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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와 2분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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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9가지 시선으로 그려낸 이혼!

'이혼'에 대한 여류 소설가 9인의 작품을 모은 소설집『2와 2분의 1』. 차현숙, 정지아, 정길연, 박정요, 권지예, 은미희, 배수아, 서하진, 이청해 등 우리 시대의 여류 소설가들이 서로 다른 목소리로 이혼을 이야기한다.

작가들은 이 시대에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기도 하고, 한 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토로하기도 하고, 이혼 뒤에 남는 현실을 짚어보기도 한다. 또한 젊은 이혼의 단상을 이야기하거나, 일탈을 시도하는 중년의 모습을 보여주는 등 때론 가슴 먹먹하고, 때론 속 시원한 그녀들의 반란을 그리고 있다.

표제작인 차현숙의 <2와 2분의 1>은 지식인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남편의 위선과 독선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아내의 반란을 보여준다. 정지아의 <양갱>은 남편의 외도를 용서할 수 없어 이혼을 했지만 여전히 남편을 잊지 못하는 한 여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밖에도 이혼의 다양한 모습과 풍경들을 그려낸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출판사 서평

“뭘 원해?”
“이혼. 그리고 내가 왜 이혼하는지를 생각해 보기를 바라요.”
“그건 안 돼. 우리에겐 권리가 없어. 아이들을 생각해 봐.”
“그건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아이 때문에 사는 불행한 부부들에 대해 당신이 얼마나 증오했는지 생각 안 나요?”

■■■ 책 소개
여류 소설가 9사람이 서로 다른 목소리로 ‘이혼’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대에 여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기도 하고, 한 순간의 실수로 돌이킬 수 없는 회한을 토로하기도 하고, 또 갈라섬 뒤에 남는 현실과 울퉁불퉁하는 철없는 젊은 이혼의 단상을 이야기하고, 중년의 묵고묵은 감정의 골을 일탈이라는 행위로 터트리는 등 때론 가슴 먹먹하고 때론 속 시원한 그녀들의 반란을 그리고 있다.

- 2와 2분의 1(차현숙) : 지식인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남편의 위선과 가식 그리고 독선을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아내의 돌이킬 수 없는 반란.

여자는 스커트 밑으로 겨울의 세찬 바람이 들어와 허벅지까지 얼얼하다. 여자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개새끼! 그래 갈 데까지 가보는 거야. 어디 그래 보자고. 여자는 아침에 바지 위에다 스웨터를 입었다. 그 모습을 한참동안 지켜보던 남자가 말했다.
“모처럼 데이트인데 정장을 입으면 좋겠어. 바지 말고 치마로 입어.”
입었으면 좋겠어…… 입어……. 여자는 두 문장의 모순에 잠깐 눈을 감는다. 남자의 본질을 이처럼 명료하게 보여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선택을 할 수 있는 의사를 묻는 것은 그의 겉모습이고 결국 자신의 뜻대로 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것은 그의 본모습이다. 세련되게…….
남자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조용하고 다정하기조차 하다. 여자는 처음 남자의 목소리에 매혹되어 그가 하는 말의 모순을 알지 못했다. 남자가 하는 말은, 부드럽고 다정하고 착하기까지 한 목소리 때문에, 혼란이 와도 믿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남자는 아무리 화가 나도 큰소리를 치거나 험한 말을 쓰지도 않는다. 화가 났을 때는 냉담하고, 냉소적으로 목소리만 변한다. 그것이 더 무섭다.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어느 날부터 하면서 남자의 목소리만 들어도 혐오감이 솟구친다. 남자의 인간관계에서 가장 큰 매력이자, 장점이자…… 자신을 사로잡은 목소리인데…… 여자는 말의 위선과 목소리의 혐오감에 상처를 받으면서, 또 다른 한편으론 위축되어 결국 남자의 말을 따른다. 그건 여자의 모순이다. 그럴 때마다 여자는 열심히 자기를 변호한다. 길들여진 걸 어떡하나.

- 양갱(정지아) : 남편의 외도를 용서할 수 없어 이혼을 했지만 여자는 여전히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남편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오열한다.

