로스베르그의 집〉이라고 적힌 아파트일 텐데, 그 집 문이 열리고 남자가 묻는다. 실례지만, 이 야심한 밤에 누굴 찾아왔는지 물어봐도 되겠소?
그가 그를 알아볼까? 신문에 실린 사진들이나 텔레비전의 인터뷰 프로그램을 기억하고? 그런데 그는 뭐라고 둘러댈 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전 하이드라고 합니다만, 급하게 지킬 박사를 호출해도 되겠습니까? pp. 96~97

네가 없이도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 왜 글을 쓰는가? 왜 말이 아닌 것들을 말로 묘사하는가?
게다가 너의 이야기들은, 목적이 있다면, 어떤 목적에 봉사하는가? 누구에게 이익이 되는가? 이런 질문을 하자니 미안하지만, 좌절에 빠진 웨이트리스, 고양이와 사는 외로운 낭독자, 몇 년 전 파도의 여왕 선발 대회에서 입상한 여자를 등장시켜 온갖 종류의 닳아빠진 섹스 장면을 보여 주는 초라한 환상을 누가 필요로 하는가? 저자가 여기서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부디 너 자신의 언어로 간략히 설명해 주기를 바란다.
그는 부끄러움과 혼란에 휩싸인다. 그는 그들 모두를 저 멀리 무대 끄트머리에서, 그들이 단지 자신의 책에 써먹기 위해 존재하는 대상인 양 관찰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진사의 낡고 검은 보자기 속에 영원히 머리를 파묻은 채 만지거나 만져질 수 없는 아웃사이더라는 깊은 슬픔이 부끄러움과 함께 밀려온다.
존재하는 것들에 관해 글을 쓰는 것, 색이나 냄새나 소리를 말로 포착하려는 것은 슈베르트의 곡을, 슈베르트가 앉아 있고 어둠 속에서 킬킬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올지 모를 강당에서 슈베르트의 곡을 연주하는 것과 다소 비슷하다. pp. 128~130

저자소개

아모스 오즈(아모스 클라우스너) [저] 신작알림 SMS신청 작가DB보기
생년월일 19390504

본명은 아모스 클라우스너. 1939년 예루살렘에서 태어났다. 열다섯 살 때 시온주의자인 아버지에게 반항하여 키부츠로 들어가 히브리대학에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25년간 키부츠 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으며 글쓰기와 농사일을 병행했다. 1965년 첫 소설집 <자칼의 울음소리>를 시작으로, 이후 발표하는 작품마다 문단과 대중의 찬사를 한 몸에 받으며 현대 히브리 문학의 거장으로 떠올랐다. 또한 작품과 실생활을 넘나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으며, 반전 단체 '즉시 평화'를 이끌고 있다. 페미나상,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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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62

1962년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했고 서울예대에서 문예 창작을 공부했으며 현재 전문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스티븐 핑커의 '언어본능', '빈 서판',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매트 리들리의 '매트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 대니얼 데닛의 '주문을 깨다', 커트 보네거트의 '마더 나이트'와 '나라 없는 사람',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기', '카이사르의 내전기', 세러 브래드퍼드의 '체사레 보르자' 등이 있다. 제45회 한국백상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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