“니, 아즉 김서방 못 잊었지야?”
내가 아니라 내 손에 들린 반 남은 양갱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고모는 불쑥 물었다.
“그럴 것을 잡아보도 못했지야? 에레서도 그랬니라, 니가.”
고모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져 내렸다. 양갱을 먹었는데도 눈물이 나네, 생각하며 나는 울었다. 고모가 오기 바로 전날, 남편이 다녀갔다. 헤어진 후 처음이었다. 한밤중이고 술에 상당히 취한 듯했는데, 남편은 종일 입고 있었을 것임에도 별로 구김이 가지 않은 흰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반듯이 매고 헤어지기 전의 어느 날처럼 소파에 앉아 내가 컵에 따라준 아인슈타인 우유를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한 시간쯤 그렇게 말없이 앉아있던 남편이 여전히 우유 컵에 시선을 둔 채 중얼거렸다.
“잡지도 못하고 보내지도 못하지, 너는.”
그게 전부였다. 우유에는 입도 대지 않은 채 그는 예의바른 전기검침원처럼 깍듯한 목례까지 남기고 사라졌다. 그날 그 여자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다음날 그의 친구이자 나의 친구였던 사람이 알려왔다. 잡혀주지 못했으니 보내주게나 하기 위해 찾아온 모양이라고, 그렇게 해주겠노라고 담담하게 생각했는데, 눈물은 왜 자꾸만 흐르는 것인지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 안개 속의 과녁(박정요) : 무책임하고 비열한 아버지로 인해 불행한 과거를 가진 가족이 30년의 세월 뒤에 찾아온 그 아버지로 인해 단란하게 꾸려 나가던 가정에 분란이 일고 그 분란 속에서 혼란을 겪으며 화해와 용서를 시도하는 주인공 남자의 자아 찾기

“아빠! 호박은 수박하고 짝꿍이야, 오이하고 짝꿍이야?”
수업을 끝내고 화장실을 들렀다가 수건에 손을 닦고 의자에 앉는 시간까지를 정확하게 꿰고 있는 둘째가 수화기를 귓불에 붙이기도 전에 냅다 들이대었다. 둘째는 요즘 유치원에서 사물의 종류를 배우는 중으로 야채와 과일을 구분해서 줄긋기를 해오라는 숙제 중인 모양이었다. 병무는 속으로 나는 유치원을 안 나와서 겨자와 후추도 구분을 못하는가, 하며 ‘엄마는 뭐 하는데?’하고 물었다. 그런데 둘째가 급작스레 가라앉힌 목소리로 ‘엄마는 떠나셨어’라고 했다.
“떠나다니, 어디를?”
“어디론가 멀리, 아주 먼 곳으로.”
둘째는 마치 텔레비전 드라마 속에서 극작가 자신의 수준으로 쓴, 아이답지 않은 대사처럼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옮겨 놓고 있었다. 둘째는 사실 엄마의 부재를 알리기 위해 호박이니 수박이니 제 나름의 머리를 쓴 것이었다. 머릿속이 휑해진 병무는 할아버지 바꿔라, 아니 민재 바꿔라 하다가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해 수화기를 내던지고 직접 달려오는 중이었다.
그러나 병무는 그만 빨랫줄에라도 걸린 사람처럼 화단 뒤편에 치워둔 주차 금지용 철근 바리케이트에 척 몸을 걸쳐 버렸다. 병무는 초등학교 2학년짜리 큰아들 민재 나이 때부터 산전수전 인생을 배우느라 지금까지 줄곧 헐떡거리고만 살아왔다. 태양 아래 저 혼자 붉은 것처럼 강렬하고 뜨거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너덜너덜한 칸나꽃이 바로, 미처 다 자리기도 전부터 헐떡거리느라 이제는 거의 해어져 가는지도 모를 자신의 심장인 것처럼 새삼 감정이 복받쳤던 것이다. 둘째의 그 어쭙잖은 시적 대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문이 아니라면 평소에는 있는지도 몰랐던 꽃이 새삼 눈에 보일 리가 없었다.

- 울산엄마(정길연) : 뼈대 있는 가문의 종부였던 주인공은 전근대적 가장인 남편과의 갈등 끝에 칠거지악의 굴레를 쓰고 쫓겨났으나 그녀의 자리를 꿰찬 후처는 그녀의 질투마저도 무산시킬 만큼 완벽하게 종부의 지위와 품격을 갖추고 있어 주인공을 오히려 초라하고 왜소하게 만든다.

꼽아 보니 근 이십 년 전이다. 여자를 처음 보았을 때가. 서로가 서로에게 적반하장의 출몰이었던 첫 대면을 잊을 수 없다. 그때 나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제 정신일 수 없었다. 졸지에 공중에 붕 떠버렸으니. 여자는 내게 시앗 아닌 시앗이었고, 나는 여자에게 날벼락 같은 복병이었다. 여자와 나, 나와 여자. 새중간에 희한한 정황을 초래한 장본인인 그가 구경꾼처럼 서 있었다. 불한당이자 사기꾼이었던 그.
덤벼들 상대로 치면 그여야 지당한데, 천하에 그가 어떤 위인이던가. 엉뚱하게도 나는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여자 쪽이 덜 버겁게 느껴졌던 것이고, 여자의 수치심이라도 건드려야 앙앙 분심이 덜어지리라는 본능적인 판단이 섰던 까닭이었다.
싸움이랄 것도 없었다. 그가 다짜고짜 내 팔을 잡아 비틀어 대문 밖으로 끌어냈으니까. 동네 사람들이 멀거니 서서 구경들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그 기막힌 구도에서도 초연했고, 나는 초조했다. 지금도 당시를 생각하면 머리털이 불불이 일어선다. 그가 어떻게 나를…….

- 산장카페 설국 1km(권지예) : 외도하는 남편을 몰아세운 끝에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어버려 용서할 기회조차 놓친 여자가 세상과 단절된 외딴 산장을 찾아 글을 쓰려고 했으나 그녀가 찾은 산장은 불길한 의문투성이의 복마전이다.

남편과 난 아주 평범하고 평온한 부부였어요. 마치 ‘사랑의 추억’에 나오는 쟝과 마리처럼. 그에게 여자가 생긴 걸 알고부터 내 안에 그렇게 큰 분노가 숨겨진 걸 알고 당황한 것은 오히려 나였으니까요. 남편은 우유부단했어요. 우유부단함, 그것은 남자로서 취할 수 있는 최악의 방법이었어요. 나는 견딜 수가 없었지만, 남편은 여자와 헤어지는 것도 이혼도 원치 않았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나는 남편을 받아들일 수 있게 내 마음이 변하는 것을 느꼈지요. 난 이미 오래전부터 남편을 용서하고 있었던가 봐요. 그 말을, 그 표현을 못했던 것뿐이지. 폭우가 쏟아지던 밤, 남편의 차가 교량을 들이받으며 범람하던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고가 나지 않았다면 이제는 난 남편을 용서하고 좀 더 평안해졌을까요? 아니, 남편의 시신을 강물 속에서 찾아내기라도 했다면 지금의 내가 좀 더 달라져 있을까요? 난 그날 남편이 내게 오고 있는 줄도 몰랐지요. 그렇게나 비가 쏟아지는 날 말이에요. 남편을 용서할 수 없어 뛰쳐나왔던 내게, 갑자기 왜 남편은 그 새벽에 나를 향해 차를 몰고 왔던 걸까요? 참 이상한 일이죠? 왜 또 그 시간에 나는 잠들지 못하고 그를 용서한다는 편지를 썼을까요…… 그 편지란 어쩌면 내 아픔에서 벗어나고자 쓴 안간힘이었는지 모르지만……. 그 새벽, 남편은 홍수가 난 강물로 그렇게 사라졌어요. 그러니 시간은 거기서 영원히 멈추어버린 채 나는 남편을 영영 용서할 수 없게 되어 버렸지요. 그것이 더 큰 고통이 되어 내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아아, 결국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받는 가장 큰 천형이에요.

-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은미희) : 다리가 한쪽 없는 불구의 친구가 이혼을 했다. 그러나 주인공은 결혼보다는 자유연애를 선호하는 영혼의 불구자. 그들의 상처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떠난 여행지에 그들이 기대한 새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차창에 가부키 같은 혜경의 얼굴이 들어있었다. 슬쩍 고개를 돌리려는데 그녀의 메마른 음성이 은숙의 시선을 도로 붙잡아다 놓았다.
“이 시대에 여자로 살아간다는 일은 어떤 것일까. 깨지지 않는 관습, 문명은 하루가 다르게 변화해 가는데 인간의 본성은 왜 늘 원시를 향하고 있을까?”
혜경이 막막한 표정으로 돌아보았다. 혀끝에 모래가 박힌 양 입만 움찔거리다 그대로 다물어 버렸을 뿐, 은숙은 그녀의 물음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난 열심히 자궁을 벌리고 있어. 그 내밀한 자궁을 통해 세상에 무얼 내놓고 싶은지, 혹은 무엇을 빨아들이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말이야. 예전에는 자궁을 닫는 연습을 했지. ‘자, 항문근육을 죄어 봐요. 항문근육은 팔자 근육으로 돼 있어 부지런히 죄는 연습을 하면 자연스럽게 질 수축운동도 돼 남편들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 있죠’라고 큰소리치던 어떤 의사의 권유로 말이야. 그러나 모르겠어. 정말 난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여성으로, 또 하나의 성으로 세상을 당당히 살아나가고 싶은지, 아니면 자궁으로 남성들의 사랑을 받는 꽃으로 살아가고픈지. 이쪽저쪽 성도 아닌, 그저 나일 수는 없을까. 나 말이야. 이혜경…….”
다시 앞을 주시하며 혜경은 높낮이 없이 낮고 차분하게 말했다. 혜경의 음성이 여느 때보다 더 쓸쓸하게 들림은 무엇 때문일까.
그녀의 불행을 은숙은 잘 알고 있었다. 삼 년 만에 끝나버린 결혼 생활. 그것을 불행으로 말 할 수 있다면.

- 그림자 여행(서하진) : 남편의 자신에 대한 사랑의 이중성과 위선에 염증을 느낀 주인공은 드디어 남편을 떠나기로 맘먹고 남편의 만류와 애원을 뿌리치고 언제까지나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과거의 연인을 찾아 떠난다. 긴 비행을 한 끝에 연인을 찾아갔지만 그를 맞이한 연인은 동성연애자였다.

공항까지 따라 나온 남편은 출국 수속을 하는 내내 말이 없었다. 내 앞쪽의 사람들이 무리지어 출국장으로 빠져나갈 때야 남편은 화난 사람처럼 불쑥 말했다.
“꼭 가야 되겠어? 이게 무슨 뜻인지 당신 알아?”
남편에게서 손가방을 받아들면서 나는 짧게 대답했다.
“알고 있어요.”
남편이 무어라 말하려 할 때 유리문 앞의 직원이 내게서 여권을 받아들었다. 내 뒤의 남자가 그의 가방으로 슬며시 나를 밀어붙이고 있는 걸 본 남편이 그 남자를 째려보았다. 초조함과 짜증이 섞인 그 눈빛. 나는 여권을 돌려받고 경계선 안쪽으로 들어섰다. 도대체 당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고 중얼거리는 남편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열린 문을 지나 걸었다. 어처구니없어 할 그의 얼굴을 더 이상은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이해시키고 싶은 마음이 내게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런 일들은 충분히 겪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을 얼마나 더 열심히 설명하고 변명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는가. 내가 그렇게 했을 때 당신은 어디 있었는가. 아니, 오히려 당신이 내게 그렇게 했어야 하지 않는가. 항상 오만하고 당당하던 당신이야말로 내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던가. 검사대를 통과하는 가방, 투명해진 내용물들이 모니터에 떴다. 내 마음을 저처럼 투명하게 그에게 펴 보일 수는 없었을까, 몇 백 번 몇 천 번 돌이키던 마음을. 나는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거대한 동체들이 빛나는 유리 너머를 바라보았다. 눈물은 흐르지 않았다.

- 병든 애인(배수아) : 신세대 젊은이들의 영혼이 깃들지 않은 애정관과 이혼 뒤 아이의 양육 때문에 벌어지는 현실적인 좌충우돌과 뭔가 불길한 징조처럼 등장하는 가시가 큰 선인장......

선인장은 베란다에 놓여 있고 무열은 주방에서 치즈를 넣은 오믈렛을 만들고 있었다. 나는 무열의 아들 군에게 스웨터와 코트를 입히고 우유를 마시게 했다. 군은 여섯 살이었다. 결혼이 갑자기 실패로 끝나고 만 다음 무열은 군을 맡아서 돌봐 줄 시설을 구하기 위해서 별 고생을 다 했다. 24시간 운영하는 탁아소를 간신히 찾아냈을 때 이제 한숨 돌리겠구나 했는데, 아이는 위탁되는 물건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군은 밤이나 낮이나 울고,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지도 못했고, 보모들을 괴롭혔고, 탁아소에서 주는 밥을 먹지 않았다. 그래서 상사들과 술을 마시거나 지방으로 출장을 가 있거나 월요일 아침 일곱 시의 미팅에 참석해 있는 무열의 전화기가 사정없이 울리게 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무열은 군을 힘껏 때렸다. 그래서 여섯 살 난 아이가 엄마를 찾아간다고 가출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군 때문에 무열도 속이 상했다. 그러나 무열은 여섯 살 난 아이가 엄마에게서 바라는 것이 되어 줄 수는 없었다. 삼 개월 동안의 그런 처절한 전쟁 같은 얘기를 다 쏟아 놓은 다음에 무열은 한숨을 쉬었다.
“군은 보육 시설을 싫어하는 거야. 그러니까 심술을 부리는 거지. 자기가 나를 괴롭힐수록 엄마가 빨리 돌아올 거라고 믿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어린 게 영악하기만 해서 잔머리를 굴리고 있어. 미치겠다. 나는 자정 전에는 집에 올 수가 없는데."
“글쎄. 난 너보다 빨리 퇴근하니까, 가끔이라면 아이를 봐 줄 수는 있어."
나는 귀를 만지면서 마침내 이렇게 말해 주고 말았다.
“그래 준다면 내가 너에게 선인장을 줄게."

- 머물고 싶은, 떠나고 싶은(이청해) : 도시적 삶과 무료함에 몸서리치는 중년 여성의 정체성 찾기

그는 한껏 양보하고 있었다. 여자가 은산에 가보자고 했을 때 면박을 주어서 일이 꼬인 게 아닌가 생각하는 눈치였다.
“정훈이한테서 전화왔더라. 어젯밤에. 당신 보고싶다고 해.”
남편은 회유하듯이 정훈이까지 갖다 붙였다. 전화가 정말 온 것인지도 모른다. 정훈이는 그들의 아들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남편과 전처 사이에서 난 아이다. 여자가 결혼해 갔을 때 그애는 고등학생이었는데, 1년 3개월을 같이 살고서 런던으로 유학을 떠났다. 여자와 아이는 다른 이들이 걱정하던 것과는 달리 사이가 괜찮았다. 정훈이는 까다로웠지만 눈치가 빨랐고, 여자는 아이의 행동 뒷면에 도사리고 있는 심정을 읽을 줄 알았다. 1년이 좀 넘는 기간이었지만 그들은 나이와 성, 가족관계를 초월해 가끔씩 전화를 주고받고 싶은 친구 정도로는 발전이 되었다. 그러니 전화가 왔다면, 정훈이 여자의 안부를 물었을 게 뻔하다. 여자는 마음이 복잡해 대꾸를 못하고 가만히 있었다.
“우리 내년 여름에 그애도 볼 겸 런던에 가자. 가서 이번에는 여러 군데 돌아다니자.”
여자는 여전히 가만히 있었다. 불현듯 정훈이와 셋이서 이룩한 그동안의 단란함이 그리워 목이 뜨거웠다.
“대답 좀 해.”
“응.”
여자는 억지로 대답했다. 평소의 그답지 않게 한 풀 꺾인 태도가 멀리서 느끼노라니 조금 슬펐다. 그는 원래 감정을 누르기 어려운 남자였다. 과격하고 욱하기 잘하는 성미에, 남의 비위 맞출 줄 모르고, 참을성도 없었다. 그런 그가 여자를 만나서 무던히도 은근해진 터였다. 친구들은 여자가 그의 타고난 경상도 기질을 잘 잠재웠다고 말했지만 기실 여자는 그를 길들인다든지 어쩐다든지 하는 생각은 아예 없었다. 그러나 이 순간, 내가 이사람을 놔두고 지금 뭐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아프게 가슴을 찔렀다.
“괜찮지?”
남편은 여전히 조심스럽게 두드리고 있었다. 눈앞에 없는 여자를 상대로 구차하게 구슬리는 꼴이 안쓰러웠다.
“응, 내일 갈게.”
여자는 재빨리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목차

첫 번째 이야기...... 2와 2분의 1-차현숙
두 번째 이야기...... 양갱-정지아
세 번째 이야기...... 울산엄마-정길연
네 번째 이야기...... 안개 속의 과녁-박정요
다섯 번째 이야기....... 산장카페 1km-권지예
여섯 번째 이야기....... 새들은 어디로 갔을까-은미희
일곱 번째 이야기....... 병든 애인-배수아
여덟 번째 이야기....... 그림자 여행-서하진
아홉 번째 이야기....... 머물고 싶은, 떠나고 싶은-이청해

저자소개

생년월일 1963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차현숙은 1963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동국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였다. 1994년 《소설과 사상》 겨울호에 <또다른 날의 시작>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데뷔하였다. 창작집으로 《나비, 봄을 만나다》《블루 버터플라이》《안녕, 사랑이여》《오후 3시 어디에도 행복은 없다》 등이 있다.

생년월일 1965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저자 정지아는 1965년 전남 구례에서 태어났으며,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0년 부모님의 삶을 소설로 옮긴 장편소설 '빨치산의 딸'(전 3권)을 발표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1996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고욤나무'가 당선됐고, 소설집 '행복'(2004)과 '봄빛'(2008)을 출간했다. 단편소설 '풍경'으로 2006년 이효석문학상을, 소설집 '봄빛'으로 2008년 올해의 소설상과 2009년 한무숙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고향인 구례에서 지내면서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전공전담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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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8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에 중편소설 '무적(霧笛)' 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 시작. 장편소설 '어른도 길을 잃는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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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년월일 1961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1961년 부산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1984년 중편소설 '가족 수첩'으로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을 수상,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편소설 '내게 아름다운 시간이 있었던가', '변명', '사랑의 무게', '가끔 자주 오래오래', '그 여자, 무희'와 소설집 '다시 갈림길에서', '종이꽃', '쇠꽃', '나의 은밀한 이름들', 장편동화 '정혜이모와 요술가방' 등이 있다. '변명'은 SBS TV 일일드라마 '두 아내'로 드라마화되기도 했다.

생년월일 1960
출생지 -
출간도서 0종
판매수 0권

아주 우울한 날에는 화집을 뒤적거린다. 화가들이 매혹 당했던 생의 어느 순간, 화폭에 영원히 살아남은 인물들과 사물, 자연. 그것들이 나를 유혹한다. 오래전 화가의 육안에 비쳤던 그것들이 내 눈에 되살아나는 순간, 나도 시공을 뛰어넘어 그들의 삶에 뛰어드는 것 같다. 지독히 사랑하거나 미치거나 하지 않으면 살아내기 힘들었을 그들의 삶. 모든 예술의 원천은 사랑과 광기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열정이 아닐까. 미치지 않고 빠지지 않고 자기 존재를 걸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그림은 전염력이 강하다. 미치고 싶을 때 나는 그림을 본다. "경주에서 태어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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